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4(금)
조회: 376
키타이,개주촉막군=문헌통고  

 

 

이름 한담 [ IP : 211.48.206.147 ]
제목 키타이,개주촉막군=문헌통고
홈페이지 http://kym5006.com.ne.kr
◎ 답변대상 글▷ Re..키타이라... 그게 거란인가요?(통날개)


이름:한담
홈페이지:http://column.daum.net/harnhistory/
작성일:2000.3.26(일) 14:04

카라 키타이(西遼)를 말씀 하신건가요?

어떤 지도를 보고 말씀하시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키다이는
"契丹(계단-거란.해땅)"으로 중세 서양에서 알려진 통설 "중국" 그 자체를 지칭 합니다.
티벳계로 알려진 "西夏"는 "카라 키다이:西僚(서거란)" 와 竝立하였읍니다.

서하도 키타이 라고 부르는지는 거의 생소하지만
<키타이>의 원래 뜻은 "官境,즉 해(奚,解)의 땅"이란 뜻이 아닌가 합니다(私見입니다)
우리말로 대응 하면 그 뜻은 "나라(奚,解種의 나라)"라고 해석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읍니다.
이름에서 보면 아시겠지만, 거란은 원래 선비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선비는 곧, 해모수(북부여)의 描裔라고 보는것이 타당할것입니다.
이 해모수는 만리장성을 사이에 두고 진시황과 직접 대결했던 인물입니다.
漢나라때는 "東胡"로 알려져 있었읍니다.

즉, 거란은 부여의 <別部>로 출발한것이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사실 거란의 진원지에 대해서 현재 정설이 존재 하지 않읍니다.

수,당대에 征遼(대 고구려전쟁)反亂時에 몇몇 선봉에 섰던 장수들이
거란부의 장수들입니다.
후에 大勃海(震,愼)의 變故를 틈타 그 局勢를 접수한것이 이른바 "大僚거란" 입니다.
태조는 "야율아보기-야루 아버지" 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북방계 유목민-부여,고구려 포함)의 행동반경은 엄청나다는 것 입니다.
기마족의 특성은 이질문화의 유입에 따라서
"半着(정착농경의 영향)半移(원래의 본능:상업,유목)"의 주거습관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기후나 풍토의 특성에 따라서 그 확장반경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다는 말 입니다.
隨書 백제전인가요? 백제가 스스로 征遼의 向途가 되겠다고 隨에 表를 올리면서 말하기를
"고구려의 국토는 긴 뱀처럼 띠를 두르고 있는듯한 형세라서, 그 땅을 지나기가 어렵다" 는 증언을 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만주의 "삼각지세"가 아니었단 말이죠.
박창범 교수가 천문관측의 기록을 참고하여 밝힌 고구려의 영역은 북중국과 만주(동북)
중앙아시아 스텝지대를 포함한 광역한 곳 이었읍니다.
이 지형은 전통적인 실크로드의 북로를 장악 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배달시대이후, 북부여-고구려-대발해-대요의 북방패자들이 이런 황금경로를 막강한 군사력으로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엄청난 富를 바탕으로 세력을 오랫동안 유지 했을거란 추측이 듭니다.
아마도, 이들의 전략은 南路(정착농경의 풍토로 폐쇄적 경향이 다분했을것 입니다)는 포기할 지언정
北路(유목민들은 막강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이 길을 장악 했겠지만 개방적 이었을 것입니다, 전형적인 商路입니다.)는 포기할수 없었을 겁니다.

어쨋든 지금 지도에서 주시하시는 그 키타이는 카라 키타이를 이르는듯 합니다.
아니면 원주민의 인식("나라"를 키타이"해의 땅"으로 인지되는.)에 의한 서양인의
지명 직역이라고 봐야 됩니다.
문제는 어떤 지도를 보셨던간에 이런 지명들이 최소한 19세기에도 통용 되었다는 사실 입니다.
참고로 "唐"도 일본인은 "가라"라고 불렀읍니다.
이 사실에 唐과 다분히 친연적이었던 거란은 스스로의 이름을 "가라"키타이(西僚)라고 할수 밖에 없는 이유도 찾아야 할것 입니다.
실상 <카라=西>로 대비될 만한 근거가 현재로썬 찾기가 힘든 이유에서 입니다.
이 경우엔 오히려 "가라=遼" 라고 보는것이 아마 타당 할것입니다.
다음은 부여나 고구려 나아가서는 고려의 위치를 파악 해야 됩니다.

