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5(토)
조회: 916
(역사탐구) 기록된 세계 최고(最古)의 세균전  

(역사탐구) 기록된 세계 최고(最古)의 세균전
      등록정보   [ 분류 : 자유 | 작성자 : Paul Kwon | 등록일 : 2001년 10월 24일 | 조회 : 207 | 추천 : 1 ]
      이메일   [ 이메일 : caym2001@surfree.com ]


물론 봉신연의(봉신방) 나 마하라바타, 그리스 신화, 북유럽 신화 등에도 세균전에 대한 묘사는 나옵니다만,

역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최초의 세균전은 아마도 기원전 700년경 앗시리아와 이스라엘과의 전쟁 때일 것입니다.

앗시리아는 우리 민족과도 관련이 없지 않은 민족입니다. (이에 대해선 후술)

전형적인 전사민족이요, 유목민족이었습니다. (현재도 앗시리아인이라고 자칭하는 민족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후술)

앗시리아는 그 전에도 있었다 없어졌다 했으나, 기원전 934년경 재건국하여,

기원전 745년 즉위한 티글랏-필레셀 3세 때부터 국력이 상승,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세나케립(성경에는 산헤립이라고 나옴) 왕 때에 이르러서는, 당시 이라크로부터 터키, 시리아에 이르는 중동 전체를 다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라비아로 가는 무역로는, 유다 왕 히스기야(헤제키야가 옳으나, 한글 성경에 나온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으므로 그리 씀) 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북부가 앗시리아에게 점령되자, 이스라엘 왕을 칭하고 주변의 요르단과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단에 있는 여러 도시국가들의 맹주가 되어 앗시리아의 가시가 되었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 인들 (즉 흑인들) 이 지배하고 있던 이집트는, 옛날의 영광을 잃어버린 지 오래 되었고,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지배에서 저항하는 거의 유일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미국에 저항하는 탈레반, 빈 라덴과 같은 입장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세나케립이 페르시아를 치는 동안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왕을 칭하자, 세나케립은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습니다.

처음부터 동맹군은 세나케립의 대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고, 숫자적으로 그나마 상대가 될 법했던 이집트군도 앗시리아군에게 완전히 깨져 도망갔습니다.

마침내 주변의 다른 도시들은 모두 앗시리아에 항복하고, 예루살렘과 요새인 라키시, 아제카 세 도시만 남았습니다.

세나케립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무기인 투석기(Catapult)를 이용, 중동 최고의 요새였던 라키시를 부숴 버렸습니다. 이 때의 광경을 그린 부조(浮彫)가 아직도 남아 있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사람들을 맞고 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갑옷으로 무장한 앗시리아 전사들이 불화살, 돌 등을 던져대며, 갑옷도 제대로 없는 이스라엘군을 묵사발 만드는 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어쨌든, 라키시의 함락은 엄청난 충격을 주어, 그나마 남아 있던 동맹도시들마저 모두 앗시리아로 돌아서고, 오래지 않아 아제카도 함락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앗시리아군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사료되며, 이 때문에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은 포위전으로 빼앗기로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리 될 것을 예견, 미리 터널을 파서 우물과의 통로를 만들어 놓았었습니다. (지금도 있음)

그러나 성중의 수비병은 5천도 되지 않고, 센나케립의 군사는 최소 10만 정도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믿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책인 "열왕기하" 에서는, 당시 히스기야의 모사였던 이사야

(선지자로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선지자가 종교지도자는 물론, 모사, 재판관 노릇도 하였습니다.

왕건 시대에도 술사(術士)종훈이 견훤의 모사를 맡았고[능환의 역할은 드라마에서 각색한 것이고, 최승우도 그저 문사였을 뿐],

점 잘 치는 최지몽이 고려 6대를 섬기는 등, 이런 사람들의 힘이 세었지 않습니까?)

의 기록을 토대로, 밤새 여호와의 천사가 앗시리아군을 쳐서 18만 5천 명이 죽었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 에 진실이 나옵니다.

헤로도토스는 희랍어 말고는 못했기 때문에,

(사실, "희랍" 이 "그리스" 보다 더 맞는 말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헬라스", 현대 희랍어로는 "엘라스" 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잘못 적은 경우도 있지만, 아뭏든 그에 의하면 이집트의 왕이 군비를 게을리 하다 적들에게 몰리게 되자, 쥐들이 나타나 적들의 활, 팔 등을 물어뜯어 먹어 이겼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즉, 이해 되는 말로 번역하자면,

앗시리아군은 페스트로 전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 시 예루살렘 성중에는 역병이 돌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앗시리아 군들이 돌아가자마자 히스기야도 병에 걸려 죽게 되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무화과 열매를 따서 (아마도 비방의 약재를 섞어) 약으로 썼다고 하니 아마 선(腺)페스트였던 모양입니다.

페스트를 옮기는 것이 쥐(정확하게는 쥐벼룩)라는 것을 당시 알았던 것 같지는 않으나, 아뭏든 쥐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지자 겸 모사 이사야는, 우물로 가는 비밀 통로로 제자들을 시켜, 쥐들을 자루에 넣어 풀어 놓았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천사들" 이란 "여호와를 따르는 사람들" , 즉 이사야의 제자들이라고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중동 지방은 후덥지근하고, 라키시, 아제카를 공격할 때에 앗시리아군은 적잖은 피해를 입었었으며, 많은 병사들이 야영해야 했으므로 위생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 때에 쥐들을 풀어 놓았으니, 어찌 되었겠습니까.

순식간에 페스트가 돌아, 앗시리아군 태반이 죽고, 세나케립은 예루살렘 정복을 포기하고 돌아갔으며, 예루살렘은 끝내 앗시리아군에게 정복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후에 세계 종교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유태인들은 이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실아남기만 하면, 어떤 방법이든 된다는, 이런 사고방식에 유태인들은 길들여져 살아가고 있고, 이것이 수십 대에 걸쳐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러니 그들의 힘이 무서운 것입니다.

후에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비위를 거슬렸다가 톱에 썰려 죽었다고도 전하여지는데, 그 때 죽어간 병사들의 원혼이 한 짓인지는 알 수가 없군요.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창닫기



| 상고사 | 게시판 | 자료실 | 천문해자 | Music Box | Photo | Poem

Copyrightⓒ 2005 BC.8937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