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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25
이름: bc8937
2015/2/1(일)
삼위태백  

 

 

삼국유사에는

'삼위 태백이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다.'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자들이 '삼위태백'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삼위태백을 '백두산'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강원도 태백산, 북한의 묘향산, 구월산 등 주장도 다양하다.

중국 감숙성 지도를 보면 삼위산(三危山)이 있는데 또 학자들은 삼위산과 삼위태백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한반도 내의 위치를 주장하는 사람의 속셈은 도대체 무슨 꼼수인가?

우리 한民族의 영산이 중국대륙에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흠정서역동문지 4권(卷之四) '천산남북로산명'(天山南北路山名)에 삼위산(三危山)의 위치와 삼위산이 곧 천산(天山)이며 이를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산해경'과 '대명일통지' 등의 고서를 인용해 기록하고 있다.

'古天山東盡境(山海經)三危山西三百五十里曰天山… 一統志天山一名白山自哈密東北境綿亘而西…'

삼위태백은 바로 삼위산(三危山)이었다.

 

배재대학교 손성태 교수는 태백이란 보통명사이며 태백=산(山)의 뜻이 있다고하였다.

부여, 발해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북아메리카로 이주해간 뚜렸한 흔적과 경로가 발견 되었으며 이들이 지나간 곳 곳에는 많은 우리말의 흔적과 철기, 토기, 공예품, 풍물, 온돌 등의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고하였다.  요즘 손교수의 논문을 읽으며 많은 부분에 공감을 느끼고 있다.

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은 많은 피라미드를 세웠는데 피라미드의 순 우리말이 '태백'이다. 지금 만주 벌판에 수 천기의 피라미드가 있다고하는데 이게 전부 그들이 세운 것이다. 즉, 다시말해 부여, 고구려, 발해 사람들에 의해서 피라미드식 무덤들이 세워졌다.

한民族은 고산족(高山族)으로 벌판에 생활하면서 산(山)이 필요하면 인공으로 산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의 이름이 '태백'이다.

손성태교수의 논문에 그 내용이 적혀있다. 일독을 권한다.  

 


 

2.1. Tepec [때빽](태백), <산>

‘태백’ 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어휘이다. 우리민족 최초의 건국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에는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내려다보니 삼위태백이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만하다(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라는 기록이 있다. 바로이 삼위태백(三危太伯)의 태백(太白)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두고 국어학계와 사학계 내부에서 오랫동안 논란을 일어 왔다.

이것은 단군신화만의 논란은 아니다. 주몽의 탄생과 고구려의 건국과정의 영토 범위도 논란이 심하다. 1145년 기록된 삼국사기와 1181년 기록된 삼국유사에는 주몽의 탄생과 관련하여, 북부여 왕 해모수가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인이 된 주몽이 동부여의 왕자 대소의 위협을 피하여 남하하여 졸본에 나라를 세운 후, 기원전 32년 태백산 동남쪽 행인국(行人國)을 정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논란을 더욱 깊게 만든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태백산이라고 불렸던 산들이 여러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산들이 백두산, 묘향산, 강원도의 태백산 등이다. 따라서 일부 사학자들은 태백산을 백두산으로 비정하여, 아무르강 유역에 있었을 북부여의 늙은 왕 해모수가 멀고 먼 압록강 남쪽까지 놀러 왔다가 유화부인을 만났다고 보고 있고, 또 행인국을 오늘날의 함경도 어느 곳으로 비정하여, 주몽시대에 고구려의 영토 범위가 이미 함경도까지 확대되었다고도 주장한다. 특히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태백산=묘향산(太伯今妙香山)’이라는 주석까지 붙여 놓음으로써, 오늘날 북한의 고조선 평양 기원설의 근원을 제시하고, 평양에 단군릉까지 만들게 했다. 따라서 태백(太伯/太白)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우리민족 고대사가 매우 크게 바뀌게 된다24). 태백산(太白山)에 대한 오늘날 우리나라 사학계의 의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백두산설, 둘째 산동반도의 태산(泰山)설, 셋째 어떤 보통 명사로 보아야 한다는 설이다25).

24) 태백산의 ‘백’을 伯(으뜸 백)으로 표기하기도 하고, 白(흰 백)으로 표기하도 한다.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의 ‘단군신화’ 설명에서는 太白山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삼국유사에서는 太伯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표기의 차이는 우리말을 중국 한자로 음차 표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5) 한국고대사학회장 조인성(경희대)은 태백(太白)을 보통명사로 본다고 했다(2010년,개인대담).『한권으로 읽는 고구려 왕조실록』의 저자 박영규는 태백산에 대한 제 의견을 백두산설, 태산설, 그리고 그 밖의 어떤 산이라는 설로 요약하고 있다. 박영규(2009), 44쪽

26) 저자미상, 『El Códice de Cholula』, Francisco GonzálezHermosillo A. & Luis Reyes García가 연구하고 주석을 단 본, Instituto Nacional de Antropología e Historia, Grupo Editorial Miguel Angel Porrúa,2002, p. 28


그런데 멕이코의 모든 산들이 태백(Tepec)이라고 불린다. 태백(Tepec)은 나와들어로 ‘산’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보기 위하여 16세기말에서 17세기 중엽 사이에 기록된 『Códice de Cholula(촐룰라 고문헌)』에 실린 촐룰라 지방의 지도를 보기로 한다26).

