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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자천부경의 문제점과 과제  

갑골문자천부경의 문제점과 과제

이름
:  朴大鍾  (Homepage)작성일 : 2008-12-07 15:34:32  조회 : 2366 

오늘(2008. 12. 7.) 오전 국제뇌교육종합대와 관련된 한 분이 전화로 '갑골문천부경'에 대해 몇 가지 문의를 하였다. 약 30여분간의 통화 시, 그동안 세간에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항들에 대해 고백 겸 조언을 하였다.

통화가 끝난 후 생각에 잠겼다. 

이곳 hanja.co.kr 게시판에 2002. 8. 20. '궁구미'라는 아이디의 어떤 분이 "송준희 선생님의 사이트 설란에 흥미로운 자료가 올라왔습니다. 송호수 교수님께서 가지고계신 자료인 고려시대 농은 선생님의 유집에 수록된 천부경이 실렸습니다. 언어학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의 소감을 듣고 싶은데요?  저게 해독이 될런지..?"라고 글을 올렸는데, 나는 그 자료를 확인하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곧바로 논문 작업에 착수하였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한 가구를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게하고 많은 집을 파괴한 태풍 루사의 공포 속에서 무사히 2002년 9월 13일 1차 논문(이것이 인터넷에 많이 떠돌고 있고 여러 곳에서 교육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발행을 하여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2003년 6월 13일 몇 가지를 수정하여 2차 발행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 천학비재인 탓에 또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몇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2차발행 이후 현재까지 그 논문은 재차 수정보완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입소문을 통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소위 '갑골문 천부경'('은문천부경'이 정확한 표현이다)은 세간에 많이 퍼져나간 것 같다. 다른 논문들에서도 인용이 됐고 출전을 밝히고 인용을 한 몇 권의 관련 서적도 나온 것을 확인했다. 그 진위 논쟁은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나는 그동안 그러한 추세를 전화나 메일 등을 통해 듣거나 쭈욱 지켜봐왔고, 최근 지인 몇 분에게 은문천부경의 문제점과 꼭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과제들에 관하여 나의 견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한 문제점들은, 논문 발간 당시 은문천부경의 소장자인 민홍규 선생을 만나 관련자료를 직접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필자의 불철저로 생긴 것이다. 본의 아니게 그러한 불철저로 인해 일부 사람들에게 혼란을 야기했으니 그 점 필자로서는 책임을 통감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오늘 오전에 그 여성분과 통화 시에도 말했지만, 학문하는 이의 성향을 크게 둘로 나눌 때, 세상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연구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에 반해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면서 연구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어떤 이가 진리를 알게 된 순간 세상과는 멀어지고 심지어 세상사람들과 적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더라도 나는 후자이고 싶다. 왜냐하면 진리와 진실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불순한 세력들로부터 속임을 당하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머리말이 너무 길어 죄송하다. 2002년 논문을 통해 발표했던 은문천부경의 문제점과 향후 꼭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 자유롭게 말씀드리겠다. 얘기에 앞서 먼저 분명히 해둘 점은, 문제점과 과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은문천부경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께 정보를 공유하고 참고로 삼게 하기 위함이지, "그것은 위조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문장해독력이 짧은 분들은 앞으로 절대 "은문천부경 논문을 쓴 사람이 그것은 위조라고 했다"라고 곡해, 모함하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기 바란다.

1. 2002년 논문을 쓸 당시, 나는 은문천부경의 소유자인 민홍규 선생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전화로 약 두세시간을 통화했다. 민홍규 선생은 현재까지 소장자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싶어하는 분들과 만나는 것을 꺼려하시는 것 같다. 한 KBS기자가 전화를 했는데도 만남을 거절했다 한다. 오늘 전화하신 분의 말씀도 집까지 찾아가는 등 수개월 동안 만남을 시도했는데 민홍규 선생을 아직껏 만나지 못했다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필자 나름대로 추측은 할 지언정 정확히는 모른다. 은문천부경이 기록된 해당 종이에 대해, 일본의 한 기관에서 했다고 하는 감정서(연대측정으로 보인다)를 민홍규 선생이 하루속히 국내에 공개하였으면 한다. 여러가지 말못할 사연과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은 公人으로서 공개해야 할 시점이 다 된 것 같다. 공개를 하면 억측들이 사라지고 신뢰도가 제고되리라 본다. 물론 계속 공개하지 않으면, 억측은 더 난무하고 신뢰도는 떨어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2. 그것이 위작이라고 보는 많은 분들이, 그 증거로 '횡서'를 거론하였지만, 그것은 결코 유효타가 아니다. 은나라 당시에 횡서가 존재하였음은 다음 글에서 기히 밝힌 바와 같다.

http://www.hanja.com/rightname/bbs/view.php?id=rightpuri&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8

'횡서' 외에 거론된 해서체의 '天符經' 제목글씨는 민홍규 선생이 쓴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에 몇 번 밝힌 바 있는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오해 없기 바란다. 거기에 찍힌 도장들도 모두 민홍규 선생이 찍은 것이다. 자신의 것임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자신의 도장과 집안의 도장들을 찍었다 한다. 그 점에 대해선 2002년 통화 당시, 민홍규 선생으로부터 확인하였다.

