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2(수)
조회: 819
한국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  

 

왜곡된 우리 역사
한국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
2014년 06월 26일 (목) 14:48:22 이병화 bhlee9200@daum.net

한국사의 시원

한국사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방대한 량의 사료가 없어진 것을 비롯, 민족의 주체성을 갖춘 역사학자가 없다는 사정을 감안할 때 한국사의 올바른 인식이 정립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사의 복원을 위해 노력하는 민간차원의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의 인식에 있어서 문제의 핵심은 관련 사료를 어떻게 보는 가이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한국사의 시작을 고조선으로 보느냐, 아니면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느냐, 아니면, 고조선 조차도 부정하면서 고조선 이후에서 찾으려 하느냐의 시각이다.

   
▲ 왜곡된 우리 역사의 강역(환에서 조선까지 동으로 옮긴 강역지도)

고조선보다 앞선 시기에서 우리역사가 비롯되었다는 인식은 우리민족의 고사서인 '부도지'와 '환단고기'를 객관성 있는 사료로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사서를 인정하지 않을 뿐아니라 '삼국사기'마저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은 민족사의 기원을 신라,고구려,백제에서 찾는다.  지구에 인류가 출현하면서 생활을 영위했지만 인류의 역사는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면서 그 사정을 전할 수 있었기에 그 시기는 만년 전후가 될 것이다. 

 우리민족의 경우에는 9,200 여년 전에 무리를 이루어 살면서 국가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한다. 따라서 기원 전 7,199년에 이루어진 '환'이라는 나라에서 역사의 시원을 확인하는 것이 옳다.                     마고, 나반과 아만                 우리민족은 민족의 시조, 즉 조상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는가 ?  신라사람들은 민족의 시조를 '마고'라고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마고는 지구상에 살고있는 모든 인류의 조상이라고 생각한다. 고구려와 발해사람들은 우리민족의 조상을 '나반과 아만'이라고 전했다. 나반은 우리민족 최초의 남성이고 아만은 최초의 여성이다. 나반과 아만도 인류 최초의 남성과 여성이다.  마고가 낳은 '궁희'와 '소희'가 인류 최초의 남성과 여성을 낳았다고 한다면 궁희와 소희가 아반과 아만을 낳은 것이 된다. 마고가 살던 곳이 마고성이고 나반과 아만이 만난 곳이 아이사타라고 전한다. 인류가 출현한 지역이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또는 나미비아라는 주장이 있고, 파밀고원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민족은 민족의 조상뿐 아니라 모든 인류의 조상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서 대대로 전해왔던 것이다.                                환국과 배달국                  환국은 기원 전 7,199년부터 기원 전 3,898년까지 3,301년 이어진 것으로 전한다.  이 시기는 신석기시대에 해당되는데 유적이나 유물로 판단하더라도 이 시기에 부족국가가 성립되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있다.  

다만 그 위치가 어디였느냐 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환단고기의 기록으로는 환국은 그중심이 적석산에 있었다고 한다. 적석산은 지금의 청해성 대통현 부근으로 추정할 수 있다.   환국을 이은 나라가 배달국인데 기원 전 3,898년부터 2,333년까지 1,595년간 지속되었던 나라였다. 배달국의 도읍지는 태백산에 있었다고 한다. 태백산은 청해성의 순화현으로 비정할 수 있다. 고조선이 실재했던 나라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조선에 관한 기록이 여러 사서를 통해 전해지고 있을 뿐아니라 유적이나 유물로도 그 실체를 유추할 수 있다. 특히 갑골문을 해독해 보면 고조선의 건국년대가 기원 전 2,333년임을 확인할 수있다.  고조선이 실재했다면 그 강역은 어디였을까 ?

   
▲ 古朝鮮과 夏

고조선의 중심강역은 대륙이다.  오늘날의 감숙성을 중심으로 사천성, 영하자치구, 섬서성 등지에 걸친 광대한 지역이었다.  도읍지는 감숙성과 영하자치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조선의 강역이 만주와 한반도였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우리역사가 조작되고 왜곡되었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주장이 먹혀들고 있을 뿐이다.  

더 기막힌 억지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한반도의 평양이 고조선의 도읍지였고 한나라가 설치했던 낙랑군이라는 것이다. 고조선은 세개의 나라가 연합한 연방국이었고. 각각의 세나라는 또 다른 세개의 작은 나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고조선은 아홉개의 작은 나라들의 연합체였다. 고조선시기에 병존했던 화하족의 국가는 당,우,하,은,주 등으로 이어졌는데, 그 국가의 국력은 고조선의 서쪽국가였던 번한(번조선)의 수준과 규모를 능가하지 못했던 나라였다. 그들은 항상 번조선과 다투었던 것이다. 고조선은 기원 전 2,333년부터 기원 전 232년까지 2,101년 지속된 나라였다. 고조선을 이어 북쪽에서 북부여가, 남쪽에서 마한(삼한)이 건국되어 이어졌고 북부여에서 고구려가 건국했고 마한에서 신라,백제, 가락 등의 국가가 전승되었던 것이다.

고조선의 정체성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이 실존인물인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단군과 고조선의 찬연한 역사는 고려가 건국할 당시는 물론 조선이 건국할 때까지만해도 단군과 고조선의 실체는 민족의 뇌리에 명확히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하던 상황에서 오늘날 단군과 고조선의 실체를 의심하기에 이르른 원인은 첫째, 주변국의 침략에 의한 영토의 축소   둘째, 전통사상 박해로 인한 국혼의 상실    세째, 사대주의로 인한 자주권의 훼손이다.  고려 중기부터 시작된 유교중심의 통치이념 확립을 위한 선도사상에 대한 박해로 민족 고유의 위대한 사상과 정신이 훼손되었고,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민족사의 올바른 승계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고려 말과 근세조선 초에 영토를 명나라 에 잠식당하면서 중심강역을 반도로 이전한 후 대륙의 영토를 명에 빼앗기면서 명과 청에 철저히 사대함으로써 그들보다 앞섰고 찬란했던 고조선의 역사를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하면서 말살하거나 왜곡했던 것이다. 

우리민족의 역사는 근세조선 초에 치명적으로 손상되었다. 세종 대에 기획된 반도사관은 세조를 거쳐 성종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그 후 수백년의 양생기간을 거치면서 단단하게 굳어버렸던 것이다.  세조 때부터 성종때까지 선도사상 관련 책자와 대륙사를 알려주는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책을 거두어들여 없앴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고구려,신라,백제의 세나라만 일컬어 삼국이라고 하지만 그 세나라가 영위되었던 시기에 가락이라는 비중있는 나라도 공존했었다.

따라서 삼국시대라는 용어는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또 신라가 백제의 대부분의 강역을 흡수하고 일부 고구려의 강역도 차지했지만 고구려의 거의 모든 강역은 발해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른바 통일신라라는 용어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우리역사는 억지가 통용되는 부자연스러운 개념으로 서술되고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신라,백제의 건국시기는 기원 전 1세기인데 오늘날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그렇게 인식하지 않고 있다. 고려정부가 편찬한 정사서도 믿지 못한다고 한다. 이토록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다. 어째서일까 ?

그들은 우리민족의 고유전통사상인 선도사상에 관심이 없다. 고려와 근세조선이 대륙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대해 눈길조차도 보낸 적이 없고 명,청의 왜곡된 조선사 인식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으며 민족의 자주성과 국권 회복에 목숨바친 애국지사들의 외침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창닫기



| 상고사 | 게시판 | 자료실 | 천문해자 | Music Box | Photo | Poem

Copyrightⓒ 2005 BC.8937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