이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산들이 ‘~태백(tepec)’ 또는 ‘~태배(tepe)’로 표기되어 있다. ‘태배(Tepe)’는 받침 ‘ㄱ’에 해당하는 ‘c’의 생략된 표기 형태이다. 스페인어는 가로 풀어쓰기 언어로서, 받침소리를 원칙적으로 발음 하지 못한다. 받침소리를 표기하면, 즉 tepec라고 표기하면 ‘태백’이라고 발음하기 보다는 ‘태배끄’라고 발음하기 쉽다. 따라서 이 받침소리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이 생략 대신에 원주민들의 발음을 잘 표기를 위하여 스페인 신부들이 도입한 수단이 소위 ‘갑자기 발음 멈춤’을 표시하는 기호 ‘?’ 또는 ‘ʹ ’의 도입이다. 이 표기는 영어로 glottal stop(발음 멈춤)이라고 하고, 스페인어로는 saltillo (발음멈춤)라고 한다. 따라서 ‘tepe?’라고 표기하면 [태배]라고 발음하되, 갑자기 멈추어야 한다. 그렇게 발음하면 tepe은 ‘태백’처럼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대화된 여러 문헌에서 이 표기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27)

아무튼 우리는 위 지도에서, 아스테카인들이 모든 산들을 ‘태백(tepec)’이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후반 나와들어를 기록하고 어휘를 약 3000여개 모아서 기록해둔 클라비헤로(Clavijero) 신부나 19세기에 나와들어 사전을 쓴 시메온(Siméon)도 Tepec(태백)이 ‘산’을 의미한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마지막 이중자음 ‘-tl(들)’은 우리 말의 복수접미사 ‘-들’이다.

Tepe(c)tl - monte (산) (Clavijero 문헌)28)
Tepe(c)tl - montaña (산) (Siméon의 사전)29)

이것은 나와들어의 tepec(태백)이 ‘산’을 의미하고, 아스테카인들이 우리민족이라면, 우리 말의 태백(太白)은 보통명사로서 ‘산’을 의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지적한 우리민족 역사 기록에 나오는 ‘태백(太白)’이 ‘높고 흰’을 뜻하거나 특정 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산(山)’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사실을 밝혀 준다. 먼저 우리 역사에 기록되거나 지명으로 나오는 태백산(太白山)은 그 어휘 구조가 ‘태백 +山’이 된다.

태백산(太白山) → 태백 + 山 (뜻: 산+산)

앞의 ‘태백’은 순 우리말로서 ‘산’을 의미하는 어휘이고, 뒤의 山은 중국 한자어이다. 즉 그 원래 어휘구조는 한자어인 ‘太白山’이 아니라 ‘태백+山’이고, 그 뜻은 ‘산+산’이다. 이러한 어휘구조가 발생한 원인에 대하여, 필자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특수한 언어 환경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민족은 4세기를 전후하여 중국으로부터 한자어를 받아들여 문자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였고, 불교의 보급과 함께 한자어가 일반화되어 가면서 점차 우리민족 고유의 어휘가 잊혀져 가게 되었다. 고유한 우리말이 한자어로 대체되어 가는 동안 고유한 우리말을 계속 사용하는 계층-주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일반백성-과 한자어를 사용하게 된 지배계층과 불교 승려들-교육받은 계층-의 언어가 달랐을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계층이

27) 우리말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음절구조이다. 우리말 음절구조는 ‘초성+중성+종성’ 다. 이것은 곧 ‘자음+모음+자음’의 구조로서 보통 CVC 구조라고 한다. 유럽어들은 받침소리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CV 구조이다. 나와들어도 우리말처럼 CVC 구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스페인어나 영어 같은 유럽어들은 음절의 마지막 요소인 받침소리(C)에 익숙하지 못하다. 받침소리가 있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음절이 ‘닫힌 소리’로 끝난다. 따라서 이 닫힌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초기 스페인 신부들이 고안해 낸 것이 본문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기호이며, 이것이 나타나면 갑자기 발음을 멈춤으로써 닫힌 소리를 흉내 내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음성론적으로 이런 면에서도 우리말과 나와들어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웃한 일본어조차도 기본 음절 구조가 CV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음절구조의 일치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마야 문명의 지배자들도 우리민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야어도 기본적으로 CVC구조이다. 마야어에도 우리말이 명백하게 나오며, 고고학적 유물도 우리민족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들이 있다.

28) Clavijero, Francisco Xavier, 『Reglas de la lengua con un vocabulario』, 1974, p. 134

