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한편의 詩...

   
   No, 232
  2014/11/12(수)
 
민조시론

 

 

 


    雲停
   
http://dnswjd.byus.net
   

<민조시론>
民 調 詩 論
(3. 4. 5. 6조)


▣민조시(民調詩) 1970년대 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인 신세훈이 창안하였다
「민조시」하면 글자 수를「3 , 4 ,5 , 6」자 틀 속에 둔다.
신세훈「民調詩에는 아무리 어려운 현대의 문명·문화 비평 언어가 시어로 새롭게 끼어든다고 해도 하나 어색하지 않게 시적 효과를 나타낼 수가 있다. 民調詩의 또 한 가지 장점은, 불과 18자로 시 한 수를 뽑아낼 수가 있다는 점이다. 日本의 짧은 정형시(17자)의 자수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각 말마디마다 얼마든지 거듭 우리의 소리말 장단에 추임새를 매겨 중첩으로 계속 쓸 수 있음도 그 형식에 매인 시조와는 다른 자유로운 언어 세계의 정형시라고 할 수 있다.」

「단민조시 / 연민조시 / 장민조시」구 분내 용단

민조시 장점

●「3, 4, 5 ,6조」종결에 따른 간결함이 덧보인다.
● 시어의 단단함이 있다.
● 행, 연의 신축성과 함축미가 있다.
● 시의 의미부여가 강하다단점
● 시어선택 , 함축성, 탄력성 , 조율에 대한 부담이 있다.
● 은은하고 잔잔한 맛이 적다.

연민조시 장점
● 단민조시에서 표현 못하는 내용을 충족시킬 수 있다.
● 행, 연 중복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할 수 있다.
● 사물의 느낌 , 감정 ,깊이 ,공간의 폭 등을 넓힐 수 있다.
● 은은하고 잔잔한 맛이 있다.

단점
● 자칫 시의 간결함, 시어의 단단함 , 함축미 ,조율등을 상실할 수 있다.

장민조시 장점
● 계속적 전개를 요하는 역사시 또는 이야기가 긴 단계별 과정 전개시가 적절하다.
● 단 , 연민조시에서 부여 못한 내용을 전개할 수 있다.

단점

● 장황한 이야기로 인한 언어의 조율 , 율조 , 직조 ,함축미가 상실될 수 있다.민조시

공통점장점

● 가락 , 장단 ,리듬의 맛이 있다.
● 간결함에서 풍기는 신선한 맛이 있다.
● 시어의 조율 ,함축성 ,깊이 ,공간미 등이 덧보인다.
● 글이 짧다는 점에서 심적 부담이 적다.단점
●민조시작법(조율 ,언어선택 ,의미부여 등) 미숙시 시가 길어진다. 더불어 연과 연의 경중(輕重)이 심하다.
● 언어직조, 조율 미숙에 따른 간결함 , 단단함 , 함축미등이 느슨해질 수 있다.
민조시 작법의 기본 틀은「3 , 4 , 5 ,6조」이다.

☆ 단민조시(예)

해후 1./雲停

옛 동무                        3/
장롱 거울 묻은 二十年,         4/5

가슴 더듬이                    5/
금새 찾았다야.                 6/

 

해후 2./雲停

켜켜이 마음자리                 3/4/
어둠빛 지고 동살 피올 때,       5/6/

와!                              1
우듬지 새로                     +5/
안개꽃                            3
핀다야.                          +3/

 

눈꽃 1./雲停

흰봉울 내려와 빈가지 앉았다       3/3/3/3/
샛별샛별 사라지는                 4/4/
햇살받고야 눈물 흘리는,           5/5

삼한[三寒] 벗하다                 5/
사온[四溫] 오시면 이별하는 별,    5/5/
별떨기                            3
가시 꽃.                          +3/

심장                               2
콕,                               +1
찌른 꽃.                          +3/

 

딴지 //雲停

허허허
새기면 그만인데
배앓이 틀려 딴지를 건다,
비겐날오후
무수리마냥 살 수 없을까?
뭉우리돌처럼.

허허허
그딴말
무작스레 버리면 되지,
무에 대수던가!


☆연민조시(예)

정월 대보름/雲停

천지인
合一하고 점쳐보는 달
여신(女神)은
지모신(地母神).

노달기 제비(祭費)마련
동제(洞祭) 지내고
밤·호두·땅콩 부스럼 깬다,
등불 켜
밤새움.

우물물 풍년기원
젤 먼저 길어,
먼동 트기 전 '내 더위 사가라'
옛 고을
해동가(解冬歌).

찹쌀밥 지어놓은
까마귀 제상(祭床)
대보름
복쌈
귀밝이술 안주.

*정월대보름-음력1월15일,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
*지모신(地母神)-만물을 품고 키워주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神.
*노달기-농군들 휴식을 취하며 농사준비 시기.


요즘 내 심보/雲停

꽃이삭 보송보송
수다 떤다, 돌담 아래서
강아지풀
남매.

꽃이라 으스댄다
심술을 핀다
더는 더
못 봐줘.

아직도 조만 것이
솜털이 숭숭,
아무
이유 없어
꽃 꺾어 버렸지.

책갈피
사이사이
격리하고서
귀 막아 버렸지.


☆ 장민조시

老人病院엔 거울이 없다/雲停

요양원,
시계꽃 피는 곳
복도에도, 병실에도 거울이 없다
병원 현관에도.

정지한 눈동자, 한숨소리
면회 가족 기다리는 엘리베이터
먼 山보는 고정 된 눈빛 휠체어 소리
분주한 간병인.

黃金 녘 펼쳐진 窓 너머 잔디밭엔
한 남자와 노할머니 한참이나 마주보며 암말 없고
오물거린다,
가랑잎 튼 입술.

오늘도 오염 世上
꺼풀 벗는 아침 오면
딸그락대는 存在 의식뿐,
새벽 沈默은 또다시 이어져.

어둠 속 혼자만 몰아치는 통증·두려움 공포 삭이다,
아침 오기만 기다린 어머니.

미움과 증오는 더해만 지는지
못할 비밀 뭐란 말인가!
그 뉘 기다리나?

도대체 알 길 없는 千 길 속내
핸드폰만 끼고 산다,
낮도 밤에도
암덩이 크는데.

티끌도 미련 없나?
복도에도, 병실에도, 그 어느 곳도
老人病院엔 어머니 거울 찾을 수가 없다.


☆ 기행 민조시

속리산 산사체험·10/雲停
  ―베개

속살이
보름밤
無痛의 연,
잊을 수 없어

마음
뉘던 널,
새벽서 품고
法門, 山門 넘어.

 

백담사/雲停

만해당 '님의 침묵'
읊조리던 곳,
韓겨레 순애보.

설악동 일곱 火災
웅덩이 一百
나랏님 귀살이.

일년도 안 지나
절 떴다, 金 떴다.

 

공림사/雲停

돌의자
잠긴 묵상 수심 한가득
산벼랑 서 있다.
하안거 용맹정진
목어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스님네 속고쟁이 속가인것을
날릴까 무서워.
노랑꽃 씀바귀
대웅전 지붕 앉아 바람 막는다,
사립탑 지킨다.

 

보탑사/雲停

못 피면 환속할라,
지천에
번진
보탑사 출가꽃.

연곡리 셔터소리
꽃잠 깨워
찡그린 미륵,
물 건너 간 화두.

속가향 바람날까?
새끼줄
긋고
보기만 하라네.

 

땡볕이놈!/雲停

수천 년
뜨고 지니 열 받았구나!
몸 살 이신가?
매미 또 울잖아.

봄이랑
꽃씨 뿌려 싹틔우니
심술이 돋아 평생 쉼 없이
물불
못가린다.

꽃단풍 달래주면
얼렁뚱땅 된 줄 아니?

땡볕이놈!
가을 휭~~가면 겨울 춥거든?
약주고
병준다.


꽃지심/雲停

샐빛은 쏟아져서
별별(別別) 꽃
됐냐!
동창 핀 야생초.

춘 사월(春 四月) 피는 창꽃
꼭, 만질 적은 참말로 고와
푸른
처녀 속살.

꽃 뜰엔
녹색 구릉 천 리 향 너울
속간장

녹여.

가랑이 콩알 콩알
살짝 내민 꽃
군자蘭
꽃자루,

꽃 자린 처녀궁.

*처녀궁-봄의 남쪽하늘에 보이는 별자리로 가장 밝은 별중의 하나.


 

 



       
   No, 231
  2014/11/12(수)
 
새로운 정형시 운동 - 민조시(民調詩)에 대하여

 

 새로운 정형시 운동 - 민조시(民調詩)에 대하여


 닉네임 : 심흥근  2014-07-26 18:15:30   조회: 850  


새로운 정형시 운동


-민조시(民調詩)에 대하여


<한국 시문학 아카데미 ‘금요시론포럼’ 논문 모음 ‘새로운 시론 탐구’/교열-재록>

발표: 신세훈 (시인 제22, 23대 문협 이사장)
곳: 배재 학술 지원 센터 1층 세미너 실.
정리: 신규호 (시인 제 19대 현대 시협 이사장)


1.
늘 여러분들과 토론하고 싶은 것은 바로 民調詩입니다. 이 민조시도 (그러한 맥락에서)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해가다가, 대학에 들어가 沈象運씨하고 중대 기숙사(12호실) 한방에 같이 있게 됐는데, 심상운씨는 국문과고, 나는 연극 영화 학과니까 국문과 강의를 신청해 들은 것은 전부 듣고, 신청 못할 한문학 쪽이라든가, 고전 문학 쪽은 도강을 하거나 했습니다.

거기서 양재연 선생 (고전문학) 이나 또 남광우 선생 (‘고어 사전’ 편찬), 김동욱 선생 (고전문학)이 그때 중앙 대학교에 계셨는데, 그분들의 명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심상운씨가 가지고 있던 고전문학 교과서, 대학 교과서를 빌려가지고 처음부터 다 읽고, 심지어 우리나라 고전의 향가, 여요, 가사, 그 다음에 고시조, 안병욱 선생이 편한 ‘고시조 사전’, 이런 것을 보니까, 이 판소리 대본 같은 것도 볼 기회가 있어서 보고, 실제적으로 소리와 창을 발표하는 것을 자주 듣고 보러 다니다 보니, 우리말의 장단가락 매듭이 우리말의 장단 가락 매듭이 우리 무용이나, 혹은 민속놀이나 민족 전통극, 가면극이나, 심지어 시골에서 늘 잔치마당을 벌이는 동네 굿 마당극이라든가 농악까지 감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4물놀이(꽹가리,북,징,장고) 네 개로써 이루어지는, 하머니로 이루어지는 4물놀이에 장단가락 박자까지도, 우리 민족의 장단가락이 한마디로 4분의 4박자나, 4분의3박자, 이러한 풍으로 완전히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대중가요로 말하면 바로 트롯 풍이죠, 나는 트롯 풍이 우리의 기본적인 율조라 생각을 하고 파악을 했습니다. 그리고 음수율, 자수율은 ‘향가’부터 지금까지 고전문학 전부 다 훑어보고, 판소리, 가락까지, 장단까지 전부 다 짚어보니까, 민조시 그 운문 맥락이 이제 짚어졌습니다.

시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조도 초장, 중장,종장, 3장6구로 나눠져 있지만, 시조의 구성이 초장 3,4/3,4 또는 중장도 3,4/3,4 종장은 3,5/4,3(거꾸로 하면 3,4,5,3-> 초,중,종장의 3수리와 연결+3=6)… 이렇게 일단 단수, 평시조에 매겨져 있거든요.

물론 거기에 엇시조도 있고, 사설 지조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평시조를 계속 연결해 쓰면, 연작처럼 쓰면, 이제 연시조가 되겠고, 이러한 걸로 시조가 발전되어 나왔습니다만, 시조 형식, 내용도 보면 결국 여러분 눈에도 보일 겁니다. 3,4,5,6조 (3조+3조)입니다.

다만 형식만 초장,중장,종장에서 3장 6구(12음보)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런 구조가 결국 문학에, 옛날부터 내려오던 소리 장단가락, 한민족 연극이나 음악이나 무용이나 다 마찬가지 입니다. 무용의 춤사위하고 비교해 보면 결국 3,4,5,6조 가락으로(현장성있는 시절가인) 시조가 형성되어 있더란 말입니다.

시조가 3,4,5,6조라 하는 것은 3,4,는 이미 초장이, 중장이 다 3,4이고, 그러면 5,6은 어디 있느냐, 종장 3/5/4,3 종장, 종장에 3/5/4,3 에 들어있습니다.

왜 그러면 우리 민족이 3박을 3을 중요시 했느냐, 이게 易學(주나라의 ‘주역’이 아닌)과 관계가 있습니다. 3,4,5,6조가 바로 1,3,5,7,9의 기본 홀수의 수리 ‘天符經’에 보면 1은 3하고 같은 개념 (1=3=天人地= ㅇㅿㅁ=우주=3재, 3신 사상)입니다.

3이 곧 6이 되고, 3x3=9가 되고, 9x9=81이 되고, 또 ‘천부경’은 81자인데, 곱하기, 나누기, 빼기, 더하기 수리 전부 다 ‘천부경’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철학, 수리학은 우리조선 동이족의 선조들이 다 해놓은 것입니다.

‘천부경’ 속에는 우주(만상) 철학까지 다 들어있습니다. 수리학, 기하학, 다 들어있습니다. 대수, 기하각도 들어있습니다. 그걸 연구해 보고 언제 깨달았느냐 하면, 소설가인 박용숙씨가 전화를 걸어와 (77년도에요, 정확하게) “사학자 천관우씨 (언론인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시절)도 이걸 (천부경) 못 풀었고, 천관우씨가 동아일보에 천부경 해석하는 사람은 상금을 주겠다고 광고를 냈는데도, 아무도 못 풀었는데, 이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역학자 이원선(李源善)씨가 이 천부경을 풀어내 강론을 하니 들으러 가자” 하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미술 평론가인 이분 박용숙(朴容叔)은 옛날 ‘자유문학’편집장까지 하고, 열심히 좋은 소설 쓰다가 그 후에 미술평론으로 바꾼 끝에 대학 교수로 미술사만 강의를 했는데, 미술사를 강의하다 보니까 ‘천부경’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같이 가자고 해서 갔습니다. 내가 그때 그 ‘천부경’ 강론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천부경 81자를 얇은 팸플릿 판으로 번역 했는데, 몇날 며칠 동안의 그 강론과 질의,토론을 들으면서 그걸 듣고나니까,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였습니다. 그 후부터 경전이나 고전,상고사 들을 열심히 일고 공부하면서 느꼈습니다.

아! 우리민족은 위대한 민족이구나, 우리 민족이 세계 역사에, 사상적으로나 언어 문화 뭐로나 모든면에서 제일 앞섰던 민족이구나. 제일 역사,문화가 앞섰던 민족이었구나, 연금술 수리학 철학 우주만물의 음양5행 원리를 아는 역학, 전부 다 우리 선조들이 계발해 놓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의 문자도 우리 민족이 제일 먼저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문(漢文)도 중국문자가 아닙니다. 우리 조상이 만든 우리문자 입니다. ‘한단고기’에 보면, 단군 가륵 2년에 신지 (혁덕) 가 만들어서 저변방의 왕국이나 부족 국가에 전파해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떄는 녹두(도)문도 있고, 우서, 화서도 있고, 여러가지 문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림 같은 상형이 먼저 시장이 되고, 그다음에 은나라 갑골문자로 이어지고… 이렇게 가림토문(가림다문)이 생긴 것입니다.

가림토문은 모음,자음, 모두 38정음자인데, 우리 세종 대왕과 ‘집현전’쪽에서는 28정음, 38정음 중에서 10자는 버린 채 28정음만 가지고 우리한글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글을 만들어 놓고 세종대왕이 ‘창조했다’는 소리를 못했습니다.

왜 ‘맹가노니…’.라고 했겠습니까. 가림토문 38정음, 여기서 28모음,자음 정음을 가져왔기 떄문입니다. 우리가 남쪽으로, 남쪽으로 밀려내려와 한반도 쪽에 밀려와 사니까, 따뜻한 지방으로 왔기 때문에 거칠고탁한 발음은 다 없어진 것입니다.

‘쓰,끼,쮜,프,카,찬,칸,’ 이런 구개음에서 거칠게 걸리는 (음-)목소리에서 껄껄하게 나오는, 추운지방에서 벌벌 떨명서 서로 이야기 할 때 ‘크크, 프프’하고 ‘츠츠피티뷔…’하는 음성은 거의 없어지고, 28정음만 남겨 가지고 우리한글을 부드럽게 정착시킨 것입니다.

한문자를 가지고 어두를 표현하던 시대에는… ‘호태왕비’(광개토대왕비) 같은 것들도 요새 중국의 문법으로 번역하면 그 해석이 달라지고 틀립니다. 옛날 우리식, 옛날 우리 이두, 지금의 한글어순으로 한느 우리 문법 그대로 ‘호태왕비’를 해석하면 맞아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나 요즘 학자들이 서양 문법과 같은 한문 문법을 가지고 ‘호태왕비’같은 고전 역사 기록을 해석하니까 엉뚱한 해석으로,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인류 언어 문화사를 모르는)역사 학자들이 우리역사를 잘못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수리학, 수학이 철학입니다. 天人地 (원각방=ㅇㅿㅁ=3신 사상) 기하학적인 것 모든게 우리 민족이 창안해 낸 것입니다.

천부경 81자속에는 우주만상의 원리, 아까 ‘3’을 이야기했습니다만, 3신 사상 , 3재 사상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한문으로도 ‘3’ (三)은 하늘과 인간과 땅, 3세계로 나뉘어서 만든 것입니다. 한글은 소리글자만(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글도 (한자와 같이) 뜻글자와 소리글자를 같이 갖춘 글자입니다.

그러나 우린 (한글을) 배울 때 소리글자라고만 배웠습니다. 어느 글자든지, 한문이든지, 한글이든지, 하나로 긋는 것(‘一’)은, 이건 제일 위에 있는 것은 하늘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1자 (‘一’)죠, 한1자가 뭐냐? 하늘이다! 왜? 하늘이 한일자냐? 옛날 우리 조상들은 원시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넘어올 때, 은하수를 한 일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늘을 맨 위에 쓰는 (뜻인) 한 일자로 표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문에서 윗글 한 ‘一’자 로 된 것은 무조건 하늘 (天=하늘: 一, 땅: 一 =사람: 人: 一)을 뜻하는 겁니다. 한글의 ‘ㅎ’을 보더라도 한 ‘一’자가 있습니다.

