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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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은(農隱) 유집 천부경은 최치원을 앞설수 없다.(참고문헌)  
29.농은(農隱) 유집 천부경은 최치원을 앞설수 없다.(참고문헌)
유원컴 (yuwoncom)  06.08.08 00:57
 번

 

* 농은(農隱) 유집 천부경은 최치원 시대를 앞설수 없다.




천부경 - 사진자료 >

고려시대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와 더불어 
오은(五隱)중에 한사람인 농은(農隱)의 유집에서 발견된 천부경문

 

 

 

 

[ 대종교 총본사 소장「천부경」

개천4446(1989)년 이홍재 作, 가로×세로 1.5m ]


 

 

*** 이것에 대한 이론은 두가지가 있다.


1. 우선 하나는 이것이 환웅 시대에 있었던 천부경 원문 이라는 것이고

 

2. 다음은 환웅시대에 써진 갑골문 천부경을 농은(農隱)이 직접 모사해 썼으리라는 가정이다.


 

 

1. 이것이 환웅시대 갑골문 진본 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 이것을 환웅께서 즉접 하느님 (환인)으로 부터 받아가지고 온 천부경을 갑골 문자로 기록 한것으로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전혀 논리에 맞지않는 모르는소리 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우선 글을 써진 바닥이 닥나무 종이(韓紙)이다.

우리 나라에 처음 종이가 들어온것은 고구려 중옆때 중국으로 부터 이다.


세계에서 최초로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중국 후한 때의 채윤이며 기원후 105년의 일이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제지 기법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불교가 전래된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일로 추측되어 온다.


중국에서도 그 전에는 대나무를 쪼개어 역어 썻기 때문에 지금 책(冊)도 이와 같이 대나무를 역은 형상을 하고있다.


* .농은 유집 천부경의  제목인 (天符經) 이라는 글자는 옛 글자가 아니라 현대 한자 이고 원문이 갑골 문자로 써 있어도 직인(도장)은 도장 새길때 주로 쓰는 전자(篆자) 이다.

 

만약 환웅시대에 그런 한자가 있었겠는가? 
또 어떤 작품에 직인을 찍는 습관은 글자와 종이가 생긴 삼국시대 이후인데 환웅시대에 벌써 그런 도장을 찍었다는 것도 말이 않된다.


* .그러므로 이는 틀림없이 고려 말기 농은 민안부 친구등 서예가들이 최치원의 천부경 81자를 고대문으로 써서 소장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현대 서예가 들도 하고 있는 일이다.

 

* . 만약 이 글자나 종이가 고려말을 지나 천년 이상에 제작되었다면 지금 KBS에서 진행하고 있는 진품 명품의 감정을 한번 받기를 권한다.

 

그래서 만약 1200년 이상 최치원 시대를 뛰어 넘는다면 이는 우리 민족의 엄청난 문화재 이므로 그 보관등을 고려하여 개인이 소장할것이 아니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야 마땅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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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농은유집이 환웅시대의 갑골문을 모사 했다는 주자에 대하여..

 

* 우선 이 주장의 요점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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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은 1899년 중국대륙에서 최초로 발견됐지만 고대최고의 문자학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은 후한(後漢 A.D 25~ 220)의 허신(許愼)조차도 갑골문을 몰랐었다.


중국에서 갑골문을 본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것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중 청나라 말기인 광서 25년(1899)금석학자이자 국립대 총장인 왕의영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되었다.


그런데 고려말 충신인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의 유품에서 발견된 천부경문(天符經文)에서 은허 갑골문과 동일한 글자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일대 사건에 비유될만한 충격적인 일이다.


하나는 갑골문 하면 오직 중국대륙 내부에서만 발견되는 종래의 고정관념이 깨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으로부터 약 650년전의 인물인 민안부가 중국대륙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을 보고 천부경을 작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중국대륙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미해독된 갑골문자들이 농은유집 천부경에 다수 발견, 확인됐다는 점이다.


