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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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배달, 청구, 고조선의 도읍지를 밝히다  

 

 

상고사 강역은 대륙의 중심
환, 배달, 청구, 고조선의 도읍지를 밝히다
2014년 06월 25일 (수) 14:45:20 이병화 bhlee9200@hanmail.net

이병화 역사연구가의 한국사 고전강의는 잃어버린 고대사를 되살리는 길이 제시되어 있다. 이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니 알려주지 않았던 참 우리역사 강역에 대한 속살을 지난 강연 자료들을 토대로 하나하나 글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우리역사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덧글을 바란다.[편집자 주]

우리민족 상고사의 강역은 대륙의 중심이었다.

우리민족의 오랜 역사의 사연을 품고있는 도시로 서울과 평양, 환도와 심양이 있다. 서울과 평양은 조선과 고려, 그리고 신라의 강역을 나타낸다고 한다면, 환도와 심양은 청,명,금, 요, 발해, 그리고 고구려의 강역에 속했던 곳이다. 지금의 서울은 조선시대에는 한성(한양)이었고, 한양은 고려 때 남경, 백제의 북한산성이라는 지명을 옮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 이병화 역사연구가 강의모습


서울은 나라의 중심 도읍지(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평양은 조선시대에도 평양이었고, 오늘날 이른바 반도사관이라는 시각으로는 고구려의 장안성, 신라의 평양성, 그리고 고려의 서경과 원의 동녕부, 당의 안동도호부였던 곳으로 간주하고 있다.

고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한의 도읍지 백아강, 금미달(후한의 낙랑군)의 지명도 계승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심양은 고조선의 장당경이 위치했던 곳인데, 고려 때의 지명이다. 이곳은 발해가 멸망하면서 우리민족의 역사강역에서 벗어난 곳이다. 그런데 지금의 심양은 명대에 지명이 옮겨진 곳으로 원래의 심양이 아니다.

환의 강역과 환도

환도는 환(전7,199 ~ 전3,898)의 도읍지였던 곳의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환도성, 발해의 환주였다. 고구려와 발해 시기의 이곳은 국내성 부근이었던 곳으로 전하는데,환시대의 환도는 고구려의 환도성보다 훨씬 서쪽의 후한의 도읍지 부근이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 우리역사의 주요 도읍지


후한의 량주(凉州) 한양군(漢陽郡) 환도현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후한의 량주 한양군에는 환도와 평양이라는 지명이 함께있어 우리민족사의 중요한 도시인 한양,평양,환도의 역사적인 시원이 이곳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환의 도읍지는 파나류산 동쪽, 천해의 동쪽지역에 위치했다고 삼성기에 전한다.

환의 강역에는 금악, 태백산,삼위산이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12개의 나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천해는 지금의 청해성에 있는 청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청해성의 동부지역은 화하족 국가였던 하,상,주 등의 중심강역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의 조상들은 화하족의 선조들과 같은 지역에서 국가를 이루어 살았지만 하화족의 선조들은 그곳에 머물렀고, 우리민족의 조상들은 점차 동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반도사관이나 반도사관과 궤를 같이하는 명청의 왜곡된 사관으로는 하,상,주의 중심강역이 섬서성 서안시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지역일 것이라고 착각하겠지만, 실제의 그들 하화족의 상고사의 강역은 청해성과 사천성 지역이었던 것이다.

환의 도읍지 환도는 지금의 청해성(靑海省) 대통현 (大通縣)으로 보는 것이 옳다. 금악(金岳)은 청해성(靑海省) 기련현(祈連縣), 태백산(太白山)은 청해성(靑海省) 순화현(循化縣), 삼위산(三危山)은 청해성(靑海省) 마심현(瑪沁縣) 지역으로 추정된다.