한글에서나 한문에서나 점(•)은 주인, 사람, 왕, 우두머리 (하느님:옥황상제)를 뜻합니다. 한문에서 (·)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하나의 주인이다, 한이다, 하나다, 크다, 많다, 우리다, … 이러한 뜻의 개념으로 (선조들에겐) 점("•")이 우리 문자에 필요했던 겁니다.

‘ㅎ’의 ‘一’ 위에 점이 찍혔다는 것은 ‘하늘위에 주인이 있다’라는 거죠, 여기에다가 하늘(一)아래 ‘ㅇ’을 쓰면 역시 하늘이 있는 둥그러미에 (하늘) 세상 또 그위에 둥근하늘이 있는데, 거기 주인이 있는거예요, 이게 ‘ㅎ’이라는 뜻이라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기 ‘ㅎ’ 밑에 아래 (주인) (•)을 찍어 ‘ㄴ’ 으로 가로세로 울타리를 막아붙여쓰면 ‘한, ‘우리’, 우리의 한글 뜻글자로, 바로 이런 사상이 ‘한사상’입니다.

‘한사상’은 우리문학에서, 시에서 특히 한사상 하면은 (이-)슬프고 괴롭고 이런, 恨스런 민족이라고 해서 ‘恨’사상이라 선배들이 자주 말했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한사상’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조상들이 정신적으로 이미 개발해놓은 그러한 ‘ㅎ’밑에 아래 "•" 자에다가 ‘ㄴ’을 한 ‘한사상’…. 크다, 많다, 우리다, 하나다, 으뜸이다, 꼭두다… 이러한 뜻의 한사상 입니다. 그래서 이 ‘한’이라는 말은 한, 찬, 칸, 간, 가한… 다 같은 겁니다.

중국의 ‘漢’나라라는 한도 우리말의 ‘한’에서 나오는 ‘한’이요 우리 ‘한국’이라는 이 ‘한’도 거기서 나오는 ‘한’인요, 또 사람이름을 부를 때 옛날 황제나 왕이나 어느 우두머리를 부를 때, 징기스’칸’ 처럼 반드시 한,찬,칸,간,가한 … 들이 들어갑니다.

한문 발음으로는 성길 사 ‘한’이지요, 그리고 신라때나 고대(동서,남북) 황인종의 (부족 국가 )직책을 보면 한,찬,칸,간,가한 이게 다 ‘한’이라는 ‘한’사상 말속에서 나온 우리말에, 하나다, 많다, 크다, 우리다, 덩어리다….이런 뜻속에 수리학 1,3,5,7,9 가 형성되는데, 우리 민족이 제일좋아하는게 ‘3’수리입니다. 씨름을 하더라도 3세판, 윷을 놀더라도 3세판, 3세판에 결정지우는게 우리 (동이 조선)민족입니다.

3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우리는 1,3,5,7,9를 상당히 좋아하는 민족인데요, 1.3.5.7.9. 속에서는 중간(홀수) 수리기둥이 ‘5’입니다. 이걸 말씀드리려고 지금까지 내가 빗나가는 말씀들 들렸습니다. 1,3,5,7,9의 중간 기둥수가 홀수 ‘5’입니다.

그래서 이 ‘5’기둥 홀수리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5,7조 (3+4조)가 되어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가 형성이 되었는데, 다시 우리 개화기에 3,4,5조 정형시로 선배들이 (일본에서) 거꾸로 수입을 해 3,4,5조를 실험했지요, 최남선 이광수, 이런 분들이 3,4,5조를 개척하려고 애를쓰고, 김안서도 정형시로 개발하려고 애를 썼는데, 실패했습니다.

시조는 개화기에 일찌감치 고시조에서 우리 현재 시조로 개척했을 때, 여러 사람 (불과 5,6명)들이 모여서 노력한 결과, 오늘날의 현대 시조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민조시 3,4,5,6조의 ‘5’ (기둥수)를 내가 강조하는 건데요… 이1,3,5,7,9의 중간 기둥수 율려 철학이 (홀수) ‘5’ 입니다.

그러면 ‘6’은 뭐냐? 서양사람들은 0(제로)의 개념이 없었죠. 우리 동양에서만 제로의 개념으로서 철학을 정립하고 있었습니다. 서양사람들은 자기가 보는 것 외에는 인정을 하지를 않아요, 과학적이고, 사고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만 하고 있어서 그런지, 현상적으로 증명되거나 보이는 것 외에는 믿지를 않습니다.

시에서 눈물(을) 흘려도 그이유가 없거나, 눈물 흘릴 만한 합리적이니 시가 안되어있으면 그 사람들은 별거 아닌 것처럼 (취급해)감동하거나 그 시를 믿지를 않습니다. 또 그런 시를 시로 생각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서양시들은 상당히 사고적이고, 과학적이고, 지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죠. 왜? 이사람들은 애초에 ‘0’의 개념 제로의 개념,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못본 거죠. ‘0’의 개념이 바로 ‘씹’(10)입니다. 동그라미 이자 바로 ‘구멍’의 모성 입니다.

1,3,5,7,9의 아홉 수. 우리 조상들은 아홉 수를 이세상 마지막 수로 생각했습니다. 아홉수가 마지막 수입니다. ‘아홉수를 조심해라’ 민간에서는 이 아홉 수를 큰 변수로 알고있습니다. 역학에서도 그러하지요.

내가 이때까지 자라오면서도 아홉이 되었을 때, 열아홉 때도 자살을 꿈꿨고, 실제 자살을 하려고 고향앞산에 올라가 언덕끝에 서 본 적도 있고, 29,39,49,59…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49,59,… 이 아홉에 결정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수난이 심했던 것같습니다.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 아홉수에 많이들 달라져요. 직작을 드만 두둔가, 뭐 (사업을)엎든가,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든가, 자기 가족 중에 누가 이별을 하든가, 이혼하든가, 결혼을 하든가, 이사를 가든가, 아홉수에 상당히 인생8자 변화가 심합니다. 이 아홉수가 마지막 수이니까---.

그래서 아픈 사람들은 이 아홉 수를 특히 조심해야 해요. 이 아홉 수에 많이 다치거나 죽거나, 이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나라 때 형성되어 완성한게 ‘周易’입니다. 우리 동이 조선족 혈통이라면 이걸 그냥 ‘주역’이라 그러면 안되죠 ‘易學’이라고 해야 합니다. 역학! 3,4,5,6조의 기본조가 1,3,5,7,9의 수리학 기둥인 홀수 ‘5’를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5’행 ‘5’항 이지요.

시조에서도 맨종장에 3.5,4,3,처럼 ‘5’가 꼭 기본(기둥)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초장,중장,종장으로 준비해서 마지막 종장으로 마친 거니까, 3장 끝에서 결론으로 내리는 것이니까. 그리고 ‘3’이라는 수는 시조에선 꼭 ‘3’으로 시작을 해서 맨 마지막 종장에 가서 시작했던 것처럼 마지막 ‘3’,5,4,3으로 끝냅니다.

왜 그러면 시조에서도 ‘3’을 (각장에서)중요시하고 ‘4’를 중요시하고 ‘5’를 종장 기둥수로 세워서, 기둥(가락,장단)으로 못박아 3,5,4,3,으로 끝내느냐?

그렇다면 시조에서는 ‘6’이 어디 있느냐? 3,4,5,는 분명히 시조 형식속에 (보이게) 들어있지요. 그런데 ‘6’은 어디 있느냐? ‘3’이 곧 ‘6’ (3+3)입니다. 바로 1,3,5,7,9,에 1은 ‘3’이료, ‘3’은 ‘6’이고 ‘6’플러스 ‘3’은 ‘9’…. 또 ‘3’곱하기’3’도 ‘9’….

이렇게 수리가 흘러가기 때문에 시조에서 보면 초장 ‘3’이 중장 ‘3’으로 중장 ‘3’이 종장 ‘3’으로 종장 앞뒤 (3+3) ‘6’과 초,중,종장 앞 3x3=9가 곧 ‘3’인데 이 3이 종장 마지막 3으로 변해 전부 3,3,3,3,… 이렇게 넘어가면서도 서로 앞뒤가 물려있어요.

그래서 이 소리와 장단, 이미지 까지도 ‘3’의 수리가 바로 앞뒤 ‘3’하고 다시 연결되어 있으면서 ‘6’을 숨겨놨으니까, 기둥수 ‘6’(짝)이 들어 있는 2,4,6,8,10… 아까 제로 (10=0)의 개념은 눈에 안 보인다고 그랬죠 그러나 1,3,5,7,9 수는 다 보입니다. 그렇지만 2,4,6,8,10은 (그림자 짝수로) 눈에 잘 안보입니다.

이러한 개념의 숫자에서 제로(0)의 개념이 바로 10 (10=0)이라는 ‘구멍’(모성) 숫자입니다. 우리말에도 그냥 ‘십’(10)이죠. ‘10’은 뭡니까? ‘0’(동그라미) 이면서, ‘구멍’이면서, 여성입니다. 여성을 ‘10’이라고 그래요. 이 ‘10’의 개념은 제로(0)의 개념입니다. 제로의 개념…. 남성이냐? 여성이냐? 여성의 개념입니다. 이 ‘10’이라는 제로의 개념 숫자가 여성을 뜻합니다.

이제 2,4,6,8,10…. 이 ‘10’의 짝수는 제로의 개념이면서, 2,4,6,8,10의 중간 기둥수는 뭡니까? 서양인들이 요렇게 (가운데 손가락만 편 채 주먹을 번쩍 들어 위로 올리며) 표현하는게 뭡니까? 바로 중간 기둥수인데 2,4,6,8,10의 기둥수는 ‘6’이에요. ‘6’ 안보이는 ‘6’, 안보이는 ‘10’입니다.

‘6’은 모성이죠, ‘6’은 ‘9’같은 ‘남성’이 아니고, 나는 이 ‘6’을 박용숙 씨 하고 ‘천부경’ 강론을 듣고, 또 신라 충신 박제상이 쓴 ‘징심록’ (澄心錄)의 율려사상에 대한 글을 읽고, 그 글속에서 ‘6’의 짝 수리 개념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이때까지 이광수나 최남선이나 이사람들이 3,4,5,조 까지만 하고 (천부경 수리의) ‘6’을 발견 못했어요, 그 ‘6’의 개념 (짝의) 기둥수 ‘6’의 개념…. 2,4,6,8,10의 기둥수 ‘6’의 개념이 우리 민족의 수리학 개념으로선 홀수기둥 ‘5’를 받쳐주는 …. 짝수기둥 ‘6’의 개념 (짝의) 기둥수 ‘6’의 개념이 돼야 모든 장단가락이 자연스레 흡수되고 어우러져 (소리가) 성립되는 건데, 이운율을 그분들은 발견을 못했어요. 나는 이걸 (짝수 기둥 ‘6’)발견했습니다!

그래서 ‘6’의 개념을 ‘5’에 1,3,5,7,9의 기둥수에 ‘5’의 개념에다가 딱 ‘6’을 (5뒤에) 받쳐주면 ‘7’은 필요없는 ‘덤’ (3+4)입니다. ‘7’은, 우수리 ‘7’은 필요 없어요. 왜 ‘7’ (3+4)이 필요합니까? ‘6’ 다음에? 우리 정형 장단가락 모든 춤사위나 이 소리 몸짓을 따질 때 ‘6’ 다음 ‘7’은 필요 없어요, 뭐냐! 역시 아까 3이 돌아가 친다고 했죠? ‘6’이 발생된다고 했죠?

그래서 ‘7’의 개념은 어디에서 오느냐? 돌아친 3+4조가 ‘7’입니다. 3,4,조가 7조에요, 이 ‘7’조 개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3,4,5,6,까지는 설정을 시키고 (일본에서 좋아하는) ‘7’은 버렸어요. 오랬동안 망설이며 고민하다가 ‘7’은 결국 3,4조가 대신 역할을 하고있어 버렸는데, 결국 내가 꺠달아낸게 “’7’은 덤이다! 공짜다!”라는 겁니다.

서양에서는 이 ‘7’이 럭키세븐입니다. (공짜행운의) 럭키세븐. 우리동양에서는 공짜 수, 덤의 수인 ‘7’. 그 3,4 조로 얼씨구 절씨구 기분좋게 돌아가는 수는 덤의(행운)우수리 수입니다. 그덤의 수 (‘7’)가 서양으로 넘어가서느 이게 럭키세븐으로 둔갑해 개념이 행운의 수로 변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 요일도 7일간 7요일이죠.

7일 간x7일 간 = 49일 간 (4x9제)…. 창조의 법의 수가 또 반드시 ‘7’속에 들어있습니다. 이 덤의 행운 수리학이 바로 홀수 ‘7’인데 이 ‘7’의 홀수 개념은 결국 짝수 ‘6’을 도우면서, 1,3,5,7,9로 ‘6’을 도우면서 ‘7’은 결국 (다시) 3,4,로 써먹힌 거예요, 3,4 때문에 5,7조(3+4)가 중요시 되는겁니다.

 

 

2.
그래서 이러한 우리의 장단 가락이, 소리가, 음보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일본의 ‘萬葉’이 되고, 일본의 만엽 속에서 다시 정형시 ‘하이쿠’(5,7,5조=17자) ‘단카’ (5,7,5,7,7조=31자)로 발전이 됐습니다마는, 그러나 시인 洪潤基 씨가 일본(고대) 역사나 역사, 문화에 얽힌 고전문학 이런 걸 연구하기 떄문에 홍윤기 씨의 학설에 의하면 ‘일본의 정형시는 백제의 王仁 박사가 처음 썼다’ 그 정형시를!

그래, (일본) 역사책속에서 난파진가(難派津歌)를, 왕인 박사가 처음 쓴, 일본의 처음 정형시 ‘난파진가’를 인용까지 해가지고 홍윤기씨가 고증했어요.

그래서 저도 그걸보고 일본 정형시는 고대 한국에서 건너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가지고 가서, 결국 일본 정형시를 처음 써서 역사기록에 그대로 남겨두고있는 거예요.

물론 ‘만엽’형식이 이쪽(日)으로 (7,5조) 가사들 전부다 건너가 나중에 서로 어우러져 결국 일본의 단카 (短歌) 와 하이쿠 라든가, 여러가지 트롯 풍 시가 대중 노래로 발전했습니다만, 일본 정형에 있어 제일 짧은 자수로는 결국 17자(5,7,5조) ‘하이쿠’입니다.

그런데 내가 개발하고 개척한 것은 3,4,5,6,조 즉 (하이쿠 보다 한자 더 많은)18자 입니다. 내가 시조를 시집 한 권 분량을 써봤지만, 이 시조 3장 6구 가지고는 아무리 써봐야 현대 감각, 현대적인 어떤 문명문화의 비평언어라든가, 이런 상황 역사 의식문제, 이런 것들을 모두 다 수용해 놓고 볼 때, 도저히 시로선 다 표현이 안돼요, 시조에 넣어 써도, 3장 6구에 넣어도 표현이 어색하기만하고 시로 잘 녹아들지 않아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3,4,5,6,조에 갖다넣어놓고 추임새(여기서는 거듭장단)까지 쳐대니까, 역사 의식이든 상황이든 문명,문화 비평 언어 든 뭐든지 다 어울려 들어요.

우리생각, 우리장단 가락 모든 것을 3,4,5,6조 속에 넣어서 녹여쓰면 (민조시로는) 안넘어가는 것 (소리,장단,가락,뜻)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호흡, 장단가락이 맞고….

그래서 3,4,5,6조를 확정(1976. 10.14) 짓고는, 처음 ‘3,4,5,6’조라고 해서 제일 먼저 ‘心象’지 (1980. 9)에 발표(2편)를 했조. 그게 80년대 초일겁니다.

그 다음 ‘3,4,5,6’조 연작시를 ‘詩文學’지 (1983. 2)에도 상당히 많이 발표를 했어요. 韓國文學지 (1983. 10)에도 발표하고, 白華文學 (1983, 7,31. 제10집) 월간문학 (1994 12) 자유문학 (1999 봄, 제31호)에도….

한국일보 문화 센터에서 제자들한테 강의를 하면서도 늘 ‘민조시’ 여기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처음 그때는 ‘民調’라는 말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내 기억에는 ‘89년 연말이던가? ‘90년 촌가? 그때 강의를 하면서, 그자리에서 번쩍 떠오르며 생각나는 게 백성 ‘民’자 율조라는 ‘調’자 詩調라는 ‘調’자 ‘民調’라고 붙이는 게 좋겠다!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어요.

그때 그자리에서, 강의를 하면서, 앞으로 내가 ‘3,4,5,6,’조를 민조시라 명명하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강의를 듣던 사람은 이자리에 한 명도 없습니다만, “민조시로 하겠다!” 해서 한국일보 문화센터 흑판에다가 백성 민, 고를 조, 글 시, 이렇게 써서 명명했습니다.

그냥 민조 라고도 할수 있는데 민조라고 하면 흡사 시조와도 비슷하고, 너무 그쪽에만 본보고 따르는 그런 감이 들고 또 시조 쪽에서는 민조라고 하면 같은 시조끼리(?)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것도 감안을 했고.

그리고 民調를 현대 감각적으로, 현대시 못지않게 감각적으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름에 ‘詩’자를 넣어서 ‘민조시’라 하는게 좋지 않겠는가! 그리 민조시라고 이름을 명찰을 (처음)단 겁니다. 물론 ‘민조’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죠 ‘民調詩’라고도 하면서….

그 뒤에 계속 민조시 얘기를 하면서 우리 제자들한테 권유를 했지요. 그쪽에 적성이 맞는 사람은 그쪽으로 지도를 해줬어요, 그래보니, 자유시보다 훨씬 빨리 돼요. 지금은 ‘민조’를 내가 직접 지도하고 있는데 이분들은 다 자유시를 쓰던 사람들입니다.

자유시의 벽에 부딪혀있는 사람들 같아서, 이쪽으로 가르치니까, 굉장히 빨라요, 발전이 빨라요, 물론 형식이 짧은 데다가 장단, 가락도 그렇고, 쓰는 요령하고 약간의 형식미와 시어사냥 이런 것, 어려 가지 기교, 터득만 시켜주고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만 붙여주면 ‘민조시’ 3,4,5,6조를 쉽게써요.

그래서 제자들에게는 요새 단수를 주로 뽑으라고하고 있어요. 제일 먼저 이 단수에 대해, 단수만 쓰라고 지적해 준 분이 文德守 선생이고 여기 온 문학 평론가 新毫 선생입니다.