또한 "후조선기"에는

"기자(箕 子)가 부여의 법학지였던 왕수긍(王受兢)을 초빙해 박달나무에 은문(殷文)으로 삼일신고를 쓰게하여 그것을 읽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종래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일반적으로 기자는 은나라의 현인(賢人)으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빼앗자 B.C 1122년에 동쪽 조선으로 들어와 기자조선을 건국한 이로 알려져있는데 B.C 1122년이면 지금으로부터 3122년으로 은허 갑골문 시기와 일치한다.


이를 종합할 때

민안부의 "농은유집 천부경"은 기자의 초빙(招聘) 및 지시하에 왕수긍이 삼일신고와 함께 은문(은허갑골문)으로 쓴 진본을 후대에 일급 서예가(농은일 가능성이 많음)가 지금으로부터 최소 6백년전 이상의 옛날에 정밀모사한 모사본으로, 왕수긍이 쓴 당시 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기자 이전의 원본 천부경, 즉 단군 나아가 환웅시대의 천부경까지 고려 하면 천부경 자체는 그보다 훨씬 멀리까지 소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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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리는 좀 설득력이 있는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받아들여 지게 되면 최치원은 사기꾼이 되고 또 최치원이 단군전비(신지녹도전자)를 번역해서 다시 첩을 만들었다는 (更復作帖)여러 기록들은 모두 허위가 되어 페기 시켜야 되므로 신중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선 두 번째가 핵심 이므르로 우선 이것부터 분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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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650년전의 인물인 민안부가 중국대륙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을 보고 천부경을 작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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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의 반론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은 후한(後漢 A.D 25~ 220)의 허신(許愼)조차도 갑골문을 몰랐었다."  고 하는데 허신의 說文解字는 갑골문 뿐 아니라 그 전대의 글자, 즉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金文)의 해설까지 해 놓앗다.

설문해자는 문자의 성립과 원 뜻을 밝힌 중국 문자학의 기본 고전이다.

易 詩 書 禮 春秋의  五經으로서는 허숙종(허신의 호) 과 맛설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을 정도로 고전에 능통했던 허신이 글자를 한데모아 해석하고 음을 단것은 한학이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는 단초가 되니 지금도 고어 읽는 법은 설해문자를 근거로 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백과사전 이아(爾雅)역시 고대문을 자세히 해설하고 있는데

이 해설을 뒤에 학자들들이 엉터리로 뒤업고 있다.

여기에 대한 근거는 신지녹도전자 해독 1 번에서 하고있으니 참조 하실것  


 

* 글씨를 쓰는 분들은 예나 지금이나 옛 글자 하나라도 찾을려고 산천을 헤맨다.

그 예 하나가 지금 북한산 비봉에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 인데 이것은 비가 새겨진후 풍우에 마모되어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다가 추사 김정희가 옛글씨 찾아 전국을 헤매다가 북한산에 집신을 신고 올라가 탁본을 해와 이 비의 정체가 밝혀졌고  박태통령이 원비는 뽑아다가 국립 박물관에 보관하고 지금은 모사품만 세워 놓았다.


 

* 또 위 대종교 본산소장 천부경은 1989. 이홍재 작이라 하였다. 이는 농은집과 같은 글자도 있고 다른 글자도 있다.

이 갑골문은 아직 농은유집이 발견되기 전인데 어느것을 보고 썻을까?

분명한것은 위에서 말한 국립대 총장인 왕의영이 갑골문을 해독한것을 보고 썻건 다른것을 보고 썻건 또 왕의영이 해독한 갑골문에 천부경을 쓸 글자들이 다 들어있지 않았다면 자기가 갑골문 형식을 창안해서 쓸수도 있는것이다.

즉 서예 하는 사람들은 그런 글씨를 쓰고 싶어 한다.

 

 

 

이런 것들을 볼때 위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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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갑골문을 본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것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중 청나라 말기인 광서 25년(1899)금석학자이자 국립대 총장인 왕의영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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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은 속단할수 없다.

즉 농은이나 그 친구분들(이하는 농은등이라 표시)도 글씨를 연구 하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옛 글자가 있다는 소문만 들었다면 중국 까지도 헤맸을 것이고 만약 그때 갑골문을 발견 했다면 연구하지 않았을 리 없었을 것이다.

