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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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겠습니다. - 좌원 전투  
다시 쓰겠습니다. - 좌원 전투
      등록정보   [ 분류 : 자유 | 작성자 : 폴권 | 등록일 : 2004년 02월 05일 | 조회 : 297 | 추천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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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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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좌원 전투만큼 결정적이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도 드뭅니다.

살수대첩이나 한산도 대첩은 결국 대국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좌원 전투는, 동한 왕조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400년간 혼란에 몰아넣은,

역사상 그 유례가 드문 대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명림답부 열전에 나오는 몇 줄이 전부입니다.

삼국사기 (아마 이병도역으로 보여지지만)에 나오는 명림답부에 대한 기록은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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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림답부(明臨答夫)는 고구려 사람이다.

신대왕 때에 국상이 되었다.

한(漢)의 현도군 태수 경림(耿臨)이 대군을 일으켜 우리를 침공하려 하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싸우는 것과 지키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은가를 물었다. 중론이 이러하였다.

“한나라 군사[漢兵]는 수가 많은 것을 믿고 우리 편을 가벼이 여기니,

만일 나가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겁을 낸다고 하여 저들이 자주 내침할 것입니다.

또 우리 나라는 산이 험하고 길이 좁으니, 이는 이른 바 한 사람이 관(關)을 지키면 만부(萬夫)로도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나라 군사가 비록 많다 하더라도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군사를 출동시켜 방어하기를 청합니다.”

[명림]답부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漢)은 국토가 크고 인민이 많은 데다가 지금 굳센 군대가 멀리 와서 싸우니, 그 칼날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또 군사가 많은 경우에는 마땅히 싸워야 하고 군사가 적은 경우에는 지켜야 하는 것이 병가(兵家)의 상식입니다.

지금 한인(漢人)들은 천 리 밖에서 군량을 실어 왔으므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참호를 깊이 파고 성루를 높이 쌓으며, 들판의 농작물을 치우고 기다리면 저들은 반드시 만 일개 월이 지나지 않아 굶주리고 피곤해서 돌아갈 것이니,

그때 우리가 날랜 군사로써 몰아치면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왕이 그렇게 여겨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니,

한인(漢人)들이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군사들이 굶주리므로 이끌고 돌아갔다.

[명림]답부가 기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추격하여 좌원(坐原)에서 싸우니,

한군(漢軍)이 대패하여 한 필의 말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명림]답부에게 좌원과 질산(質山)을 주어 식읍을 삼게 하였다.

[신대왕] 15년(179) 가을 9월에 죽으니 나이 113세였다.

왕이 친히 빈소에 가서 애통해하고, 7일간 조회를 파하였으며, 예를 갖추어 질산(質山)에 장사지내고 수묘인(守墓人) 20가(家)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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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림답부는 포악한 차대왕 수성을 폐하고 새 왕 신대왕을 세운 인물로, 쿠데타 당시의 나이는 이미 99세였습니다.

당연히 신대왕 때 국가의 최고 실권자는 명림답부 (답부는 이름이고, 명림은 칭호임) 일 수밖에 없었지요.

당시 동한 제국은, 167년 제위에 오른 영제의 치세였으나,

청류파 관료들과 환관들의 싸움이 격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68년, 대장군인 외척 두무와, 태부 진번 등이 환관들과의 싸움에 패하여 처형되고, 정권은 환관 조절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조절과 그를 따르던 환관들의 거두 10명을 가리켜 유명한 '십상시'라고 합니다.

이 때 적지 않은 관료들이 살해되었고, 그 자리는 환관들과 그들의 도당으로 채워졌습니다.

경림도 이 와중에서 자리를 챙긴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정권을 장악한 십상시들은, 청류파 관료들을 거의 다 처단하고 난 후라,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경림은 신대왕 2년(168년)에 한번 고구려에 승리를 거둔 적도 있었으므로,

총사로 삼기에 적당했다고 판단되었던 듯 합니다.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조절의 명으로, 경림은 십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갔습니다.

전설에는 백만이라고도 하지만, 아뭏든 그 정도로 대단히 많은 군대였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경림이 현도군 태수였다고 했으나, 실제로 일개 태수의 마음대로 대군을 일으킨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이상,

현도군 태수는 낮춰 부른 호칭인 듯하고 실제 직위는 그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림은 빨리 공을 세워 십상시의 두목 조절에게 보고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무지막지하게 쳐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중론을 무시하고 수비책을 선택한 명림답부에게도 정보망은 있었습니다.

이번 고구려 원정은 환관당에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므로, 적의 예봉만 꺾으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구전을 벌인 지 한 달 후, 과연 준비 없이 쳐들어온 경림의 대군은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하는 수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이 틈을 타 명림답부는 기병 불과 수천으로, 한군의 퇴로에 있던 좌원으로 가 퇴로를 막았습니다.

좌원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명림답부가 좌원을 식읍으로 받았다는 점으로 볼 때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의 최고 권신이고 출장입상한 명림답부가 쓰레기 땅을 식읍으로 택할 리는 없었으니까요.

이미 사기가 떨어져 있던 한군은, 명림답부의 기습으로 완전히 붕괴했으며,

경림 이하 한군 10여만명이 한 명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고 모두 살육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실이,

후한서나 삼국지(정사)에는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춘추필법의 힘입니다.

한 세대 후인 208년에도, 조조가 적벽에서 대패하여 전군을 잃고 나서도 정사 '삼국지' 에는 불과 몇 줄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경림은 정사에서 아예 이름이 지워져 버렸고, 후한서 영제본기에도 이 대원정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삼국사기 명림답부열전에 남은 기록만이 전해질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좌원 전투의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닙니다.

좌원의 대패는 당시 그렇지 않아도 개판이 되어 가던 동한 조정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습니다.

우선 요동(지금의 요동과는 다름)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공손탁이라는 토착 호족이, 요동태수를 칭하고, 사실상 독립했습니다.

(이 독립왕국은 이후 235년 공손연 때까지 거의 60년간 지속됨)

그 뿐만 아니라, 정통성이라곤 없는 환관정권을 지켜줄 수 있던 군사력이 궤멸됨으로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황건적의 난은 이들 반란 중 제일 큰 것이었을 따름입니다.

황건란에서 동한 정부군이 고전하고 패배를 거듭한 이유는, 주력군이 좌원에서 거의 전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만든 군대가, 오랫동안 키운 주력군과 같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황건란은 주모자 장각이 도중에 죽는 바람에 어영부영 끝났으나, 정부군은 이긴 것이 아니었고,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89년, 명색이 대장군이라던 하진은 1만여 환관들을 칠 군대가 없어서,

서량 군벌인 동탁을 불러 들이게 되었고,

이 때부터 삼국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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