초창기 때 문덕수, 신호 두 분이 민조시에 너무 추임새를 넣어가지고 계속 3,3,4,4,… 그러니까 자유시하고 비슷해져서, 이게 정형시라는 맛이 언뜻안떠오르고 하니까, 단순하게 단수로써 3,4,5,6,으로 써 딱 맞춰서 끝내고, 그렇게 해나가는 게 오히려 정형시답고 좋다! 성공하려면 그쪽으로 나가라! 이렇게 바로 문덕수 선생이 충고를 해주신 거고, 또 신호 선생도 그 문제를 평론으로 써서 발표했기 때문에, 보니까 단수 주장 그걸 쓰셨더라구.

3,4,5,6의 그 단수, 단수로 된 평시조처럼 쓰는 게 좋겠다는 내용, 이게 내 ‘3,4,5,6조’ 시집평에 거기, 연작 열 편을 한편으로 만들어 쓰는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짧은 단수, 그쪽 분야로 그걸 계속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지적을 했더라구요.

그래, 요즘 와서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 제자들한테도 이제, 단수 3,4,5,6으로 끝내라! 그러려면 깊은공부, 선공부도하고, 만공 경허의 선에 대한 시와 이분야에 대한 시조집도 다 읽어보고, 선공부도 본격적으로 하고, 정말 3,4,5,6으로 좋게 끝내라. 그게 앞으로 공부하기도 좋고, 쓰기도 더 좋고, 새로 배우는 사람들한테도 헷갈리지 않아 좋다.

그러나 나는 3,4,5,6조에서 거듭 추임새하는 것을 포기는 못합니다. 쓰기는 3,4,5,6조 단수로 쓰되, 겸해서 복합적으로 추임새도 같이 쓰는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연국을 공부했기 때문에, 4물놀이, 우리 모든 판소리, 우리 가락들 전부 다 거듭 장단 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장단 가락,소리,음보,춤가락…. ‘사위’를 거듭거듭 치게 되는 이 추임새…. 이게 또 형식적임 년에서 우리민족을 이때까지 지배하고 있었어요 (거듭 반복 치는 것….)

그러니까 우리 소리 음보 말마디에서도, 계속 소리가 거듭되는 게 많습니다. 시조는 3장 6구 12음보로 되어가지고 그대로 거듭하고, 엇시고나 사설 시조에서도 거듭을 계속 쳐주고 있지만, 민조시에서는 그러면 어떻게 할꺼냐? 3,4,5,6조를 자유 자재로 쓴다, 3,3,이나 4,4, 혹은 5,5,로 거듭 칠 수 있고, 결론 부분 ‘6’도 거듭 칠 수는 있습니다…. (중략)…

가령 ‘6’으로 마감을 했을 때 뭔가 조금 부족하다, 마감은 됐긴 됐는데,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또 더 세게, 더 깊이 있게, 더 좋은 구절로 또 ‘6’을 다시 한번 더 쳐줍니다. 쳐서 막아주면 위엣게 저절로 더 효과적으로 살아납니다.

그래서 결론 부분인 ‘6’도, 마지막 결론 부분에도 장단,가락,음보를 더 쳐주자, 이와 같이 시조를 내 제자들에게 가르칠 떄도 ‘종장 중첩을 해봐라!’ 그래, 종장 중첩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李周南 시조 시인 입니다. 이주남 시조 시인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86년에 시조를 박재삼 이우종 두 분이 뽑아 당선을 해 文林에 나온 시조 시인인데, 이분은 한국일보 사 문화센터 시절 초기에 시조를 나한테 배웠어요, 지금도 이주남 씨의 시조를 보면 엇시조가 아니라 첫종장 중첩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나는 시나 시조나 민조시에서 중첩을 상당히 많이 활용을 해서 쓰는 편인데요, 물론 중첩을 안쓰고 단수로써 민조시를 깨끗하고 깔끔하게 해내면 그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그러나 쓰다보면 뭔가 부족하고, 써 놓으면 뭔가 더 추가하고 싶은 게 있고, 그럴때는 서슴없이 중첩을 씁니다.

3,4,5,6,속에서 거듭되는, 말하자면 음격은 억시 연극 쪽이나 우리 민족의 말사위, 춤사위나, 이런 춤과 말사위속에서 어떤 음보를 거듭치는 장단 가락이라 생각하고, 나는 그걸 적절히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가르치는 제자들한테는 ‘될수록 3,4,5,6,으로 끝내라! 3,4,5,6으로만 끝내도록 해라!’ 하니까, 그사람들도 상당히 가벼워하고 그렇게 끝을 냅니다.

그러나 저뒤에 앉은 金進中 씨의 민조시는 굉장히 깁니다. 우리 자유시, 장시만큼도 길게 막 쓰고 그래요, 그걸 일일이 3,4,5,6으로 맞춰가지고 쓰는데, 내가 부탁할 것은 김진중씨도 앞으로는 너무 길게 사실적으로, 그리 힘들게 쓰지 말고, 그냥 3,4,5,6으로 끝내는 방향으로 좀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呂閏東 시인도 있는데, 역시 민조시인 입니다. 여윤동 시인은 민조시인으로, 조금 있으면 시집이 나옵니다. 민조시를 민족 문화 역사문화 쪽 공부를 많이 해서, 그 쪽의 것을 녹여 민조시에 수용을 하고있고, 우리 민족문화 정신의 전통적인, 말하자면 뿌리와 기둥으로 이어주는 그러한 역할을 여윤동 시인이 하려고 지금 노력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민조 시론에 대해 내가 드릴 말씀은, 사실 내 시집속 책머리 서문격으로 ‘새정형시 민조시 (3,4,5,6조) 개척 선언문’ 안에 원론은 모두다 들어 있습니다.

아래에 첨부해 놓았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3.

‘새정형시 民調詩 (3,4,5,6調) 개척 선언문’

民調詩란 무엇인가? 우리 한민족의 민간 장단으로 흘러내려오는 율조의 소리마치를 문자의 뜻위에 얹어 빌어쓴 정형시가 곧 민조시이다.

민조시는 왜 새로운 정형시인가? 우리말의 소리마디를 3,4,5,6,조의 정형률에 맞춰쓴 새로운 시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 문학사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정형시이다.

민조시의 정신인 사상 배경과 3,4,5,6조의 정형 율격 근원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새정형시인 민조시의 사상적 배경은 한민족 고유의 정신문화 유산인 ‘한’사상에 그 밑바탕을 펼쳐두고 있으며, 정형 율격수리의 3,4,5,6조는 한민족의 철학인 수리학에 그연원을 두고있다.

민조시의 새정형 자수율을 왜 3,4,5,6,조에만 걸어둔 채 정형시로 정착시키려하는가? 한민족의 수리철학은 허수와 실수의 1,3,5,7,9이며, 또 2,4,6,8,10의 10은 ‘0’(제로, +)의 개념으로 설정되어있다.

‘1’(하나)은 곧 ‘3’(셋)이며, ‘3’ (셋)은 끝수인 ‘9’ (아홉)였다. ‘5’는 1,3,5,7,9 중의 기둥수리이며, ‘6’은 2,4,6,8,10의 중간 수리인 기둥수이다.

허수와 실수의 중심수리인 ‘5’와 ‘6’ 다음은 7이지만, 이 7은 우리 민족의 3,4조 말마디가 합해져 되돌아와 모여친 덤의 수리가 7 (서양의 럭키세븐)이다. 그러므로 7을 율조로 잡아 다시 ‘6’ 뒤에 새삼스럽게 설정 하지않고 3,4,5,6조로만도 충분히 우리의 정신사상과 율조와 만상의 뜻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수리 ‘3’에서 ‘6’까지만 정형수리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다 천부경이나 –‘한단고기’보다 먼저 쓰인- 박제상의 ‘징심록’들에 나타난 한민족 고유의 수리학 원전에 근거한 것이다.


민조시는 과거 우리 문학과의 정형 자수율 관계가 어떠한가? 신라때의 향가나 고려 가요,가사 및 백제사람 왕인이 개척한 和歌(일본 정형시)나 우리 가요가 일본으로 건너가 ‘萬葉’이 된 가요 (일본 정형시의 원형)나 조선조의 시조, 가사, 판소리에 이르기 까지 다 그소리의 장단 가락 음수율을 짚어보면 결국 3,4,5,6,조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인들은 시조 부문 하나만 이땅에 겨우 민족 정형시로 정착 시켰을 뿐이다.

최남선 이광수 등은 일본 정형시 (7.5조)의 영향(역수입0을 받아’3,4,5,조를 이땅 정형시로 정착시키려고 애써 실험했지만, 그분들은 천부경 징심록 들의 허수와 실수에 작용하는 수리 ‘6기중수’를 발견해내지 못해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3,4,5,6조는 우연의 일치이지만, 바로 위와 같은 3,4,5조에 내가 ‘6’의 기둥수리를 발견해낸 다음 다시 3,4,5,6 조로 정착시킨 새정형시이다 (*알고보니 신라 이두에 이미 3,4,5,6조의 ‘영신가’형식이 있었다).


민조시는 조선의 정형시인 시조와는 어떻게 다른가? 시조는 초,중,종장인 3장 6구 (3,4/3,4/3,4/3,4/3,5/4,3)로 된 정형시이지만 살펴보면 모두 3,4,5,6조로 집합 구성되어있다.

처음 하나(1)인 ‘3’으로 시작해서 ‘3’으로 끝난다. 이 3의 수리는 天符經 천인지 (ㅇㅿㅁ) 의 사상인 그 3신 사상의 ‘3’철학이다. 초,중,종장 첫머리도 ‘3’으로 시작하고, 구마다 첫머리 자수 ‘3’도 처음의 ‘1’(하나)인 ‘3’으로 시작한다.

초장 첫머리 ‘3’과 중장 첫머리 ‘3’도 합하면 ‘6’이요, 중장, 종장 역시 ‘6’(3+3) 에 , 초 중 종장 첫머리 합이 ‘9’(3+3+3=끝)이다. 초장 첫머리 첫구도 ‘3’이요, 둘째 구도 ‘3’이다. 종장 마지막 3수리와 만다면 6수리가 되고, 이 ‘6’은 다시 종 중 초장 첫머리 수리와 음악적으로 화합하면 각각은 9수리 (끝)가 되는 수철학 구조다.

시조의 기본 음보인 3,4,조와 종장의 5수리 구조가 곧 3,4,5,조 율격 구성이며, 초,중장의 기본조인 3,4조를 합하면 7조가 된다. 결국 시조도 말마디 리듬을 분석하면 말머리의 위치만 다를 뿐 역시 3,4,5,6 조의 구조로 짜여져있다. 민조시와는 구성상 그 형식만 다를 뿐이다.


우리민족의 정형시인 시조가 있는데, 왜 또 정형시 민조시를 새로 개척하는가? 무릇 시의 형태는 시대가 지나면 변하는 것이 순리이다. 지금 시조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3장6구의 자수 (약43자 내외)가 일본 정형시에 비해 너무 글자 수가 많을 뿐 아니라, 현대문명 문화언어를 이시조에 수용했을 때는시가 잘 되지않는 약점이 있다. 시조가 이러한 점들을 현대감각적인 민족시로 소화시켜내기엔 그 형식 면에서만 보더라도 너무 벅찬듯하다.

그래서 나는 향가,여요,판소리,가사,시조… 들의 정형 율조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낸 컴퓨터 반도체 칩 (예: 64KDRam->64괘 4차원 수리학 응용 후 성공함)의 수리 집합 분산 원리처럼 우리말마디의 수리를 3,4,5,6조로 民調詩語群에 수용할 경우 자유로이 집합, 해체할 수 있는 장점 (4차원의 세계)이 있어, 이 세 정형시를 개발한 것이다.

민조시에는 아무리 어려운 현대의 문명, 문화비평 언어가 시어로 새롭게 끼어든다 해도 하나 어색하지 않게 시적 효과를 나타낼 수가 있다.

민조시의 또 한가지 장점은, 불과 18자로 시 한수를 뽑아낼 수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짧은 정형시 (17자)의 자수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각 말마디마다 얼마든지 거듭 우리의 소리말 장단에 추임세를 매겨 중첩으로 계속 쓸 수 있음도 그 형식에 매인 시조와는 다른 자유로운 언어 세계의 정형시라고 할 수 있다.

<끝>

심흥근 기자 타이핑

 

 



       
   No, 230
  2014/11/12(수)
 
새정형시 民調詩(3.4.5.6調) 개척 선언문

 

특별기획 ㅣ 民調詩論

새정형시 民調詩(3.4.5.6調) 개척 선언문

民調詩란 무엇인가? 우리 한민족의 민간 장단으로 흘러 내려오는 율조의 소리마치를 문자의 뜻위에 얹어 빌어쓴 정형시가 곧 民調詩이다.

民調詩는 왜 새로운 定型詩인가? 우리 말의 소리마디를 3.4.5.6調의 정형률에 맞춰 쓴새로운 詩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 文學史에서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정형시이다.

民調詩의 정신인 사상 배경과 3.4.5.6調의 정형 율격 근원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새定型詩인 民調詩의 사상적 배경은 한민족 고유의 정신문화 유산인"'한'(아래아 '한'임.)" 사상에 그 밑바탕을 펼쳐두고 있으며, 정형율격 수리의 3.4.5.6調는 한민족의 철학인 수리학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民調詩의 새정형 자수율을 왜 3.4.5.6調에만 걸어둔 채 정형시로 정착시키려 하는가?
한민족의 수리 철학은 허수와 실수의 1.3.5.7.9 이며, 또 2.4.6.8.10의 10은 0(제로.+)의 개념으로 설정되어 있다. 1(하나)은 곧 3(셋)이며, 3(셋)은 끝수인 9(아홉)였다. 5는1.3.5.7.9 중의 기둥수리이며, 6은 2.4.6.8.10의 중간 수리인 기둥수이다. 허수와 실수의
중심인 5와6 다음은 7이지만,이 7은 우리 민족의 3.4조 말마디가 합해져 되돌아와 모여진 덤의 수리가 7(서양의 럭키세븐)이다. 그러므로 7을 율조로 잡아 다시 6 뒤에 새삼스럽게 설정하지 않고, 3.4.5.6調로만도 충분히 우리의 정신 사상과 율조와 만상의 뜻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기때문에 기본 수리 3에서 6까지만 정형 수리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다 '天符經'이나 '한단 고기'보다 먼저 쓰인 박제상의 '징심록'등에 나타난 한민족 고유 수리학 원전에 근거한 것이다.

民調詩는 과거 우리 문학과의 정형 자수율 관계가 어떠한가? 新羅 때의 鄕歌나 高麗歌謠.歌辭 및 百濟 사람 왕인이 개척한 和歌(일본 정형시)나 우리 가요가 日本으로 건너가 萬葉이 된 가요(이본 정형시의 원형)나 조선조의 時調. 가사. 판소리에 이르기까지 다 그 소리의 장단. 가락 음수률을 짚어보면 결국 3.4.5.6調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先人들은 時調 부문 하나만 이땅에 겨우 민족 정형시로 정착시켰을 뿐이다.
최남선 이광수 등은 일본 정형시(7.5조)의 영향(역수입)을 받아 3.4.5調를 이땅 정형시로 정착시키려고 애써 실험했지만, 그분들은 '天符經' '징심록'들의 허수와 실수에 작용하는 수리 6 기둥수를 발견해 내지 못해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3.4.5.6調는 우연의 일치 이지만, 바로 위와 같은 3.4.5調에 내(신세훈)가 6 의 기둥수리를 발견해 낸 다음 다시 3.4.5.6調로 정착시킨 새 정형시이다.

民調詩는 朝鮮의 정형시인 時調와는 어떻게 다른가? 時調는 初. 中. 終章인 3장 6구 (3.4/3.4/3.4/3.4/3.5/4.3)로 된 정형시이지만, 살펴보면 모두 3.4.5.6調로 집합 구성되어 있다. 처음 1(하나)인 3으로 시작해서 3으로 끝난다. 이 3의 수리는'天符經' 천.인.지(ㅇㅿㅁ)의 사상인 그 3신 사상의 3철학이다. 초.중.종장 첫머리도 3으로 시작하고, 구마다 첫머리 자수 3도 처음의 1(하나)인 3으로 시작한다. 초장 첫머리 3과 중장 첫머리 3도 합하면 6이요, 중장. 종장 역시 6(3+3)에, 초.중.종장의 합이 9(3+3+3=9)이다. 초장 첫머리 첫구도 3이요, 둘째구도 3이다. 종장 마지막 3수리와 만나면 6수리가 되고, 이 6은 다시 종.중.초장 첫머리 수리와 音樂的으로 和合하면 각각은 9수리(끝)가 되는 數哲學 構造다.

時調의 基本 음보인 3.4調와 종장의 5수리 구조가 곧 3.4.5조 율격 구성이며, 초.중장의기본 조인 3.4조를 합하면 7조가 된다. 결국 時調도 말마디 리듬을 分析하면 말머리의 위치만 다를뿐 역시 3.4.5.6조의 구조로 짜여져 있다. 民調詩와는 구성상 그 형식만 다를 뿐이다.

우리 민족의 정형시인 時調가 있는데, 왜 또 정형시 民調詩를 새로 開拓하는가? 무릇 詩의 형태는 시대가 지나면 變하는 것이 順理이다. 지금 時調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3장 6구의 자수(약 43자 내외)가 일본 정형시에 비해 너무 글자수가 많을뿐 아니라 현대 문명, 문화 언어를 이 시조에 수용했을 때는 詩가 잘 되지 않는 弱點이 있다. 시조가 이러한 점들을 현대 감각적인 民族詩로 소화시켜 내기엔 그 형식에서만 보더라도 너무 벅찬 듯 하다.

그래서 나는 향가. 여요. 판소리. 가사. 시조등의 정형 율조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낸 결과 컴퓨터칩(예: 64KD램→64괘 4차원 수리학 응용후 성공함)의 수리 집합. 분산 원리처럼 우리말 마디의 수리를 3.4.5.6조로 民調詩語群에 수용할 경우 자유로이 집합. 해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 새 정형시를 開發한 것이다. 民調詩에는 아무리 어려운 현대의 문명. 문화 비평 언어가 詩語로 새롭게 끼어든다고 해도 하나 어색하지 않게 시적 효과를 나타낼 수가 있다. 民調詩의 또 한 가지 장점은 불과 18자로 시 한 수를 뽑아 낼 수가 있다는 점이다. 日本의 짧은 정형시(17자)의 자수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각 말마디마다 얼마든지 거듭 우리의 소리말 장단에 추임새를 매겨 중첩으로 계속 쓸 수 있음도 그
형식에 매인 時調와는 다른 자유로운 언어 세계의 定型詩라고 할 수 있다.

--------신세훈의 민조시집 '3.4.5.6조'에서.