 

즉 농은등이 진본 갑골문 천부경을 모사 했다면 농은 당시에 농은등도 갑골문을 보았다는 증거 이고 진본 갑골문 천부경 이라는 것의 제목인 天符經은 갑골문이 아니라 보통 한자 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농은등이 써 넣은 것이고 그렇다면 농은등은 약 550년후의 왕의영이 해독을 해주지 않았더라도 갑골문을 해독 할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 갑골문은 꼭 지금 사학계에서 말하듯 누가 언제 연구해서 언제 발표했다 하여 그때서 부터 그것이 있었다거나 해독된것이 아니라 실은 개인들이 얼마던지 연구 하고 있었고 그 연구 결과가 소리없이 전래 되던것이 어떤 학자 즉 왕의영에 의해 발표 될수도 있다.


 

그러니까 갑골문은 농은등이 직접 중국에 가서 구해 볼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갑골문들이 고려로 흘러 들었을수도 있는데 그때 그 해독하는 방법까지 전해 들어왔을수가 있었을 것이고 혹 해독하는 방법은 흘러들어 오지 않았다 하더라고  글씨를 연구 하는사람은 그런 글씨일수록 더욱 해독하고 싶어 하니 농은등이 직접 해독해 볼수도 있다는 말이다.


 

* 글씨 쓰는분은 대개 고문자를 연구 하고 해독 한다.


그러므로 그 갑골문이 " 청나라 말기인 광서 25년(1899)금석학자이자 국립대 총장인 왕의영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되었다." 고 속단 할수가 없다는 말이다.


즉 왕의영만 그런 갑골문을 해독 할수 있는 학자이고 농은 이나 그 선대사람은 그런 글씨를 해독할 실력이 없을거라는 속단은 너무 위험하다.


 

* 또 다음 글에 대한 반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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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중국대륙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미해독된 갑골문자들이 농은유집 천부경에 다수 발견, 확인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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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농은등이 나름대로 갑골문을 연구 해독해 보았다면 당연히 아직까지 중국에서 발견되지 않은 갑골문자나 또는 미해독된 갑골문을 나름대로 해독해본 결과 라고도 생각된다.

 

이는 요즘 위 이홍재작 대종교 천부경을의 갑골문들도 아직 그 중국의 왕의영이 해독 하지 않았으니 미해독된 갑골문 이라고 할것인가?

 

그러므로 대락 650년전 농은등이 약 100 년전의 왕의영의 갑골문자 해독대로 해독해 가며 천부경을 썻을리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농은등은 중국에 이미 있었던 갑골문이 그들 나름대로 해독 되었다면 그대로 썻을 것인데 천부경을 쓸때 마땅한 갑골문이 없었다면....

갑골문을 이미 해독할줄 아는 농은등이 거기에 맞는 갑골문 몇자를 만들어 쓸수도 있고 이 농은등이 만들어쓴 갑골문들은 왕의영 들이 해독할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또하나는 농은등이 갑골문을 만들어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농은등이 그당시 발견했던 독특한 갑골문을 왕의영 등은 찾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이 농은 유집의 천부경은 농은 당시 글씨를 연구하던 선비들이 그 연구된 옛 글자를 가지고 최치원의 81자를 기록 했다고 보는것이 전후 사정 또는 신지녹도 문자 해독등으로 보면 당연 하다.

 

그러나 이 주장은 농은유집 천부경이 꼭 진본 갑골문자 천부경을 모사 한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못하므로 다음 반론을 보자.


(2) 환인 환웅  시절에는  갑골문이 있을수 없다.

 

*  하느님 시절에는 글자가 없었으니 갑골문이고 한자고 있을 수 없다.

인류 최초의 글자가 신지녹도문자 라는 것은 우리 기록에는 너무나 많이 나와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는 갑골문이 아니라 금문 이다.

이 금문들은 환웅과 단군 시대에 만들어 진것이니 이 금문으로 쓴 천부경이 혹 있다면 이는 믿을 만 하다. 