29) Rémi Siméon, 『Diccinario de la lengua náhuatl o mexicana』, 19세기 사전, Siglo Veintiuno, 1999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하여, 교육을 받지 못한 계층이 한자어를 사용하게 되기까지 오랫동안, 이 두 어휘를 함께 사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대한 증거는 많다. 가깝게는 일본 지배하에 있던 20세기 초에는 ‘모찌떡’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고, 이 말은 1970년대까지 도 흔히 듣는 명사였다. ‘모찌떡’은 일본어로 떡을 의미하는 ‘모찌(もち)’에 우리말 ‘떡’을 사용한 것으로, 그 어휘구조는 ‘もち+떡’이고, 그 의미는 ‘떡+떡’인 것이다. 이러한 중복 어휘 구조는 우리말에 매우 흔하다. 예를 들어, ‘벌판’도 ‘벌(넓고 평평한 땅) + 판(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벌’은 ‘서라벌, 달구벌’에서 보듯이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하고, ‘판’도 ‘모래판, 모판, 들판’ 등에서 보듯이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민족 역사와 지명에 등장하는 태백산은 한자어의 뜻에 따라 ‘희고 큰 산(太白山)’이나, ‘크고 으뜸인 산(太伯山)’이 아니라, ‘태백+山’으로 된 어휘로서, 그 의미는 ‘산+산’을 뜻한다30). 이로써 우리는 앞에서 검토한 우리민족의 역사 기록에서 ‘태백산’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가지 난점들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고조선의 건국 설화인 단군 신화의 태백산은 백두산이 아니라 고조선의 건국 지역으로 알려진 요동의 어느 산을 의미 할 것이다. 주몽이 정복한 행인국의 북서쪽에 있는 태백산도 고구려 초기 정복 전쟁을 벌였던 만주 남쪽 지역의 어느 산을 의미할 것이고, 북부여 왕 해모수가 유화부인을 만났던 우발수 근처의 산도 만주 일대의 어느 산일 것이다. 북한의 고조선 평양설도 그 근거가 부정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태백들(tepectl)’이나 ‘태배들(tepetl)’의 접사 ‘-들(-tl)’은 우리말의 복수형 접사 ‘들’과 발음과 뜻에서 정확하게 같다. 멕이코 원주민 언어에서는 이 복수형 접사가 신대륙 발견 이전에 이미 복수 의미를 잃고, 아무런 뜻도 없는 허사(虛詞)로 변하였다. 그래서 위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접사는 사용되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했다. 나와들어에는 복수형 접사가 원래 두 개 있었는데, 다른 하나는 ‘-떼(te)’ 이다. 이것도 우리말에서 ‘소떼, 벌떼’등에서 사용되는 복수형 접사 ‘떼’와 정확하게 같다31). 그리고 위 지도상의 산들의 명칭을 살펴보면, 몇 개의 산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우리말로 해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흐태(Quahtepec)’은 ‘독수리의 산’을 의미한다. ‘과(Qua)’는 일반적으로 ‘과우(Cuau/ Guau)’로 표기되는데, 독수리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이다. ‘센태배들(Centepetl)’은 ‘센 산들’로 해석된다. 멕이코 원주민들은 우리민족 처럼 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고, 산에는 산신(山神)이 있다고 믿었다. ‘센 산’은 ‘센 신이 있는 산’을 의미한다. 나머지 산들도 나와들어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쉽게 그것들이 우리말로 해석되는 명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다지왈태백(Tlachihualtepec)’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30) 아스텍카인들, 즉 맥이족이 요동의 아스땅(=아사달, 하얀 땅)을 출발한 때가 820년경이었다. 그들은 북쪽의 옛 고리족이 살던 땅을 지나서, 어느 곳에 가서 배를 타고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그 ‘어느 곳’이 필자의 판단으로는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배를 탈 때의 주변 자연 환경을 기록한 부분이 멕이코 문헌에 남아 있다. 스페인인과 원주민 여인의 혼혈아로 태어난 크리스토발 델 카스티요(Cristobal del Castillo)가 16세기 말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Historia de la Venida de los Mexicanos y Otros Pueblos e Historia de la Conquista』에는 ‘이스 산(iz zan)’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온다. 이 말의 뜻은 ‘하얀 산’이다. 멕이코 나와들어에서 ‘하얀’을 뜻하는 어휘는 ‘이스(iz), 이츠(itz), 이츠(ich), 아스(az)’ 등으로 나온다. ‘산(zan)’ 은 중국 한자어 ‘山’으로 보인다. 이것은 캄차카 반도의 눈 덮흰 하얀 산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고, 또 언어적으로는 9세기 초에, 그들이 원래 살던 요동의 아사달 지역에서는 이미 우리말 ‘태백’보다 중국 한자어 ‘산(山)’ 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와들어의 ‘태백’은이u48120 . 멕u51060 .코u50640 . 먼u51200 . 도u52265 .해살u45912 . 고par 리u51313 .들u51060 . 사u50857 .하u45912 . 어u55064 .인것u51004 .로판u45800 .된u45796 .. 맥u51060 .족u51060 . 비u47197 . 아u49828 .텍u51228 .국u51012 . 건u49444 .했u51648 .만 멕u51060 .코전u50669 .에퍼u51256 . 살par 던사u46988 .들u51008 . 대u48512 .분u51060 . 고u47532 .족계u50676 .이u50632 .다 따u46972 .서고u47532 .족u51032 . 어u55064 .인‘태u48177 .’이멕u51060 .코전u50669 .의산이u47492 .에사u50857 .되par 었u45912 . 것u51060 .다

31) 복u49688 .형접u49324 . ‘떼’는 우리말 뿐 아니라 만주어에도 있다. 우리말에서는 짐승이나 곤충에게만 사용되지만, 만주어에서는 사람에게도 사용되었다. 나와들어에서 ‘떼’는 사람, 사물, 동물의 복수형 접사로 사용되었다. 복수형 접사 ‘들’과 사용상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다고 설명되고 있다. 나와들어에서 뜻을 상실한 접사 ‘-들(tl)’은 새로운 복수형 접사 ‘-메(me)’로 대체되었다.

 위 지도의 가운데 하단부에 있는 산이 ‘다지왈태백(Tlachihualtepec)’이다. 그런데 이 산은 산(山)이 아니라 피라밋이다.

촐룰라의 역사에 따르면, 대략 12세기 중엽에 북쪽의 Tolteca[똘떼까](돌태가) 문명이 내부 불화로 무너진 후에 상당수의 유민들이 동남쪽으로 200km정도 이동하여 새로운 도시국가인 촐룰라를 건설하였다.

이 도시는 손성태(2010)에서 밝힌 바대로 우리민족의 문화가 매우 많이 남아있었던 지역이다. 남자들은 검은 갓 모자를 쓰고, 희고 긴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으며, 길을 갈 때에는 손에 긴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또 노래를 매우 좋아하여 길을 갈 때에도 노래를 늘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발치(拔齒)를 한다던지 편두(偏頭)를 하는 등과 같은 우리민족 고대 풍습과 매우 유사한 풍습이 있었다. 또 아래에서 인용한 가브리엘 데 로하스(Gabriel de Rojas)에 따르면, 이 사람들은 풀(나물)을 뜯어 먹는 풍습이 있었고, 개를 잡아먹는 식습관도 있었고, 마을마다 입구에는 신단(성황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 촐룰라에는 멕이코에서 가장 큰 피라밋이 있는데, 그 피라밋은 아도브 벽돌로 수대에 걸쳐 지어진 것이다. 아도브 벽돌은 진흙에 풀을 잘라서 섞어 만든 것이다. 우리민족도 옛날 집을 지을 때 벽은 황토 흙에 짚을 잘라 섞어서 벽을 발랐다. 멕이코 원주민뿐 아니라, 아메리카 인디언들 -예를 들어, 아리조나주와 멕이코주의 호피족과 태와족-도 집의 벽을 만드는 방법이 우리민족과 같다.

