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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05
이름: bc8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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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동안 변하지않은 한자의 표준어  

오늘날 중국어는 크게 광동어 북경어로 대별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마다 언어의 차이가 심해 남쪽과 북쪽 사람은 서로 무슨 말을하는지 잘 못 알아 듣는다고 할 정도이다.

세종대왕께서 서둘러 훈민정음을 만들어 내신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통일된 언어를 사용 할 수 없다면 우선 글자 만이라도 바른 음운체계를 확립시켜 나랏말씀에 기본으로 삼고자 하였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할때 먼저 '동국정운'을 편찬하여 우리나라에서 쓰던 한자음을 정리 하였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에 중국어와 통하도록 '홍무정운'을 번역하여 중국의 표준음을 제시한 '홍무정운역훈'과 '사성통고' 를 편찬 하였다.

음운학의 대학자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500여년 전에 한.중 음운통합 작업을 실시하여 완성을 하였고 표준말 체계를 완성했기 때문에 우리의 말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고려때 음운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여 써오다가 오늘날 북경어를 표준어로 정했다. 그러나 자기들의 발음하는 그대로 글자를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오늘날 중국에서는 한자가 뜻 글자 로만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글자는 뜻만 새기고 발음은 제각각이 되었다. 우리측에서 보면 마치 사투리를 읇어대것 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말로 빨리 오라는 말을 한자(漢字)로 표기할 때, 쾌래(快來) 또는 속래(速來)라고 하면 될 것을, 쾌쾌듸래래(快快的來來)라고 한다던가, 대한민국(大韓民國)·조선(朝鮮)·학교(學校)·도로(道路)·국회(國會)·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 등 중국과 우리는 똑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발음은 우리것이 더 효율적인 것이다.

이것이 500년 동안 변하지 않은 한자의 표준어 이다.

실제로 우리는 대한민국(大韓民國)·조선(朝鮮)·학교(學校)·도로(道路)·국회(國會)·정치(政治)·경제(經濟)·문화(文化) 등의 글자를 보면 알겠지만 뜻도 새기고 글자 하나 하나에 소리도 부여했던 것이다. 한글이 뜻글자 이자 소리글자 라는 이유이다. 

 


다음은 율곤선생님 강연中 일문일답

 

 

 


 

훈민정음을 페기하라는 최만리상소문과 세종의 통쾌한 답변 전문 

    
  bc8937 : 이글은 구길수님의 홈페이지에서 인용했습니다. 원문의 내용과 별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번역이 잘된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무슨일을 하고자 할때 반대의 벽에 부딪치는 것은 늘상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조선력사 500년 동안 이처럼 통쾌한 반박은 없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폭넓은 학식이 아니었다면 아마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은 예봉이 꺽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초기 조선의 정치적안정은 이렇게 망말을 하고도 옥살이를 면할 수 있었을 만큼 조정의 언로가 열려있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세종대왕은 성군중에 성군입니다. 그래서 大王 인가....


 


 

 

*** 혹시나 최만리 상소문을 오해하는 독자들님들이 있을까하며 또 우리 한글이 창제당시부터 사대모화 사상에 빠진 미친선비들에 의해 얼마나 설움을 받았는지를 알릴 필요가있어 최만리 상소문 전문과 세종의 통쾌한 답번 전문을 올립니다 ***

 

1. 세종실록과 최만리 상소문


* 세종실록
계해 25년 “시월초 임금님께서 친히 말글 이십팔자를 제정 하시니 그것은 옛 글자를 모방한 것이다”.(十月上親製言文二十八字其字倣古篆)

*부제학1) 최만리 상소문 전문
훈민정음이 반포된지 50일만에 당시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최만리등 집현전 학사들은 훈민정음 반포 반대 상소를 올렸는데 이 상소문 속에는 당시 세종이 옛 글자를 모방한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과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 중국에 대하여 얼마나 실례인가 하는 당시 선비들의 생각과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음으로 좀 번거롭지만 여기에 그 전문을 싣는다.
1)부제학(副提學) - 당시 집현전의 사실상 책임자로 그 위 대제학(大提學)은 명예직이었음

