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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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유민들 산동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다  
고려의 유민들 산동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다
  작성자 : 김정환   (IP :116.32.137.28 )
  날짜 : 2011-03-28
 

평안도 절도사(節度使) 이장곤(李長坤)이 치계(馳啓)한 비변 사의(備邊事宜)에,
“신이 삼가 내리신 유서(諭書)를 보건대, ‘산동(山東)에 사단이 생겼으니 창졸의 변란을 미리 염려하라.’ 하셨습니다.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중국[中原]이 편안치 못하여 산동에 도적이 일어났으나, 산동은 우리 국경과 거리가 매우 가까우므로 창졸의 변을 조석에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듣건대 ‘산동의 온 지역이 도적이 되었으므로 대병(大兵)이 사방에서 친다.’고 하니,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극도로 궁박(窮迫)해질수록 도적은 반드시 구름이 몰리고 물길이 터지듯이 우리의 지경으로 뛰어들기를 거란과 홍군의 난폭한 것과 같이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외로운 성(城)의 잔약한 군사로써 어찌 죽기로 날뛰는 도적의 돌격(突擊)하는 칼날을 당해내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 중종 7년 임신(1512,정덕 7)



또다른 실록의 기록에는 산동의 달자(타타르인혹은 오랑캐 이런뜻)가 반란을 일으켰다라고도 한다. 명나라기록에도 동일하게 산둥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태조가 나라를 세울때 산둥의 고려인들이 어떻게 명나라통치에 들어갔는지는 아직 그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명나라기록에 최영과 태조이성계가 싸울때 고려장수가 투항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니 아마도 산둥지역의 고려귀족들이 명에 투항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유추해 본다. 조선의 평안도에서는 산동이 우리국경에 매우 가깝다고 했다.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조선의 평안도는 베이징근처였기 때문에 이런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다.

산둥사람들은 청나라가 세력이 커지자 명을 버리고 제일먼저 투항해 버렷다. 그들이 한족의 통치를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이다.

조선이 고려처럼 고토수복을 기치로 내걸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출처:http://blog.daum.net/manjumo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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