아래 그림은 1580년경에 쓴 환 데 토바르(Juan de Tovar)의 아스텍 역사서에 나오는 그림이다. 상투를 한 아스테카인들이 현재의 멕이코시티에서 북서쪽으로 100km지점에 있는 툴라-돌태가 문명의 중심지-의 옆에 있는 꼬아태백(Coatepec)에 12세기 중엽에 도착한 사실에 대한 원주민의 원 그림을 보고 필사한 그림이다. 그림에는 상투한 두 사람이 양쪽에 앉아 있고, 가운데 산(山)을 그리고, 그 산 안에 뱀 한 마리를 그려 두었다. 나와들어에서 뱀을 ‘꼬아(coa)’라고 한다. 우리말에서는 “저기에 뱀 한 마리가 꼬고 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나와들어 ‘꼬아’는 우리말 의태어적 동사 ‘꼬다’와 관련된 말일 것이다. 결국 툴라 근처의 산 명칭인 꼬아태백(Coatepec)은 우리말일 것이고, 그 뜻은 ‘뱀 산’이다. 나와들어 학자들도 ‘뱀 산(serpent hill)’이라고 해석하고 있다32).


32) 나와들어에서 뱀을 ‘꼬아’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우리말 동사 ‘꼬다’의 파생어이다. 멕이코 나와들어 주체는 우리민족이다. 따라서 우리민족이 고대 시대에 사용하던 언어형태를 일부 짐작할 수 있는 어휘이다. 다시 말하면, 필자가 나와들어 연구를 통하여 추정하게 된 것 중 하나는 발해-삼국시대 이전의 우리민족의 언어는 명사가 발달하지 못하여 동사 파생어를 많이 사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추정을 뒷받침해줄 증거는 많다. 예를 들어, 화가(畵家)를 ‘다기려(Tlacuilo)’라고 하고, 우리의 옛날 격구(擊毬)같은 공놀이를 아스텍 제국에서도 했는데, 이 공놀이를 ‘다치고(Tlachco)’라고 했다. ‘다기려’나 ‘다치고’는 각각 ‘다+기려’와 ‘다+치고’로구par 성u46108 . 말u51060 .다 ‘다’는 우리말 부사어 ‘다’이고, ‘기려’와 ‘치고’는 각각 우리말 동사 ‘그리다’와 ‘치다’의 파생어에 해당한다. 이와같이 명사보다는 동사가 발달하여 동사 파생어를 명사 대신에 사용한 것은 북방 민족의 언어 특징일 것이다. 중국 청나라 역사서 ‘만주원류고’에도 명사 대신에 동사 파생어를 사용하여 관직명이나 인명(人名)으로 사용한 예가 많다. 별도의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를 중국 한자어 多(다)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들어에서는 한자어가 거의 없다. ‘다’가 우리말에서 사용되는 언어 환경을 볼 때, 즉 ‘다 먹다, 다 했다, 다 안다’라는 표현 형태를 볼 때, 원래 우리말이고, 그것을 중국인들이 우리민족과 교류하면서 받아들여 그들의 문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현재 중국어 어휘중 상당수가 북방민족의 어휘를 받아 들여 그들의 문자로 표기한 것일 것이다.)


2.2. 피라밋 = Tepec (태백), <산>

이렇게 문화적 배경이 같은 촐룰라의 지도에서, 흙과 풀을 섞어서 만든 벽돌로 지은 피라밋을 ‘다지왈태백(Tlachihualtepec)’이라고 불렀다. 이 명칭이 우리말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16세기 촐룰라에 관한 중요한 문헌에서 아래 문장을 인용하기로 한다33). 이 문헌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2세가 마드리드 북부 엘에스코리알에 수도원과 도서관을 지은 후, 이 도서관에 보관하기 위하여, 1577년 신대륙 각 지역 지배자들에게 50개의 문항을 보내어 대답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는데, 그 당시 촐룰라의 지배자였던 가브리엘 데 로하스(Gabriel deRojas)가 쓴 보고서 내용 일부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촐룰라의 사람들은 용(龍=케찰꼬아들)을 믿는 신앙이 있었고, 사람들은 평소에 흰 옷 -두루마기-을 입었으며, 큰 모자 -갓- 를 썼고, 마을마다 그 입구에는 길가에 작은 신당(성황당으로 추정됨)이 있었는데, 그 수가 약 800개였으나, 보고서를 작성 할 당시에는 2개만 남아 있고, 사람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 외에 주목 할 점으로 촐룰라는 아스텍 제국이 건설되기 전에는 콜와족(고리족-부여)과 절대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했고, 아스테카인들이 멕이코 계곡에 와서 콜와족과 함께 아스텍제국을 건설한 뒤에는 아스텍 제국과 절대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한 곳이다, 여기서는 아래 인용한 부분만 보기로 한다.