경자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등 상소문에 가로되
신등이 언문제작한 것을 업드려 보니 지혜를 움직여 그것을 제작한 것이 가히 신묘하여 천고에 특출난 것이나 신 등의 좁은 소견으로는 오히려 의심스럽고 위험한 면도 있는 것 같사와 삼가 소를 올리고 업드려 성상의 재가를 바라옵니다. 첫째 우리 조정은 태조대왕 때부터 지성으로 중국을 섬겨 한결같이 중국의 법제를 따라와서 지금도 글자나 풍속이 중국과 한가지인 이때에 언문을 지으셨다기에 혹시나 하여 말씀을 드리옵니다.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으로 한 새 글자가 아니라 하셨는데 글자의 모양은 비록 옛 전자를 모방 했다하나 발음이나 글자의 조합이 옛것과 달라서 실로 옛것을 근거했다고 볼 수 없음으로 만약 이것이 중국에 흘러 들어가 혹시 비방 하는자가 있다면 이는 중국을 섬기고 사모하는 우리 정서에 부끄러움이 아니옵니까?


또 한가지는 자고로 구주(九州)의 안이 비록 풍토가 다르다고 해서 별도로 문자를 만들지는 않았사옵니다. 오직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 등이 각자 그들의 문자가 있으나 이는 모두 오랑케의 일이라 족히 거론 할 것도 없사옵니다.


옛 글에 이르기를 중국의 문화로써 오랑케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었어도 오랑케에게 변화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나이다. 역대중국에서는 다 우리에게 기자(箕子)의 유풍(遺風)이 있기 때문에 문물이나 예의 나 음악이 중화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지금 특별히 언문을 만들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케가 된다면 이는 소위 향료(蘇合)1)를 버리고 쇠똥구리(螗螂)2)를 취하는 것이니 이 어찌 문명을 크게 더럽히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또 한가지 신라 설총의 이두는 비록 저속한 글이나 다 중국에 통용되는 한자를 빌려 말을 돕는데 쓰게 했기 때문에 문자(한자)와 더불어 크게 다른 점이 없었나이다. 그런고로 비록 서리(胥吏)나 노복의 무리라도 반드시 그것을 익히고자 할진대 먼저 몇권의 책을 읽어 문자를 안 연후에야 이두를 쓰게되니 이두를 쓰는 자는 모름지기 문자에 의지한 연후에야 능히 뜻을 전달 할 수 있는 고로 이두로 인하여 문자를 아는 자가 많으니 학문을 이르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옵니다.


만약 우리 나라가 처음부터 문자를 알지 못하여 끈을 맺어서 일을 기억하는 세상이라면 일시적으로 언문을 빌려쓰는 것은 오히려 괜찮을 것이므로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말할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편안하기보다는 좀 더디더라도 중국에 통용되는 문자를 쓰는 것이 장구한 계획이라고...


하물며 이두를 행한 지가 수천년 이라 관청의 장부나 모임을 기약하는 등의 일에 막히는 페단이 없는데 어찌하여 오래도록 쓰여지고 페단이 없는 것을 버리고 아무 이익이 없는 비천한 언문을 만드셨나이까? 만약 언문을 쓰게되면 관리된 자들이 언문만 익히려고 할 것이고 문자 배우기를 원하지 않아서 결국 관리들은 두파로 나뉠 것이고 관리된 자가 언문으로써 관청일을 하게 된다면 후진(後進)들은 다 그와 같이 언문 이십칠자로 세상에 입신(立身)을 하려 할테니 어찌 수고로히 중국의 성리학을 공부하겠나이까? 만약 이같이 된다면 수십년 후에는 참다운 문자인 한문을 아는자가 극히 적고 언문에 능한 자만 있어서 관리들은 중국 성현의 문자를 알지 못하는 즉 사리가 담벼락을 마주한 것 같이 될것이니 헛되이 언문만 공부한다면 창차 어디다 쓰겠나이까?


우리 나라가 오래 동안 참다운 학문을 숭상해 왔는데 이 학문이 사라질까봐 두렵나이다. 전의 이두는 비록 한자로 쓰고 있는데도 유식한 사람은 오히려 비천하다고 하여 관리들의 문서를 바꾸려고 하는데 하물며 언문은 문자(한자)와는 맹세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 것들이 전용하는 말일뿐이옵니다. 가령 언문이 전의 조정(고려나 그 이전)때 부터 있던 것을 빌려쓴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문명시기에는 오히려 글자를 분별하여 도에 이르게 하는데3) 뜻을 두어야 하거늘 오히려 구습에 따르려 하시나이까? 이는 반드시 다시 고치려는 의식있는 자가 있을 것 이며 이는 불을 보는 듯이 뻔한 이치이옵니다.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금을 통해서 골치 거리인데 지금 언문을 빌려쓰는 것은 신기한 한가지 재주에 불과한 것으로 학문에 손해가 가고 나라를 다스림에 아무런 이익이 없어 이를 반복해서 생각해봐도 옳다고 볼수 없나이다.