       
   No, 229
  2014/11/12(수)
 
신세훈민조시론

 

http://www.ckywf.com/blog/read/cuilongguan/7767/0/80

 

최룡관 . 연변문인협회 회장

 

 

나의카테고리 : 문학작품
신세훈 민조시론
2008년 10월 21일 10시 24분  조회:699  추천:59  작성자: 최룡관
民 調 詩 論

(3. 4. 5. 6조)

- 서 재 석(한국문인협회 민조시분과위원장) -

 

▣민조시(民調詩) 작법요령을 중심으로

민조시 작법에 따른 주요요소라면 언어의 직조, 함축 ,간결 ,조화 ,가락 ,장단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상어에 접목시켜 얼마만큼 뭉클하게 마음을 울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특정인이 주로 쓰는 제한적인 언어의 편중도 아니요, 일부 지식인이 쓰는 언어 또한 아니다. 「민조(民調)」의 단어 첫 글자인 국민 민자(民)에서 풍기는 예측대로 우리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는 보통사람의 평범한 언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시작법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언어의 「음가수」구조를 이해하는 일이다.

「언어란」심중에 담고 있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전해줄 언어의 직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민조시」를 쉽게 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언어의 마디가 「3 ,4 , 5 , 6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즉, 언어의 음절과 가락 , 장단이 「3 ,4 , 5 ,6」글자 수에 접목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수리학에 있어서 선천적인 수 「1 , 2 , 3 ,4 , 5 ,6 ,7 ,8 , 9」와 후천적인 수 「2 , 3 , 4 , 5 , 6 , 7 , 8 , 9 , 10」에서 선천적인 숫자의 중심축은 다섯 (5)이다. 반면, 후천적 숫자의 중심축은 여섯 (6)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향가 ,농요 ,가요 ,무가 , 민요 ,시조 등 분야 또한 다양하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민족의 뿌리인 「한사상」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사상이란」우리 민족이 생활 속에 담고 있는 우주본체사상인 자연사상을 말한다. 좀 더 이야기를 부연한다면 사물의 이치를 거슬리지 않고 자연의 이치와 진리를 조화롭게 다스리고, 이동하고, 포용하는 정신과 힘이 곧 한민족의 우수한 민족정신인 「한사상」인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가위/바위/보」문화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놀이의 활용 면을 들여다봐도 용이하기 그지없다. 개인적인 일이나 단체모임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물건 나르기, 편 가르기, 심부름, 기회부여, 물건의 선택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우리의 순수한 놀이 문화로서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놀이요, 강하고 약한, 높고 낮음이 없는 놀이요, 좋고 나쁨, 손해와 이익 등을 3가지 본체를 통해 포용하고 수용하는 놀이임에 틀림없다.

즉, 「가위」는 「보」를 이기지만 「바위」를 못 이기고, 「바위」는 「가위」를 이기지만 「보」를 못 이기며, 「보」는 「바위」를 이기 지만「가위」를 못 이기는 것을 보더라도 일의 진행과 기회를 아우르는가 하면 전체를 포용하는 이 놀이야말로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혼 뿌리요, 정신사상이다. 그 밖에도 삼세번 / 원방각(○ ․ □ ․ △)사상 / 품앗이 / 두레 / 3 , 5 , 7 ,9 … 21 … 49제 / 9층탑 / 삼신사상 / 5행사상등 생활습관에 묻혀있는 가짓수 또한 다양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언어 또한 이러한 사상에서 잉태된 의사 전달의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보다시피 우리의 언어는 가락 ,장단이 3/4또는 4/4박자인 트로트풍을 지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 사상의 기본 수치인「3」을 들 수 있다. 이「3」이야말로 한사상에서 연유된 중심 숫자이다. 반복 강조되는 말이지만 3세번 / 성과 이름의 석자 / 하늘 , 사람 , 땅의 삼신 사상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이는 민족정신이 녹아있는 숫자로 마음의 넉넉함과 너그러움 , 기원 ,기회부여 등을 두루 내포하고 있는 숫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민족 혼 뿌리인 바람에서 기인된 「3 , 4 ,5 ,6」의 언어수치를 가지고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아름답고 맵시 있게 직조된 것이 「민조시(民調詩)」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조시」를 깔끔하게 그리고 마음에 들게끔 쓸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민조시인이라면 한 번쯤 고심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민조시」공부를 하는 사람의 공통적 심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민조시」하면 글자 수를「3 , 4 ,5 , 6」자 틀 속에 둔다는 점에서 우선 위축감 , 구속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심적 제한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언어의 직조 ,간결 , 함축 , 조화 ,가락, 장단 , 언어의 선택 ,창출 등 제한요소에서 많은 연구와 숙달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해소하며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측면에서 몇 가지 핵심적 요소를 제시하고자 한다.

• 첫째 : 「시어(詩語)가 풍부해야 한다.」 시어가 풍부하지 못하면 자 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표현 한다 해도 글이 느슨하거나 글자 수에 어긋나는 현상 등 이런 저런 일로 고심이 많다.

• 둘째 : 아름다운 언어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언어 또는 시어의 생상기법이 필요하다고 본다.」어떻게 보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조금만 연구하고 고심하면 쉽게 자기 생각에 맞는 언어를 창출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셋째 : 「시어는 남이 쓰지 않은 신선함이 배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글을 잘 쓰고 언어의 직조 그리고 가락 , 장단이 조화 된다고 해도 이는 한계가 있고 자신이 추구하고자하는 뜻을 부각시키지 못 하는 문제점을 낳는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법을 구체적으 로 알아보기로 한다.

1.「합성어(合成語)」를 창출해야 한다.

합성어란 어근과 어근이 합쳐진 단어를 말한다.

예를 들면“물걸레”/“가죽신”등이다. 여기서「물+걸레」/「가죽+신」으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다른 한쪽의 어근을 수식하는 합성어들은 언어의 맛을 더해주는 느낌이 크다. 뿐만 아니라 몇 가지 장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 언어의 의미와 폭을 확산시켜 준다.
• 언어의 뜻을 명확하게 해준다.
• 언어의 깊이 ,느낌을 확산시켜 준다.
• 언어의 선택 및 활용 폭을 넓혀준다.
• 가락 ,장단을 증폭시킨다.

2.「관용어(慣用語)」를 창출해야 한다.

관용어란 보통일반인들이 관습적으로 쓰는 말로서 문법이나 어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말이지만 어근들이 완전하게 융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바늘방석” / “바가지 쓰다” / “시치미 떼다”등이다.

즉, 「바늘+방석」/「바가지+쓰다」/「시치미+떼다」로 합성된어

다른 언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면이 있다. 즉, 언어의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합성어의 특징이다. 따라서 「관용어」는 단어와 의미부여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 오묘한 맛을 지니고 있는 분야로 은유 ․ 비유법에 기여도가 크며 언어의 표현 기법을 확산시키는데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파생어(派生語)」를 창출해야 한다.

파생어란 「접속어와 어근」으로 이루어진 단어로 단어의 색다른 맛과 향기를 풍기는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시어(詩語)사용에 있어 시어의 맛과 향기 , 깊이 ,공간의 폭을 잘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풋사과” / “풋고추” / “검붉다”등이다. 즉 「풋+사과」/「풋+고추」로 이루어진 단어들이다.

특히 「파생어」는 언어의 색감 , 질감 , 감각을 돋보이게 하며 언어의 맛과 생동감을 확산 시키는데 적절한 단어들이다.

4. 명쾌한 이미지 부여가 필요하다.

「이미지」란 어떠한 사물의 이름을 듣거나 봤을 때 그 사람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 , 영상 ,심상 등을 말한다. 즉, 감각을 재현하는 감각적 표현을 뜻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법은 각자가 지닌 오감(五感 : 시각 ,미각 ,청각 , 후각 , 촉각)이다. 예를 들면 「푸른 바닷가(시각) /뱃고동 소리 뚜우 (청각) / 비릿한 바닷냄새(후각) / 입맛 당기는 생선회 (미각) / 만져보니 미끈(촉각)」.

제시된 예문에서 보다시피 「이미지」표현은 보다 구체적이고 생동감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단일 감각적」인 표현보다는 「공감각(共感覺)적」인 표현이 시(詩)를 쓰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문 (1) ,(2)를 들기로 한다.

• 예문(1) : 「나는 화가 났다.」를「성난 호랑이처럼 으르렁 포효하며」로 표현한 문장을 비교해보면 단일감각적인 시각적 표현에서 청각적 ,생동감을 추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예문(2) : 「종소리」를 「푸른 종소리」로 표현 했다고 하자.

본래의 종소리는 청각적이고 푸른 종소리는 시각적요소를 추가하고 있다. 즉, 「청각을 시각화」하는 것을 전이(轉移)라고 하는데 이러한 기법을 「공감각(共感覺)기법」이라 한다.

따라서 명쾌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는 수식어 선택은 물론 깔끔한 문장을 전개할 수 있는 문장기술 또한 중요한 요소요, 관건이라 하겠다.

이렇게 제시한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민조시」를 쓸려면

「글자수 제한이 있어 못 쓰겠다.」「시어(詩語)가 궁색해서 못 쓰겠다.」하는 것은 하나의 핑계이고 궁색한 답변 밖에 될 수 없다.

앞에서 제시한 「합성어 , 파생어 , 관용어 , 명쾌한 이미지 부여 , 문장전개」등의 요소를 깊이 연구하고 활용한다면 남이 쓰지 않은 새로운 시어창출은 물론 시의 맛과 향기 그리고 차원 높은 시 구상을 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형식과 요소는 일찍 한자(漢字)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변문(騈文)」이다.

이 변문을 다른 말로 변려문(騈儷文) /사륙문(四六文)/사륙변려문 (四六騈儷文)이라고도 하는데 이 변려문은 후한(後漢)때부터 일어나 육조대(六朝代)에 와서 절정에 달했으며 송대 (宋代)초까지 이러졌다. 이 「변문」은 글을 쓰는데 있어 가급적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민조시에 있어서 글자 수를 「3 , 4 ,5 , 6조」에 제한을 두듯이 “한자”에 있어서도 통상 이러한 글자의 제한을 두고 있다. 즉 「4 ,6자」의 기본 틀인 것이다. 그리고 한 구(句)에는 4자 또는 6자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4-4-6-6」,「4-6-4-6」의 기본형식을 뜻한다. 하지만 4자와 6자만으로는 단조롭고 또한 아름다운 글과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 「1글자」또는 「2글자」를 추가하는 일, 그리고 6자를 「3 ,3」으로 나누어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리고 「변문」전체는 대구(對句)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4-4-6-6」의 형태에서 「4와4」「6과6」이 “대구” 이다. 또한 「4-6-4-6」에서도 1구씩 건너뛰어 대구를 형성한다. 따라서 변려(騈儷)의 뜻은 「짝」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정형시 만엽(와까/하이꾸)이 「5-7조/7-5조」로 구성되어 있고, 한자는 「변문」에서 보다시피 「4 ,6조」, 민조시는 「3-4-5-6조」로 구성되어 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어쩌면 한자의 「변문(文)」에서 「만엽」이 발전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지금가지 「민조시」를 보다 쉽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합성어 , 관용어 , 파생어 , 명쾌한 이미지부여」의 내용에서 주요 요점 및 장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합성어>
내용
• 어근과 어근이 합쳐진 단어
-물걸레/가죽신(물+걸레/ 가죽+신)
장점
•언어의 의미를 증폭시켜 준다.
•언어의 뜻을 명확하게, 그리고 구체화 시킨다.
•언어의 깊이 ․ 느낌 ․ 공간을 확산시켜준다.
•언어의 선택 및 활용폭을 넓혀준다.
•언어의 리듬 , 가락을 완충시킨다.

<관용어>
내용
•어근이 완전하게 하나로 융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바늘방석/ 바가지 쓰다/ 시치미 떼다.
(바늘+방석/바가지+쓰다/시치미+떼다)
•가락 , 장단을 더욱 매끄럽게 해준다.
장점
•은유 ,비유법 활용에 기여도가 높다.
•언어의 표현기법을 확산시켜준다.
•의미부여가 깊어진다.

<파생어>
내용
•접사어와 어근으로 이루어진 단어
-풋사과/풋고추
(풋+사과/풋+고추)
장 점
•언어의 색감 , 감각을 돋보이게 한다.
•언어의 맛과 생동감을 증폭시킨다.
•의성어 ,의태어 활용에 기여한다.

<이미지 부여>
내용
•오감(五感)활용
•공감각(共感覺)적 표현
장 점
•오감의 조화 및 공감각적 표현을 통한 언어의
색감 ‧ 질감 ‧ 감각 ‧ 생동감등을 확산시키고 언
어의 깊이 ‧ 느낌 등을 살릴 수 있다.

 


다음은 「민조시 작법 요령」 및 장 ‧ 단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민조시」를 크게 나누어 보면 「단민조시/연민조시/장민조시」로 나눌수 있다. 이들에 대한 장 ‧ 단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단민조시 : 단민조시란 음수 즉, 글자 수가 「3 ,4 ,5 ,6조」로 종료되는 시, 다시 말해 기본자수가 18자로 마감되는 짧은 정형시를 말한다. 따라서 단민조시를 쓰려면 매「행」이나 「연」에 의미부여가 명확한 시어가 필요하고 글자의 함축미와 조율의 기교가 선행되어야 하며 시에서 풍기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는 간결성과 명확성이 뒷받침 돼야하는 부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간결함에 부담이 없다는 느낌이 지배적이고, 조율되고 함축된 언어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의미부여를 통한 느낌 ‧ 감동이 강하게 와 닿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 하겠다. 반면 단점이라면 사전에 함축된 시어준비 그리고 간결 ‧ 명확한 의미부여가 준비되어 있을 때, 시의 느슨함을 방지할 수 있고 시의 단조로움으로 인해 역사시나 과정전개시 같은 「장시」에는 자신이 담고 있는 뜻을 완벽하게 표출 시킬 수 없는 제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단점이라 하겠다.


2. 연민조시 : 연민조시란 단민조시가 2회 이상 4회 미만 연속되는 시를 의미한다. 즉, 18자로 종료되는 단민조시를 「1수」로 봤을 때 3수(18+18+18)이상 진행되는 민조시를 뜻한다. 이 연민조시는 단민조시에 비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미가 자유로운 면이 있어서 「3, 4, 5 ,6조」의 시어(말마디)를 중첩 사용할 수 있어“의미부여의 강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부여와 결론”을 여유 있게 내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 하겠다. 반면 단점으로는 여유로움으로 인해 참신한 시어대입과 행과 연의 직조 , 함축미가 느슨해 질 수 있는 단점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민조시」를 처음 접하는 자는 오히려 단민조시보다는 연민조시를 기본으로 삼아 숙달,연마, 연구하여 단민조시를 숙달시키는 것이 부담을 적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3. 장민조시 : 장민조시란 단민조시 (18자)한수가 4회(18+18+18 +18)이상 연속되는 시를 말한다. 따라서 장민조시는 작가의 작법숙달이나 쓰고자 하는 주제 ,제목 , 과정 ,의미부여 등의 요소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주로 역사적인 시 또는 긴 과정을 전개하는 詩 또는 여러 사건을 전개할 시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장민조시는 단민조시와 연민조시에서 표현 못하는 내용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여건을 부여하고 행 ,연의 중복을 촌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세세히 표출할 수 있으며 어떤 사물을 대상으로 한 느낌 , 감정 , 깊이에 대해 공간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하겠다. 반면 단점이라면 언어의 조율 ,선택 , 함축성 등의 요소가 느슨해져서 자칫하면 산문식의 말장난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점이 있다.

지금까지 「단민조시 / 연민조시 / 장민조시」에 대해 개략적으로 장 , 단점을 알아봤는데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 민 조 시>
장점
•「3, 4, 5 ,6조」종결에 따른 간결함이 덧보인다.
• 시어의 단단함이 있다.
• 행, 연의 신축성과 함축미가 있다.
• 시의 의미부여가 강하다
단점
• 시어선택 , 함축성, 탄력성 , 조율에 대한 부담이 있다.

• 은은하고 잔잔한 맛이 적다.


<연 민 조 시>
장점
• 단민조시에서 표현 못하는 내용을 충족시킬 수 있다.
• 행, 연 중복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할 수 있다.
• 사물의 느낌 , 감정 ,깊이 ,공간의 폭 등을 넓힐 수 있다.
• 은은하고 잔잔한 맛이 있다.
단점
• 자칫 시의 간결함, 시어의 단단함 , 함축미 ,조율등을 상실할 수 있다.


<장 민 조 시>
장점
• 계속적 전개를 요하는 역사시 또는 이야기가 긴 단계별 과정 전개시가 적절하다.
• 단 , 연민조시에서 부여 못한 내용을 전개할 수 있다.
단점
• 장황한 이야기로 인한 언어의 조율 , 율조 , 직조 ,함축미가 상실될 수 있다.


<민 조 시 공 통 점>
장점
• 가락 , 장단 ,리듬의 맛이 있다.
• 간결함에서 풍기는 신선한 맛이 있다.
• 시어의 조율 ,함축성 ,깊이 ,공간미 등이 덧보인다.
• 글이 짧다는 점에서 심적 부담이 적다.
단점
• 민조시작법(조율 ,언어선택 ,의미부여 등) 미숙시 시가 길어진다. 더불어 연과 연의 경중(輕重)이 심하다.
• 언어직조, 조율 미숙에 따른 간결함 , 단단함 , 함축미등이 느슨해질 수 있다.

 

다음은「민조시」작법요령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민조시는 먼저 쓰고자 하는 글자 수에 따라 단민조시 / 연민조시 / 장민조시로 구분 짓고 또한 시의 선택에 따라서 시어 , 직조 , 조율 , 간결성 , 함축미 , 가락 ,장단 등 제반요소를 적절히 고려하여 전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튼, 민조시 작법의 기본 틀은「3 , 4 , 5 ,6조」이다.
작법 요령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문」을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제시하는 「예문」은 2007년 「문학저널」4월호에 실은 본인의 민조시 2편으로 예문 “1”「눈꽃」과 예문 “2”「春芽」이다.

 


예문“1”

 

눈 꽃


雪花木
가짓살
白花滿開
一枝春*이다.
허울레,
겉치레
벌없는 바람 꽃.

*一枝春 : 매화


예문“2”

春 芽


몸부림
産苦 끝에
몽울 몽울
봄을 낳는다
빨강
노랑
하양
봄꽃물 눈물빛

 

• 예문 : “1”은「눈꽃」이다.