 

“이 도시는 원주민들이 툴람 촐룰람 다지왈태백이라고 불렀고, 또 톨람 촐롤람이라고도 불렀다. 툴람은 여러 가지 기능공들을 의미한다... 멕이코어로 툴대가들(tultecatl)은 기능공을 의미한다...또 원주민들은 이 도시의 건설자들이 툴람이라고 불리던 마을에서 왔다고 한다... 그들은 이 도시로 와서 정착했고, 그것(이 도시)도 툴람이라고 불렀다... 또 촐롤란이라고도 불렀다... 멕이코어에서 촐로안은 ‘도망치다’를 의미하고 그리고 촐로안이는 ‘도망친 사람’을 의미한다... 다지왈태백들은 ‘손으로 만든 산(언덕)’을 의미한다.”


33) Gabriel de Rojas, 『Las Relaciones de Cholula, Culhuacan, Teotzacualco y Ameltepecque』, 1581년 본, 1979, p. 160


이 기록에는 몇 개의 중요한 우리말이 나온다. 또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아직 알지 못했던 피라밋의 우리말 명칭이 나온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고구려는 많은 피라밋을 건설하였다. 장수왕릉과 태왕릉이 피라밋으로 건축되었고, 장수왕릉이 있는 집안 지역에만 약 1천기가 넘는 피라밋이 있으며, 만주 일대에는 총 약 1만기가 넘는 피라밋이 있다고 한다. 이 중 대다수가 부여-고구려가 그 지역을 지배하던 기원전 후 부터 3세기까지 건설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 건축물을 우리 선조들이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아직 모른다는 점이다.

피라밋은 우리말이 아니라 고대 그리이스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두 가지이다. 우리 선조들이 피라밋을 건축해두고 이름을 짓지 못했거나, 그 이름이 있었는데 한자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우리말이 잊혀지면서, 그 이름도 잊혀져 버린 것이 아닐까 이다. 논리적으로 첫 번째 가능성은 타당성이 없다. 그렇게 수 많은 피라밋을 건설하면서 그에 해당하는 명칭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인 가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피라밋의 순 우리말 명칭도 잊혀져버렸다 라고 가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의 85% 정도가 중국 한자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므로, 고대 선조들이 사용하던 수 많은 우리말 어휘들이 잊혀 졌다고 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위에서 인용한 기록에, 촐룰라의 피라밋 명칭인 ‘다지왈태백(Tlachihualtepec)’은 원주민 말이고, 그 뜻은 ‘다 지은 산(cerro hecho a mano)’라고 해석까지 해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앞에서 ‘태백(tepec)’이 우리 역사가 그 뜻을 잃어버린 순 우리말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 인용문에서는 원주민들이 피라밋도 ‘태백(tepec)’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말이 우리말이고, 촐룰라를 건설한 사람들이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태백(tepec)’ 앞에 수식어로 붙은 ‘다지왈(tlachihual)’이다. 이 부분이 ‘다 지은, 다 만든’을 뜻한다고 인용문에서 이미 해석까지 해 두고 있다. 이것을 좀 더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Sullivan(슐리반)의 문법서의 설명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34).

1) a. chihua(지와) ‘build, make’ 짓다, 만들다
b. calchihua(갈지와) ‘build a house’ 집을 짓다

언어의 일치는 발음과 뜻이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들어 동사 chihua[치와]는 (지와)로 발음되고, 우리말 ‘지어’ 또는 ‘지은’과 비슷하다. 언어의 시간적 공간적 차이를 감안하고, 또 ‘어/으’발음은 스페인어로 표기되지 못하여 유사한 발음으로 대체 표기되었으므로, 이 동사는 우리말 ‘지어/지은’에 해당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Calchihua[깔치와]는 (갈지와)로 발음된다. Cal(갈)은 나와들어에서 ‘집’을 뜻한다. 나와들어에서 ‘집’을 뜻하는 어휘는 두 개 있다. Cal(갈)과 chii(지)이다. Chii(지)는 받침소리를 살리면 우리의 ‘집’이 된다. Cal(갈)은 gal(갈)로도 표기되어 문헌에 나온다. 몽골에서는 그들의 전통가옥인 유목민의 집을 ‘겔/게르’라고 한다. 이것을 고려할 때, 이 어휘는 몽골어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고, 또는


34) Sullivan, Thelma D., 『Thelma D. Sullivan's compendium of Nahuatl Grammar』, University of Utah Press.,1988, pp 1 & 51


사라져버린 부여-고구려어일 수도 있다. 부여-고구려어가 몽골어와 유사한 면이 있을 수 있는 정황 증거는 부여-고구려계 우리 선조들이 몽골과 매우 가깝게 살았던 역사적 사실에 있다. 위 인용문에서 주목할 점은 (1b)에서 cal(갈)이 목적어로서 동사 앞에 사용되어, 우리말의 통사구조 원칙인 ‘목적어+동사’의 어순에 일치한다는 점과 chihua(지와)가 동사로서 ‘짓다’를 뜻한다는 것이다. 서술형종결어미 ‘-다’는 우리말에서도 19세기 이후에 정착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와들어 Tla는 오늘날 멕이코에서는 [뜰라]로 발음하지만, 손성태(2009b)에서 밝혔고, 앞에서도 자세하게 설명했듯이, 원래의 멕이코 원주민 말은 Ta였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멕이코 원주민들의 원래 발음과 스페인어로 차음 표기된 발음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원주민들의 원래 발음은 우리말 발음이므로 Ta는 (다), (따), (타)로 발음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말 발음 식으로 구별하는 것이 옳다는 증거는 아래 나와들어 예문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2) a. tlamatini (다마틴이): 다 마틴 이 (다 맞히는 사람= 점쟁이)
    b. tlatoani (다도안이): 다 도안 이 (다 도와주는 사람= 왕)

3) a. tla’zotla (다 조타): 다 좋다 (like, love)35)
   b. Ni c tlamati (니 그 다 마티): 나는 그것을 다 알아 맞힌다/안다(I know it)36).
   c. (비교) Ni c mati (니 그 마티): 나는 그것을 알아 맞혔다/알았다(I knew it)37).

