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dan.bmp
도서주문   다음카페

No, 397
2014/10/25(토)
고종의 학식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고종의 학식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등록정보   [ 분류 : 자유 | 작성자 : 폴권 | 등록일 : 2002년 08월 07일 | 조회 : 151 | 추천 : 0 ]
      이메일   [ 이메일 : sqlk2025@ionet.netxyz ]


고종은 그리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 잘 아실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명성 황후 (민비)가 살아 있을 때는 그녀가 대부분의 일을 처리했고, 그 다음에는 엄비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잘 알려진 일입니다.

고종은 고려사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의 강토가 고려보다 넓어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홈의,

http://kym5006.com.ne.kr/text05.htm

(12세기 세계의 초강대국 고려)

에 가 보시면 대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아전인수 격? 고종의 조칙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고, 조선에 들어와 강토를 더욱 넓여서"라면 고려는 조선보다 작은 나라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고려사 지리지의 "고려의 강토는 폭원 1만리"는 3천리*3천리 정도로 볼 수 있겠군요

3천리라도 1200키로로 볼 수 있고, 1200키로를 1200키로로 곱하면 1백 44만 평방키로로, 남한의 14배 크기가 되는 겁니다.

1897년이면 이미 조선의 국력이 갈 데까지 간 다음의 일이지만, 최소한 고종의 뇌리 속에는 조선의 강토가 4천리라는 생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조칙에 넣은 것입니다.

언제 1천리를 상실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870년대에 나온 지도만 하더라도 아직도 압록강 이북 일부 지역이 조선 영토였었는데, 1890년대 이후의 지도들에는 이들 지역이 중국(즉 청국) 영토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1882년 임오군란으로부터 1884년 갑신정변 사이에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고, 대원군이 청나라 힘을 빌어 고종을 위협하던 그 무렵에 상실한 듯 합니다.

>지리지와 조칙이 모두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면 거기에 등장하는 '폭원'은 각각 넓이와 폭으로 사용됐거나, 아니면 둘 중 하나는 기록이 잘못되었거나

물론 정인지가 사용한 "폭원" 이란 의미와, 400여년 후의 인물인 고종이 사용한 "폭원" 이란 의미가 다를 개연성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조선이 영토를 넓혔다는 것은, 고려를 깎아내리는 동시에 (고종은 조선의 왕이지 고려의 왕이 아니니까요),

고종의 무식의 소치로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번호제 목이름첨부작성일조회
     저서 '환단원류사' 구입 문의
399   [re] 거북선은 일본인이 만들었다-?   10/25(토)  913
398   고구려의 위치 ; 남제서에서   10/25(토)  849
397   고종의 학식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10/25(토)  499
396   대륙고려 자료실   10/24(금)  457
395   신시에 대한 질문입니다.   10/24(금)  366
394   환웅과 단군이 UFO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10/24(금)  474
393   토의하자고 올립니다.   10/24(금)  324
392   토의하자고 올립니다.   10/24(금)  285

 
처음 이전 다음       목록

ⓒ Copyright 1999~   TECHNOTE-TOP / TECHNOTE.INC,


phandan.bmp
도서주문   다음카페



| 상고사 | 게시판 | 자료실 | 천문해자 | Music Box | Photo | Poem

Copyrightⓒ 2005 BC.8937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