배달의 강역과 도읍지

환웅천왕이 환도에서 갈라져 나와 태백산 신시에 배달을 건국할 당시, 화하족의 조상인 반고도 삼위산으로 가서 나라를 세웠다고 전한다. 반고의 나라가 제대로 번성하지 못한 반면, 배달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 환에서 조선까지 이동한 강역, 참 우리역사
 
그들은 문자를 창제했고, 목축과 농사를 실시헀으며, 혼취법응 만들어 가족을 이루어 번창했으며,군사제도를 만들어 외침을 방어했으며,역법을 만들어 생활에 적용시켰다고 한다. 환웅시대(전3,898 ~ 전 2,333)는 두시대로 나눌 수있는데 배달(전3,898 ~ 전2,707)과 청구(전2,707 ~ 전2,333) 이다.

배달의 도읍지는 태백산 신시였고, 청구의 도읍지는 낙랑홀이었다. 신시는 북쪽에 나랑홀은 남동쪽에 위치했다. 화하족이 그들의 위대한 조상으로 떠받들고 있는 복희는 배달의 5대 태우의 환웅의 아들이다. 그는 당시 서쪽의 수인의 무리를 정벌하고 그곳의 군주가 되어 뒤처져있던 그곳에도 배달의 선진문명을 도입, 그들을 일깨워 인간다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그후 화하족의 선조들은 신농 때에 이르러 배달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자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후 청구시대에 자오지천왕에 의해 모두 병합되었다가 청구가 고조선으로 이어질 때 요가 당을 건국하면서 고조선에 대항했던 것이다. 배달의 도읍지 신시는 청해성 순화현으로 비정할 수 있다. 그곳에 태백산이 있었고 요가건국한 당의 도읍지 평양이기도 했다. 또 순이 건국한 우의 도읍지 포판이 있던곳이다. 후한 때에는 수도권이었던 하동군이었다.

청구의 도읍지 낙랑홀은 사천성(四川省) 면양시(綿陽市)로 추정된다. 후한이 일시적으로 차지했던 연주 동군으로 이곳은 수,당의 강역으로 편입된 곳으로 이정기의 제의 중심강역이었고, 송대에는 요의 침략을 받았던 곳이며,금이 점령함으로써 금에 빼앗긴 북송의 핵심강역이었던 복양이다. 오늘날 청구의 중심강역이 산동성의 하택시 부근으로 인식, 그곳에 대대적인 건축공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지역은 고려의 충청도 지역이었던 곳이었고 명이 그곳을 강역으로 편입한 시기는 조선이 반도로 이전한 후인 15세기 중엽이었다. 당시 명은 대륙 동쪽의 조선의 강역을 차지한 후 그곳이 마치 오래 전부터 하화족 국가의 강역이었던 것으로 철저하게 왜곡 변조했던 것이다.

고조선의 강역과 도읍지

고조선은 초기에는 진한, 번한,마한, 그리고 후대에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이라는 세곳의 왕국으로 구성된 천제국이었다. 천제인 단군은 밑으로 우현왕을 두고 진한을 직접 통치했고, 번한왕과 마한왕이 번한과 마한을 통치함으로써 한분의 천제와 세분의 왕이 통치했던 나라였다.

고조선의 강역은 세나라의 행정치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도읍지는 진한과 진조선에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고조선의 도읍지는 1.아사달 2.금미달 3.장당경 4.백악 5.녕고탑의 다섯곳이다. 고조선의 도읍지는 아사달이다. 그곳에 불함산이 있었다고 전한다. 불함산은 도태산이라고도 불렀고, 후대에는 백두산이라고도 불렀다.

아사달은 진,한이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그고에 유주 어양군을 설치했던 곳이다. 지금의 감숙서 위원현으로 추정된다. 금미달은 후한의 유주 낙랑군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이곳이 요,금의 동경으로, 감숙성 진안현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아사달은 요서지역이었고, 금미달은 요동지역에 해당된다.