또하나 말씀하시기를
“만약 형벌이나 옥사를 이두문자로써 한다면 글자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백성이 단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억울하게 당할수 있으나 언문으로 바로 그 말을 쓰고 읽어서 듣게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백성일지라도 모두 억지로 굴복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하셨나이다. 그러나 자고로 중국에서는 말과 글이 같은데도 옥사나 송사의 일에 원통한 일이 심히 만사옵니다. 우리 나라의 일을 예로들어 말씀드리자면 옥에있는 죄수가 이두를 해독하여 문초한 사실을 친히 읽고 그 무고함을 알고 있다해도 매질에 못 이겨 굴복하는 자가 많을 것이옵니다. 이는 문초한 글의 뜻을 알지 못해서 당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옵니다. 만일 그렇다면 비록 언문을 쓴들 여기서 무었이 다를 것이옵니까? 이것은 형벌과 옥사의 공평하고 불공평 한 것은 옥리(獄吏)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지 말과 글이 같고 같지 않은데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므로 언문으로 옥사를 공평히 하신다는 것에 신등은 그 옳은 바를 찾아 볼수가 없나이다.


또 하나 무릇 일과 공을 세움에 쉽고 빠른 것을 귀하게 여지지 않는데 근래에 국가에서 일을 처단함에 모두 속성으로 하고 있으니 나라를 다스림에 그릇됨이 있을까 두렵나이다.


상고하여 말씀 드림니다. 언문을 부득이 사용하신다면 이것은 풍속을 크게 바꾸는 것으로 마땅히 재상들이나 아래로는 모든 각료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의 하셔서 모두 옳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시행시기를 세 번쯤 생각하셔서 역대의 임금에 거스름이 없고 중국에 부끄러움이 없어서 백세 후에 성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의혹 스러움이 없은 연후에야 가히 시행해야 할 것이온데 이제 널리 대중과 의논함을 택하지 아니하고 갑작스레 아전무리 수십인 에게 명하시어 그것을 익히게 하였고 또 옛사람이 이미 이루어놓은 운서(韻書)를 가볍게 고처 그 상고할수 없는 언문을 붙여서 모아놓고 공인 수십인을 모아 그것을 새기고 온 천하에 반포하려 하시니 후세 사람들의 공논과 논의가 어떠하겠습니까?


또 근래 성상께서 청주온천에 행차하실 때 특별히 흉년을 염려하시어 따라가는 사람이나 제반사를 간략하게 하라 하셨기에 전날에 비해 경비가 십중팔구나 절감되었고 조정에 올라오는 공무 역시 의정부에 위임하시었는데 그 언문이란 국가의 위급한 사항이나 부득이 기한을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어찌 홀로 휴양소 에서까지 몰두하시어 성상께서 옥체를 조섭하실 때 번거롭게 하셨으니 신등은 그 옳은 바를 찾아볼 수가 없나이다.