 

 

* 환인 하느님 께서 환웅에게 천부경을 말로만 내려 주실때 그 말씀을 신지녹도 문자 이외에 갑골문 천부경 81자로 로도 적었고 이것이 진본 갑골문자다 하는데 의 반론이다.

 

위에서 말했드시 농은유집의 천부경은 갑골문 이지만 그 제목은 천부경(天符經)은  갑골문이 아닌 한자 이다.

애초 3천여년전 말로만 전해지던 천부경을 갑골문으로 적은 사람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제목도 갑골문으로 적었어야 한다.

 

그러나 원 갑골문 천부경에는 제목이 없었던것을 농은등이 진본 갑골문 천부경을 모사 하면서 당시 쓰는 한자로 天符經이라고 제목을 써 넣었다면 앞뒤가 맞질 않는다.

 

만약 갑골문 천부경이 3 천여년 전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목이 없었기 때문에 농은등이 갑골문이  뭔지를 몰랐다면 천부경이 뭔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위에서 100 년전 왕영영이 갑골문자를 해독한 다음에야 갑골문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650년전의 농은등은 그것이 천부경 인줄을 알리가 없었을 터이니 천부경 이라고 그 제목을 써 넣을수 없었다는 이야기 이다.   

 

천부경 소리는 신지녹도문자를 해독해본 최치원 이 처음 이었다.

즉 최치원 전에는 신지녹도문자건 갑골문 이건 천부경 소리가 없었다는 이야기 이다.

 

그렇다면 농은등이 그것이 천부경 인줄 알고 天符經 이라고 제목을 써 넣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는 이미 최치원의 81자를 읽고 난 다음일 것이고 그렇다면 최치원의 81자에 마추어 옛글자를 공부하는 서예가로써는 고서 즉 갑골문으로 한번 써 본것에 불과 하다고 볼수 있다.      

 

***  최치원이  단군전비(신지녹도문)를 보고 이를 번역 하고 다시 첩(帖)을 만들었다는 (更復作帖)기록은 너무나 많다. 

만약 최치원이 이 단군비를 번역하여 천부경을 만들지 않았다면...또는 위 갑골문자를 번역하여 그대로 천부경을 썼다면 최치워은 사기꾼이 되고 지금까의 모든 기록은 허위가 되므로 모두 버려야 하는 위험한 사항이 된다.

그러면 다음 기록들을 보면서 이 기록들을 모두 허위라고 할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 천부경은 천제 환국 에서 말로만 전해지던 글인데 환웅 대 성존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뒤 신지(神誌)벼슬을 하는 혁덕(赫德) 에게 명하여 녹도(鹿圖)문자로 기록케 하셨고 최고운 치원(崔孤雲致遠)은 이 신지의 전자(篆字)를 옛 비석에서 보고 번역 한다음 다시 첩으로 복원하여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소도경전 본훈)

(-天符經天帝桓國口傳之書也桓雄大聖尊天降後命神誌赫德以鹿圖文記之崔孤雲致遠亦嘗見神誌篆古碑更復作帖而傳於世者 - 蘇塗經典本訓)

 

** 최치원에 대한 기록이다.

* 단전요의 - 태백산에 단군전비(檀君篆碑1.)가 있는데 글 뜻이 어려워 읽기가 힘드나 고운이 번역했다. 그 글에 가로되

(檀典要義 - 太白山有檀君篆碑佶倔難讀孤雲譯之其文曰...)

 

* 약 백 이십년전 계연수가 애초 최치원의 81자를 태백산에서 발견, 탁본해서 단군교당 에 올린 글 중에

"...태백산에 들어갔는데 길도 없고 인적도 끊어진 어떤 골짜기 너부적한 석벽에 옛날에 조각한 글씨 같은 것이 있는지라 손으로 더듬어 이끼를 벗기고나니 글자가 분명한데 이것이 과연 실령스런 천부경 이라 두눈이 홀연히 밝아져 얻드려 절하고 공경하여 읽어보니 한편은 단군 천제의 보물 경전이라 기쁘기 그지없고 한편은 고운 선생의 신기한 발자취라 기쁘기 그지 없었읍니다. .."
(...入太白山信步窮源行到人跡不到之處潤上石壁若有古刻手掃苔蘇字劃分明果是天符神經雙眼忽明拜跪敬讀一以喜檀君天祖之寶經一以喜孤雲先生之奇跡
...)

