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4
이름: bc8937
2015/2/1(일)
민조시란 무엇인가?  

 

 

민조시학 편집동인 전자우편 좌담 / 박 민우

 


1.민조시(民調詩)란 무엇인가?

 민조시(民調詩)를 대표하는 낱말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잡초의 힘'이라 말하고 싶다. 그것을 민초(民草)라 하고 민초(民草)는 백성을 뜻하며 백성은 나라의 근본을 뜻한다. 다시 말해 민심은 천심이다.

 상고시대에 왕을 뜻하는 씨(氏) 자에 왕관을 씌운 글자가 백성 민(民)이다. 백성이 없는 군주는 무허한 것이므로 백성이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요 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현대 시문학에 새로운 사조로 태어난 정형시에 민조(民調)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마치 미인대회 우승자에게 왕관을 씌우는 일 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 이름이 주는 효과는 민조시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조문학이 손을 잡고 화합의 길을 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조시(民調詩)는 3.4.5.6이라는 짧고 단순한 자 수로 정형시를 쓰는 것이다. 그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관찰력, 그리고 시적(詩的)인 상상력이 요구되는 까다로운 문학이다. 그렇다고 민조시(民調詩)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문학이라는 것은 아니다. 민초(民草)라는 이름의 서민적인 성향(聲響)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지 시적 감각이 깊어질수록 그 이론적 바탕을 잘 갖추어야 하므로 까다로운 문학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조하면 어렵게만 느껴진 사람들이 많았을 줄 안다. 정형시에 대한 이론도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을 배웠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현대 정형시를 제외한 전통시는 한자(漢字)로 되어 있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정형시를 보급하려는 노력 또한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사람들만 즐기는 詩는 이제 그만 지양(止揚)되어야 한다. 온 국민이 함께 즐기고 함께 부를 수 있는 詩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과거의 산물인 정형시를 버리자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보다 한국적인 새로운 정형시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연결해 보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적인 관심사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문학인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히 요구 된다.

 훈민정음(訓民正音)과 한자(漢字)를 오가며 우리말의 어휘력과 우수성을 백분 발휘할 수 있는 민조시는 현대시문학으로서 우수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고전 정형시의 품격을 갖출 수도 있고, 쉽게 써내려갈 수도 있으며, 해학, 풍자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상력들이 민조시의 품격을 말해준다. 누구나 쉽게 시작해서 차츰 단계를 높여가는 과정적 학습법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 점이 아쉬울 뿐이다.

 혹자는 '한글정형시'를 주장하였다. '한글정형시'란 발상 자체는 나무랄데가 없다 또 하나의  문학 쟝르로서 대우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글정형시'는 민조(民調)라는 정의를 벗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민조시(民調詩)가 크게 발전하려면 어휘력이 풍부해야 하고 풍부한 어휘력은 한자(漢字)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가능해 진다. 한자(漢字)는 우리말이며 그 근원은 천축어(Sanskrit)인데 굳이 불용(不用)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말은 천축어(Sanskrit)를 바탕으로 시작됐으며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함경도 사투리가 모두 천축어(Sanskrit)이다. 한자(漢字)는 천축어(Sanskrit)를 문자화한 것이며 한자(漢字)의 음(音)과 뜻은 상고시대 우리의 말이 아니면 풀어지지 않는다. 다시말해 한자(漢字)는 우리 민족의 말이며 글자이기 때문에 불용(不用) 주장하는 것은 민족의 훌륭한 문화 유산을 쓰지말자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된다.

그리고 한글이라는 말도 사실은 왜곡된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명명하신 데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해야 한다. 한글이란 말 자체는 '우리 민족의 문자와 말씀'이라는 뜻이 되지만 문제는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 명하셨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께서도 쓰신 한자(漢字)를 왜 우리가 말살하려 하는가? 이 모든 것의 발단은 일본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따고 서양식 어문법을 도입해 우리 말을 정리한 한글 학자들이 잘못된 인식을 심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자세히 말할 날이 있을 것이다.            

 민조시의 수리적 바탕은 천부경 八十一字에서 나온 것이다. 쉽다고 해놓고 자꾸 어려운 문자를 토해 놓으니 이럴 때는 필자도 독자에게 우스운 개꼴이 되고 만다. '민조시(民調詩)란 무엇인가?'에 답하면서 수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 부득이 한마디만 더 하겠다.

