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2(수)
조회: 1939
고구려, 신라, 백제는 한반도와 만주에 있었던 나라인가 ?  

 

 

고구려 신라 백제의 강역은 대륙
삼국의 실제 위치에 대한 역사자료
2014년 07월 09일 (수) 15:21:03 이병화 bhlee9200@hanmail.net

고구려, 신라, 백제는 한반도와 만주에 있었던 나라인가 ?

오늘날 우리는 우리역사가 한반도와 만주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그러한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의심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반도사관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는데 반도사관은 근세조선 초기에 조작된 허위의 이데올로기이다.  대륙에 있던 고려를 승계한 근세조선은 대륙의 영토를 지켜내지 못하고 한반도로 이동했던 것이다.

   

고려의 강역이 한반도가 아니었다는 정황은 고려사,고려사지리지,요,금,송의 지리지 등을 종합 검토해보면 그 실상이 드러난다.  또 근세조선의 중심강역이 세종 때 변화했다는 사실도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기록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세종재위 년간에는 그 이전과 비교할 때 특이한 사안들이 발견된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훈민정음의 반포다.   세종시기에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게 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언어와 문자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농사방법의 변화를 암시하는 새로운 농사안내서가 발간되었고 질병치료에 관한 책자도 발간되었는데 이 책은 한반도의 각 지역에서 채취할 수 있는 토종약초를 수록하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질병이 만연해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도 한양도성의 축조시기와 그 규모, 궁궐의 조성시기와 그 위치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이전의 상황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천체관측 위치와 기후에 관한 기록                        

우리역사가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서 이루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단초는 삼국사기가 전하는 천체관측지와 기상정보와 자연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고구려와 신라,백제의 일식을 비롯한 천체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니라는 연구결과는 반도사관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도시전체가 함몰되었다는 지진기록,강이 말라붙었다는 가뭄기록,  수도없이 빈발했던 메뚜기떼에 의한 농작물 피해 등은 반도사관이 허구라는 지적사항으로 부족함이 없다.                           

문화유적의 흔적                           

역사의 강역을 추정하는 객관적 자료는 무엇보다 생활유적에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고대와 중세의 왕조들은 예외없이 대규모 궁궐을 짓고 호화생활을 누렸다는 사실을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서울의 경복궁과 창덕궁 등의 궁궐, 중국 북경시의 자금성,  일본 동경의 궁궐 등은 그곳이 근세조선의 왕들, 명, 청의 황제들,  일본의 천황들이 살았던 곳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고려와 근세조선 초기에 송경이나 한양에 있었다던 궁궐들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기막힌 현실을 감안할 때,  반도사관의 뻔뻔함과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북경시의 사정도 한반도와 다르지 않다.  원의 도읍지였다는 북경시에서 원의 역사유적을 찾을 수 없으며 대륙의 동부는 물론,  중부에서도 화하족의 상고사를 입증할 수 있는 역사유적을 볼 수 없어 급기야 '하, 상,주 단대공정'이라는 잃어버린 천년의 역사찾기 소동이 벌어진 처절한 몸부림을 똑똑히 목격했던 것이다.

한반도 평양시에는 고구려나 신라,고려시대의 건축물로 추정할 수 있는 건물이나 건물터가 한 곳도 없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도읍지에 궁궐이 35 곳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반도 경주시에는 단 한 곳도 확인할 수 없다. 공주시나 부여읍 그리고 김해시가 고대 왕국의 도읍지라고 확신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은 단 한번이라도 의심스럽다고 의문을 품어본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울릉도에 우산국이라는 고대국가가 있었다는 추정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못하는 강심장의 소지자들이 과연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도 타당한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서에 나타난 대륙의 활동기록                          

화하족의 역사서에 우리민족의 국가가 그들과 인접한 곳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백제에 관한 기록에서 발견된다. 실제로 백제는 송, 제, 양,진 ,수, 당과 국경응 접했기 때문에 백제사가 한반도의 역사라고 아무리 위장하려 해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백제가 한 때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진출했었다고 억지 해석하고 있다.   발해는 백제의 강역을 차지하게 되는데 반도사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다.  신라의 역사에서도 반도사관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신라의 강역 중 당에서 할애했다는 패주 또는 패강주라는 지역이 어디이며 신라말에 독자적으로 외교활동을 했던 강주는 어디인가 ?

또 고려의 도읍지를 관통하면서 흐르는 강이 북류한다는 기록이나 고려의 최대 국제무역지로 예성항과 흑산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한반도의 예성강 하류나 흑산도가 국제무역으로 번성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고려의 윤관장군이 여진족을 정벌하면서 낙타부대를 동원했다고 하는데 한반도의 함경도나 그 부근에서 낙타부대가 활동했다는 것이 신빙성이 있을까 ?

광개토경호태왕비, 진흥왕순수비, 무녕왕릉 등 한반도의 역사유물과 유적                             

반도사관을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반도와 만주에 있는 역사유물이 우리역사가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유물이나 유적을 그대로 믿기에는 문제가 있다.  

반도사관을 조작한 사람들이 주어진 여건에서 그대로 수수방관했을까 ?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반도사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을 조작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광개토태왕비의 위치와 공사과정, 진흥왕순수비의 위치,무녕왕릉의 묘지명 등이 저간의 사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모두가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닌 곳에 있고 해당유적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격식을 갖추지 못한 채 불완전한 형태로 거짓증언을 하고 있다.  

광개토경호태왕비에 기록된 광개토경호태왕은  광개토경호태열제가 바른 시호이며,  동황성에 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고, 진흥왕순수비는 대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에 있어야 마땅하며,  무녕왕릉의 위치와 그 형태는 그것이 진품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번호제 목첨부작성일조회
     대륙고려 홈페이지 보존판
     12~13세기 세계 최강대국 고려 홈페이지 메인화면
     저서 '환단원류사' 구입 문의
376   고구려 도읍지는 어디였을까 ?   10/22(수)  1411
375   평양에 고려궁전 하나라도 있는가 ?   10/22(수)  1343
374   고구려, 신라, 백제는 한반도와 만주에 있었던 ...   10/22(수)  1939
373   실제 임나일본부 위치를 밝히다   10/22(수)  1641
372   근세조선에 의해 손상된 우리민족의 역사   10/22(수)  1224
371   북부여와 마한의 도읍지는 대륙   10/22(수)  1603
370   한국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   10/22(수)  818
369   환, 배달, 청구, 고조선의 도읍지를 밝히다   10/22(수)  1340

 
처음 이전 다음       목록

ⓒ Copyright 1999~   TECHNOTE-TOP / TECHNOTE.INC,



| 상고사 | 게시판 | 자료실 | 천문해자 | Music Box | Photo | Poem

Copyrightⓒ 2005 BC.8937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