 

*  노주 김영의의 천부경 주해 서문. (1887년)


단군의 천부경 신지의 전자(篆字)를 옛 비문에서 발견하고 최창후 고운은 그 글자를 풀어 태백산에 새겼는데 지금 그 글을 더듬어 보니 간소하고 오묘하며 요약되되 정확하여 복희씨의 큰 주역의 이치와 더불어 모호한 것이 아닌게 아니나 개연히 깊이 생각해서 자세히 주해를 하려는 것이 그 뜻의 발로이다.

 

(天符經 註解  蘆洲 金永毅

檀君天符經神誌篆見於古碑文崔文昌候孤雲解其字刻于太白山今按其文簡而奧要而正與伏羲大易之理莫不 ‘月+勿밑에口?’ 合而煙晦深用慨然詳加註解以發其意 )


 

* 다음 글의 반론이다.

.........................................................................................................................

" 또한 "후조선기"에는

‘기자(箕 子)가 부여의 법학지였던 왕수긍(王受兢)을 초빙해 박달나무에 은문(殷文)으로 삼일신고를 쓰게하여 그것을 읽었다’라고 기록이 있다.

 

종래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일반적으로 기자는 은나라의 현인(賢人)으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빼앗자 B.C 1122년에 동쪽 조선으로 들어와 기자조선을 건국한 이로 알려져있는데 B.C 1122년이면 지금으로부터 3122년으로 은허 갑골문 시기와 일치한다.


이를 종합할 때

민안부의 "농은유집 천부경"은 기자의 초빙(招聘) 및 지시하에 왕수긍이 삼일신고와 함께 은문(은허갑골문)으로 쓴 진본을 후대에 일급 서예가(농은일 가능성이 많음)가 지금으로부터 최소 6백년전 이상의 옛날에 정밀모사한 모사본으로, 왕수긍이 쓴 당시 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 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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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에 대한 반론

삼일신고는 발해때 대야발이 썼다 하는데 여기서는 기자조선때 왕수긍이 썻다 한다.

그러나 누가 썻건 이 삼일신고는 3천여년 전에 썻다 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 현대적이고  과학적 이다.


예를 들면 제 4장 세계(世界)에서

"...너희 땅이 스스로 큰듯하나 한 둥그런 세계 니라. 땅속 불이 울리어서 바다가 변하여 육지로 되었고...(...爾地自大一丸世界中火震湯海幻陸遷...)


지구가 둥글고 그 속에 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인류가 안것이 얼마나 되는가?

물론 이 글들을 쓴 대야발이나 왕수긍 같은이는 신인이라고 하고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문장이 고대문이 아니라 현대 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조선말 일제초 대종교의 1대 종사이신 태백 대종사께서 토굴속에서 어떤 영감을 얻고 써진 기록으로 보여지는데 발해때 대야발 썻건 기자 조선때 왕수긍이 썼건 또는 또는 조선말 태백대종사 께서 쓰셨건 하느님이 직접 전한 글이라고는 볼수 없으나 그래도 높은 곳으로 부터의 영감으로 얻어진 글인것만은 분명 하다. 

 

*** 이상 농은 유집은 약 1200년 전의 최치원 보다 년대가 앞서는 약 3천년 전의 왕수긍이나 그 이전 사람이 갑골문자로 쓴것을 농은등이 모사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근거가 약하고 그간 최치원이 천부경을 썻다는 기록이 허위가 되므로 오히려 농은등이 최치원의 천부경을 보고 갑골문자로 한번 써본것 이라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천부경에 대하여 좀더 연구하고 싶으신 분은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http://cafe.daum.net/chunbuinnet계시판 하나둘 셋 ...열 속의 엄청난 비밀. 신지녹도문자천부경해독)을 보시라.

천부경에 관하여 모든 정보가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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