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99
2011/11/8(화)
정수일(무하마드 깐수)  
정수일(무하마드 깐수)
      등록정보   [ 분류 : 자유 | 작성자 : 폴권 | 등록일 : 2003년 11월 28일 | 조회 : 233 |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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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은 연변에서 태어났으며, 북한에서 보낸 간첩으로, 필리핀계 아랍인으로 위장, 간첩질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문명교류사와 이슬람권에 대해 한국에서 그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가석방하여 책을 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정수일을 간첩으로 써먹기 위해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 모스크바와 중동에까지 유학을 보냈습니다.

심지어 잠꼬대까지 아랍어로 할 정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대로 된 학자 하나 만드는 데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만 했던 겁니다.

문명교류사는 한국에서는 정수일이 죽으면 끊어질 학문입니다. 그거 공부하려면 각 나라의 역사, 문화, 언어 등에 통달해야 하고, 지리, 정치적 역학관계, 경제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합니다.

10년 공부해도 모자란 학문이라 이 말씀이지요.

비단 정수일 뿐만이 아니라,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 지방의 역사를 쓰더라도 당시 세계의 분위기에 절대 무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뉴튼이나 오일러, 왓슨-크릭 등은 젊은 나이에 대발견을 해냈으나,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젊은 나이에 성공할 수 없는 학문입니다.

김용옥이 좋아서 죽는 노자의 주해자인 위나라의 왕필(김용옥은 꼬박꼬박 '왕삐'라고 불러 주지만 위나라 때도 왕삐라고 했을지는 알 수 없음. 그래서 삼국지의 인물들을 한국식 발음으로 부르는 것임)은 겨우 23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23세에 죽은 사람의 사고체계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역사나 철학은 수십년의 공부와 정진, 투자가 필요한 학문이고, 한 사람이 깨칠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젊은 나이에 천재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제 생각은, 제대로 역사를 터득하려면 역사만 10년은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와 같이 각박하고 답답한 세상에서 10년을 돈도 안 되는 공부에 매진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 고고학적 발견들도, 대부분 부자들이 할 일이 없어 재미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파라오의 저주'로 유명한 카나봉 경입니다.

부유한 귀족인 카나봉 경은 지루한 나머지 심심파적으로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를 고용해서, 이집트의 고분들을 이리 쑤시고 저리 쑤시다가 소가 뒷다리 잡듯 투탕카멘의 묘를 발굴했습니다.

하워드 카터는 투탕카멘 묘를 발굴할 자금도 없었고 힘도 없었습니다. 카나봉 경 같은 할일없는 귀족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뉴턴 다음으로 위대했던 수학자라는 오일러도 자기를 지원해 주는 왕을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 다녔고,

18,19세기만 해도 학문은 부유한 이들만의 전용물이었습니다. 간혹 제후들이나 신흥재벌들이 학자들을 지원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제대로 학문을 하려면 시간과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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