3. 위작임을 주장하는 측에서 유효타를 날리려면 다음 사항을 지적했어야 한다. 즉, '一始無始一'과 '一終無終一'에 들어있는 '無'자에 치명적 결함이 존재한다. 그 無자가 은나라 때 쓴 자형과 동일한 모양임은 틀림없지만, 어법상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은나라 때, 그 無자는 舞(춤 무)자의 본자로 '기우제, 기우제의 춤' 또는 '方國名'의 뜻으로 쓰였음이 갑골문학계에 의해 밝혀졌다. 은나라 때의 '없다'는 無가 아닌 亡자로 쓰였음이 기히 밝혀진 학계의 정론인 바, 그러한 사실을 기준으로 할 때 소위 은문천부경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위작이라면, 1899년 갑골문이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난 이후 누군가가 중국에서 간행된 갑골문사전을 입수하여 '一始無始一'과 '一終無終一'의 無자에 대응하는 글자를 사전에서 찾아 옛날 종이 위에 써넣었는데, 불행하게도 은대 당시의 어법은 미처 생각치 못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위작이 아니고 진품이라면,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데, 그 사항은 일종의 '과제'인 셈이다. 그에 대해선 필자의 연구가 어느 정도 끝났음을 언급하면서(다음 기회에 밝히기로 한다) 다른 연구자들께서도 그 과제를 해결해보시기 바란다.

4. 은문천부경에 쓰인 숫자를 보면, 은나라 때 쓰였던 숫자들과 소위 '신시산목'이라 부르는 숫자들이 혼용되어 쓰였는데, 은문천부경의 진위 여하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진품으로 판명되면 3천여년 전 당시 동아시아에는 서로 전혀 다른 상형문자 체계가 존재했으며, 그러한 사실은 황하문명 외의 또다른 동북아 고대문명이 있었다는 강력한 증빙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위조라면, 그 여파가 신시산목을 기재한 환단고기까지 미칠 수 있다.

5. 농은유집에서 발견되었다는 말은 잘못이다. 송호수 선생께서 자신의 서적에 '농은유집'이라는 말을 최초 기재하여 필자 또한 무심코 따랐다가 후에 '농은유품'이라 수정하였는데, '농은유품'도 정확한 말이 아님을 밝힌다. 소장자인 민홍규 선생에 따르면, 자신이 어렸을 때 경남 산청의 친척들 집에 자주 갔으며, 고서가 많이 보관된 여러 친척집 중 한 곳에서 그 자료를 보고 신기하여, 당시 책이라면 지긋지긋하여 아궁이에 던져버렸던 할머니 눈을 피해 벽에 대고 그 위에 신문지를 발라 위장 보관했다고 하니, "농은 민안부 선생의 후손 어느 집안(산청에 있는)에서 발견된 古자료"가 정확한 표현이다. 농은 선생이 두문동에서 산청으로 피신한 이후 수백년이 흘렀으니, 그 자료가 농은 선생이 가지고 온 것인지 아니면 농은 선생의 후손들 중에 누가 입수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농은 선생 본인의 유품인지 아닌지, 아니면 농은 선생의 후손 중 누군가가 어느 시점에 어떠한 인연으로 해서 그 집에 소장하게 된 것인지 등은 현재의 소장자인 민홍규 선생과 산청 민씨집안에서 밝혀야 할 몫이다. (논문 당시, 민홍규 선생을 만날 수 없어 조사확인차 필자가 산청 민씨 집안 여러 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정말 고서들을 많이 보관하고 있었다.)

이상 몇 가지 문제점과 과제에 대해 두서 없이 기술하였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사항이 더 있는데 소소한 것들이며 큰 것들은 대략 기재한 것 같다. 천부경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분들의 참고가 되기를, 그리하여 오해와 착오가 없기를 바란다.

2008. 12. 7.

朴大鍾(hanja.co.kr, hanj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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