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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도읍지 평양은 어디였을까? (1)  

 

 

우리 역사의 도읍지 평양은 어디였을까? (1)
- 여덟 곳의 평양 -
2009년 10월 29일 (목) 00:20:07 새마갈노 webmaster@eswn.kr
 

우리 역사상 평양은 여덟 곳

우리나라 평안남도에는 역사적 고도古都인 평양이 있다. 평양은 우리 역사상 고조선의 도읍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고구려의 도읍지였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당唐이 일시(668-676) 점령했다가 신라가 되찾은 곳이며, 고려 때에는 서경西京이었고, 고려를 침공했던 원元이 20년간 점령했던 곳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고조선의 도읍지 평양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인식은 조선 중기 이후 조선과 명明이 만들어낸 반도사관에 끼워 맞춘 허구의 개념이다.

우리 역사상 평양은 한 곳이 아니다. 그곳은 고조선 때 세 곳, 고구려 때 네 곳, 고려 때 두 곳, 그리고 조선 때 두 곳으로 모두 열 한 곳이 있었는데, 이중 네 곳은 같은 곳이므로 각기 위치가 다른 곳은 모두 여덟 곳이다.

그 중 일곱 곳은 대륙에 있었고 한 곳은 한반도에 있는 지금의 평양이다.


고조선의 평양 세 곳

근세조선(1393-1910)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전2333-전232)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고조선의 국호는 시기별로 네 개로 구분된다.


① 단旦(전2333-전2311)

② 조선晁僊(전2311-전2182)

③ 부여조선夫余晁僊(전2182-전425)

④ 대부여大夫余(전425-전232)였다.


단의 도읍지는 아사달阿斯達이었고, 조선의 도읍지는 금미달今彌達, 부여조선의 도읍지는 장당경藏唐京과 영고탑寧古塔, 백악白岳이었고, 대부여는 장당경이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도읍지는 다섯 곳이었는데, 이중 아사달, 금미달, 그리고 장당경을 평양平壤이라고 했다.

아사달은 감숙성 위원현甘肅省 渭源縣, 금미달은 감숙성 진안현甘肅省 秦安縣, 장당경은 감숙성 화정현甘肅省 華亭縣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세 곳은 모두 고조선 이후에는 북부여(전239-전58), 고구려(전58-후668), 발해(668-926)의 강역으로 이어졌고, 고려(918-1393) 때에는 요遼, 금金, 원元, 명明의 강역이었다.

고려는 초기에 이 지역을 강역으로 확보했었지만, 요에 빼앗겼기 때문에 지명을 동쪽으로 옮겨놓았다.

아사달과 금미달은 고려의 서경이었던 평양平壤(섬서성 서안시陝西省 西安市)으로, 장당경은 서해도西海道의 유주儒州(산서성 후마시山西省 候馬市)로 옮겼다.

고조선의 아사달 평양은 임검단제壬儉旦帝(흔히 단군檀君으로 부른다)께서 단을 건국한 곳이고 금미달 평양은 낙랑樂浪이라고도 불렀다. 금미달 평양은 후한後漢(25-220) 때 일시나마 낙랑군樂浪郡이 설치되었던 곳이고, 고구려가 정복한 낙랑국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을 요遼·금金·원元·명明의 초기에 요양遼陽이라고 지칭했던 곳이다. 요遼·금金의 동경東京이기도 했다. 장당경은 고구려 때 환도성亘都城에서 옮겨갔던 평양平壤과 같은 곳인데, 요遼·금金·원元·명明 초기 때의 지명은 심양瀋陽이었다. 고려 때 이곳에 고려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으며, 원은 이곳에 심양왕을 임명해 고려를 견제했다.


전고려(고구려)의 평양 네 곳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구려라고 지칭하고 있는 고대 국가는 시기별로 세 개의 국호로 구분할 수 있다.

① 홀본부여忽本夫余(전58-후53)

② 고구려高句麗(53-427)

③ 고려高麗(427-668)


이 세 개의 국호를 통칭하려면 고려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고사서에 고려라고 기록된 것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라는 국호보다는 고려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고려(918-1393)과 구별하고자 한다면 전고려(전 58-668)와 후고려(918-1393)로 구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전고려때 평양은 네 곳이었다. 도읍지 중 더 비중있는 곳이었다.


전고려의 도읍지는

① 홀본忽本(전58-전27)

② 눌현納見(전27-후2)

③ 국내성國內城(2-209)

④ 환도성亘都城(209-247, 342-343)

⑤ 평양平壤(247-342)

⑥ 동황성東皇城(343-427)

⑦ 평양성平壤城, 장안성長安城(427-668) 등 일곱 곳이었다.


이중 국토의 북쪽에 있던 국내성, 평양, 평양성의 세 곳과 남쪽에 위치했던 북한성北漢城을 평양이라고 불렀는데 북한성은 남평양이라고 했다.

국내성은 발해로 이어졌다가 후고려때 초기에 일시 회복했다가 요의 강역이 되었고, 그 후 금·원·명으로 이어졌던 곳이다. 지금의 감숙성 평량시平凉市였다. 후고려때의 지명은 화의和義였다.

평양은 고조선의 장당경과 같은 곳이었다.

평양성은 장안성과 같은 곳으로 두 성은 인접해있었다.

이 중 장안성이 고려의 서경으로 고려의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원의 동녕로東寧路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명明의 초기에 동녕위東寧衛가 설치되어 후고려의 강역에서 벗어난 곳이다.

명이 쌍성총관부였던 후고려의 화주和州를 점령하자 후고려가 쳐들어간 곳이 바로 이곳 동녕위였다.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陝西省 西安市였다.

북한성은 원래 신라의 옛 국호인 계림鷄林(65-307) 때의 강역이었다. 이곳은 물길勿吉(흔히 말갈이라고 부른다)과 인접한 곳이었다. 계림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신라新羅(307-918)로 바꾼다.

계림을 이어 전고려가 이곳을 차지하고 남평양으로 번성했는데 이곳을 백제가 쳐들어와 차지하고 도읍지로 했다. 전고려와 백제가 뺏고 빼앗기고 하다가 발해의 강역이 되었다가 발해가 멸망한 후 송·금·원·명의 강역으로 이어진 곳이다.

지금의 사천성 면양시 四川省 綿陽市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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