4) tla (따): 땅 (땅의 고어)

5) a. tlatla (타다): 타다 (is burning)38)
   b. tata (타다): 타다 (the firegod, 불의 신)39)

이 예문들은 tla에 관한 나와들어 예문들로서, 우리말의 각 발음에 따라서 품사와 기능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예문(2a,b)는 이미 손성태(2009b)에서 다룬 예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예문들의 출처를 굳이 밝히지 않는다.

이 두 어휘는 아스텍 역사서에 자주 나타나고, 또 클라비헤로(Clavijero)신부의 어휘 목록집에도 나온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동사 앞에 사용된 tla로서, 우리말로는 (다)라고 읽어야 한다. 그리고 손성태(2009b)에서 Simeón의 사전 설명을 인용하여 설명했듯이, 수량을 나타내는 대명사이고, 동사 ‘mati[마띠](마티)<맞히다>’의 목적어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음절 i(이)는 ‘사람, ~하는 자’를 뜻한다는 것도 그곳에서 설명했다.

예문 (3a,b,c)의 tla도 (다)로 읽어야 한다. 다만 여기의 tla는 대명사가 아니라 ‘전부, 모두’를 의미하는 부사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먼저 (3a)의 tla는 부사이고, 뜻은 ‘전부, 모두’를 의미한다. 그리고 주의 할 점은 zotla(조타)의 알파벳 z이다. 이 알파벳은 스페인어에서는 ‘ㅅ’으로 발음되고 이탈리아어에서는 ‘ㅈ’으로 발음된다. 이 동사를 기록한 클라비헤로(Claviejro)신부는 부모가 이탈리아 사람이었고, 그 자신도 나이 37세였던 18세기 중반에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20여년을 살면서, 그의 인생 말년에 이 단어가 수록된 어휘집을 포함


35) Clavijero, Francisco Javier, 『Reglas de la lengua mexicana con un vocabulario』, 1974, p. 149, 일부 문헌에서는 tlachota, tlaçota로 기록되어 있다.

36) Anderson, Arthur, 『Rules of the Aztec language』, Univ. of Utah Press, 1992, p. 8

37) Anderson, Arthur, 앞의 책, p. 7

38) Sullivan, Thelma D., 앞의 책, p. 48

39) Spence, Lewis F.R.A.I.,『The Myths of Mexico & Peru』, Ballantyne Press, 1920, p.95

한 여러 권의 저서를 썼다. 따라서 이 알파벳은 이탈리아어 발음에 준하여 읽어야 한다40). 특히 예문 (3b)와 (3c)를 비교해 보면, (3b)의 tla가 부사로서 생략이 가능하며, 그 뜻은 ‘전부,모두’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예문에서 또 주목할 점은 tlamati(다마티) <다 맞히다>는 현재시제-know-로 해석했고, mati(마티)<맞히다>는 과거시제-knew-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물론 잘못된 해석이다. 이 해석은 저자들이 우리말의 시제형 어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또 앞에 사용된 tla(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설명이다41).

예문 (2a,b)와 예문 (3a,b,c)는 나와들어 ‘tla(다)’가 쓰임에 따른 의미 변화와 문법적 기능 까지도 우리말 ‘다’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더 설명할 것으로는, 이 두 예문에서 일인칭 주어이다. 예문(3b,c)에서 ‘나’를 ‘ni(니)’라고 하였다. 멕이코에서는 우리말의 일인칭 대명사 ‘나’가 ‘Na(나)’, ‘Ni(니)’, ‘Ne(내)’로 나타난다. Na라고 주로 표기하는 문헌이 나타나는 지역은 멕이코 서남부와 마야어 지역이고, Ni라고 하는 문헌이 나타나는 지역은 지금의 멕이코시티 주변 지역이며, Ne라고 하는 문헌이 나타나는 지역은 멕이코 서중부 및 북부 지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적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 지금의 멕이코시티 주변지역, 즉 아스텍제국의 수도가 있던 지역에서도 Na가 매우 많이 사용되었다. Ne라고 하는 지역에서는 Neka(내가)<내 + 주격조사 ‘가’>라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고, Nechii (내 지)<내 집>이라는 표현도 자주 나타난다. Na라고 하는 지역에서는 ‘Nan(난)’이라는 형태로도 사용되었다42). 이 형태는 우리말 ‘나는’의 줄임말 형태로 보인다. 나와들어에서는 주격조사 ‘-는’도 사용되었다. 줄임말 ‘난’은 오늘날까지 우리도 많이 사용한다. 나와들어에서는 우리말 주격 조사 ‘이, 가, 는’이 모두 나온다.

예문 (4)의 tla는 (따)라고 읽어야 하는 경우로서, 우리말 ‘땅’의 고어 ‘’에 해당한다. 멕이코 지명에는 우리말 ‘땅’의 고어 형태인 ‘달, 따(), 땅’이 모두 나온다. 그 표기도 tal/tlal, ta/tla, tan/tlan 으로 나온다. 자음 T다음에 L이 붙은 경우는 스페인 정복이후 언어 혼란으로 발생한 오류이다. 자세한 것은 역시 손성태(2009b)를 참고하기 바란다.

