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60
2014/10/22(수)
우리 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전해왔을까? (1)  

 

 

우리 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전해왔을까? (1)
- 우리 역사를 서술한 기록 -
2009년 10월 29일 (목) 00:02:23 새마갈노 webmaster@eswn.kr

 우리 민족의 역사가 원형 그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지도 60여년이 넘었건만, 이러한 인식이 없어지지 않은 채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우리 민족사는 어떻게 기술되어 전해졌길래 아직까지도 왜곡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단 말인가?

 우리 민족사가 올바르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과거사를 기록한 역사책이나 역사자료가 변조되었거나 아니면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 과거사를 전하는 역사책이나 해당시기의 역사자료가 절대로 필요하다.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자료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역사책이나 역사자료는 엄청난 수난을 겪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족사서와 사료의 수난

 668년 고려(고구려는 427년 국호를 고려로 바꾼다. 따라서 멸망시기의 국호는 고려였다.)가 멸망할 때 그 도읍지였던 장안성長安城(지금의 섬서성 서안시)이 당군唐軍에 의해 함락되면서 당시 장안성에 보관중이던 고려와 고구려 이전의 역사자료를 침략자들이 당의 도읍지였던 만년萬年(지금의 청해성 서녕시)으로 빼앗아 갔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보다 앞서 660년 백제의 사비성泗沘城(지금의 산동성 제녕시)이 라․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백제의 역사책과 역사자료가 모두 불탔다고 한다. 이때 백제로 쳐들어간 신라의 도읍지는 신성新城(지금의 안휘성 봉양현)이었다.

 1231년 몽고리의 침략으로 고려는 도읍지를 개경開京(지금의 하남성 등봉시)에서 강도江都(지금의 강소성 진강시)와 송도松都(지금의 강소성 남경시)로 옮기면서 39년간이나 항쟁을 지속하다가 1270년 원元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때를 계기로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사실을 기록한 고려의 고사서와 고자료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던 몽고리가 과거사를 밝히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고려를 복속시킨 원의 당시 도읍지는 대도大都(지금의 감숙성 란주시)와 상도上都(지금의 녕하자치구 은천시)였다.

 몽고리의 압박을 받던 고려때만 해도 우리민족사를 기록한 사서와 사료는 일반에 비장되어 후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당이 고려의 사서를 탈취한 것이나, 라․당연합군이 백제의 사서를 모두 불태워버린 것이나, 또 원이 고려로 하여금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전승하지 못하도록 압제한 것은 고려(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당과 신라와 비교해 볼 때 국토의 넓이도 훨씬 방대했을 뿐 아니라 문화수준도 우월했기 때문이며, 비록 원의 군사력에 굴복했더라도 고려는 원보다 훨씬 오랜 역사 전통을 지녔고, 문화수준도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고려 때에도 고려의 문화가 원으로 흘러들어가 맹위를 떨쳤었다.

 고려를 이어 건국한 조선은 우리 민족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원을 북으로 몰아내고 새로운 군사강국으로 부상한 명明은 조선을 굴복시키고 원을 이은 달단과 그리고 이웃해 있던 여진과 전쟁을 치르면서 대륙에 있던 조선의 강토를 서와 북으로 유린하기 시작했다. 또 왜倭는 조선의 경상도 지역(지금의 복건성과 절강성)을 점령했다. 이때 명의 도읍지는 대도(감숙성 란주시)였고, 조선을 침략한 왜는 필리핀의 루손도가 중심이었다.

 조선의 건국이전 고려는 명에게 과거 원 지배시대의 동녕부(평양, 섬서성 서안시)와 쌍성총관부(화주, 산서성 태원시)를 할애한 바 있었고, 조선의 건국후에는 명에게 서쪽으로는 개경(하남성 등봉시), 북쪽으로는 함주(북경시 동성구)를 빼앗겼다. 조선의 함주는 1421년 명의 새로운 도읍지가 된다.

 건국당시 조선의 도읍지는 한양(산동성 제남시)과 송경松京(산동성 임청시)을 오고 갔다. 1426년 세종대에 이르러 조선은 서와 북으로 명의 압박과 남으로는 왜의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산동성 제남시에서 한반도 서울로 도읍을 옮긴다.


  국토의 상실과 조작된 반도사관

 대륙에서 반도로 그 중심을 옮긴 조선은 대륙의 강역을 명에게 완전히 빼앗긴다. 사대주의에 빠져 정권유지에 급급했던 조선은 강토를 다시 회복하려는 의지를 포기한 채 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적 강역이 대륙이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역사를 왜곡했다. 우리 역사가 반도와 만주에서 이루어졌었다는 이른바 반도사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민간에 비장되어 있던 우리민족의 과거사를 기록한 역사책을 거두어 없애버렸고 금서목록을 만들어 소장 자체를 금지했다.

 우리 민족사가 치유되기 어려울 정도로 병들게 된 비극의 단초는 이 시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조선 초 세조로부터 예종을 거쳐 성종에 이르는(1455~1494) 40여년의 세월이었다.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서가 자취를 감추었고, 이 시기의 역사는 신화의 시대로 치부해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 제외했다.

 가야사와 발해사가 민족사에서 배제되었고, 보전될 역사서로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다루었지만 그나마도 내용이 변조되었다.

 조선왕조의 상고사 말살과 역사 왜곡 변조 정책은 일부 사림층과 민간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된다.

 가혹한 시련기를 겪으면서도 우리 조상들은 우리 민족사를 제대로 전하는 사서와 사료를 감추어두고 열람하면서 대대로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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