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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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의 교훈 - 강조장군의 비극 PKwon| 숙명론  


Peter | 조회 426 |추천 0 | 2008.01.02. 22:47
강조(康兆) 장군은 천추태후와 김치양에게 놀아나던 고려조정을 뒤엎고, 대량원군을 모셔 현종으로 옹립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부터 고려를 침략하려고 기회를 보고 있던 거란은, 이를 구실로 삼아 황제 성종이 직접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고려로 쳐들어왔습니다.

세계역사상 가장 잔인한 침략민족들 중 하나인 거란은 그때까지만 해도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강감찬에게 패한 것이 첫번째 패배이지만 그건 후일의 이야기지요)

거란은 40만 대군이라고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10만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거의 다가 전투력이 엄청난 기병이었기 때문에, 그 위세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병권을 쥐고 있던 강조는 소위 30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30만이라곤 하나 실제 동원가능병력은 거란보다 적었을 것으로 보이며 그 중 태반은 보병이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거란과 고려의 군대는 싸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강조는 검차(劍車)라는 신무기를 발명하여, 고려를 얕잡아 보고 달려들던 거란기병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서전에 승리한 강조는 '삼각포진법' 이라는 신전법을 이용하여 두번째 전투에서도 크게 이겼습니다.

그런데, 두 번 대승한 강조는 거란을 대단치 않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거란이 새로운 전략을 짜느라 잠시 대치상태가 이어지자, 강조는 부하 이현운과 바둑을 두는 걸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란이 기습해 왔습니다.

전령이 이를 알리자, 강조는 '거란은 입안에 든 음식과 같으니, 좀더 들어온 다음에 섬멸하자' 하며 계속 이현운과 바둑을 두었는데,

그 바둑이 끝나기 전에 거란군 결사대가 강조의 본진까지 쳐들어와 강조는 잡히고 고려군은 전멸하였습니다.

강조는 거란에게 죽임을 당하고 곧 고려의 수도는 함락되었으며 현종은 남쪽 끄트마리 나주까지 도망가야 했고,

고려는 거란에게 굴욕적인 강화를 맺은 후에야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가 서기 1010년입니다.

-- 똑같은 실수를 천 년 만에 샌디에고 구장에서 다시 범하는군요. 이래서 역사교육이 필요합니다. 이긴 역사만 가르칠 게 아니라, 패배한 역사도 가르쳐서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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