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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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도읍지는 어디였을까 ?  

 

 

고구려 도읍지는 어디였을까 ?
기록과 유적으로 살펴본 고구려의 도읍지는 여덟곳
2014년 09월 30일 (화) 16:36:15 이병화 bhlee9200@hanmail.net

기록에 나타나는 고구려의 도읍지                     

조선 중기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의 평안도 평양부가 고구려의 도읍지였고, 평안도 의주목에 고구려의 국내성이 있었으며, 평안도 성천도호부의 옛 지명이 졸본부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편찬 시 참고했다는 '해동고기'에는 고구려의 환도성이 고려의 서북면 영원진에 있었다고 전한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고구려국본기는 고구려는 주몽이 졸본에서 건국했고, 시조 주몽은 졸본에서 눌현으로 천도했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이 졸본천에서 고구려를 건국했고, 2대 유리명왕 때 국내성으로 도읍지를 옮겼는데 10대 산산왕때 환도성으로 천도했다고 전하고 있다. 11대 동천왕은 도읍지를 평양성으로 옮겼는데 이 때의 평양성은 왕검성이었다고 한다. 왕검성 평양은 대부여의 3국인 진조선,번조선,막조선 중 중심국인 진조선의 치소였던 부소량으로 추정할 수 있다. 16대 고국원왕은 외침으로 파괴된 평양성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어 환도성으로 잠시 머물다가 동황성으로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20대 장수왕은 도읍지를 평양성으로 옮겼는데 이 때의 평양성은 대부여 시기의 막조선의 도읍지였던 백아강으로 보는 것이 옳다.  24대 양원왕은 새로운 도읍지를 물색한 후 그곳에 장안성을 축조하고 거대한 도시를 조성했다고 한다. 고구려는 이곳에서 멸망하는데 이곳이 신라의 평양, 당의 안동도호부, 고려의 서경이었고, 원의 동녕부, 명의 동녕위였던 곳이다.  이와같이 역사서에 나타나는 기록을 종합해 보면 고구려의 도읍지는 모두 여덟곳이다. 

요약하면 고구려의 도읍지는 1) 졸본(홀본)  2) 눌현 3) 국내성 4) 환도성 5) 평양성1 6) 동황성 7) 평양성2 8) 장안성이다. < 표 1 >                   

반도인가, 대륙인가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의 역사관은 고려는 물론,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그리고 남북국 이전의 역사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반도사관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반도사관은 오늘날에도 아무런 의심없이 이어지고 있어 고구려의 강역은 당연히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있었다는 지리적 설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사관에 의하면 고구려의 도읍지 또한 만주와 한반도로 설정하고 있는데 대체로 1) 졸본 ( 요녕성 환인현 )  2) 국내성과 환도성 ( 길림성 집안시 ) 3) 평양성, 동황성, 장안성 ( 평안남도 평양시 ) 으로 비정하고  있다. <지도 1 >           

그렇지만 고구려가 만주와 한반도에서 영위된 국가였음을 뒷받침하는 역사의 기록이나 유적은 참으로 보잘것 없다.   

고구려의 건국지인 졸본이 요녕성 환인현이라는 견해는 언제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모호한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졸본은 평안도 성천도호부의 옛 지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바 요녕성 환인현의 유적이 졸본의 유적이라는 추정은 근거도 없는 무리한 판단인 것이다.  그 판단이 옳다면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허위라고 해야 옳다.  