아사달은 번조선과 진,전한의 접경지대였고, 고구려와 전한,후한,진(晉),수,당의 접경지역이었다. 고구려의 내륙지방이 아니고,가장 서쪽의 변방이었던 것이다. 장당경은 고조선의 도읍지였고, 고조선을 이은 북부여의 도읍지이기도 했다. 이곳은 고려 때 원의 심양이었고,고려의 수많은 이주민들의 거류지였으며, 고려의 황족인 심양왕이 통치하던 곳이었다. 감숙성 평량시로추정된다. 지금의 심양은 명대에 지명을 옮겨놓은 곳으로 청의 초기 도읍지였던 곳이다. 명의 초기 북경이었던 란주시와 가까이 있던 곳을 명의 도읍지가 지금의 북경으로 천도하게 됨으로써 지금의 요녕성으로 옮겨진 것이다.

백악은 지금의 서울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곳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의 남평양이었고,후한의 연주 산양군이었다. 이곳 가까이에 서나벌(사천성 성도시)이 있었고, 임검단제의 세아들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사천성 랑중시)이 있었다. 백악은 사천성 광원시로 추정된다. 이곳의 지명이 백제의 북한산성(하남성 남양시, 고려의 남경)으로 옮겼다가, 고려와 조선 초기의 한양(한성)[산동성 제남시]로 옮겨왔다가, 다시 지금의 서울로 옮겨오게된다.

백악은 고구려와 발해의 강역으로 이어지다가 송의 강역이 되었다가, 금,원의 강역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녕고탑은 지금의 녕하자치구 고원현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고구려와 서부여,발해를 거쳐 요,금,원의 강역이 된 곳이다.

고조선을 구성했던 세나라의 도읍지는 부소량(진한), 안덕향(번한), 백아강(마한)이었다. 이 세 도읍지는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저울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진한의붓량은 저울대에 해당,중앙에 위치하고 번한의 안덕향은 저울추에 해당, 서쪽 끝에 자리잡았고 백아강은 저울접시에 해당, 동쪽 끝에 자리잡았던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부소량은 지금의 섬서성 보계시, 안덕향은 감숙성 무산현, 백아강은 섬서성 서안시에 위치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반도에 있는 평양은 1.아사달 2.금미달 3.백아강 4.유경의 네곳의 역사적 지명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 네곳은 모두 다른 곳인데 강역의 변동에 따라 각기다른 곳이 한곳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고려 때의 서경은 고려말기에 명에 빼앗겨 동녕위가 되었고, 고려는 서경 평양의 지명을 섬서성 서안시에서 하북성 석가장시(유경)로 옮겼다가, 이마져도 명에 빼앗기고 한반도 평양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원이 명의 침입으로 대륙 서족의 대부분의 강역을 빼앗기고 북으로 밀려간 다음 대륙 동쪽에 있던 조선도 그 강역이 명에 의해 계속 축소되면서 도읍지를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전한 후 조선은 대륙의 강역 모두를 명에게 빼앗기고 만다. 조선은 상실한 영토의 회복을 포기하면서 우리역사가 원래 한반도와 만주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위장했다.

찬란했던 고조선 이전의 역사는 민족의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고조선의 역사마저도 모호하게 기술함으로써 사대사관으로 일관했다. 잃어버린 강토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의 싹을 잘라버리고 원을 대체한 명에 철저히사대했던 것이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하면서 우리민족의 시원사상인 선도를 박해하면서 선도사상에 뿌리를 둔 고사서를 모조리 없애려 했던 것이다. 발해의 역사는 우리역사에서 배제하고 고조선과 북부여, 삼한과 가락의 역사를 다루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서국, 중국(仲國),지나(支那) 등으로 지칭되었던 보잘것 없는 역사로 일관된 당,우,하,은,주,진,한,당,송으로 이어지는 화하족의 역사는 확대하고, 과장하고, 존숭하면서 조선을 대중화에 부속된 소중화로 자처하는 허위의 이데올로기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조상들이 이룩헤 놓았던 대륙의 광대한 강역과 인류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전통문화의 계승을 망각한 채 축소된 강역이라도 감지덕지하면서 손바닥만한 기득권에 안주하려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반도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또 전통사상을 복원하지 못한다면 민족의 장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글 이병화(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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