이 시(詩)는 보는 바와 같이 2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 1연은 4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제1행 : 3 / 제2행 : 3 / 제3행 : 4 / 제4행 : 5의 글자 수로 종결 짓고 있다.
•제2연은 3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행 :3 / 제2행 : 3으로 여섯 글자(3+3)를 이루고 있으며 제 3행에서 6글자로 종결짓고 있다.

•예문 : “2” 는 「春芽」이다.

이 시(詩) 또한 보는 바와 같이 2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 1연은 4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제1행 : 3 / 제2행 : 4 / 제3행 : 4 / 제4행 : 5의 글자로 종결 짓고 있다.
• 제2연은 12글자로 4행을 이루고 있다. 즉, 제1행 : 2 / 제2행 : 2 / 제3행 : 2글자로 1 , 2 ,3행(2+2+2)을 모두 합친 글자 수가 곧 6이 되는 것이다. 제4행 : 여섯 글자(6)로 종결짓고 있다. 예「“1”,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섯(6)글자로 종결짓지 않고 다시 한번 6(여섯 글자)을 거듭 쳐준 것이 두 예문 시(詩)의 특징이라 하겠다.

「예문 “1”과 “2”」의 두 작품에서 보는바와 같이 시의 문장 첫머리가 3(세 글자)으로 시작하여 6(여섯 글자)으로 종결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전체적인 시(詩)의 틀을 보면 행의 자수율이「3 ․ 4 ․ 5 ․ 6조」의 글자 수로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행갈이 / 연갈이」는 작자의 작법, 익숙도 또는 작가의 특성 등에 따라서 그 형태 또한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으나 보편적으로 시의 함축성, 조율된 시어와 의미부여 등의 연건에 따라 행과 연을 가르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의무부여 또는 강조를 위하여 반복적인 용어나 시어를 쓸 경우 행이 길어지고 늘어나서 결국 「연갈이」에 있어 연의 편중과 불균형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시의 무게 ․ 깊이 ․ 폭 ․ 공간 등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전에 시의 제목, 시의 선택 (단민조시/ 연민조시/ 장민조시), 조율, 함축성, 행과 연의 숫자 구성 등을 잘 간파하여 균형 있고 짜임새 있는 글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더욱이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이나 작법에 익숙치 못한 사람은 연갈이 또는 행갈이를 하는데 있어 많은 고심을 하게 된다. 아무튼, 행과 연갈이는 일정한 형식이나 법칙 ․ 규정을 제한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강조하고 싶은 말은 글을 구성하고 있는 행 ․ 연의 독립적 요소를 갖추고 있거나 의미부여가 충족되었을 경우에 하는 것이 좋다. 시에 있어서 어떻게 행과 연을 가르느냐에 따라서 시의 균형과 신선함을 더해주는 요소이므로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다. 특히 연갈이에 있어서는 전체시 구성에 있어서 연과 연의 균형과 무게 ․ 공간미가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밖에 시(詩)를 보다 깔끔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준수해야 할 숫자 ․ 부호 사용 시 올바른 표기법, 시작법시 염두 사항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전통 율격을 계승한 민조시(民調詩) 개척 - 신세훈 시인

申世薰 시인의 연보
호는 一遇

1941년 2월 22일(음1.18.) 경북 의성에서 태어남
1953년 사곡초등학교 졸업
1956년 의성중학교 졸업
1959년 안동고등학교 졸업
1962. 1. 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당선(당선시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
1963. 朴利道 金源浩 시인 등과 ‘新春詩’ 동인 창립 주도(19집까지 참여).
1964년 중앙대학교 문리대 연극영화과 졸업
1967. 6.30. 육군 중위로 예편(R.O.T.C. 2기)·‘한국일보’사 등 기자 생활 및 공무원 10년.
1993. 11. 제58차 국제P.E.N. 대회(리우 대회) 한국 정대표.
2001. 1.~현재. 제22대·23대 한국 문인 협회 이사장 피선.
2001~2005. 문협 제11차(남미·알헨티나)
제12차(하얼빈·아프리카)
제14차(타쉬켄트)
제15차(호주·뉴질렌드) 해외 한국문학심포지엄 및 문학기행 단장.
·2002~현재. 전국한자교육추진연합회 지도 위원.
·2004~현재. 동학농민혁명재단 고문.
·2004. 6. 14.~현재. ‘民調詩’ 동인회 창립-상임고문.
·2005 현재. 한국불교문인협회 상임고문
중앙대 총동창회 부회장
한국 상고사학회 부회장.

저서

시집 「비에뜨·남 葉書」(1965 토픽 출판사)
「江과 바람과 山」(3인 시집·1978 한겨레 출판사)
「뿌리들의 하늘」(1만행 장시집 제1부·1984 일월서각)
「사랑 그것은 落葉」(청소년 시집·1984 온누리)
「조선의 天平線」(1991 미래 문화사)
「꼭둑각시의 춤」(1993 도서출판 天山)
「체온 이야기」(시극·장시집·1999 도서 출판 天山)
「3·4·5·6 調」(2000 民調詩集 도서 출판 天山) 등 편저·역저·저서 23권.

·수상

제3회 詩文學賞(1978)
제1회 한국P.E.N. 공로상(1994)
제8회 한국自由詩人賞 본상(1994)
제10회 예총문화예술대상(문학 부문) 수상(1996)
인헌무공훈장(1966)
대통령 표창(2002) 등 포상.

 

『새정형시 民調詩(3·4·5·6調) 개척 선언문』

民調詩란 무엇인가? 우리 한민족의 민간 장단으로 흘러내려오는 율조의 소리마치를 문자의 뜻 위에 얹어 빌어 쓴 정형시가 곧 民調詩이다.

民調詩는 왜 새로운 정형시인가? 우리말의 소리마디를 3·4·5·6調의 정형률에 맞춰 쓴 새로운 시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 문학사에는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정형시이다.

民調詩의 정신인 사상 배경과 3·4·5·6調의 정형 율격 근원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새정형시인 民調詩의 사상적 배경은 한민족 고유의 정신 문화 유산인 ‘’사상에 그 밑바탕을 펼쳐두고 있으며, 정형 율격 수리의 3·4·5·6調는 한민족의 철학인 수리학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民調詩의 새정형 자수율을 왜 3·4·5·6調에만 걸어둔 채 정형시로 정착시키려하는가? 한민족의 수리 철학은 허수와 실수의 1·3·5·7·9이며, 또 2·4·6·8·10의 10은 0(제로·+)의 개념으로 설정되어 있다. 1(하나)은 곧 3(셋)이며, 3(셋)은 끝수인 9(아홉)였다. 5는 1·3·5·7·9 중의 기둥수리이며, 6은 2·4·6·8·10의 중간 수리인 기둥수이다. 허수와 실수의 중심 수리인 5와 6다음은 7이지만, 이 7은 우리 민족의 3·4조 말마디가 합해져 되돌아와 모여친 덤의 수리가 7(서양의 럭키 세븐)이다. 그러므로 7을 율조로 잡아 다시 6뒤에 새삼스럽게 설정하지 않고, 3·4·5·6調로만도 충분히 우리의 정신 사상과 율조와 만상의 뜻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 수리 3에서 6까지만 정형 수리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다 ‘天符經’이나 ― ‘한단고기’보다 먼저 쓰인 ― 박제상의 ‘징심록’ 들에 나타난 한민족 고유의 수리학 원전에 근거한 것이다.

民調詩는 과거 우리 문학과의 정형 자수율 관계가 어떠한가? 신라 때의 향가나 고려 가요·가사 및 백제사람 왕인이 개척한 ‘和歌’(일본 정형시)나 우리 가요가 일본으로 건너가 ‘萬葉’이 된 가요(일본 정형시의 원형)나 조선조의 時調·가사·판소리에 이르기까지 다 그 소리의 장단·가락 음수율을 짚어보면 결국 3·4·5·6調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인들은 시조 부문 하나만 이 땅에 겨우 민족 정형시로 정착시켰을 뿐이다.

최남선 이광수 등은 일본 정형시(7·5조)의 영향(역수입)을 받아 ‘3·4·5調’를 이땅 정형시로 정착시키려고 애써 실험했지만, 그분들은 ‘天符經’ ‘징심록’ 들의 허수와 실수에 작용하는 수리 ‘6기둥수’를 발견해내지 못해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3·4·5·6調는 우연의 일치이지만, 바로 위와 같은 3·4·5調에 내가 ‘6’의 기둥 수리를 발견해낸 다음 다시 3·4·5·6調로 정착시킨 새정형시이다.

民調詩는 조선의 정형시인 時調와는 어떻게 다른가? 시조는 초·중·종장인 3장 6구(3·4/3·4//3·4/3·4//3·5/4·3)로 된 정형시이지만, 살펴보면 모두 3·4·5·6調로 집합 구성되어 있다. 처음 하나(1)인 3으로 시작해서 3으로 끝난다. 이 3의 수리는 ‘天符經’ 천·인·지(○△□)의 사상인 그 3신 사상의 3철학이다. 초·중·종장 첫머리도 3으로 시작하고, 구마다 첫머리 자수 3도 처음의 1(하나)인 3으로 시작한다. 초장 첫머리 3과 중장 첫머리 3도 합하면 6이요, 중장·종장 역시 6(3+3)에, 초·중·종장 첫머리의 합이 9(3+3+3=끝)이다. 초장 첫머리 첫구도 3이요, 둘째 구도 3이다. 종장 마지막 3수리와 만나면 6수리가 되고, 6은 다시 종·중·초장 첫머리 수리와 음악적으로 화합하면 각각은 9수리(끝)가 되는 수철학 구조다.

시조의 기본 음보인 3·4조와 종장의 5수리 구조가 곧 3·4·5조 율격 구성이며, 초·중장의 기본조인 3·4조를 합하면 7조가 된다. 결국 시조도 말마디 리듬을 분석하면 말머리의 위치만 다를 뿐 역시 3·4·5·6조의 구조로 짜여져 있다. 民調詩와는 구성상 그 형식만 다를 뿐이다.

우리 민족의 정형시인 時調가 있는데, 왜 또 정형시 民調詩를 새로 개척하는가? 무릇 시의 형태는 시대가 지나면 변하는 것이 순리이다. 지금 時調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3장 6구의 자수(약 43자 내외)가 일본 정형시에 비해 너무 글자수가 많을 뿐 아니라, 현대 문명·문화 언어를 이 시조에 수용했을 때는 시가 잘 되지않는 약점이 있다. 시조가 이러한 점들을 현대 감각적인 민족시로 소화시켜내기엔 그 형식에서만 보더라도 너무 벅찬 듯하다.

그래서 나는 향가·여요·판소리·가사·시조…… 들의 정형 율조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낸 컴퓨터칩(예:64KD램→64괘 4차원 수리학 응용 후 성공함)의 수리 집합·분산 원리처럼 우리말마디의 수리를 3·4·5·6調로 民調詩語群에 수용할 경우 자유로이 집합·해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 새정형시를 개발한 것이다. 民調詩에는 아무리 어려운 현대의 문명·문화 비평 언어가 시어로 새롭게 끼어든다고 해도 하나 어색하지 않게 시적 효과를 나타낼 수가 있다. 民調詩의 또 한 가지 장점은, 불과 18자로 시 한 수를 뽑아낼 수가 있다는 점이다. 日本의 짧은 정형시(17자)의 자수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각 말마디마다 얼마든지 거듭 우리의 소리말 장단에 추임새를 매겨 중첩으로 계속 쓸 수 있음도 그 형식에 매인 시조와는 다른 자유로운 언어 세계의 정형시라고 할 수 있다.

 


 

 



       
   No, 228
  2014/11/12(수)
 
신세훈 시인-전통 율격을 계승한 민조시(民調詩) 개척

 

신세훈 시인-전통 율격을 계승한 민조시(民調詩) 개척 
 
 
 
 


지금까지 월간 스토리문학에서는 많은 원로 문인들에 대한 메인스토리를 취재하여 독자로 하여금 찬사를 받아오고 있던 중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1월에는 한국문인협회의 살림을 맡아 끌어가는 신세훈 이사장을 모셔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독자들의 문의가 있었기에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전화를 드렸다.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 독자들이 신세훈 시인님의 민조시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고 뵙고 싶다기에 전화를 드렸습니다.”하고 말씀드리니 한국문인협회를 이끌고 있는 신세훈 시인은 이제 출발한지 2년 남짓 되어가는 문예지에 권위를 앞세우지 않으시고 오히려 정다운 목소리로 “아, 스토리문학이요? 한국문인협회에 꾸준히 보내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아주 열심히 하시고 내용도 좋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스토리문학관은 진즉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언제쯤 뵐까요?” 하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스토리문학관 최현근 회장, 스토리문인협회 서창원 회장 두 분과 함께 신세훈 시인의 사무실이 있는 자유문학 사무실로 찾아간 날은 12월 23일 오전 11시였다.

오늘은 호남, 서해안 지방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비닐하우스와 가축을 기르는 건물들이 무너져 100만 마리 이상의 가축들이 죽고 딸기 등 하우스 농사를 망쳤다는 뉴스가 가슴을 아프게 하고 방송을 켜기만 하면 연일해서 떠들어대던 황우석 박사의 논문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 측의 심의 발표가 있던 날로 서민들의 가슴을 더욱 움츠리게 만드는 날이다.

혜화역 3번 출구로 나와 반대방향으로 30여 미터 오다보면 종로약국이 있고 황림다방이 있는데 그 사이에 월간문학과 자유문학이 있으니 그리로 오라 하시는 신세훈 시인의 말씀대로 쉽게 찾아 2층 계단으로 올라가니 신세훈 시인은 손수 석유난로에 자바라로 기름을 넣으며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직접 기름을 넣으세요?”
그렇게 인사를 드리니
“네, 어서 오세요. 지난 번 시문학아카데미에서 만났지요?” 라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오늘처럼 날씨가 추운 날은 집에 계실 건데 먼저 나오셔서 기름을 넣고 찻물을 끓이는 소박함에 다소 감동하면서 잠시 다방에 머물렀던 최 회장, 서 회장 두 분을 올라오시라 전화를 드렸다.
이윽고 두 분이 올라오고 인사가 오갔다.

평소 10여 평 남짓 되는 스토리문학의 작은 사무실에 문인들 방문 때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었는데 ㄱ자 형태의 자유문학 사무실 또한 열악한 환경에 운영되고 있음을 생각하니 위안이 되기도 하고 부끄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6월 시문학아카데미에서 민조시에 관한 주제를 발표할 때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이라 마음에 넣고 요즘도 자주 읽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문학 7월호에서도 잘 읽었습니다.”라 말씀드리니 신 시인은
“이솔 시인이 정리한 것이지요. 그 때 오셨지요? 아, 기억이 납니다. 그때 코멘트까지 하셨지요.”라며 반가워하신다.
그럼 메인스토리 취재내용을 호칭을 생략하고 대화체 형식으로 싣는다.

김순진 :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저희 스토리문학 식구들을 따스하게 맞아주시고 차까지 대접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신 시인은 손수 차받침을 놓고 차를 따라 필자 먼저 주신다. 그래서 깜짝 놀라 어른들께 먼저 드리려고 서창원 시인께 건네니 신세훈 시인이 손을 막으며
신세훈 : 하하하. 이 차는 나누는 사람이 드리는 대로 잡숫는 겁니다. 먼저 드린 건 좀 독하고 나중 드린 건 좀 그윽하고 그렇습니다. 하하하. 이 차는 운안명차(雲安名茶)라고 중국차입니다. 복건성 차인데 녹차와 우롱차 중간의 맛입니다. 거기다가 자스민 꽃차를 가미했습니다.
서창원 : 하하하!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지 차가 아주 맛있습니다.

 
 