또 하나는 옛 선비들이 이르기를
“무릇 백가지 애완 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다 선비의 공부하는 뜻을 빼앗게 된다” 고 하였고 지금도 좋아하는 짖만 따라가면 선비의 뜻이 상하게 되는데 지금 동궁께서는 비록 덕성(德性)은 성취하셨으나 오히려 마땅히 중국 성인들의 학문에 전염하시어 그 깨닫지 못한 것을 탐구하셔야 하는데 그 언문이라는 것을 유익한 것이라 하셨다니 그것은 단지 문사들의 재주 하나에 불과한 것 일 뿐입니다. 하물며 전혀 국가 다스림에 이로움이 없는 것에 종일 생각을 소비하시니 부지런히 공부하셔야 할 이때에 실로 손해가 크옵니다.
신등의 글이 재주가 없어 죄를 기다립니다. 그간 시종해 오며 마음에 있던 바를 참지 못하고 감히 요점을 정리하였사오니 성상의 총기로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 庚子集賢殿副提學崔萬理等 上䟽曰臣等伏覩諺文制作至爲神妙創物運智特出千古然以臣等區區管見尙有可疑者敢布危懇謹䟽于後伏惟聖載 一. 我朝祖宗以來至誠事大一遵華制今當同文同軌之時創作諺文有駭觀聽儻曰諺文皆本古字也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若流中國或有非議者豈不有愧於事大慕華 一自古九州之內風土雖異未有因方言而別爲文字者唯蒙古西夏女眞日本西蕃之類各有其字是皆夷狄事耳無足道者傳曰用夏變夷未聞變於夷者也歷代中國皆以我國有箕子遺風文物禮樂比擬
中華今別作諺文捨中國而自同於夷狄是所謂棄蘇合之香而取螗螂之丸也豈非文明之大累栽 一新羅薛聰吏讀雖爲鄙俚然皆借中國通行之字施於語助與文字元不相離故雖至胥吏僕隸之徒必欲習之先讀數書組知文字然後乃用吏讀用吏讀者須憑文字乃能達意故因吏讀而知文字者顔多亦與學之一助也若我國元不知文字如結縄之世則姑借諺文以資一時之用猶可而執正議者必曰與其行諺文而姑息不若寧遲緩而習中國通行之文字以爲久長之計也而况吏讀行之數千年而簿書期會等事無有防礎者何用旼舊行無弊之文別創鄙諺無益之字乎若行諺文則爲吏者專習諺文不願學問文字吏員岐而爲二荀爲吏者以諺文而官達則後進皆見其如此也以爲二十七字諺文足以立身於世何須若心勞思窮性理之學哉如此則數十年之後知文字者必少雖能以諺文而施於吏事不知聖賢之文字則不學墻面昧於事理之是非徒工於諺文將何用哉我國家積累右文之化恐摲至掃地矣前此吏讀雖不外於文字有識者尙此鄙之思慾以吏文易之而况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燮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必有更張之議者此灼然可知之理也厭舊喜新古今通患今借諺文不過新寄一藝耳於學有損於治無益反覆藝之未見其可也一若曰如刑殺獄辭以吏讀文字書之則不知文理之愚民一字之差用或致寃今以諺文直書其言讀使聽之則雖至愚之人悉皆易曉而無抱屈者然自古中國言與文同獄訟之間寃枉甚多借以我國言之獄囚之解吏讀者親讀招辭知其誣而不勝捶楚多有枉服者是非不知招辭之文意而被寃也明矣若然則雖用諺文何異於此是知刑獄之平不平在於獄吏之如何而不在於言與文之同不同也慾以諺文而平獄辭臣等未見其可也一凡立事功不貴近速國家比來措置皆務速成恐非爲治之體儻曰諺文不得已而爲之此變易風俗之大者當謀及宰相下至百僚國人皆曰可猶先甲先庚更加三思質諸帝王而不悖者諸中國而無愧百世以俟聖人而不惑然後乃可行也今不博採群議驟令吏輩十餘人訓習又輕改古人已成之韻書附會無稽之諺文聚工匠數十人刻之劇欲廣布其於天下後世公議何如且今淸州椒水之幸特慮年兼+欠(흉년들겸)扈從諸事務從簡約比之前日十减八九至於啓達公務亦委政府若夫諺文非國家緩急不得已及其之事何獨於行在而汲汲爲之以煩聖躬調燮之時乎臣等凡未見其可也一先儒云凡百玩好皆奪志至於書札於儒者事最近然一向好者亦自喪志今東宮雖德性成就猶當潛心聖學益求其未知也諺文縱曰有益特文士六藝之一耳况萬萬無一利於治道而乃硏精費思竟日移時實有損於時敏之學也臣等俱以文墨末技待罪侍從心有所懷不敢合黙謹整肺腑仰瀆聖聰
1) 蘇合 - 인도산 향료
2) 螳螂 - 사마귀 똥, 쇠똥벌래의 쇠똥구리
3) 變魯至道 - 變魯는 魚魯混眞과 같은 말이다. 즉 어로혼진은 魚자와 魯자가 비슷한여 魚魯不辨 이란 말이 있드시 혼동되므로 글자를 혼동해서 서로 뒤섞여 쓰는 것을 말한다. 至道는 도리에 맞다는 뜻.

