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n Roll History    

이름: Honeyguitar
2011/2/18(금)
이중산 [기타리스트의 전설] 2  

 

 기타리스트 이중산 & J.Honey-허니기타-  Guitar Friends 
2011/01/24 04:23

 http://blog.naver.com/honeyguitar/60122594569


 


 K_002.jpg

기타의 신, 전설의 기타리스트 이중산. "2011 J.Honey with Guitar Friends" 행사에

이중산 선생님이 참석해 주셨다.

다시한번 블로그를 통해 진심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 막 기타를 배우는분도 참석하셨고..음악을 배우는 학생도 자리를 같이했다..

대부분이 "기타(Guitar)"라는 공통점을 가슴에 안고 있기에 처음 보는 만남도 어색하지 않았고

금방 따뜻한 대화와 웃음으로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이중산 선생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타 이야기가 전부겠지 했는데..선생님의 가슴속 생각도 살짝 전해들었다..

정말 "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_004.jpg

 

 

선생님의 기타연주에 놀라고 기타, 이펙터의 하드웨어 전문적 지식에 감탄을 했다..

나름 주위 사람들에게 하드웨어를 강의하고 사는데..선생님께 많은것을 배웠다..

 

"정확한 톤은 각자가 좋아하는 톤이고 그 톤을 만들고 연주를 하는게 연주다."

라고 하셨다..

 

이펙터 셋팅은 정말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시는것 같았다..

 

K_003.jpg

 

OD-1을 선물해드렸는데...무척 맘에 들어 하셨다..다행이다...휴~~~~~

 

K_001.jpg

 

우리 부부가 선생님을 납치한 분위기다..^^

마눌도 선생님 연주에 감탄에 감탄을 했다..

즉흥곡이었는데...마눌이 너무 놀랐나보다...

 

K_005.jpg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먼저 먹는다...ㅋㅋㅋ

아침식사....콩나물 해장국...정말 맛있었다..근데 아침 시간이었다..

분명 아침시간 이었다....그 시간에 선생님이 깨어 계셨다....이것도 전설이 될꺼다....^^

 

------

 

오늘 일요일 오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 선생님 후배들을 위해서..기타 저변 확대를 위해서 강의를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선생님도 하시면 어떨까 생각 했습니다. "

 

"내가 이제 기본을 익혔는데 무슨 남을 가르친다고 하나..."

 

".........................."

 

 

 

 

선생님의 즉흥 연주곡이다..

이런 명곡이 왜 음반으로 없는걸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명연주곡이 왜 음반이 없냐고 묻는 아내의 말에 뭐라 할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음반으로 꼭!!!! 나오길......꼭!! 꼭!!!

선생님이 영상 올리는거 싫어 하시는거 알면서도 너무 멋진곡이기에 올린다..

디지게 맞아 죽어도 이런 명곡은 혼자 듣기 아깝다..

캠코더가 아닌 디카 동영상이라서 사운드가 좀 아쉽다..

반주는 기타산 형님이 간결하고 멋지게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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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Honey -

 

이중산 [기타리스트의 전설] 2

 

글 / 제노 in http://blog.naver.com/genostory 2010.04.02

2007년 구로문화축제 준비로 기타리스트 이중산씨를 만나 뵌 적이 있다. 그는 기타리스트의 전설,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라 불리우는 그는 전성기 시절(1970~90)부터 일체 언론에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다. 때문에 '내가 왕년에 기타 좀 쳐봤다' 하는 사람아닌이상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른다.(사실 필자도 직접 만나기 전 까지는 잘 알지 못하였다)

 

공연 리허설 현장에서도 그의 포스는 남달랐다. 음향 체크며 기본 곡(2~3곡)리허설에 걸린시간만 약 3시간(새벽 2시를 바라보는 시각에 끝난 리허설 - 새벽이 아니었더라면 더 오래했을지도 모른다)

 

07년 9월14일. 구로문화축제가 무르익을 즈음 그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환상적인 테크닉 기타리스트의 전설이란 칭호가 무색할 만큼 그의 실력은 대단했다. 쉽게 듣고, 볼 수 없는 그의 공연.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게 어른거린다.

 

글 / 조성진 in changgo.com

 

 오랫동안 음악계에 몸담으면서 국내외의 많은 뮤지션들과 접촉을 가져왔다. 처음엔 취재차 만나다가 서로 통하는게 있으면 곧 친분으로 이어져 우정을 지속하기도 했다. 나이 지긋한 선배에서부터 동년배, 그리고 어린 후배들에 이르기까지 연령을 초월해 관계를 해오고 있는데, 그중엔 나와 각별한 우정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우정도 우정이지만 뮤지션으로서의 개인적 능력이 뛰어남에도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하향곡선을 긋는, 정말로 너무 아쉬운 사람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이중산이 있다.