졸고 "고려와 금의 관계-한담"을 일부 인용 하자면,

------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는 고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왕이 거(居)하는곳이 개주(開州)의 촉막군(蜀寞郡)이니 일컬어 개성부(開成府)라 한다....신라를 동주(東州),낙랑부(樂浪府)로 삼으니,이르기를 동경(東京)이라 하고.백제는 금주(金州)의 금마군(金馬郡)을 삼으니 일컬어 남경(南京)이다 남평양(南平壤)을 진주(鎭州)로 삼으니, 일컬어 서경(西京)이다. 서경이 가장 성(盛)하다. 모두 합하여 삼경(三京) 사부(四府) 팔목(八牧)에 군(郡)이 118, 현(縣)이 390, 주도(洲島)가 3700이다" 이러한 고려의 국가규모는 백관명칭(百官名稱)이 계(階),훈(勳),공신(功臣),검교(檢校)등 "중조(中朝)"와 흡사하다고 했다.
이는 당시의 국가 위계질서로는 있을수가 없다.
하지만 송이 감히 규제칠 못 하고 있다.

첨언(添言)하여
"최이(最爾)인 도이(島夷-고려를 지칭)가 석일(昔日)에 요(遼-거란)의 신(臣)으로 굽혀 스스로를 보존한 자다. <지금의 강폭(强暴)함에 개(槪)히 요(遼)를 멸하고 그 나라를 차지했다>"
요에 신사(臣事) 한것도 문제가 있지만, 요를 멸하고 그땅을 차지 했다면
우선 금과 밀접 하거나, 동일시(同一視) 하고있다.
이 시기는 왕계(王階)가 재위중인 때이므로 1120~30년대 송이 변경(卞京) 함락으로 정강(靖康)의 치욕을 당한 때와 같이 한다.

"卞梁 三戰定, 樂浪 一邀傳"

금의 신하 였다가 일찍이 징키스칸에게 귀부(歸附)하여 태종(太宗)까지 섬겼던 야율금재(耶律禁材)의 시(詩)에 있는 한 구절이다.
1234년작이다.
변량운운..(卞梁云云..)으로 1234년 금의 멸망을 말한다. 뜻을 풀어 보자면,
"금의 멸망이 곧 신라가 함께 몽골에 넘어간다"란 뜻이다.
금의 시조 아구타(兒骨打)는 그 성을 대김(大金-新金)이라 했고 선시(先始) 기자(箕子)의 후손 이라 밝힌적 있다.
고려의 낙랑부다.
이 대금에 의해 멸망된 거란(遼)이 북쪽으로 도망가 세운 나라가 카라 키타이(Kara-Kitai) 즉 서요(西遼)이다.
키타이란 그들 족명(族名)을 일컫는 것이고 카라 또는 가라는 나라 이름을 일컫는 것이다.
즉, 가야(加倻) 일수도 있다는 보는 문제는 몇 번은 더 숙고 해봐야 될 문제 겠지만 우리가 사서에서 흔히 보는 왜와 가라의 풀수 없었던 족원에 관한 문제가 .. 혹시 여기에 그 키(key)가 있을수도 있다.
거란은 "대요(大遼)"였을때나, "서요(西遼)"" 였을때나 유럽에서 보는 그들의 국명은 항상 <카라-키타이> 였다는 것은,
곧 그들 나라의 이름은 언제나 <가라>가 아닐까?

그냥 넘어 갈수는 없는 문제이다. ----

라고 밝힌적 있었읍니다.

감사 합니다.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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