또, 국내성과 환도성이 길림성 집안시에 있었다는 주장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배치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국내성이 조선의 평안도 의주목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사관이 이렇게 무리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소이는 지금의 의주에서는 고구려의 역사유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도사관론자들은 그들의 시각으로는 고구려의 역사유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고분이나 성터가 남아있는 길림성 집안시에 집착하는 것이다. 유적이 없는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에 국내성이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황당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의 의주가 원래 다른 곳이었는데 지명이 옮겨진 것이라면 사정은 달라지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될 당시의 의주목과 지금의 의주가 다른 곳일 가능성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지금의 압록강 이북 지역은 조선 초에는 조선의 강역이었다. 조선과 명은 지금의 요하 부근에서 국경을 직접 접하고 있었는데 그 동쪽에서 건국한 후금이 명, 조선과 전쟁을 치르면서 요하를 중심으로 하는 남북지역을 후금의 강역으로 흡수한 것이다. 전쟁 이후 조선과 청의 새로운 국경이 획정되면서 압록강 북쪽에 있던 의주목이 압록강 이남으로 위치와 지명이 함께 이동했던 것이다. 반도사관론자들은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면서 기록을 무시하고 유적만을 중시했기 때문에 오류를 범한 것이다.   

기록과 배치되는 유적을 어떻게 역사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   우리민족의 강역을 연구하면서 유의해야 할 사안은 해당 지명이 같은 곳에서 변화된 것인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옛 지명을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위치가 바뀌면서 지명도 함께 바뀐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적은 옮겨다닐 수 없지만 지명은 옮겨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평안남도 평양시가 고구려의 평양성,동황성,장안성이었고 고려의 서경이었다면 평양시에는 왜 고구려나 고려의 유적이 없을 까 ?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옛 고구려의 강역이었다가 신라의 강역이 되었다는 평양에 관한 기사가 없다. 심지어 경주에 대한 기록도 없다. 삼국사기는 원본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 지리지에는 고려의 서경에 대해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을 감안할 때 고려의 서경에는 고려의 궁궐이 다섯 곳 이상 일곱 곳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 그 위치가 어디였는 지 짐작이라도 하는가 ?  또 당시 고구려의 왕들은 과연 어디에 묻혀있나 ?   

신증동국여지승람 강계도호부 항목을 보면 그 지역에 황성평과 황제묘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곳에 거대한 무덤과 비석이 세워져 있는 광경을 서술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무덤은 여진족의 금나라  황제의 릉으로 전해져 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 무덤은 고구려의 광개토호태왕의 릉으로 확신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그 비석이 광개토호태왕의 훈적비이기 때문이다. 왜 조선 중기의 현지인들은 그것이 고구려의 유물이 아니라 훨씬 후대인 금의 유적으로 알고 있었을까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는 광개토경호태열제의 훈적비는 동압록수의 동황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도사관으로 보면 평안남도 평양시 부근에 있어야 부합된다. 어찌되었던 기록과 유적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는 북부여를 이은 나라였으며 북부여는 고조선의 대부여를 계승했다.  그런데 고조선이나 북부여, 고구려가 만주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은 역사서의 기록이나 유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만주나 한반도나 모두 고구려의 기본적인 역사의 자취가 없다.  고구려의 역사적 실체는 삼국사기와 고구려국 본기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접근할 수 있다.  고구려의 강역을 알아볼 때 고려해야 할 개념의 틀에서 다음 두가지는 피할 수 없는 기준이 된다. 우선 고구려는 성읍국가였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기본이 성곽을 갖춘 도시였고 전국에 200여 개의 성읍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 중요한 기준으로 천체관측지가 어디였느냐 하는 것인데 고구려의 천체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다.  고구려의 도읍지에 대한 기록에 부합하는 역사유적은 만주와 한반도가 아니라 오히려 대륙의 감숙성과 섬서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지도 2 >               

유적으로 추적한 고구려 도읍지                 

고구려의 건국 도읍지를 졸본이라고 표기하지만 홀본을 바른 표기로 보아야 옳다.   1) 홀본은 북부여의 도읍지였으며 서압록지역이었다. 만주와 한반도에는 서압록수, 동압록수로 지칭하는 강이 없다. 감숙성과 섬서성에는 북서에서 남동으로 흐르는 두개의 큰 강이 있는데 이것이 고대의 동서압록수였다.  따라서 홀본은 섬서성 빈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섬서성 빈현에는 고대사의 면모를 보여주는 역사유적이 즐비하다. 