이상이 당시 급제, 지금 같으면 고등고시에 합격한 이 나라 최고 지성이라는 집현전 학사 최만리 등의 상소문이다. 웬만한 임금 같았으면 이 상소문에 기가 죽을수 밖에 없었은 것이나 세종대왕께서는 이 구역질나는 상소문을 보시고 지금 이글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도록 이들에게 호통을 치시고 이들을 어린애 다루듯 하는데 이는 세종대왕께서 이들보다 얼마나 학식이 높으신가 하는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면 세종대왕의 답변을 보자

* 세종의 답변
임금님께서 최만리등이 올린 상소문을 읽어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히들이 말하기를 발음하는 것이나 글자 조합한 것이 진실로 옛것 같지가 않다고 했는데 설총의 이두역시 옛것과 다른 소리가 아니더뇨?
그러나 이두를 제작한 본의는 그 백성을 편안히 하려는 것 밖에 없지 않드뇨? 그와 같이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언문역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드뇨?
너히들은 설총이 한 것은 옳다고 하면서 너희들 임금이 한일은 틀렸다고 하니 어찌된 심뽀인고?
또 너히들이 운서(韻書)가 무었인지나 아느뇨? 도대체 사성(四聲)1)이나 칠음(七音)2)의 자모(字母)가 몇개인지나 아느뇨? 이것을 만약 내가 바로잡아놓지 않으면 누가 있어 바로잡아 놓겠느뇨?(너희들 주제에 할수있을 것 같으냐) 또 상소문에 말하기를 언문만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한가지 재주에 불과 하다고 했는데 내가 그전부터 소일하기 어려워 서적으로 벗을 삼고 지냈거늘 어찌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이 좋아하는 마음에서 글자를 만들었겠느뇨?
또 이 글자 만드는 일이 어찌 들에 나가 매를 부리며 사냥이나 하는 일과 비교 될바가 아니거늘 너히들 말이 괘심하기 짝이 없도다.


또 내가 나이가 많아 국가의 모든 일을 세자에게 전담시키고 있어서 비록 작은일 이라도 참여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하물며 언문을 만든는 일이라고 빼 놓을수 있겠느뇨? 만약 세자를 동궁에만 처박아둔다면 글자 만드는 일을 환관내시 나부랭이하고 하란 말이드뇨? 너희들이 진정 나를 시종 하는 신하라면 내 뜻을 확실히 알아서 말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뇨?”
1) 사성(四聲) - 上聲, 去聲, 平聲, 入聲
2) 칠음(七音) - 牙, 舌, 脣, 齒, 喉, 半舌, 半齒音.

上覽䟽謂萬理等曰汝等云用音合字盡反於古薛聰吏讀亦非異音乎且吏讀制作之本意無乃爲其便民乎如其便民也則今之諺文亦不爲便民乎汝等以薛聰爲是而非其君上之事何哉且汝知韻書乎四聲七音字母有幾乎若非予正其韻書則伊誰正之乎且䟽云新奇一藝予老來難以消日以書箱爲友耳豈厭舊好新而爲之且非田獵放鷹之例也汝等之言顔有過越且予年老國家庶務世子專掌雖細事固當叅決况諺文乎若使世子常在東宮則宦官任事乎汝等以侍從之臣灼知予意而有是言可乎

최만리등은 세종대왕의 청산유수 같은 반박에 얼굴을 붉히나 그래도 핑계는 댄다.

최만리 등은 대답하여 가로되 설총의 이두는 비록 소리는 다르다고 말씀 하셨으나 소리를 의거하고 풀이를 의거하여 문자(한문)를 말로 돕는지라 크게 다른 것은 아니옵니다. 그런데 지금 언문은 모든 (옛) 글자를 합하여 아울러 쓰고 그 소리의 해석만 변경하였으니 (한문)글자의 형태가 아닙니다. 또 (언문을) 신기한 한가지 재주에 불과 하다고 한 것은 글을 쓰다보니 문장 상 어쩌다 그리된 것이니 별 뜻이 있어 그리한 것은 아니옵니다.
또 동궁께서 공무를 처리하는 일이 비록 작은일 일지라도 참결(叅決)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나 급하지 않은 일인데도 (언문에)하루종일 신경을 쓰셔야 하옵니까?
萬理等對曰薛聰吏讀雖曰異音然依音依釋語助文字元不相離今此諺文合諸字而並書變其音釋而非字形也且新奇一藝云者特因文勢而爲此辭耳非有意而然也東宮於公事則雖細事不可不叅決若於不急之事何竟日致慮乎

