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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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고려궁전 하나라도 있는가 ?  

 

 

평양에 고려궁전 하나라도 있는가 ?
한국사 과제는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을 넘는 것
2014년 07월 09일 (수) 15:24:21 이병화 bhlee9200@hanmail.net

역사연구의 사료는 충분한가 ? 

우리민족의 옛 사서를 없애기 위해 광분했던 세력은 일제만이 아니었다.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시 당과 신라가 사고와 전적을 불태웠고 발해가 멸망했을 때 요가 발해의 사서를 불태웠다.  그렇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었다. 은밀하게 숨겨서 후대에 전해지던 사서들이 고려를 거쳐 근세조선 초기에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근세조선의 세조, 예종, 성종 시기에 이르러 우리민족의 상고사에 관련된 역사서와 선도사상서를 거의 다 수거해 없애버렸다. 왜 이 시기에 고사서와 전통사상서를 없애는 작업을 했을까 ?

   

 대륙의 강토를 상실한 근세조선과 그 강역을 차지하게된 명은 그 강토가 원래 명의 강역이었던 것으로 위장하고 우리민족의 역사가 만주와 한반도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속이기 위해 반도사관이라는 허구의 이데올로기를 조작했 냈던 것이다.  근세조선은 찬란했던 대륙의 역사를 반도의 역사로 둔갑시키면서 고조선 이전의 역사는 민족의 의식에서 지워버리고 고조선의 건국 사실마저도 신화로 꾸며 모호하게 만들고 잃어버린 강토의 회복은 아예 잊어버린 채 현상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명에 철저히 사대로 일관했던 것이다.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와 마한,고구려,발해의 역사는 축소, 비하,  왜곡하고 한, 당, 송, 명으로 이어진 초라한 화하족의 역사를 확대, 과장, 존숭하면서 대중화로 추켜세웠다.  근세조선은 자신을 대중화에 부속된 소중화로 자처하고 축소된 강역이라도 감지덕지하면서 기득권에 안주했던 것이다.   근세조선 때에도 민간의 우국지사들은 우리민족의 고사서와 선도사상서를 비밀리에 소장해왔으며 연구와 전승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장되었던 사서들마저 일제에 의해 거의 다 멸실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부도지',  '환단고기' 등 소중한 사서를 접할 수 있음은 천행이다.  우리역사는 그나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사서와 부도지, 환단고기와 같은 고사서 등으로 충분히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화하족을 중심으로 하는 이십오사와 일본서기, 고사기 등 왜의 역사도 함께 비교 검토되어야 한다. 

우리역사의 복원작업은 민간 중심으로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제도권 사학자들에게 이 작업을 맡길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도사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채 미몽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사관의 허구성

고려사에는 고려의도읍지 개경에는 수십곳의 궁궐과 수십곳의 대형 사찰과 사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반도의 개성시에는 단 한곳의 궁궐도 없고 과거에 그러했었다는 정황을 추측할 수 있는 최소한의 흔적도 없다.   고려의 피난도읍지였다는 강도와 송도에는 여섯곳의 궁궐이 있고 서경에는 일곱곳에 궁궐이 있었다고 하는데 한반도 강화읍에는 궁궐로 인정하기 어려운 단 한곳만이 고려궁지라고 아주 궁색한 주장을 펼칠 때 지적되고 있을 뿐이다.  한반도 평양에 고려의 궁전이 단 한곳이라도 있는가 ?

고려는 남경을 건설하면서 남경개창도감이라는 관청을 만들고 그곳에서 남경건설을 주도했다고 하는데 한반도 서울에 서울이 고려의 남경이었음을 간접적으로라도 추측하게 할 수 있는 흔적이 있는가 ?

반도사관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에서 그 허구를 드러내게 된다. 고려사를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반도사관이 성립될 수 없는 거짓임이 밝혀진다.   반도사관이라는 상식을 뛰어넘는 허위의 이데올로기가 생겨나지 않았다면 식민사관이 기댈 언덕이 없다.   반도사관이 구상되고 시멘트와도 같이 단단하게 굳어버릴 수 있었던 기저에는 사대사상과 자기비하의 열등감이 깔려있다.   반도사관은 우리민족의 민족사적 번영을 저해하는 사상적 질곡으로 작용함으로써 우리사회에 끼친 해악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 반도사관은 청과 일제가 조작해낸 식민사관의 숙주가 되었다.   그들은 반도사관의 취약성을 바탕으로 교묘하게 꾸며낸 식민사관으로 그들의 만행을 합리화하는 빌미로 악용하면서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말살시키려는 흉악한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식민사관의 극복은 반도사관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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