신세훈 : 하하하. 오늘 날씨도 추운데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지요? 그런데 저도 누가 선물을 해서 이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만 뭐니뭐니해도 차는 우리 차가 제일 맛있고 향기가 그윽하니 좋습니다.
최현근 : 메인스토리 취재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향이 경북 의성이라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생전에 계신가요? 본이 어디신지요?
신세훈 : 네, 저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매곡리 1850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1941년 2월 22일) 부모님(아버지 申萬植 선생과 어머니 黃且代 여사)은 모두 작고하셨습니다. 제 본은 아주신가(鵝州申家)입니다. 아주는 경남 거제시의 한 지명인데, 고려 말 육지는 모두 몽고에게 빼앗기고 임금은 강화도로 피난하였지요. 그 때 많은 귀족들이 거제도로 피난을 갔었는데 우리 집안이 아주신씨가 된 것은 그 때로 연유합니다. 저는 평산 장절공 신숭겸(1세. 고려태조 때 왕건을 도운 공으로 장절공이란 칭호를 받음)의 34대 35세손으로 아주(鵝州)신씨 시조는 고려 때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낸 영미(英 자 美자 )할아버지시지요. 전국에는 약 3만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정은공파구요. 우리 아주신씨 일가 문인으로는 공파로 일가 문인으로는 신경림 시인이 아주신씨입니다.
서창원 : 그렇군요. 부모님은 모두 작고하셨지요? 슬하에 자제분은 몇 분이나 두셨습니까?
신세훈 : 네, 제 아내(김향자(金香子 ․ 66세)와의 사이에 장남 하늘(39세․ 며느리 정찬실 ․39세), 차녀 새별(38세 ․ 사위 조용대 ․ 40세)와 딸 새해(34세) 등 2남 1녀를 두어 위로 둘을 출가시켰습니다.
김순진 : 그러시군요. 아주 다복해 보이십니다. 부모님은 무엇 하시는 분이셨습니까?
신세훈 : 아버지께서는 일본을 건너가 상업을 하는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면서 우리들을 길러내신 분이지요. 자식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칭찬을 하고나 말리는 일이 없이 과묵한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늘 “내가 아들 하나는 잘 낳아놨지!”라며 자랑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어머니의 자랑에 저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도 더욱 잘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습니다.
최현근 : 그럼 서울엔 언제 나오셨습니까? 다니신 학교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신세훈 : 네, 의성에 있는 사곡초등학교를 거쳐 의성중학교를 나와 안동으로 유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안동고등학교를 나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들어갔지요.
최현근 : 네에. 당시엔 연극영화과를 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신세훈 :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집에서 쉬었습니다. 의과대학을 안보내주어서요. 쉰 게 아니고 부역을 나가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아버지 속을 썩여드리는 자식이었지요. 난 공부하고 싶은 데 부역가라면 일이 됩니까? 그러니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러니 그 땐 부모님 말씀 잘 듣지도 않았지요. 저는 자랄 때 아주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여학생을 놀려도 늘 앞장서서 놀렸고 싸움을 해도 늘 앞장섰지요. 그때도 아주 말을 잘 했던 것 같아요. 호박에 말뚝 박는 건 아주 기본적인 장난이고 그보다 훨씬 심한 장난도 많이 했지요.
김순진 : 옛날엔 부역이 참 많았지요? 저도 부모님 대신 퇴비하는 부역에 나갔던 생각이 납니다.
신세훈 : 네, 그땐 길 닦는 부역이지요. 길도 닦고 자갈도 깔고 하는 부역이지요. 한번은 부역을 나갔는데 술도가에서 막걸리 배달이 왔습니다. 부역하면서 막걸리를 많이 마시고 이웃마을 아이들이 온 것을 보고 싸움을 걸어 그 중 젤 우두머리로 보이는 아이를 제가 먼저 때려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녀석 부모가 글쎄 병원에 가서 3주 진단을 끊어서 의성경찰서에 고소해 와서 대구지방법원 소년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저는 안동 하회에 있는 형님의 장인이 동아일보 지국을 했는데 그 분이 안동 도립병원 원장하고 친해서 도립병원에서 3주 진단을 떼어달라고 해서 맞고소를 했었지요. 그 때 자목련을 처음 보았습니다. 야, 참 멋있습디다. 그 때 자목련을 처음보고 목련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근데 정말 진단서가 왔더라구요. 생년월일 적어달라고 하니까 사람을 보지도 않고 진단서를 떼어 주더라구요.
서창원 : 그러면 시는 언제부터 쓰셨나요?
신세훈 : 중학교 때부터 썼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문예부에 들고 그랬지요. 당시 소년법원장에게 ‘의과대학에 가고 싶은데 못가서 속이 상해서 싸움을 하게 되었으니 용서해 주시면 큰 사람이 되어서 나라에 기여하겠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말끔히 그 흔적을 지워 주었더라구요. 그때만 해도 법보다는 일정시대라 그런지 실권자들의 마음대로였던 것 같아요. 소년원 원장이 용서해 주어서 홍역을 치루고 사면되었지요. 편지 한 통으로 사면이 되었으니 글을 잘 써서 덕을 본 최초의 사건이라고나 할까요?
고등학교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국어국문학과보다는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결국엔 연극이야기란 생각을 했습니다. 시와 연극이 조상이 하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남이 안가는 곳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남보다 특별한 것을 배워야 남보다 특별한 시를 쓸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연극영화과를 간 것을 몰랐습니다. 나중에는 아셨지요. 아버지께 3개월의 하숙비와 첫 등록금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학비를 해결하며 학교에 다녔습니다. 서울 올라오자마자 아르바이트 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장학금도 타야하고 하니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했지요. 정말 피나는 노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지금의 현대 사옥이 있는 계동에 신병원(申病原)이 신문 광고에 나왔습니다. 그걸 보고 편지를 썼지요. 공부를 가르칠 사람이 있으면 과외선생을 시켜줘도 좋고 아니면 청소를 시키든 무엇을 시켜줘도 좋으니 재워만 달라구요. 먹는 것은 매식(買食)을 했습니다. 그 때 자장면을 하도 많이 먹어서 지금도 자장면은 잘 먹지 않습니다. 한번은 새벽에 일어나 휘파람을 불며 청소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야단을 치더라구요. 환자뿐인 병원에서 휘파람을 부니까 야단맞을 만 했지요. 그 뒤로 병원에서 나와 중앙대학교 12호 기숙사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 만난 친구들이 둘 있는데 한 사람은 국문과생인 심상운으로 나중에 교편을 잡았고 시인이 되었지요. 또 한 사람은 최의석이라고 신문방송학과생이었는데 익산 이리고 운영위원장을 지낸 사람으로 저와 같이 한국일보 기자되었습니다.

 

▲ 좌로부터 최현근 시인, 신세훈 시인, 김순진 시인


최현근 : 대학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신세훈 : 네,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권용태 시인이 당시 대학 선배였는데 중앙대학교 신문 편집국장으로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국문화원연합회 회장을 지내고 있고 강남문인협회 회장을 지낸 분이지요. 그 선배에게 시를 몇 편 써가지고 봐달라며 가져간 적이 있습니다. 서랍에 받아 넣으며 나중에 오라 했습니다. 한 열흘 있다가 가보니 바빠서 못 보았다며 며칠 있다 오라 하더군요. 또 열흘 뒤에 가니 역시 서랍에서 그대로 있던 원고를 꺼내 미안하다며 또 며칠 있다 오라 하더군요. 그래서 또 한참 후, 세 번째 가니 그때서야 원고를 꺼내 대강 읽어보며 “시를 쓰지 말고 평론을 하지 그러느냐”고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도 화가 났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바라던 것은 평론도 시나리오도 아니고 오직 ‘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 몇 편을 열심히 퇴고하여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보냈습니다. 그 시가 당선된 것입니다.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란 시였지요.

형성기 온 데 지적 갈라진 퍼런 불허리 돌바람에 숨 끊어질 무렵. 구렁으로 분출된 용암 식어 바다 속을 뻗은 지맥으로 불기둥 치받쳐 외론 섬으로 솟아난 땅. 땅위에 어떤 중량의 의미와 생명감으로 마침 목을 뽑아올리며 신록 풍성한 한여름 너 앞에 내가 마주 섰을 때. 후둑후둑 성긴 소나기가 왔다야.
그 시절 항시 물줄기만 눈앞을 담담히 흐르고 바람은 침묵한 깊은 계곡이며 어느 산허릴 불어가 영높은 한 화산의 혈맥과 뜨거운 그늘모롱일 돌아 놀 속 목숨으로 피어난 구름꽃의 입김에 내 영혼 화신으로 엉겨 붙어 황금빛하늘아래 해바라기웃음으로 형상된 생성의 울타릴 돌아오는 또 한 무리 바람 떼로 출발했다야.
해바라기. 징처럼 안으로 출렁이어 소리내오는가 알 수 없는 누런 놋색꽃잎둘레는 원광의 미소같이 무지개달무리로 원만한 물맴을 지으며 꿈을 꾸는 물매화를 건드리다 강 건넌 습한 바람결에 서그럭 흔들리는 몸짓을 가누고 고향 떠난 너의 하늘색옷자락을 적셔 조금은 마음색이 섦은 나의 입상이다야.
전쟁을 치른 너 입술위에 피멍든 아픔만 서리지 않았더라면 짙은 비극의 흔적 없이 딴 꽃대롱물줄기로 가난한 이야길 망정 피릴 불어 공중에 띄워보겠다야.
지금은 바람파편에 튀어버린 물방울같이 씨를 다 흩어버린 빈빈 가슴팍을 가서 가을이 꽉 안긴다. 서러운 눈의 내가 나에게 가서 꽉 안긴다. 이제 빙빙 이 빠진 얼굴을 이고 스스로를 가늠하던 고개를 저으며 사방 시월의 춤노래 속에서 메마르게 눈물 나는 광활한 광장에 내가 나를 안고 서서 울까보다야.
어쩌면 내부를 흐르는 바람의 갈갈한 울음으로 꽉 차있을 나와 너는 밤의 계절을 뛰어나와 아침을 맞아야 한다. 몸을 씻어야 한다. 허지만 갈 길마다 갈린 엇길에 여러 마리 꽃실배암 따비틀고 지싸우는 마른풀두렁을 지나 낮닭도 울었던 마을에 하나둘 등잔불 꺼져가면 내사 원을 쳐다보거나 겨울잠 안자던 배암을 생각한다. 물먹은 바람은 조용히 달무릴 돌아가고 해바라기 이 빠진 가슴 강물처럼 그리 길게 울것다야.
끝 간 데 없는 수류 따라 밤무지갤 그려 좇아 전설의 식물 여름동안 물오른 목줄기가 제 씨앗을 사랑할 추수기에 씨통을 공간에다 흔들어버린 얼마 후. 싸늘한 까치놀로 벋은 가을가지들 겨우내 바람을 찢어야 물줄기 외로운 우리 영토 휘감아 휘휘 달음치고 다시 봄맞이 얼음꽃이 녹을 즈음 나무피부 속으로 봄여름나무같이 꽃물 오르겠지만 고운 언어로 기별 약속만 전갈한 뒤로 영영 겨우낸가 이야기가 없다야.
신세훈의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전문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김순진 : 대학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신춘문예에 등단하셨으니 무척이나 일찍 등단을 하신 셈이네요.
신세훈 : 네. 정말 그랬습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썼던 시를 퇴고하고 또 퇴고해서 낸 것이지요, 당시 양주동 박사와 박목월 시인이 심사위원이셨습니다. 저는 연극영화과였지만 백철 교수에게서 평론을 들었고 조병화 시인에게 현대시론, 최인숙 교수에게 소설론을 들었습니다. 철학과 논리학, 고전문학을 신청해서 듣거나 도강해서 들었습니다. 또 연극영화과이니만치 미술, 음악, 판소리, 가면극, 향가, 가사 등 다양한 예술분야를 두루 섭렵하며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에 제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토대로 말미암아 3,4,5,6조의 민조시를 개척하게 되었지요. 1962년 당시 저와 함께 신춘문예에 나온 사람들이 한국일보에는 박이도 시인, 동아일보에는 김원호 시인이었고 조선일보에서는 평론에 김현 평론가. 소설에는 김승옥 소설가, 그리고 시에는 제가 당선되었지요.
최현근 : 그 당시에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요. 더군다나 대학 1학년짜리가 당선되었으니 평가와 견제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신세훈 : 네, 저랑 같이 등단한 김승옥 소설가는 정말 소설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나온 작품이지만「64 서울 겨울」이란 작품은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지요. 제 당선 심사평에서도 천재라는 극찬이 있었습니다. 조병화 선생이나 이상노 선생 같은 분도 너무 일찍 문단에 나왔다며 걱정을 많이 했지요. “함부로 발표하면 안 된다”는 충고가 너무 많았습니다. 너무도 많은 충고에 주눅이 들어 한 2년 동안은 발표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년 후 현대문학, 자유문학, 사상계, 시세계, 여원, 중대신문, 일간지 등에 발표를 시작했지요.
서창원 : 희곡을 쓰신 적은 없습니까?
신세훈 : 네, 상업적인 글은 일체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근삼 선생께 희곡론을 배웠지요. 학점을 따려고 <사다리꼴 가족>이란 희곡작품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문단에 나와 이근삼 선생과 만나게 되었는데 물으시더군요.

“자네 내 강의 들었지?”
“네.”
“그 때 제 희곡작품 읽어보셨습니까? 안 읽어 보셨지요?”
“아마, 그랬을 런지도 모르지, 몇 학점 나왔나?”
“B학점이요?”

그러면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로부터 10년 후(1972년)에 산문장시를 현대문학에 발표했던 기억이 납니다. 염무웅 평론가가 동아일보에 월평을 썼는데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했었지요. 저와 같은 한국일보에 근무했던 이성부 시인이 바로 제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부르더군요. “어이 세훈이. 자네 염무웅이한테 한 방 되게 먹었네.” 하더라구요. 읽어보니 제 시를 ‘시도 아니라’고 신랄히 비판했더라구요. 저는 속으로 연극을 모르는 비평가라 생각했지요. 그 계기로 친해지기도 했구요. 그 분은 지금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고 저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잖아요. 나중에 김흥우 선생께서 최초로 희곡전문지를 내는데 글을 좀 달라고 해서 그 장시를 시극으로 바꾸어 냈었습니다. <체온 이야기>란 제목인데 남남북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북분단의 비극을 극복하자는 주제의 내용이었지요. 제가 나중에 제 시집 자서에 ‘Y 평론가가 시도 아니라고 해서 오히려 고맙다’고 쓴 기억이 납니다.

 

▲ 좌로부터 서창원 시인, 신세훈 시인, 김순진 시인


김순진 : 민족문학작가회의 말이 나와서 여쭙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민작의 측과 한국문협으로 양분되고 시에 있어서도 한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가 양분되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세훈 : 네, 저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봅니다.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스토리문학에서도 문인들이 배출되면 출신 작가들의 모임이 생겨나듯이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문학 활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자신의 이론이 맞다고 하며 상대방을 격하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지난여름에 평양에 가서도 고은 시인과 염무웅 이사장에게도 말했고 만해마을에서도 ‘남북통일하기 전에 우리 문단통일 먼저 하자’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었습니다. 저도 민작의 회원이고 민작의 회원도 우리 한국문협에 들어온 사람이 몇 백 명 됩니다. 서로 오가며 급진주의는 보수주의와 협력하고 보수주의는 급진주의와 협력하며 형식주의와 역사주의 문학이 서로 보완하고 협력해서 함께 가야 합니다. 이제 원로들도 어느 정도 긍정했으며 젊은 층도 많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김 주간도 ‘지난 번’ 시의 날 행사에 참석을 했었지만 그 때도 민족문학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이 외국에 출타중이어서 김형수 사무총장이 와서 염무웅 이사장의 메시지를 읽지 않았습니까?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이제 문단통일의 분위기가 익어감을 느끼며 열심히 다리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최현근 : 이사장님께서는 문단에 나오면서 청소년 문학, 시소설, 동수필 등을 개척하였고 근래에는 민조시란 새로운 정형시의 분야를 개척하시는 등 많은 일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를 천천히 듣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다 들을 수는 없고 民調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신세훈 : 우리민족은 황색인종 원류의 맏자식입니다. 그런 우리민족은 정형시를 많이 만들고 계승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일본의 단가 형태가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기존의 전통 정형시인 시조의 3장 6구로만은 현대문명 문화의 비평적 생각이 수용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연극영화과를 다니고 그 이후 시조와 가사 등을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전부 3,4,5,6조였습니다. 6은 2,4,6,8,10의 기둥수입니다. 또 5는 1,3,5,7,9의 기둥수이구요. 이  3,4,5,6조만 있으면 우리 민족의 아픔이나 현대감각의 모든 감정들을 충분히 처리해 낼 수 있습니다. 3,4,5까지는 한국의 대표적 율격이고 6은 3의 중복으로 이룰 수 있으니 채택하였고, 그 뒤 7은 3과 4로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없어도 됩니다.
서창원 : 그러면 민조시를 개척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요?
신세훈 : 그럼요. 저는 천부경 사상 속에 나타나는 3,4,5,6조의 고유한 장단가락은 천친지(천인지) 사상의   한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한이라는 것은 중국의 한나라 한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한(韓), 즉 ‘크다, 많다, 최고다, 우두머리다, 임금이다, 우리 전체다’란 최선 최고의 한이지요.
김순진 : 그러면 민조시는 언제부터 써 오셨고 왜 개발하였으며 민조시란 이름을 붙이셨습니까?
신세훈 : 네. 70년대 중반부터 습작을 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백성을 뜻하는 ‘民’에다가 율조의 뜻인 ‘調’와 ‘詩’를 붙여 民調詩라 명찰을 달았습니다. 개발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정형시로 내려오는 시조만으로는 현대 언어나 감정을 다 수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조시인들이 과거의 언어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데 정형시의 형태가 꼭 시조 하나만을 유지할 필요도 없고, 다양한 형태의 정형시가 나오면 나올수록 문학사적으로나 시적인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했고 전통율격을 살린 3,4,5,6조의 민조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진작부터 해왔기에 2000년 6월에 ‘새정형시 民調詩(3·4·5·6調) 개척 선언문’을 채택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선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정형시 民調詩(3·4·5·6調) 개척 선언문』
民調詩란 무엇인가? 우리 한민족의 민간 장단으로 흘러내려오는 율조의 소리마치를 문자의 뜻 위에 얹어 빌어 쓴 정형시가 곧 民調詩이다.
民調詩는 왜 새로운 정형시인가? 우리말의 소리마디를 3·4·5·6調의 정형률에 맞춰 쓴 새로운 시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 문학사에는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정형시이다.
民調詩의 정신인 사상 배경과 3·4·5·6調의 정형 율격 근원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새정형시인 民調詩의 사상적 배경은 한민족 고유의 정신 문화 유산인 ‘’사상에 그 밑바탕을 펼쳐두고 있으며, 정형 율격 수리의 3·4·5·6調는 한민족의 철학인 수리학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民調詩의 새정형 자수율을 왜 3·4·5·6調에만 걸어둔 채 정형시로 정착시키려하는가?  한민족의 수리 철학은 허수와 실수의 1·3·5·7·9이며, 또 2·4·6·8·10의 10은 0(제로·+)의 개념으로 설정되어 있다. 1(하나)은 곧 3(셋)이며, 3(셋)은 끝수인 9(아홉)였다. 5는 1·3·5·7·9 중의 기둥수리이며, 6은 2·4·6·8·10의 중간 수리인 기둥수이다. 허수와 실수의 중심 수리인 5와 6다음은 7이지만, 이 7은 우리 민족의 3·4조 말마디가 합해져 되돌아와 모여친 덤의 수리가 7(서양의 럭키 세븐)이다. 그러므로 7을 율조로 잡아 다시 6뒤에 새삼스럽게 설정하지 않고, 3·4·5·6調로만도 충분히 우리의 정신 사상과 율조와 만상의 뜻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 수리 3에서 6까지만 정형 수리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다 ‘天符經’이나 ― ‘한단고기’보다 먼저 쓰인 ― 박제상의 ‘징심록’ 들에 나타난 한민족 고유의 수리학 원전에 근거한 것이다.
民調詩는 과거 우리 문학과의 정형 자수율 관계가 어떠한가? 신라 때의 향가나 고려 가요·가사 및 백제사람 왕인이 개척한 ‘和歌’(일본 정형시)나 우리 가요가 일본으로 건너가 ‘萬葉’이 된 가요(일본 정형시의 원형)나 조선조의 時調·가사·판소리에 이르기까지 다 그 소리의 장단·가락 음수율을 짚어보면 결국 3·4·5·6調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인들은 시조 부문 하나만 이 땅에 겨우 민족 정형시로 정착시켰을 뿐이다.
최남선 이광수 등은 일본 정형시(7·5조)의 영향(역수입)을 받아 ‘3·4·5調’를 이땅 정형시로 정착시키려고 애써 실험했지만, 그분들은 ‘天符經’ ‘징심록’ 들의 허수와 실수에 작용하는 수리 ‘6기둥수’를 발견해내지 못해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3·4·5·6調는 우연의 일치이지만, 바로 위와 같은 3·4·5調에 내가 ‘6’의 기둥 수리를 발견해낸 다음 다시 3·4·5·6調로 정착시킨 새정형시이다.
民調詩는 조선의 정형시인 時調와는 어떻게 다른가? 시조는 초·중·종장인 3장 6구(3·4/3·4//3·4/3·4//3·5/4·3)로 된 정형시이지만, 살펴보면 모두 3·4·5·6調로 집합 구성되어 있다. 처음 하나(1)인 3으로 시작해서 3으로 끝난다. 이 3의 수리는 ‘天符經’ 천·인·지(○△□)의 사상인 그 3신 사상의 3철학이다. 초·중·종장 첫머리도 3으로 시작하고, 구마다 첫머리 자수 3도 처음의 1(하나)인 3으로 시작한다. 초장 첫머리 3과 중장 첫머리 3도 합하면 6이요, 중장·종장 역시 6(3+3)에, 초·중·종장 첫머리의 합이 9(3+3+3=끝)이다. 초장 첫머리 첫구도 3이요, 둘째 구도 3이다. 종장 마지막 3수리와 만나면 6수리가 되고, 6은 다시 종·중·초장 첫머리 수리와 음악적으로 화합하면 각각은 9수리(끝)가 되는 수철학 구조다.
시조의 기본 음보인 3·4조와 종장의 5수리 구조가 곧 3·4·5조 율격 구성이며, 초·중장의 기본조인 3·4조를 합하면 7조가 된다. 결국 시조도 말마디 리듬을 분석하면 말머리의 위치만 다를 뿐 역시 3·4·5·6조의 구조로 짜여져 있다. 民調詩와는 구성상 그 형식만 다를 뿐이다.
우리 민족의 정형시인 時調가 있는데, 왜 또 정형시 民調詩를 새로 개척하는가? 무릇 시의 형태는 시대가 지나면 변하는 것이 순리이다. 지금 時調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3장 6구의 자수(약 43자 내외)가 일본 정형시에 비해 너무 글자수가 많을 뿐 아니라, 현대 문명·문화 언어를 이 시조에 수용했을 때는 시가 잘 되지않는 약점이 있다. 시조가 이러한 점들을 현대 감각적인 민족시로 소화시켜내기엔 그 형식에서만 보더라도 너무 벅찬 듯하다.
그래서 나는 향가·여요·판소리·가사·시조…… 들의 정형 율조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낸 컴퓨터칩(예:64KD램→64괘 4차원 수리학 응용 후 성공함)의 수리 집합·분산 원리처럼 우리말마디의 수리를 3·4·5·6調로 民調詩語群에 수용할 경우 자유로이 집합·해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 새정형시를 개발한 것이다. 民調詩에는 아무리 어려운 현대의 문명·문화 비평 언어가 시어로 새롭게 끼어든다고 해도 하나 어색하지 않게 시적 효과를 나타낼 수가 있다. 民調詩의 또 한 가지 장점은, 불과 18자로 시 한 수를 뽑아낼 수가 있다는 점이다. 日本의 짧은 정형시(17자)의 자수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각 말마디마다 얼마든지 거듭 우리의 소리말 장단에 추임새를 매겨 중첩으로 계속 쓸 수 있음도 그 형식에 매인 시조와는 다른 자유로운 언어 세계의 정형시라고 할 수 있다.           
<4333(2000). 6. 26. ‘自由文學’ 편집실에서.>

