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67
2011/11/8(화)
이순신 없었으면 백인들의 세계지배는 없었습니다.  
이순신 없었으면 백인들의 세계지배는 없었습니다.
      등록정보   [ 분류 : 자유 | 작성자 : 폴권 | 등록일 : 2005년 09월 22일 | 조회 : 484 | 추천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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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현재의 흰둥이 세상을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서,

한국은 이순신 때문에 모든 황인종에게 죄송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일제 36년도, 남양에 끌려간 징용병이나 정신대원들도, 다 이순신이 저지른 엄청난 업보를 갚기 위해서 희생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세르비아에서는 1차대전을 일으킨 프린치프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기념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프린치프의 동료 중 한 사람은 티토 정권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나, 프린치프를 알았다는 말은 은퇴한 후에야 했다고 합니다.

세르비아 문화에서 '영웅'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납니다. 하지만 프린치프는 그 영웅의 반열에 끼지 못하고 있고, 거의 잊혀진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유고슬라비아,즉 세르비아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찢기고 폭격당한 것은 다 프린치프의 업보를 갚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고 나면 이순신, 안중근도 잊혀지게 될 것이고, 그것이 옳은 것입니디. (사실 이순신은 일제시대 이전에는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이순신을 재조명한 사람이 바로 '이광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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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토요토미 히데요시'란 책 중에서..

히데요시는 중국, 인도를 아우르는 동양 대제국을 이룩하고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에게 미치광이의 구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삼국의 역사전문가들은 당시 히데요시는 동양대제국을 이룩할 수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때 명나라는 제국말기에 들어서 저절로 무너지고 있었고 조선은 문약(文弱)의 나라였는데 일본은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에는 정예군 삼십만 명이 있었는데 명나라에는 문서상으로는 팔십만 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십만 명, 조선에는 겨우 수천 명의 정예군이 있었다. 당시 명과 조선은 일본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단지, 조선의 한 인물에 의해서 히데요시의 대륙정복 야망이 꺾였을 뿐이다.

히데요시는 칭기즈칸 같은 인물로 행운이 따랐다면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었다고 필자는 본다.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히데요시는 어렵지 않게 조명(朝明)을 점령하고 동양 대제국을 이룩할 수가 있었다. 그는 그 다음에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였다. 필자는 그것이 분명히 가능했다고 본다.

호전적인 야만국의 문명국 정복 역사는 반복되었다. 문명국 유럽은 호전적인 야만국 일본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때 유럽은 근대문명이 일어나 그 이전 시대와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유럽문명은 취약하기만 하였다. 유럽의 작은 나라 군대가 동양의 큰 나라의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화력을 갖추게 된 것은 십팔 세기 후반에 근대유럽문명이 만개하여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의 일이다. 그 이전의 유럽 각 국은 동양 대국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기실, 십구 세기 전반 유럽군대가 근대적 화력을 갖추게 된 시대에도 유럽을 통일한 나폴레옹은 ‘잠자는 사자’라고 하면서 중국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랬는데 십육 세기 분열된 유럽 각 국이 어찌 동양의 대국의 상대가 될 수가 있었겠는가.

히데요시 시대 때 유럽은 ‘대항해 시대’라고 하지만 근대문명은 아직 유아기였다. 십칠 세기에 들어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해 장사꾼의 나라 네덜란드가 유럽의 주도적인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일본은 벌써 서양문명이 들어와 있었다. 해양으로 뻗어나가 십칠 세기 초에는 동남아시아, 인도뿐만 아니라 멕시코에까지 이르렀다. 히데요시의 세계 정복 야심은 불현듯 어느 날 떠오른, 허황한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는 조총이 유럽에서 발명되어 맹위를 떨치던 시대였다. 일본은 벌써 수입된 조총을 유럽수준을 능가하게 개량하여 세계 최고 성능의 제품을 생산하는 무기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유럽 각국은 일본 조총 수입에 경쟁적이었고, 일본 조총으로 무장하지 않은 군대는 무장한 군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조선과 명을 점령한 히데요시의 대군이 유럽으로 진격했다면 유럽은 초토화되고 말았다는 것이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그때가 동양이 서양을 정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십삼 세기에 가까스로 싹튼 서방의 고도문명은 칭기즈칸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파괴되었다. 그때 서방에서는 아라비아계 동쪽 국가가 그리스 문명을 이어서 발전시켜 고도문명(근대문명)을 싹틔우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채 발아되기도 전에 칭기즈칸 군의 말발굽 아래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그래서 고도문명의 새싹은 수백 년이 늦어져서 다른 지역(유럽)에서 돋아나게 된 것이다. 십육 세기 유럽은 아라비아 문명을 이어받아 발전시켜서, 근대문명의 싹이 돋아나 자라고 있는 상태였다. 조선과 명을 정복한 히데요시 군의 전력은 칭기즈칸 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히데요시군에 의해서 모처럼 돋아나 자라던 근대문명 새싹은 무참히 짓밟혀져서 세계문명의 역사는 다시 수백 년 후퇴하게 되고 말았을 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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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순신이 없었다면 서양의 인도점령과 동양수탈도 없었을 것이고,

세계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이순신이 민족의 성웅인 줄 알앗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는, 이순신, 안도마 (유승준을 스티브 유라고 하듯 안응칠을 안도마라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등을 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순신은 별로 고마와하지도 않는 선조 이연과 여러 왕실 신료들을 위해, 그리고 미개한 애신각라노아합적을 위해, 그리고 백인들을 위해 싸운 것이지, 아시아 인구의 대부분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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