예문 (5a,b)는 우리말 동사 ‘타다’에 해당하는 나와들어 동사이다. (5a)는 정복 시기 이후 언어의 혼란으로 자음 L이 T다음에 첨가된 형태이고, (5b)는 그러한 혼란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남은 형태이다. 이렇게 멕이코에는 같은 어휘가 지방에 따라서, 또 기록한 저자에 따라서 언어 혼란의 영향을 받지 않은 형태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에는 이렇게 문헌에 따라서 두 가지가 다 나타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원래의 원주민 말은 이 L이 없었다. 따라서 (5a,b)는 모두 원래 (타다)라고 발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그 뜻도 우리말 그대로 ‘타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나와들어의 Tla, 즉 Ta가 원주민들의 원래 발음에서는 (다), (따), (타)로 40) 나와들어 발음에 관하여 주의할 사항이 많다. 특히 알파벳 x, ch, tz가 서로 상당히 혼동하여 사용되었다. 보다 자세한 것은 Clavijero의 위의 책 17쪽과 Anderson의 위의 책 4~5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41) 이와 같이 나와들어에 대한 해석과 설명은 아직도 극히 초보 단계에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나와들어의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주로 유추로 해석되어 많은 오류가 있다. 최근까지도 학자마다 같은 문장이나 같은 어휘를 두고서도 해석이 다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나와들어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민족밖에 없을 것이다.

42) Benson, Elizabeth P., & Boone, Elizabeth H.,『Ritual Human Sacrifice In Mesoamerica』, p. 22. 미국 아리조나주 호피족은 ‘나’를 ‘nu(누)’라고 하고, 뉴멕시코주 산타페 주변의 산타 아나 마을에서는 ‘na(나)’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필자의 판단으로는 고리족의 후예들이다. 따라서 우리말 일인칭 주어 ‘나’에 해당하는 이들의 말 na, nu, ne, ni는 모두 방언적 차이로 보인다. 부여의 고리족은 넓은 만주 지역에서 씨족 단위로 유목 민족으로 살았다. 따라서 언어 소통의 기회가 적었고, 그 결과 방언적 차이가 심했을 것이다. 참고로, 남미 잉카제국에서는 ‘나’를 ‘nu(누)’라고 했다.

형태소 구조: tlachihualtepec = 다(tla) + 지왈(chihual) + 태백 (tepec)

구별되었고, 그 뜻이나 문장 기능도 우리말의 해당 어휘들처럼 구별되었을 것이라는 앞에서 의 예측을 여기서 나와들어 예문을 통하여 증명하였다. 스페인어식 발음으로 인하여 모두 [따]로 발음되고 있지만, 그 원래의 발음으로 복원하여 각 예문에 맞게 ‘합치’하여 읽으면,정확하게 우리말이라는 사실도 쉽게 알 수 있다. 예문 (2a,b)는 형용사절을 포함한 명사구이고, 예문(3b,c)는 문장이다. 나와들어와 우리말은 구(句)뿐만이 아니라 문장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필자는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다시 지적하고 싶다. 이 예문들은 앞에서 필자가 채택한 전제, 즉 ‘멕이코 원주민 발음과 스페인어로 차음 표기한 발음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고, 원주민의 원래 발음은 우리말의 발음과 일치한다’라는 전제가 옳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해 준다. 즉 원주민들의 예문들의 tla를 (다), (따), (타)로 각각 구별하여 읽으면, 정확하게 우리말로 그 뜻이 이해된다. 예문 (2)와 (3)의 tla는 (다)로 발음하고, 예문 (4)의 tla는 (따)로 발음하고, 예문 (5)의 tla는 (타)로 읽으면, 각 어휘가 뜻과 발음에서 우리말과 일치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은 멕이코 원주민 언어에는 우리말처럼 평음, 경음, 격음의 구별이 분명히 존재했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다시 원래의 논제인 ‘다지왈태백(tlachihualtepec)’으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위에서 논의 한 내용을 바탕으로 볼 때, 이 지명의 첫 머리에 나오는 tla는 발음이 (다)이고, 기능은 부사이며, 그 뜻은 ‘모두’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다지왈태(tlachihualtepec)’은 위 인용문에서 이미 ‘다 지은 산’이라고 해석해 놓았지만, 발음에 따라서 해석한 우리말로서도 ‘다 지은 태백’ 즉 ‘다 지은 산’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피라밋 명칭은 다음과 같은 우리말 형태소 구조를 가진다.

a) 다(tla): 다 (우리말에서 대명사나 부사로 사용됨. 여기서는 부사로 사용됨)
b) 지왈(chihual): 지은, ‘짓+은’으로 구성된 말이지만, 받침 소리 ‘ㅅ’은 탈락하고 ‘은’은 스페인어 알파벳으로 표기되지 못하여 ‘왈(hual)’로 대체 표기된 듯하다.
c) 태백(tepec): 태백(=산)
d) Tlachihualtepec (다 지왈 태백)의 의미: 다 지은 산. (전체적으로 우리말 명사구의
어순 구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참고: 유럽인들은 나와들어를 받아 적을 때, 단어의 경계를 알지 못하여, 원주민들의 말은 교착어로서 모든 단어가 한 단어처럼 붙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 스페인 선교사들은 모든 어휘를 붙여서 기록하였다. 본문의 예문(3b,c)의 띄어쓰기는 현대 학자들이 임의로 한 것이다. 참고로 15세기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 한글로 기록된 문헌들도 띄어쓰기가 없었고, 20초세기 초반에 우리나라에서 많이 발간 된 소위 ‘이야기 책’들도 띄어쓰기가 없었다.) Tlachihualtepec (다 지왈 태백)은 멕이코에서 가장 큰 피라밋의 명칭이다. 이 피라밋을 원주민들은 ‘손으로 만든 산’이라고 분명히 설명해두고 있음을 우리는 위 인용문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필자는 나와들어의 다양한 예문 분석을 비교 분석하여, 첫 음절 Tla가 우리말 다’에 해당하며, 이 명칭의 진정한 의미는 ‘다 지은 태백’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미스테리 중 한 가지를 밝혔다. 즉 고구려-부여에서 지은 만주의 그 많은 피라밋을 우리 선조들이 ‘태백’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상들의 무덤인 적석총(피라밋)을 지어두고, ‘산’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나주 복암리의 흙무덤도 피라밋, 즉 태백이며, 마립간 시대에 건축된 경주의 신라시대 거대한 왕릉들도 모두 태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43). 즉 우리 선조들은 무덤을 ‘산’처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적석총의 계단식 형태와 경주 고분의 흙으로 된 비계단식 형태의 차이는 결국 돌과 흙이라는 재료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멕이코에서도 흙으로 된 피라밋은 비계단식이다. 참고로 삼국시대의 나주 복암리 무덤 사진을 올린다.

