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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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이스트님께 - 성과 씨의 차이점 (퍼옴)  
타오이스트님께 - 성과 씨의 차이점 (퍼옴)
      등록정보   [ 분류 : 자유 | 작성자 : 폴권 | 등록일 : 2003년 12월 23일 | 조회 : 179 |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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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inesetea.co.kr/pds/night/night08.htm

에서..

------------諸葛亮(孔明은 그의 字)의 성은 원래 갈씨였다.

중국 역사책 『吳志, 諸葛瑾傳』에 주해를 단 『吳書』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諸葛瑾(제갈공명의 형님)의 성은 본래 葛씨로 본래 琅邪의 諸縣사람이었다. 훗날 陽都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에는 원래 갈씨들이 살고 있었다. 그때 양도사람들은 새로 이사온 제갈근의 가족들과 원래의 갈씨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제현에서 온 갈씨라는 의미로 아예 성을 제갈이라고 붙여버렸다. 그로부터 제갈근의 후손들도 제갈을 자신들의 성으로 삼아 내려왔던 것이다.

『吳志, 諸葛瑾傳』의 또 다른 주해서 『風俗通』에는 "葛瀛은 유명한 진섭(陳涉)장군의 부장으로 많은 공을 세웠으나 모함으로 처형되었다. 훗날 한문제때에 그의 후손을 諸縣지방을 다스리는 諸縣侯로 책봉하였는데 제갈근은 바로 갈영의 후손이다" 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갈씨의 족보인 『남양제갈씨 세보』를 찾아보아도 제갈씨는 중국 낭야 갈백(葛伯)의 후손이라고 분명히 쓰여 있다.

"성" 따로 "씨"따로

중국은 오랜 옛날 "성(姓)"따로 "씨(氏)"따로 있었다. 그보다 오랜 까마득한 태고적 중국은 모계사회였는데 "씨"는 없고 "성"만 있었다.

"묻지마, 너의 아빠가 누군가를"의 모계사회는 자녀에 따라 어머니가 같지만 아버지는 각기 다른 일처 다부제 사회이었기 때문이었다. 모계사회의 후반기에 남성의 권력이 조금씩 커감에 따라 "씨"가 "성"의 옆구리 갈비뼈 한쪽을 차고 나왔다. 그때가지만 해도 아직 "성"은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신성한 것으로 같은 "성"끼리는 절대로 결혼할 수 없었으나 같은 "씨"끼리는 결혼 할 수 있었다.

씨족사회를 거쳐 부족국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남성의 지위와 권한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씨"는 귀족가문의 남자들의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의 일종이 되었다. "성"은 일반적인 것으로 "씨"는 특수한 것으로 되었다.

춘추시대로 접어들자 귀족남자는 "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씨"만 말하면 즉각 "성"이 무엇인가를 구별할 수 있거니와 "성"이 오랜 옛날 그의 조상이 누군가는 알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씨"는 현재 신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춘추시대의 "씨"는 사회환경과 개인 신분의 변화에 따라 할아버지 대와 아버지 대와 본인대의 "씨" 가 제각기인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전국시대에 이르자 상하귀천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는 중국사회의 대변혁이 발생하였다. 구 귀족의 몰락이 개시되자 귀족신분을 표시해주는 "씨"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고 그간 별 볼일 없었던 "성"이 다시 각광을 받더니 "성"과 "씨"가 서로 뒤섞이기 시작하였다.

진 한 대에 이르러서는 "씨"는 "성"으로 "성"은 "씨"로 상호 완전 흡수통합 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내려오고 있다.

진 한 이전시대의 귀족은 "성"도 있고 "씨"도 있듯 "명(名)"도 "자(字)"도 있었다. 한 고조 유방이 "명"만 있지 "자"가 없었던 이유는 그가 원래 향의 정장(요즘 동의 통장정도)의 평민출신이었기에 그렇다.

강태공을 차라리 중국 낚시 황제라 하자

(중략)
역사상의 강태공은 위수에서 비늘 없는 낚시를 이용하여 때를 기다리다가 기원전 1080년 무렵 주나라 무왕이 된 서백(西伯)을 만난다.

강태공은 무왕의 아들인 무왕을 도와 기원전 1066년에 은(殷)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최대공신이자 재상이다. 앞서의 제갈공명이 실패한 강태공이라면 강태공은 성공한 "제갈공명"이었다.

이야기책에 강태공이 우리 나라 역사로 따지면 단군 조선시대 때의 하도 오래된 옛날 인물이기도 하여 역사와 신화를 버무려 그려내는 것은 낭만이라 치자. 하지만 버젓한 역사서적이 강태공의 성씨와 이름을 제 멋대로 그려놓고 있는 것을 마주칠 때마다 분노가 치민다.

강태공을 언급하거나 풀이해 놓은 우리나라 책을 거의 다 읽어보았지만 나는 아직 강태공의 성씨와 이름을 모두 정확히 밝혀 놓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태공의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여상(呂尙)이라, 또는 성은 여(呂)이고 본관은 강(姜)이라 , 아니면 본명은 여상(呂尙), 속명은 강상(姜尙), 별명은 태공(太公)이라 하던지 잠꼬대를 하고 있다. 턱없이 모자라는 역사 지식을 소설 창작할 때나 발휘해야할 기발한 상상력으로 매꾸어 넣으려는 무모함이 중국역사는 물론 동아시아 고대사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강태공을 모독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성"과 "씨"도 구별하지 못하는 그 따위 잡소리라면 차라리 "강태공은 중국 전국 낚시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인물"이라고 아예 왕구라를 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강태공(姜太公)의 "성"은 강(姜)이고 "씨"는 여(呂)다. 명(名)은 상(尙)이고 자(字)는 자아(子牙)다. 태공(太公)이나 태공망(太公望)등은 훗날 강상이 주나라의 재상이 된 후에 후세 사람들이 붙여진 그의 벼슬이름이자 아호(雅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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