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2(수)
조회: 1669
북부여와 마한의 도읍지는 대륙  

 

     
사라진 고조선 역사를 찾아
북부여와 마한의 도읍지는 대륙
2014년 06월 26일 (목) 15:15:00 이병화 bhlee9200@daum.net

고조선(전2,333 ~ 전425)은 단군이 다스렸던 천제국으로 진한, 번한, 그리고 마한의 3왕국의 연합이었고, 고조선에는 3왕국에 예속된 9개 봉후국이 있었다. 

   
▲ 고조선과 하의 강역지도

부여는 고조선의 9개 봉후국 중 하나로 부여의 국가 연원은 기원 전 24세기까지 올라간다.  전425년 고조선의 국호가 대부여로 바뀌면서 진한은 진조선, 번한은 번조선, 마한은 막조선이 된다. 대부여의 도읍지는 장당경인데 장당경은 부여의 강역 안에 있었고 대부여라는 국호는 부여가 대부여라는 나라의 중심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대부여는 전232년 부여의 북쪽 지역에서 새로 등장한 세력이 건국한 북부여로 국권이 넘어간다.  그렇지만 북부여는 번조선을 지배하지 못했고, 대부여의 일부 지역에도 세력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여의 강역은 북부여와 번조선 그리고 번조선에서 남동쪽으로 이주한 번조선의 군신들이 건국한 마한에 의해 분할되었다. 

전323년 번조선의 수한 왕이 기자의 후손인 기후에게 왕권을 넘기고 멀리 이전해 새로 시작한 나라가 마한이다.  북부여의 역년은 시조 해모수 단군으로부터 6대 고무서 단군까지 181년(전239 ~ 전58)이다. 

   
▲ 대부여와 고구려의 지도위치

북부여는 전58년 고주몽에게 국권을 넘기게 된다. 고구려로 이어지는 북부여는 대부여나 고조선과 같은 천제국이었다. 북부여가 대부여의 전체 강역을 통치하지 못했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동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것이다.  

전86년 북부여 4대 고우루 단군 때 고우루 단군은 동명왕 고두막한에게 제위를 빼앗기고 세상을 떠났다. 고우루 단군의 동생인 해부루가 북부여의 무리를 이끌고 가섭원으로 옮겨가서 세운 나라가 가섭원부여이다.

가섭원부여는 2대 대소 단군까지 108년(전86 ~ 22) 지속하다가 고구려에 투항했다.  이때 고구려가 대소에게 내린 작위가 동부여후였다.   가섭원부여를 고구려는 동부여라고 불렀던 것이다. 가섭원부여는 고구려를 침공하는 등 고구려와 상호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나중에는 성장하는 고구려의 성장세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섭원부여가 와해되면서 대소의 동생 갈사가 무리를 이끌고 서쪽으로 옮겨가 왕국을 세웠는데 이를 갈사부여라 했다.   갈사부여는 46년(22 ~ 68) 이어졌다.  

가섭원부여가 멸망하고 고구려의 제후로 강등된 대소가 새로 정착했던 곳은 고구려의 연나부로, 고조선의 옛 도읍지였던 영고탑이었다. 가섭원부여는 고구려의 북동부 지역이었고 북옥저 또는 치구루라고도 지칭했다.  

고구려의 연나부는 서쪽 지역이었다. 가섭원부여를 동부여라고 한다면 대소가 옮겨간 이곳은 서부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서부여의 권역은 선비족 국가와 고구려와 화하족 국가들 사이에 있던 읍루와 접했던 곳이다.

그들 국가들은 서부여의 서쪽과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옛 부여는 천제국인 고조선의 봉후국이었고, 대부여는 고조선을 이은 천제국이었으며, 북부여도 대부여를 승계한 천제국이었다. 

   
▲ 이병화 역사연구가의 참 우리역사 강의장면

가섭원부여도 북부여에서 갈라져 나가 꾸준히 성장했던 강국으로 칭제국이었다. 하지만 서부여는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출발했었다. 후한서, 삼국지 위서, 진서 등에 나타나는 부여는 서부여에 관한 기록이다.  

서부여는 고구려에 대해 복속하기도 했지만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부여는 고구려의 제후국이었지만 그 국력은 화하족의 국가들이나 선비족의 국가와도 견줄만한 국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다.  

서부여는 읍루를 정복해 복속시키기도 했고 예맥의 침공을 저지하기도 했다.  서부여는 인접국가를 도와 고구려에 대항하기도 했지만 연과 백제의 침공으로 국난을 겪으면서도 사직을 지켜냈지만 고구려의 장수홍제호태열제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서부여는 472년(22 ~ 494) 간 지속되었다.  마한은 번조선의 68대 수한 왕이 목지라는 곳에 건국했던 나라였다. 