 
 
 

최현근 : 자유문학에서는 이미 민조시를 뽑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신세훈 : 자유문학 뿐이 아니라 월간문학에서도 민조시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문인협회에서도 이번에 민조시분과가 탄생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있는 임기동안 누가 해 줄 것도 아니고 하니 민조시가 우리문단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김순진 : 오늘 민조시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스토리문학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보겠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님의 자격으로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월간 스토리문학이 이제 창간된 지 2년이 되어갑니다. 그간 한 달에 두세 명씩 나와 배출되었지만 아직 한국문인협회에 가입된 회원은 없습니다. 한국문인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은 어떤지요?
신세훈 : 아주 적절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선 문예지에 있어 상업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판단도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인장사를 하는 문예지냐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작가가 추천하더라도 과거에는 추천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가입이 좌우되긴 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등단 문예지의 등단작품과 심사평 당선소감이 복사 첨부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작품을 심사한다는 말씀입니다. 문예지가 동인지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지방문학지에서 신인의 글을 싣고 문협에 가입시켜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지방문학지는 시군구단위 문학지도 아니고 도단위 문학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지방문협의 문학지에서 나온 사람을 한국문협에 가입시켜준다면 전국의 몇 백 개 되는 시군구 문학지 출신들이 너도나도 가입시켜달라고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동인지 형태의 문학지는 안 된다고 부결시켰던 겁니다. 스토리문학의 판권을 살펴보면 편집위원을 보면 거의가 아는 유명하신 분들로 되어있습니다. 그건 그만큼 스토리문학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스토리문학 출신문인회의 부회장이나 이사 등을 기입하는 건 기관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부분은 판권에 넣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봐도 돈 주고 살 수 있고 범 문단적인 문예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김순진 : 네에, 잘 알겠습니다. 바로 실천에 옮기겠습니다. 오늘 바쁜 연말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을 위해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의를 베풀어 주신데 대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문학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화중에 자유문학 발행인이고 신세훈 시인의 둘째 딸인 신새별 시인이 들어와 인사를 나누었고 며칠 전에 출간된 자작 동시집 「0000000」을  한 권씩 사인해 우리 일행에게 건네주었다. 또한 자유문학 편집실장인 000 시인이 자작시집 「000000」을 선물해 주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유문학 출신 000시인이 들어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시인은 평소 필자가 잘 아는 조현근 수필가랑 잘 아는 사이라며 반가워하며 점심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신세훈 시인과 아울러 신새별 시인, 오현정 시인, 그리고 000시인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신세훈 시인의 민조시 몇 편을 싣는다.

申世薰 시인의 연보
호는  一遇
1941년 2월 22일(음1.18.) 경북 의성에서 태어남
1953년 사곡초등학교 졸업
1956년 의성중학교 졸업
1959년 안동고등학교 졸업
1962. 1. 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당선(당선시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
1963. 朴利道 金源浩 시인 등과 ‘新春詩’ 동인 창립 주도(19집까지 참여).
1964년 중앙대학교 문리대 연극영화과 졸업
1967. 6.30. 육군 중위로 예편(R.O.T.C. 2기)·‘한국일보’사 등 기자 생활 및 공무원 10년.
1970.~현재. 文德守 李石 시인 등과 한국현대시인협회 창립 주도. 초대 사무국장·상임이사·부회장·지도위원 역임·고문(현재).
1971.~1973. ‘月刊文學’ 편집위원 및 편집기자 역임.
1973. 배정웅 안영호 시인 등과 한국자유시인협회 창립 주도-심의위 의장·이사 역임. 한국 예륜 상임 심의 위원 역임.
1977.~1979. 국제 P.E.N.클럽 한국본부 사무국장 역임.
1977.~현재. 한국시낭송회의 대표.
1978. 10. 한미 친선협 초청 미국문화예술계 시찰.
1981년 동국대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수료
1981-1982 홍익대 강사
1984. 제1회 아시아시인회의(동경 대회) 한국 대표.
1987.~현재. 한국자유문인협회 창립 주도-초대 회장(현재).
1989. 미 행정위원회 초청 워싱턴 뉴욕 예술언론계 시찰. 구 소련 작가 동맹 및 타쉬켄트사대 초청 구 소련 · 유고연방 · 헝가리 · 불가리아 등 동구권 2회(4월·9월) 문학예술 기행 및 동서 비교 문학 세미나 참석.
1990.~1994. 제26·27대 한국 P.E.N. 부회장 2차 피선.
1991.~현재. 계간 ‘自由文學’ 및 도서 출판 天山 대표(1981~현재/출판사 경영).
1992-1993 명지대 강사
1993. 9.~현재. 한국청소년문인협회 창립 회장.
1993. 11. 제58차 국제P.E.N. 대회(리우 대회) 한국 정대표.
1994.~1999. 한국문협 과천시 지부장.
1999~2001. 1. 과천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1995.~2000. 한국문인협회 제20·21대 부이사장 피선.
1996. 8./1997. 8. 마케도니아 정부 초청 제35/36차 스트루가 국제시인회의 한국 정대표.
1998. 8. 불가리어 문화부 초청 ‘한·불 문학 교류의 밤’ 한국 정대표.
2001 중앙대 강사
2001. 1.~현재. 제22대·23대 한국 문인 협회 이사장 피선.
2001~2005. 문협 제11차(남미·알헨티나). 제12차(하얼빈·아프리카). 제14차(타쉬켄트). 제15차(호주·뉴질렌드) 해외 한국문학심포지엄 및 문학기행 단장.
2002~현재. 전국한자교육추진연합회 지도 위원.
2004~현재. 동학농민혁명재단 고문.
2004. 6. 14.~현재. ‘民調詩’ 동인회 창립-상임고문.
2005 현재. 한국불교문인협회 상임고문. 중앙대 총동창회 부회장. 한국 상고사학회 부회장.

저서
시집 「비에뜨·남 葉書」(1965 토픽 출판사), 「江과 바람과 山」(3인 시집·1978 한겨레 출판사), 「뿌리들의 하늘」(1만행 장시집 제1부·1984 일월서각),      「사랑 그것은 落葉」(청소년 시집·1984 온누리), 「조선의 天平線」(1991 미래 문화사), 「꼭둑각시의 춤」(1993 도서출판 天山), 「체온 이야기」(시극·장시집·1999 도서 출판 天山), 「3·4·5·6 調」(2000 民調詩集 도서 출판 天山) 등 편저·역저·저서 23권.

수상
제3회 詩文學賞(1978)
제1회 한국P.E.N. 공로상(1994)
제8회 한국自由詩人賞 본상(1994)
제10회 예총문화예술대상(문학 부문) 수상(1996)
인헌무공훈장(1966)
대통령 표창(2002) 등 포상.
 

(월간 스토리문학 2006년 1월호 '메인스토리' 수록)


 
 
 

■ 김순진

------------

시인 , 소설가

월간 스토리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문학공원 대표

저서 [광대이야기] 외 7권

 
 

 ['문사탐방(포커스)' 및서베이. 본 코너는 각 문예지에서 기획취재 수록한 '문사탐방' 기사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취재 및 수록 시점을 불문합니다. 가치있는 기사는 가능한 한 많은 독자에게 읽혀지고 항구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No, 227
  2014/11/12(수)
 
民調詩란 무엇인가 / 신세훈 시인

 

 

 

 

民調詩란 무엇인가 / 신세훈 시인

 

――요즘 한국시의 흐름위에 ‘혼의 언어’를 수놓으며

 

1.현대 한국시의 흐름은?

 

그야말로 우후 죽순… 정말 다양합니다. 고전과 현대와 미래가 다 함께 어깨를 겯고 나란나란 가고있는 게 오늘날 한국 현대 詩林의 시경향이라 할까요?

우리나라의 시흐름은 나무에 비유하면 기둥과 뿌리․가지․잎․꽃…들처럼 다양한 시정신을 가지고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시인 스스로 민족 문화 정신의 뿌리와 기둥에 속하는 시를 연결해 써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시인들 중 변별성있게 클 수 있고 개인의 성과물인 시의 문학성이 훗날 높게 평가받을 수가 있습니다. 한국 문화를 그러안을 수 있는 정신의 뿌리나 기둥에 속한 문학이 무성해야 세계 시장앞에서 한국 文林이 더욱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문림엔 잡초가 무성합니다. 하지만 多多益善―그속에서 두드러진 문인이 나올 수가 있지않을까요? 때문에 다양성을 뜻하는 ‘잡초’는 부정의 의미만은 아닙니다. 잡초밭에서라야 ‘난초’나 ‘장미’가 더욱 빛나지않겠어요? 빛나는 난초들과 장미꽃처럼 지조있고화려한 문인들이 또한 필요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색깔과 모습 다양한 정신의 시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낭만적인 시가 있는가 하면 이유도 없이 징징 우는 눈물시도 있고 냉정한 찬겨울달빛같은 그러면서도 여리디여린 시도 있고 디카 시․디지털→ 하이퍼 시․民調詩․청소년시․시조․동시조․동민조시․청소년시조․동수필․장편수필․시소설․공연시…들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문학 및 시분야의 개성있는 꽃들이 만발하고있습니다.

 

2.한국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한국시는 ‘조선시여야 된다.’—이런 생각을 예나 지금이나 바꾼 적이 없습니다. 한국 시인이 쓰는 시는 한국시여야 된다. 바꿔 말하면 서양시여서는 안된다 이거죠. 지금까지 한국시는 발상법이나 형식․구조․수사 면에서 너무 서양시에 기울어져 있어요. 그발상․언어․이론까지도 서양것을 재탕․3탕 하는가 하면 알파벳 문자로 된 원서 한 쪽을 훔쳐읽고는 시평론 몇 편씩 베껴 써먹곤 하니까 영어․불어․독어…들을 모르는 이들은 그것이 그문인 생목소리인 줄만 알죠.

나중에 알고보면 그것들 전부 남엣것 복사한 이론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는 거죠. 시작품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남의 작품을 흉내내고 자기의 색깔이라곤 전혀 없는 모방이 진하다 못해 모작에 가까운 이러한 문학들이 많습니다(대가들의 그림도 그러한 것들이 많아요.).

우리 한국사람은 조선 정신을 가지고 조선시를 써야 합니다. 조선의 장단․가락․호흡…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써야 그문학이 50년 후에 혹은 1백 년 후에도 순수한 조선시로 남아있지않을까요? 소월시같은 민족 정서와 장단․가락․호흡을 가지고있는 조선시들은 영원히 이땅위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시가 읽히지않고 시집도 팔리지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가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이상 한 줄이라도 감동을 주는 이상 시는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3.조선시와 民調詩의 관계는?

 

어느 나라 예술가든 어느 나라 시인이든 그민족의 정서와 언어로서 작품 창작을 하고 글을 쓰지않습니까? 한글로 된 우리말은 예부터 우리의 호흡․장단․가락에 맞게끔 직조됐습니다.

한글 어순도 알고보면 우리 생리에 맞고 인체 리듬에도 맞아떨어지는 장단․가락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리 한국 시인이라면 조선 혈통을 가진 시인이라면 조선 호흡과 마음과 장단과 가락에 맞춰서 시를 써야 합니다. 그래야 결국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월시같이 우리 장단과 가락 민요조로서 쓴 시가 결국은 우리들 속에 오래도록 살아남는 거죠. 民調詩도 민요조로서 형식은 소월의 시어 구조와 비슷한 단수 18자 3․4․5․6조의 구성으로 돼있습니다. 한국인속에 흐르는 피는 결국 한국피이기 때문에 언어와 정서 구조 역시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와 같은 거죠.

묘하게도 사람은 1분에 평균 18번씩 숨을 쉰다고 합니다. 인체 리듬으로 따지면 1분인 60초에 18번씩 호흡한다는 것은 2☓9=18이라 그러면 30초엔 9회씩 쉼호흡을 한단 얘기 아닙니까? 9를 세 번 쪼개면 3☓3=9 3쪽이 되고 이3은 우리 한민족의 3신 사상 3세 판의 기본 天(1:․:chun-heaven) 人(1:ㅣ:in-humam being) 地(1:ㅡ:ji-the earth) 3재 사상이 됩니다. 그리고 시조의 초․중․종장의 5구 첫조와 6구 마지막 조 3수리가 역시 3이 됩니다. 천인지(◯+△+□=1)의 3은 하나 ‘’과 같지요. 時調나 民調詩나 3이 첫조(혹은 첫구)의 기본 수리이고 역시 마지막조의 수리(시조는 3 民調는 6이나 6은 3+3조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民調는 단수 18자로서 단 한 줄로 ‘촌철 살인’도 할 수 있는 혼의 시를 쓸 수 있죠. 이것이 조선시인 時調와 民調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언어의 혼과 정서 역시 한국적이어야 하지요?

 

우리 한민족 사상은 예부터 세계 인류 사상 모든 나라의 사상의 원조입니다. 언어․수리의 원조예요 ‘天符經’ 사상이 그러합니다.

우리 조상의 한글이 올라가면 가림토 문자(‘한단 고기’ ‘징심록’의 38정음.)로 연결되고 더 올라가면 산스크리트 어로 연결되어 올라갑니다. 이 산스크리트 어 이전 상원 갑자 기원 전 8937년 경으로 올라가면 한기 10948년(2011년 현재) 경—10월 상달 초사흘에 초대 단군 천제가 처음 나라를 열었습니다. 伊甸國(이덴→에덴의 동쪽) 이전으로 올라가면 悉曇國(실담국)의 悉曇語(실담어)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산스크리트 어로 그언어는 중원 지금의 중국 돈황 지역(곤륜산 일대) 언어입니다.

‘伊甸’의 중국 발음은 ‘이덴’ 서양식 발음은 ‘에덴’인데 그 伊甸園 동산이 중국 ‘돈황’ 지역에 있습니다. ‘伊甸國’ 즉 ‘에덴의 동산’입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언어의 뿌리였던 실담어를 발전시켜서 그것이 서양 알파벳(동방 상형․가림토→이집트 상형 문자→서양 알파벳 혹은 마케도니어 기릴 형제 문자→러시어 알파벳…들)으로 변하고 우리 조선 나라에서는 韓(漢)字․한글로 변하게 되는데 그것을 반증해주는 실례는 많습니다.

호남․영남․제주도 사투리의 조상 언어도 산스크리트 어→실담어까지로 올라갑니다. 이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나온 사전에도 그렇게 기재돼 있고 산스크리트 어 사전은 물론 하버드 대에서 나온 사전에도 모두 그렇게 기록․증명되어 있습니다.

인류 최초 언어인 실담어가 서양으로 넘어가서는 알파벳으로 변하고 동방에서는 한자와 한글로 변한 것입니다. 日本으로 건너가서는 ‘가나 문자’가 되었죠. 인류 사상의 원조인 황인종 맏집 동이 조선의 ‘天符經’ 사상과 함께 실담어→산스크리트 문화 언어가 지구 4방 8방으로 퍼져나간 거죠(‘韓國語는 실담어의 태초의 淵源 실담어는 東西文明의 淵源 ’ : 姜相源 著 ‘한글 고어 사전 悉曇語 註釋 ’ : 吳亨根 감수 : 한국 세종 한림원 : 참조/姜相源 著 : ‘왕손 전통 언어 복원 悉曇語 註釋 ’ : “萬古의 고전 ‘訓蒙子會’에 의거” : 한국 세종 한림원 : 참조).

 

5.悉曇語와 조선시와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기본적인 게 장단․가락․리듬이예요. 그 리듬은 전부 율조가 3․4조 혹은 3박․4박인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이 그렇죠. 탈춤․민요․판소리 장단․가락들의 조선조가 거의 트롯 풍입니다. 그래서 民調詩하고 연결이 되어 ‘3․4․5․6조’를 개발하게 된 겁니다.