2) 눌현은 고조선 때 이궁이 있었던 곳인데 고조선 당시의 지명은 상춘이었다. 후대에 주가성자로 바뀌었는데 주몽이 축조한 성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지금 이지명은 길림성장춘시 부근 주성자로 옮겨졌다. 눌현은 감숙성 경성현으로 비정된다. 지금 이곳에는 고구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유적이 남아있다.  

3) 국내성은 감숙성 경양시로 보는 것이 옳다. 고구려의 국내성이 어디였던 가를 알아보기는 비교적 수월하다. 관련 기록이 역사서의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발해의 서경압록부였고 고려의 보주로 내원성이 있었다. 요나라에 일시 빼앗겼던 곳이고 원,명,청의 강역으로 편입된 곳이다.  

4) 환도성은 고조선의 도읍지였던 장당경으로 추정된다. 환도성이 고려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곳이 고려의 강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발해의 환주, 그리고 요,금,원의 환주였다. 지금의 길림성 환인현은 청이 지명을 옮겨놓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졸본을 옮긴 것이 아니라 환도성의 위치와 지명을 옮겨놓은 것으로 판단된다.    

5) 평양성은 왕검성이라고도 지칭했는데 왕검성은 고조선 진한의 도읍지 부소량이었고 고구려 11대 동천왕 때 천도한 평양성이다.  이 평양성은 섬서성 기산현으로 판단된다. 이곳은 고려 때 요와 강역을 다투었던 강동6주의 용주였고 원의 동녕부에 속했던 파사부였다. 이곳 가까이에서 고려의 천리장성이 시작되었다.   

6) 동황성은 섬서성 한성시로 보는 것이 옳다. 이곳에는 섬서성의 서안시, 화음시, 기산현, 빈현과 같이 수많은 양의 역사문화유적이 남아있다. 고대 궁궐, 묘사, 사찰, 천체관측소 등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남아있어 이곳이 고대국가의 도읍지였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7)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천도했다는 평양성은 고조선의 마한의 도읍지였던 백아강으로 보는 것이 옳다. 고조선의 강역에서 마한의 도읍지는 가장 동쪽에 위치했다고 전하는데 고구려의 도읍지 평양이 마한의 도읍지였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한반도의 사정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곳은 고려 때 무주였고 원의 동녕부에 속했으며 고려말, 조선초에는 명의 강역이었다. 

8) 고구려 24대 양원왕이 축조했다는 장안성은 섬서성 서안시로 비정해야 한다. 섬서성 서안시에 남아있는 역사유적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지역의 역사유적은 그것이 고조선, 북부여, 고구려, 신라, 고려 등 우리민족의 유구한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임을 증언하고 있다. 고려사에 나타나는 기록을 감안할 때 이곳이 고려의 서경이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고구려의 장안성은 신라의 평양, 당의 안동도호부, 고려의 서경, 원의 동녕부, 명의 동녕위였던 곳이었다. 고려의 강역을 흡수하면서 경사를 북평( 감숙성 란주시 )에서 북경( 북경시 동성구 )으로 옮기고 대륙에 있던 조선의 강역을 완전히 점령한 후 동녕위라는 지명을 한,당의 역사중심지로 위장하면서 지명을 서안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중심강역은 지금의 감숙성과 섬서성 지역이었다. 그곳에 남아있는 역사유적이 사서가 전하는 사실과 일치하는 지 면밀하게 대조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역사는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되었다.  한반도에는 조선 중기 이후의 역사사실을 입증하는 역사유적이 있지만 그 이전의 우리민족사를 알려주는 역사유적은 찾기 힘들다. 대륙에 남아있던 우리민족의 역사유적은 명대 이후 무수히 파괴되었고 화하족의 것으로 위장되었고 변조되었다. 더구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우리민족의 문명은 대대적으로 훼손되었다. 그나마 섬서성의 역사유적이 상당량 남아있는 것은 그 지역이 화하족의 중심강역이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적이 화하족의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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