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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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만 해도 러시아는 동네북 폴 권| 숙명론  
David | 조회 261 |추천 0 | 2008.02.04. 21:36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도 한도 없어서 시대소리에서는 자제하고 있는데, 잡담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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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는 과대포장된 면이 큽니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진격하기 위해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에 집결했을 때에, 프랑스의 인구는 약 2500만명, 그리고 러시아의 인구는,
 
놀랍게도 프랑스와 같았습니다.
 
즉, 러시아 땅이 넓다고 자랑하지만, 러시아의 국력은 프랑스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소리입니다.
 
러시아사에서 가장 폭군은 이반 4세 '뇌제'입니다. 이반은 1547년에 황제를 칭했다고 역사책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1584년까지 재위했습니다.
 
그러나, 그 '차르' 라는 황제의 칭호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19세기에 러시아보다 훨씬 국력이 약한 불가리아의 왕(사실은 불가리아인도 아닌, 영국왕가 색스코버그고타 가문 출신으로 불가리아 왕으로 봉해졌던 자)도 '차르'를 칭했습니다. 즉 차르라는 칭호는 '황제' 가 아닌, 슬라브계 국가원수들의 왕 칭호인 것입니다.
 
아직도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칭하는 크림칸국의 신하 신분이었던 이반이 망령되게도 차르를 자칭하자,
 
무스코비(러시아의 옛 이름)의 상국(上國)인, 크리미아에 본거지를 둔 크림칸국의 칸은 그를 정벌하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여년간 하지 못하다가,
 
1571년 크림칸국의 데블렛칸이 대군을 일으켜 모스크바를 쳤습니다.
 
데블렛칸은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이를 완전히 불태워 이반의 망령된 행동을 심판하였습니다.
 
이를 러시아 정사(正史)에서는 모스크바에 페스트가 돌아 십만명이 죽었다고 얼버무리고 있으나, 데블렛의 군대에게 살해된 숫자입니다.
 
이반은 이 사건으로 완전히 미쳐버렸으며, 크림칸국의 무스코비에 대한 상국의 위치는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얼마 뒤 이반의 루릭왕조는 멸망하였고, 무스코비는 여러 해의 내전을 겪으면서 크림칸국은 물론, 폴란드, 스웨덴, 코사크인 등의 침략을 받았으며,
 
역사지도에 어떻게 나와 있든, 실제 무스코비의 군주가 다스린 지역은 모스크바와 그 바로 아래쪽의 오카강 지역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코사크인 탐험가들이 담비 잡으러 시베리아를 헤메고 다닌 것을 러시아사에서는 '시베리아정복' 이라고 포장했는데, 당시 러시아의 꼴은 시베리아정복은 커녕 자기 집 앞마당도 수비하기 벅찼던 시절입니다.
 
이것으로 볼 때 네르친스크조약이라는 것도 조작된 면이 많다 보겠습니다. 나선정벌에서 수백명의 조선병사들에게 '러시아군' 들이 박살난 것도 당연한 것이고요.  
 
피터 대제를 러시아에서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의 치세 (1682-1725)에 이르러서야, 러시아가 겨우 동네북을 면하고 스웨덴을 패퇴시켜 나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소련의 모습만 보고 러시아가 대단한 줄 알지, 17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국력은 한반도만도 못했었습니다.

0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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