 386 세대나 또는 그 이상의 연령대라면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서 중ㆍ후반까지 그는 이태원을 비롯한 일련의 클럽 무대에서 실로 살인적이며 압도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그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만큼 강렬한 인상의 명연이었던 것이다.


 그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이펙트에서 서스테인이 창출되는 일반적인 기타리스트들의 연주와는 달리 손에서 서스테인이 마구 나오는 듯하고 도발적이며 야수적, 충동적인 광기로 얼룩진 고감도의 락에너지가 쉬지 않고 분출되었다. 이런 류의 소름끼치는 ‘매그네틱 필드’는 게리 무어나 로이 부캐넌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국내 대다수의 기타리스트들로부터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다. 일단 국내에서 날고 긴다는 기타리스트들도 그가 ‘뜨면’ 그앞에서 기타를 잡지 않으려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중산은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고 음악과 기타에 정진하기 위해 산으로 가 ‘고행’을 하고 ‘도’를 쌓거나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그에 대한 신비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모 잡지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기타 연주에도 정진하던 90년경 낙원상가에 들렀다가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중산이형, 여긴 왠일이세요?”라고 하자 그는 “잠깐 도를 닦다가 내려온거야.”라고 했다. 그를 대학로의 내 하숙집으로 데려와 함께 기타를 치며 그동안 그의 스타일이 어떻게 변했나 관찰했다. 이중산은 내 크래머 기타를 치며 예전 스타일과는 전혀 달리 하모닉마이너와 디미니쉬 등 클래시컬한 어프로치를 많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숙집이라 시끄러울 것 같아 앰프를 켜지 않고 그냥 일렉트릭 기타만을 쳤던 것인데도 프레이즈할때마다 서스테인이 나왔다. 왼손 핑거링의 그 강렬한 힘이나 필은 전혀 퇴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92년까지 그와 자주 만나며 기타와 음악적으로 많은 교류를 했다. 그 와중에 S 레코드와 솔로앨범 계약을 체결하고 곡의 대다수를 완성했지만 결국 솔로앨범은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몇차례 앨범 계약이 되는가 싶었으나 역시 최종적으론 성사되지 않았다. 앨범과는 인연이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결국 ‘불세출’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한국이 낳은 이 슈퍼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음반으로 기록해놓지 않아 후대에게 알리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자신의 전성기를 너무 의미없이 보내버리고만 대표적인 케이스로 이중산을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잘 나가던 80년대만 해도 그렇다. 감동적인 명연을 보여주고도 일체의 인터뷰를 사양하고 잠적하는 등 그 어떤 언론 플레이도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에 따른 신비감 상승으로 그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로 가입하기도 했지만 워낙 캐릭터가 강한 나머지 밴드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금새 탈퇴해버렸다.


 93년경에 다시 그를 만났다. 그런데 기타 플레이가 예전보다는 다소 순해졌고 왠지 모르게 어깨나 손가락, 스냅 등이 무거워보였다. 이후 90년대 중반경 신촌에서 우연히 술을 마시다가 다시 만났다. 그런데 이미 그때 그의 연주는 적지않은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구사하는 프레이즈도 너무 뻔했고 예전의 강렬한 파워나 용솟음치는 필 등은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의 그는 컴퓨터로 음악을 ‘찍는’ 쪽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실제 기타 플레이에 조금은 소홀했던 셈이다. 이미 이때부터 음악하는 후배들을 만나 이중산 이야기를 하면 “그분이 누구냐?”고 물어올 정도로 그는 잊혀져 가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한국 기타사를 돌이켜볼때 이중산 만큼 엄청난 카리스마와 폭발적인 연주력을 지닌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전성기때의 그의 기량은 세계의 그 어떤 슈퍼 기타리스트들과도 필적할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솔로앨범 하나 내지 못했고 이렇다할 눈에 띄는 활동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알만한 사람만 아는, 소수 매니아들 사이에서의 ‘전설’로만 기억되는!
이와같은 일련의 이유들 때문에 내 개인적으로 이중산이 너무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뮤지션이나 정치인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에겐 각자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때를 놓치면 다시 ‘비상’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재기가 쉽지 않다. 이중산의 경우 음악적으론 국내 기타계에서 ‘지존’과도 같은 평가를 받던 자신의 전성기가 있었음에도 그 때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그가 도약하길 기대해본다. 우리 음악계가 이 슈퍼 기타리스트의 음반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효과가 클 수 있다. 이 대가의 독집 발매는 한국 기타사의 필연이자 숙제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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