 천부경 八十一字 가운데 놓인 六은 우주의 중심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수리학 적으로 六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리를 논하자니 이미 많은 문형(文兄)께서 밝히신 바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六은 키운다는 의미의 육(育)과 소리(音)가 같은데 그 어원적으로 따지면 뜻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산스크리트語로 풀면 育(육)은 기르다. 짐승 따위를 치다. 발음은[뜌 ]라고 東國正韻(동국정운)에 기록 되어 있는데 산스크리트는 duh, doh, '자손을 두다', 養育(양육)의 뜻이 된다.

그리고 산스크리트語 dhi^-o^(디오, 됴)(道)하면 '참선하다', '명상하다'를 뜻 한다.

道는 첫째, doha(산스크리트), 우리말 젖, 영어 milk, 젖먹여 기른다. 도울조(助)에서 도와조(doha-do) 하듯이 도는 먹여 살린다의 뜻이다. 도울조(助)도 道와 같은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이다.

道는 둘째, path(산스크리트), 영어 pass, way 등 사람이 다니는 길을 뜻한다.

그러니까 六의 본디 소리는 디오, 됴, 뜌, doha, dhi^-o^,duh, doh에서 알 수 있듯이 '참선하다', '명상하다' 道 등의 뜻에 귀착하므로 우주의 중심이라한 것이다.

민조시(民調詩)에서 六을 가장 중요시하는 이유는 누가 정의 내리지 않았어도 우리 桓民族의 마음속에 유전적으로 내려온 감각 때문 일 것이다.
민조시(民調詩)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진화되고 세련된 것이며 가장 고풍스런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을 수 있는 작지만 큰 그릇이다.


律呂꽃 十八字
(민조시)


박 민우

 

十八字
民調歌樂
律呂꽃 피워

滿香 東西 南北.  

 

 

 

2.나는 민조시를 이렇게 쓴다?

 

짧지만

뜻은
깊게

한없이
밝게

본향(本鄕)을
이룬다.

* 본향(本鄕) : 마고성 복본

 

3.민조시와 자유시의 차이점은?

 詩는 인간의 본성을 저울질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다 해왔다. 근본이 惡하던 善하던 詩를 읽으며 그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詩人은 진화해 왔으며, 역사에 길이 남을 名詩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우중충한 것으로 그것은 민조와 자유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자유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비단 새(鳥) 만이 가진 특권이 아니듯, 민초의 푸른 꿈도 마음껏 하늘을 나를 수 있는 세상에 우리가 발 딛고 있음을,

하시(何時)라도 詩人이 되었으면 하는 꿈은 있었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보면 차라리 아니한 것만도 못하리라.     


4.민조시와 시조의 관계?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보완하며 화합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테면 詩를 읽는 국민적 부흥을 위해 같이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며, 기초 과정을 만들어서 쉽고 재미있게 詩를 접하도록 인도하며 차츰 단계를 높여가는 심화 프로그램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헌신이 필요하므로 두 문단은 서로 반목을 떨쳐버리고 하루빨리 한民族의 먼 미래를 위해 화합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오려면 썩은 기둥부터 도려내고 바꾸어야 한다. 세계인들이 우리의 詩를 읽고 감동을 받게 하려면 그 정도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5.민조시와 하이쿠와의 관계?

새삼 무슨 관계를 말하라는 것인가? '하이쿠'가 세계화 된 것은 일본인 스스로가 '하이쿠'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독불장군인 한국 사람들을 바라보는 詩人으로서, 마냥 '하이쿠'가 부러울 뿐이다.

길에서 과자를 사먹어도 포장지에 '하이쿠' 일본의 정형시가 친구 처럼 눈에 들어 온다는데, 두터운 독자층과 동우들이 오늘날 세계의 '하이쿠'를 만든 것이다.

 

6.민조시의 전망에 대하여?

민조시에는 힘이 있다. 한民族을 이끄는 힘, 그것은 훈민정음(訓民正音)과 한자(漢字)를 오가며 詩를 쓸 수 있는 풍부한 어휘력에서 나오는 힘이다. 너무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 그건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기에는 좋은 것이지만 詩를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위압감만 줄 뿐이다. ' 詩는 영혼의 고향'이란 말 처럼 민조시를 통해 모든 영혼들이 위로 받을 수 있고 엄마의 품속 처럼 따쓰함을 느끼게 된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모든 詩는 공평하다. 따라서 詩라는 이름으로 줄을 서게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바다에 배 띄우고 노를 저어라, 민초의 힘으로. 

 

2014.12.31

박 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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