우리의 호흡․장단을 흡수해서 우리의 정서에 맞게끔 운율을 지어내는 시라야 우리의 진정한 한국시․조선시가 될 수 있습니다. 시라는 것은 원래 음악하고 함께 가야하는데 현대시는 음악을 빼버렸으니 장단과 가락이 없죠. 우리들의 말소리속에 살아있는 장단․가락을 작품속에서 죽이지말고 살려내야 합니다.

한문이나 한글을 우리는 잘못 배워왔어요. ‘한문은 뜻글자 한글은 소리글자’라고 배워왔는데 아닙니다. 한글도 뜻글자요 소리글자이고 한문도 마찬가지 뜻글자+소리글자이지만 오늘날까지 우리 조상들이 잘못 전달한 거죠. 그러니까 항일 저항기(대일 항쟁기)에 日本 교육 정책상 그들은 한글 학자들이나 교사들을 통해서 한글은 뜻(혼)이 없는 것으로 소리만 있지 뜻이 없는 글자라며 강제로 비하시켜버렸죠. 한글이라는 언어속에는 고저 장단과 가락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특히 시는 모든 예술의 핵입니다. ‘문화의 꽃은 예술 예술의 꽃은 문학 문학의 꽃은 시’(‘自由文學’ 캐치 플레이즈)입니다. 예부터 ‘詩․書․畵․音․律’이라 했죠. 시가 제일 앞섭니다. ‘書’는 산문 또는 서예 ‘畵’는 그림 ‘音’은 음악 ‘律’은 율동 즉 춤(무용) 이것 외엔 모두가 잡기(체육 경기․노름․게임․바둑․당구․골프․권투가요․마술․장기․아이스 쇼․개그…들)입니다.

요즘은 잡기가 돈을 더 많이 버는 시대죠. 그러나 순수 예술 문화가 잘 되고 발전해서 그고가가 높아져야 대중 문화인 잡기들도 잘 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순리죠. 기초 과학이 튼튼해야 고급 전문 분야의 첨단 과학이 그를 기반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죠.

民調詩에 있어서도 우리의 말마디나 장단․가락이 실담어→산스크리트 어→가림토문→고구려․신라 이두문→고려 가요→한글 시조에 이르기까지 그핏줄 성질이 위에서 기초 과학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당대에 와서 이땅 새로운 정형시가 가능했던 겁니다.

 

6.民調詩란 무엇인가?

 

발음상 된소리 법칙으로 ‘민쪼시’라 말하지만 한자 표기는 ‘民調詩’―백성 ‘民’ 고를 ‘調’ 글 ‘詩’입니다. 민중들이 고루고루 부를 수 있는 정형시이지요.

고대 우리의 정형 시가가 日本으로 건너가 日本의 정형시 ‘하이쿠’(俳句) ‘와카’(和歌)가 됐습니다. ‘3․4․5․6조’는 신라 이두로 넘어가 신을 부르는 ‘迎神歌’가 됐고 일찍이 王 仁 박사가 정형 ‘5․7․5․7․7조’인 ‘難波津歌’를 전해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日本人들은 그유명한 ‘하이쿠’와 ‘와카’를 발전시켜 세계 각 나라로 파급시켰는데 현재 美國에도 지역마다 日本 정형시 동호회 그룹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듯 일찍이 韓國의 정형 시가가 日本으로 건너가 ‘萬葉’→‘하이쿠’로 활발하게 쓰여지고 있는데 3장 6구 45자 전후로 되어있는 우리의 정형시 時調는 복잡해서 좀처럼 잘 쓰여지지않고 있는 실정이죠. 특히 외국 사람들이 3장 6구를 일일이 맞추려고 할 때는 퍽 힘들어합니다. 그들이 자유시보다 짧아서 번역하기엔 편하고 더러 정형가락이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나마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한국적이기 때문입니다.

民調詩는 時調보다 덜 복잡합니다. ‘3․4․5․6조’ 단수는 18자이고 어디까지나 더 쓰고싶으면 거듭 장단 추임새치듯 거듭 쳐주면 해결됩니다. 문제는 ‘3․4․5․6조’의 순서는 꼭 지켜야 합니다. ‘6조’는 결론조이고요 ‘6조’를 거듭치고싶으면 앞의 ‘6조’는 쉼표 처리하고 마지막 ‘6조’는 끝에만 마침표를 찍어 종결을 표시하면 됩니다.

民調詩의 배경 사상은 동이 조선의 ‘’사상입니다. 수리는 ‘天符經’ 사상의 수리 ‘3’을 ‘하나’(天人地=우주=1)로 보고 시작해서 ‘4․5․6조’로 마감합니다. ‘5조’와 ‘6조’를 실수와 허수의 기둥수리로 설정해서 ‘6’으로 마감하고 덤의 숫자 럭키 세븐의 ‘7’은 앞의 ‘3․4=7조’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더이상 이시에서 ‘7’은 설정하지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이 조선의 장단․가락․호흡을 따라 트롯 풍으로 탈춤 장단․가락이나 판소리․소리․창 가락으로 읊으면 우주 만상의 모든 사물이나 유무형의 정신적 사고․대상이 다 ‘3․4․5․6조’속에 풀려녹아납니다. 표현 못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7.民調詩가 생겨난 유래는?

 

내가 시를 쓰기 위해 국문과를 택하지않고 연극 영화과를 택해 들어가 시인이 되고나서 계속 공부하다보니 고대 그리스 희극․비극은 문론 세익스피어부터 東西 고전을 접하면서 조선의 춤사위․음악․탈춤까지 다 다루게 됐죠. 자연 민속극(혹은 民族劇)까지 연구하게 되고 우리 장단․가락․춤사위․소리에 매력을 느껴 우리나라 고전 문학을 전부 수강․도강을 하며 공부하다가 우연히 우리 고유의 文學 특히 詩歌의 글자몸붙이는 전부 ‘3․4․5․6조’로 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時調가 바로 ‘3․4․5․6조’예요. 時調는 民調와 형식만 다를 뿐 3장 6구로 되어있습니다. 우선 초장이 ‘3․4 3․4조’로 되어 있잖아요? 중장도 ‘3․4 3․4’…일단 3․4조가 또 거듭 들어있죠? 그럼 5․6조는 어디 있느냐…종장에 있습니다. 3장 6구의 종장으로 가면 ‘3․5․4․3’―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종장 이걸 거꾸로 돌려읽으면 ‘3․4․5․3조’예요. 그러면 ‘6조’는 어디로 갔는가? 초장에 3 중장에 3 종장 첫구에도 3 끝에도 3으로 끝납니다. ‘3’이 주인이죠.

우리는 예부터 3신 사상속에서 살아왔고 ‘3’은 곧 ‘하나’와 같습니다. 초+중장의 ‘3’이 만나면 ‘6’의 모양을 합니다. ‘3’이 곧 3☓2=6을 형성하고 1․3․5․7․9의 마지막 수리 ‘9’(3☓3=9)를 형성합니다. 초․중․종장의 3+3+3=9가 되죠. 또 초․중․종장의 32+32+32=92=18(끝수와 끝수의 합)이 되고 民調의 ‘3․4․5․6조’가 바로 ‘18자’ 기본입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4통 8달 수리학으로 다 연결망을 구성하고 있어 피가 통합니다. ‘향가’부터 고려의 여요․시조로 내려와 판소리․창․가사 문학까지 전부 따지고 보면 3․4 혹은 5․6조임을 발견하게 됐죠.

‘3․4․5․6조’를 줄여 단수로 선문답처럼 쓰게 되면 18자(1분 호흡 수도 18회:인체 리듬: 2☓9=18) ‘하이쿠’는 ‘5․7․5’조 17자…日本 하이쿠 정형 첫수리는 1․3․5․7․9의 중심 기둥 수리 ‘5’인데 民調는 왜 ‘3’을 첫수리로 택했는가?

우리 사상속에서 天人地 사상(원․각․방:◯+△+□=1)이나 ‘天符經’ ‘역학’(‘주역’이 아님) 사상속에서 ‘3’은 곧 ‘하나’라고 말했죠. 윷을 놀아도 3세 판 씨름을 해도 3세 판 화투를 쳐도 3세 판 재판을 해도 억울하면 3세 판(지방 법원→고등→대법원)까지 갈 수 있잖아요? 모든 것은 3세 판으로 결정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특성이예요.

오래전 조상 대대로부터 天人地 사상 3신 사상으로 인해 ‘3’이 ‘하나’()로 엮어지는 거예요. 하늘과 인간과 땅 이것이 바로 우주 공간(1)의 하나죠. 이런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사상입니다. ‘홍익 인간/이화 세계/經世濟民’…의 사상이 자연 民調詩 바탕을 이룹니다. 그래서 ‘3’을 먼저 놓은 거예요.

‘3조’를 먼저 놓으면 ‘1․2’는 자연히 이‘3조’에 흡수됩니다. ‘3’이 곧 ‘하나’니까요. 이것이 서양과 다른 우리의 동방 철학 사상(사상)입니다. 모든 수리학의 기본이 ‘3’입니다. 그래서 ‘3’을 선택한 것이죠.

우리의 역학이나 모든 사상에는 음양이 있고 ‘虛’와 ‘實’이 있잖아요? 수리학 실수의 1․3․5․7․9 중의 ‘5’가 기둥수이고 허수의 2․4․6․8․10의 중간수 즉 기둥수는 ‘6’입니다. 그래서 이 3․4․5․6조는 모든 우주 만상을 표현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이 완벽하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깨닫고 발견했죠.

民調詩의 바탕사상인 ‘’사상은 우리 민족 전래의 한사상입니다. 슬프고 괴로운 뜻의 ‘恨’이 아니라 크고많은 으뜸이라는 뜻의 ‘瀚’을 뜻합니다. 바로 ‘홍익 인간’ ‘弘益濟人’의 사상을 의미하죠. 3․4․5․6조는 수리학상 역학 면에서도 그렇고 우리말소리 장단․가락 자체가 모두 그렇게 구성돼 있어 民調詩를 개척하고 봤더니 이미 그옛날 3․4․5․6조가 존재하고있었음을 알고는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日本 천황이 조선신(신라신:園神/백제신:韓神)에게 제사지낼 때 지어올린 초혼가 즉 ‘영신가’(迎神祝文 神樂歌:카쿠라우타:招魂詞 ‘阿知女法:아지매법’:홍윤기의 ‘일본 문화사.’ 1999. 서문당.)가 3․4․5․6조로 기록된 것을 발견했습니다.(民調詩集 ‘통일꽃핀다’ ‘自序’ 참조.). 고대 3국 시대부터 이미 3․4․5․6조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냈죠.

 

아지매 3 (阿知女)

오오오오 4 (於於於於)

오게 아지매 5 (於介 阿知女)

오오오오 오게 6 (於於於於 於介)

오오오오 오게 6 (於於於於 於介)

――日本 皇室祭 迎神 招魂詞 ‘阿知め 法’ 全文

 

이노래 3․4․5․6조는 고대 신라 이두(사투리)임이 증명됐고 시인 홍윤기 박사의 일본 역사․문화의 연구를 통해 알려지게 됐습니다. 홍 박사도 그저 인용만 했을 뿐 이것이 ‘3․4․5․6조 민조시’와 같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죠. 내가 우연히 홍 박사의 논문을 읽다가 발견하고 무릎을 치면서 찾아낸 것입니다. 모든 것 다 표현할 수 있었던 우리의 3․4․5․6조 장단 가락을 이미 그옛날 日本에 가져가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년(2010. 12.) 겨울 한국 민조시인 협회가 창립됐고 현재 51명의 民調詩人이 登林했죠. 올 2011년 안에는 60여 명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부산에서는 자생 民調詩 동인 ‘숲길’이 생겨 동인지 제9집(2010. 11. 다솜 출판사.)까지 냈고 2002년 경엔 러시어 모스크버 대 조선어 학과에서 내 시집 ‘3․4․5․6조’가 러시어 러로 처음 번역돼 그곳 인 교수가 학생들에게 우리말 장단 가락 호흡을 民調詩로 가르치기도 하죠. 앞으로 3 40년 후엔 이민조시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지금 맹렬하게 民調詩를 쓰고 있습니다. 주로 童民調詩가 유행합니다. 얼마 안가 중국 전역에 크게 확산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곳 연변 아동 문학 단체에서 그룹으로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2011년 5월 현재 중국 교포 5명이 民調詩로 ‘自由文學’을 통해 登林했죠. 중국 교포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인 崔龍官 詩伯이 내게 직접 배워 제자들을 통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美國은 황경락 시인과 정요셉 시인 외 1명 들이 민조시를 쓰고 있습니다. 황 시인이 직접 미국 시인들 앞에서 정기적으로 民調詩 강좌를 합니다.

民調詩는 ’70년대 내가 개발해서 ’80년대 초에 ‘心象’ ‘詩文學’ ‘韓國文學’ ’90년대 중반엔 ‘月刊文學’ 들에 발표해 오다 홍윤기 교수 논문을 통해 이미 3국 시대부터 ‘3․4․5․6조’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처음엔 ‘3․4․5․6조’란 제목으로 발표해 오다가 ’90년 전후 ‘한국 일보 문화 센터’ 강의를 하다 흑판에 “앞으로는 3․4․5․6조 시를 ‘民調詩’로 명명하겠다.”고 써서 50여 명의 제자들 앞에 선포했죠. 정식으로 작품상 명명되기는 ’90년대 초입니다.

 

8.왜 民調詩는 ‘6’에서 끝맺음을 해야 하는가?

 

‘7’이라는 수리는 이미 ‘3․4조’에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실수와 허수의 기둥수 ‘5’와 ‘6’은 필수이고 ‘3’은 하나의 3재 사상 수리이며 1과 2는 ‘3’에 흡수됩니다. ‘3’다음 ‘4’는 ‘7’을 위해서 필요한 수리입니다. ‘6’이라는 숫자는 결국 끝 ‘결론’을 말합니다. 그래서 기본으로 ‘3․4․5․6’의 숫자가 필요한 것이고 이수리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고 또한 다 수용됩니다.

民調詩는 토씨․형용사․부사 한 자라도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 셈이죠. 18자로 시를 써야 하니까 훈련만 잘 되면 오히려 짧고굵은 시로 말많은 자유시보다 더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寸鐵殺人’이란 말이 있듯 民調詩는 자연 에센스 언어만 골라 사용하게 되죠. 설명․토씨․수식 같은 건 거의 없기에 수사하기 어렵다는 사람이 많지만 숙달된 시인들은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죠. 장단에 맞춰 거듭 주는 그런 추임새 형식으로 거듭 장단 추임새를 주는 수사 효과 방법도 씁니다.

長民調詩․연작 민조시를 쓰더라도 한 줄 혹은 두 줄 세 줄을 쓰더라도 3․4․5․6조 그구성에서 벗어나면 안됩니다. 거듭 장단 추임새를 잘 이용해서 훌륭한 長民調詩를 쓸 수 있고 또 뜻과 소리 글자인 우리의 언어 장단 가락을 넣어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이 民調詩입니다.

‘’사상과 우리 민족의 수리학인 3․4․5․6조를 기본으로 해서 형상한 것—춤도 언어라고 하잖아요? 우리나라 춤사위 장단․가락이 모두 3․4․5․6조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행히 내가 연극 영화과에 들어가 공부를 했기 때문에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 국문과에 들어가 문학만을 공부했다면 이러한 장단․가락은 영원히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연극과 시가 조상이 같다는 사실 때문에 演映科를 택했어요. 시인이 되기 위해서 그과를 택했는데 그게 옳았습니다. 몽타지 기법을 내 시에 도입해서 시를 썼는데 그시가 ‘조선 일보’ 신춘 문예 시부에 당선되어 登林하게 되었습니다.

연영과에서 새로운 이론 동서 고금의 고전을 접하게 되니까 우리 과에서 시인․희곡 작가․시나리오 작가 들이 줄줄이 태어나게 됐죠.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읽고 시인이 되기 위해 그과를 선택하게 됐는데 적중했어요. 내 시의 이론과 시법이 그런 영향을 받아서 정형시 民調詩까지 과감하게도 만들어 낼 수 있었지요.

남북 민족 문학인 협회를 구성할 때 북에도 가서 민조시집을 전해주며 시조가 없는 북에 民調詩라도 있어야 하지않겠느냐고 북측 대표 시인들께 간곡히 얘기해 놓았습니다.

내 친구 裵正雄 시인이 그의 잡지 ‘미주 시학’(2011. 봄. 제6호.)에서 안경라 시인을 시켜 편집자의 말로 ‘時調의 형제와도 같은 民調詩가 어여쁘게 사랑스럽게 자랑스럽게 퍼져나가길 소망’하면서 “그민조시가 세계 곳곳에 한국의 얼굴 한국의 정신으로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日本의 ‘하이쿠’처럼.”…이라고 했던 것과 같이 제발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세훈 시인 약력

․1941. 경북 의성 출생.
․1962. ‘조선 일보’ 신춘 문예 시부 당선.
․1964. 중앙대 연영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연영과 수료․
홍익대․명지대․중앙대 강사 역임.
한국 PEN 부회장(2회)․
한국 문인 협회 이사장(2회)
․한국 현대 시인 협회 이사장 역임.
현재․‘自由文學’ 및 도서 출판 天山 대표.
민족 문학인 협회 남측 부회장․
현대 시협 명예 이사장․
한국 民調詩協 회장․
사)상고사 학회 회장 직무 대행.
시집 ‘思美人曲’ ‘대장 부리바’ ‘남이 다 하고 난 질문’ 등 編譯著 27권.
수상․제3회 시문학상(1978)․제1회 한국 P.E.N.공로상(1994)․제8회 한국 자유시인상 본상(1994)․제10회 예총 예술 문화 대상(문학 부문․1996)․제14회 경기 문학 대상(1999)․‘자랑스런 중앙인상’(문화 예술 부문․중앙대 총동창회․2006) 등.

  

민문자 실버넷문화예술관장 munhak@silvernetnews.com

 

작성일시 : 2011-10-19 23:10

 

 

 



       
   No, 226
  2014/11/10(월)
 
취중


취중



누가 이 맘 알리
달빛에 아롱이는
내 쓰러진 술병을 흔들며
女神과의 싸움 한판.


       
   No, 225
  2014/11/10(월)
 
가을이 슬프다

 

 

 

 

가을이 슬프다


 
11월 11일,

내 그리워하는 것은
낙엽 지는 한적한 海印寺.

너를 품에 안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긴 가을을 슬퍼한다.

 

 



       
[1] ..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 [39]

ⓒ Copyright 1999~   TECHNOTE-TOP / TECHNOTE.INC,


| 상고사 | 게시판 | 자료실 | 천문해자 | Music Box | Photo | Poem

Copyrightⓒ 2005 BC.8937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