세종대왕께서 대노하여 말씀하신다.
얼마전에 김문이 왕후께 고하기를 언문을 만드는 것은 나뿌지가 않다고 하더니 지금은 반대로 나뿌다고 하는뇨? 또 정창손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이란 책을 (언문으로)만들어 반포한 후에 충신 효자 열여 등이 난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사람이 하고 하지 않는 것이 다만 사람의 자질에 여하에 달려있지 어찌 언문으로 책을 번역 하였다하여 금방 다 효과가 있겠느뇨? 이따위 말들이 어찌 사리가 있다는 선비의 말이라 할수 있겠는고? 참으로 쓸모없는 속된 선비로다. (그런데 이말은) 이보다 앞서 세종께서 정창손에게 ‘내가만약 언문으로 삼강행실 이란책을 번역하여 반포하면 우매한 지아비나 지어미라도 다 쉽게 읽어 충신,효자, 열여가 배출될 것’ 이라고 했기 때문에 정찬손이 (책을 반포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그따위 말을 했기 때문에 세종께서 오늘 그와같이 질책하신 것이다.


세종께서는 다시 말씀 하신다.
내가 너히들을 부른 것은 처음부터 죄를 묻고자 함이 아니라 다만 너희들 상소문 가운데 한두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부른 것이니라. 그런데 너희들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말만 바꾸어 이랫다 저랫다 대답하니 너희들 죄는 벗어나기가 어렵게 됬도다.
하시고 드디어 부제학 최만리, 직제학 신석조, 직전 김문, 응교 정찬손, 부교리 하위지, 부수찬 송처검, 저작랑 조근 등을 의금부에 명하여 하옥 시켰다가 다음날 명을 내리어 석방 시켰는데 다만 정찬손은 파직시키고 김문은 왕후께 드렸던 말과 앞 뒤 말바꾸는 짖을 하였으므로 의금부에 전지를 내려서 국문토록 하였다.
上曰前此金汶啓曰制作諺文未爲不可今反以爲不可又鄭昌孫曰頒布三綱行實之後未見有忠臣孝子烈女輩出人之行不行只在人之資質如何耳何必以諺文譯之而後人皆效之此等之言豈儒者識理之言乎甚無用之俗儒也前此上敎昌孫曰予若以諺文譯三綱行實頒諸民間則愚夫愚婦皆得易曉忠臣孝子烈女必輩出矣昌孫乃以此啓達故今有是敎上又敎曰予召汝等初非罪之也但問䟽內一二語耳汝等不顧事理變辭以對汝等之罪難以脫矣遂下副提學崔萬理直提學辛碩祖直殿金汶應敎鄭昌孫副校理河緯地副修撰宋處儉著作郎趙瑾乎義禁府翌日命釋之唯罷昌孫職仍傳旨義禁府金汶前後變辭啓達事由其勅以聞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 몇 개가 있다
그 하나는 여기 주제와는 상관없는 객설 이지만 세종께서 우리 한글을 만드실 때 신하 몇한테 적당히 명을 내려서 만든 것이 아니고 청주온천으로 휴양을 가셔서도 만사 다 잊고 푹 쉬시는 것이 아니라 몸소 고심하여 한글을 만드셨다는 것에 감격의 눈물이 나고 얼마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던가에 눈물이 나며 급제하여 들어온 일류 학자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시고 훈계하시니 얼마나 유식 하셨던가에 한 번더 존경이 간다.

다음 우리가 우리의 독립된 우리의 글자를 만드는 것이 당시 얼마나 중국에 큰 실례가 되므로 세종은 자꾸 새 글자가 아니라고 하고 최만리 등은 새 글자이니 위험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가림토가 없어진 원인이 짐작이 간다.
만약 한자가 아닌 우리조상이 만든 글자로 된 책이라도 가지고 있다가 들키면 반역의 죄로 다스려 질수도 있기 때문에 가림토로 써진 문서는 스스로 불태웠 젔으리라고 추정된다.

이상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저자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카페 운영자 http://cafe.daum.net/chunbuinnet 우리 : 구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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