마한은 서(전1,350 ~ 전250)가 멸망한 후 이어진 진한과 남쪽에 새로 등장한 변한을 통치했던 강대국이었다. 진한의 주민들은 북서쪽 진(秦)의 강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고 진한의 문화는 화하족의 문화와 흡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변한도 진한의 풍습과 유사했던 것으로 전하는데 화하족의 기록에는 진한(辰韓)을 진한(秦韓)으로 변한(弁韓)을 변진(弁辰)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마한의 강역에서 서나벌(전57 ~ 전32)과 백제(전5 ~ 371)가 건국했고 변한 가까운 곳에서 가야가 시작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마한의 역년은 333년(전323 ~ 10)이고 마한은 백제로 이어진다.  진한은 전57년 서나벌로 이어지고 변한은 1세기 경에 가야의 강역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부여와 마한이 남북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마한이 있었다.

전 194년 번조선이 위만에 의해 왕조를 마감하면서 번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기준이 남동쪽으로 이동해 세운 나라 마한과, 같은 해 번조선의 장군 탁대가 세운 중마한이 있다.  기준의 마한은 백제에 합병되고 중마한은 신라의 전신인 시림(始林)(전32 ~ 307)의 강역으로 편입된다.  

북부여가 건국한 도읍지 웅심산은 옛 부여에서 확장된 북쪽 지역이었다. 그곳은 농경과 목축이 원활했던 곳으로 소금과 금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웅심산은 지금의 섬서성 정변현으로 비정된다. 이곳은 발해 때 부여부로, 글안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북부여의 두번째 도읍지 장당경은 대부여의 도읍지였던 곳으로 북부여가 대부여의 국권을 인수하면서 웅심산에서 옮겨갔다. 이곳이 옛 부여의 중심지였고 초기 고구려의 핵심 강역이었으며 발해의 서남쪽 강역이었다. 고려 때는 원의 심양인데 심양왕의 치소였다. 감숙성 평량시로 추정된다.

홀본은 북부여의 고두막한이 스스로 단군을 칭했던 곳이다.  고두막한은 동명왕이라고도 했는데 북부여의 5대 단군이다. 고두막 단군이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과 백제의 시조 온조의 조상이다. 홀본은 고구려가 건국한 곳이고 가까이에 국내성이 있었다.  지금의 감숙성 경성현으로 추정된다. 

가섭원부여의 도읍지 분릉은 지금의 산서성 삭주시로 비정할 수 있다.  당시에는 북옥저 지역으로 후에 치구루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발해의 솔빈부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좋은 말이 길러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고주몽은 이곳에서 성장했는데 가섭원부여의 핍박을 벗어나 북부여의 홀본으로 이동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고려 때 윤관장군이 낙타부대를 동원해 여진족을 정벌했던 곳이기도 하다. 서부여의 도읍지 영고탑은 지금의 영하자치구 고원시로 비정된다. 이곳에 남아있는 역사유적을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곳이 발해 때의 정리부로 추정되는데 발해가 멸망한 후 세워졌던 정안국의 도읍지로 추정된다. 마한의 도읍지 목지는 지금의 중경시 충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천성의 곳곳에는 2천년 전 시대의 역사유적이 남아있다.

이곳에 있는 삼성사로 추정되는 유적은 마한시대의 것으로 유추하기에 무리가 없다. 진한의 도읍지 진은 신라의 전신인 서나벌의 도읍지 서나벌이다. 사천성 성도시로 비정되는데 이곳에는 청구, 서, 진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있고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곳은 백제의 멸망으로 화하족의 역사 강역으로 편입되는 지역이다. 이곳이 초기 명의 남경응천부였다.  변한의 도읍지 변은 지금의 귀주성 안순시로 추정된다. 이곳은 후에 비류백제, 왜의 강역이 되었다가 당의 강역이 되었던 곳이다. 고구려의 광개토경호태열제가 정벌한 왜의 천주(泉州)로 추정된다.

글쓴이 이병화 역사연구가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번호제 목첨부작성일조회
     대륙고려 홈페이지 보존판
     12~13세기 세계 최강대국 고려 홈페이지 메인화면
     저서 '환단원류사' 구입 문의
373   실제 임나일본부 위치를 밝히다   10/22(수)  1675
372   근세조선에 의해 손상된 우리민족의 역사   10/22(수)  1270
371   북부여와 마한의 도읍지는 대륙   10/22(수)  1669
370   한국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   10/22(수)  853
369   환, 배달, 청구, 고조선의 도읍지를 밝히다   10/22(수)  1416
368   서울은 원래 어디였을까? (2)   10/22(수)  681
367   서울은 원래 어디였을까? (1)   10/22(수)  629
366       Re.."세종은 조선의 도읍지를 대륙에서 한반도로...   05/10(일)  372

 
처음 이전 다음       목록

ⓒ Copyright 1999~   TECHNOTE-TOP / TECHNOTE.INC,



| 상고사 | 게시판 | 자료실 | 천문해자 | Music Box | Photo | Poem

Copyrightⓒ 2005 BC.8937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