<나주 복암리 고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무덤의 전체적 형태는 만주의 피라밋 모양이지만, 재료가 흙이라서 비계단식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무덤은 만주의 피라밋과 경주의 왕릉의 중간적 형태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논의를 통하여, 나와들어의 tepec(태백)이 우리민족 역사에 기록된, 뜻을 잃어버린 ‘태백(太白)’이라는 것과, 그 진정한 의미는 ‘산’이라는 것과, 이 어휘는 선조들이 사용하던 민족 고유의 어휘였다는 것을 알았다. 또 우리 선조들이 건축했던 그 많은 만주의 피라밋도 ‘태백’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알았고, 우리 선조들이 조상들의 무덤을‘산’처럼 지으려 했던 것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만주의 피라밋이 계단식이고 나주 복암리의 고분은 단순한 경사면으로 축조된 이유가 돌과 흙이라는 재질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실재로 아스테카인들이 ‘아스땅(아스달)’을 떠나서 멕이코로 아동해 가는 과정을 기록해 둔 고문헌에는 ‘흙으로 피라밋(태백)을 쌓았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오고 있고, 멕이코 각지에도 나주 복암리 고분 처럼 계단이 없는 형태의 흙 피라밋도 여러 개가 있다.

언어가 일치한다는 것을 연구하다보면, 이렇게 언어만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나 유물, 유적도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의 일치를 넘어, 문화와 그 문화를 잉태한 정신세계까지도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멕이코의 원주민들과 우리민족이 하나의 같은 민족이 아니라면, 이렇게 모든 것이 혼연일체로 일치 할 수 있겠는가! 이 연구의 가장 큰 의의중 하나는 나와들어를 근거로 우리민족의 잊혀진 역사까지 해석된다는 점을 발견한 것일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설명할 것이 있다. 인용문에 따르면 멕이코 촐룰라의43) 신라시대, 특히 마립간 시대인 4세기말에서 6세기 초 사이에 건축된 왕릉들은 모두 거대한 고분, 즉 '돌무지 덧널무덤'이고, 금관들이 출토되었으며, 왕들을 비롯한 귀족들에게는 동북부 만주 지역에서 사용되던 ‘높은 사람’을 의미하는 ‘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또 경주에는 유목민이 사용하던 동복이 출토되었고, 부여의 마가, 우가, 구가, 저가의 ‘가’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가’가 경상도 방언에 남아 있다. 소위 ‘가가가가’라는 경상도 방언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냐’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경상도에는 부여-고구려의 영향으로 짐작되는 요소들이 많다. 바로 사학계에서 말하는 소위 ‘기마민족설’과 관련되는 듯하다.

지명 유래가 돌태가(Tolteca)에서 도망쳐 왔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면서, ‘촐로안이(Choloani)’를 ‘도망자(huidor)’라고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말에는 ‘줄행랑치다,줄행랑 놓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에서 ‘줄행랑’이 ‘도망치다’를 의미한다. 만약 ‘행’이 한 자어 行(갈 행)이라면, 그리고 이것을 생략하면 ‘줄랑’이 남는다. 그리고 서론의 음운 대조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나와들어와 우리말에서 모음 ㅗ/ㅜ가 교체된다. 따라서 이 두 어휘는 다음과 같이 대응된다.

나와들어: Choloani(졸로안이) = Chuloani (줄로안이) → chuloan[줄로안] + i (이)

우리말: 줄行랑 이 → 줄랑 + 이

이렇게 대조 분석해 볼 때, chuloan(줄로안)은 (줄뢍)으로 축소하여 발음할 수 있고, 이것은 우리말 ‘줄행랑’에서‘행’을 뺀 형태인 ‘줄랑’과 발음에서 매우 비슷해지고, 뜻은 ‘도망치다’로써 일치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말의 ‘줄행랑’에서 ‘행’이 한자어일 가능성이 있고, 고대의 우리말은 ‘줄랑’일 가능성이 있다44). 고대 시대에 한자어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말과 한자어가 한 어휘 안에서 결합한 예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양달, 음달’의 ‘양’과 ‘음’은 각각 한자어 ‘陽(볕 양)’과 ‘陰(응달 음)’이고, ‘달’은 순 우리말로서 ‘땅’의 고어이기 때문이다. ‘우두머리’의 ‘두’도 한자어 ‘頭(머리 두)’라는 것을 서정범의 『국어어원사전』에서 지적하고 있다. ‘우두머리’의 순 우리말은 ‘우머리’일 가능성이 있다. 실재로 멕이코북부 지역과 미국서부지역의 원주민 언어인 우토-아스테카 언어 지역에서는‘두’가 없는‘우머리(umuri)’가‘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45). 이 언어 지역에서는 우리말이 매우 광범위하게 나오고, 원주민의 풍속에서도 붉은 볼연지나 상투 등과 같은 우리민족 풍습이 많이 발견된다. 결국 멕이코 촐룰라(Cholula)는 지명까지도 우리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이곳의 피라밋을 ‘다지왈태백(tlachihualtepec)’ 즉 ‘다 지은 태백’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곳의 원주민들의 많은 풍습이 우리민족 고유 풍습과 같았다는 손성태(2010)의 연구를 고려할 때, 이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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