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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58
2016/9/11(일)
산해경 역사적 비밀 밝혀지다  

2009.11.05 10:45 | 중국 관련 역사-韓國的臣弟子國-배달조선겨레 | 天山歷史硏究院

http://kr.blog.yahoo.com/sppopsj/1362086

 원본 : 天山歷史硏究院(天山 HISTORY R. I.) 麻姑 桓國 檀國靑邱 朝鮮三韓 夫餘後三韓 高新百加 大震新羅 高麗遼金 朝鮮淸-마고 천산한국 배달청구 조선삼한 부여후삼한 고신백가 제1남북국 제2남북국 제3남북국-1만년역사
그동안 필자는 산해경(山海經)을 서기전2267년에 있었던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도산회의 때 순임금과 치수담당 사공 우(禹)에게 하교한 우공(虞貢)의 사례(事禮)의 하나로 만들어진 책으로 주장하였다.

이제 산해경은 우공의 사례임이 밝혀졌다!  바로 오월춘추라는 글에 명백히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즉 우가 단군조선 태자부루가 주관한 도산회의에서 치수법을 전수받고 치수를 하면서 백익과 함께 명산대택을 돌아다니며 산천의 맥리와 지하자산과 새와 짐승과 곤충류와 민속과 특이한 나라와 지역과 토지의 거리를 백익에게 기록하게 한 인문지리책인 것이다.

1. [원문 발췌] 吳越春秋越王無余外傳第六

...禹乃東巡 登衡嶽 血白馬以祭...因夢見赤繡衣男子 自稱玄夷蒼水使者 ...禹退又齊三月 庚子登宛委山 發金簡之書 案金簡玉字 得通水之理...遂巡行四瀆 與益...行到名山大澤 召其神而問之山川脈理 金玉所有 鳥獸昆蟲之類 及八方之民俗 殊國異域 土地里數 使益疏而記之 故名之曰 山海經...

[해석] 오월춘추 월왕 무여 외전제육

*월왕 무여(無余) : 월왕 무여는 월나라 시조인데, 하나라 우왕 이후 7대 소강(서기전2079~서기전2058)에 이르러 소강이 서자(庶子)인 무여를 월에 봉한 것이다. 이후 서기전491년 월왕 구천이 오나라 합려왕에게 굴욕을 당하고 귀국하여 와신상담을 함. 서기전473년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병합함.  

우가 이에 동쪽으로 순행하여 형악에 올라 백마의 피로 제사를 지냈다...꿈에서 붉게 수놓은 옷을 입은 남자를 보았는데 자칭 현이의 창수사자라 하였다... 우는 물러나와 삼개월동안 목욕재계하였다. 경자일에 완위산에 올라 금간의 책을 발견하매 금간과 옥자로 되어 있었으니 통수의 이치를 얻은 것이었다. 드디어 사독을 순행하였다. 익과 함께...명산대택에 이르러 그 신을 불러 산천의 맥리와 금과 옥의 소유와 조수곤충의 종류와 팔방의 민속과 특이한 나라와 지역과 토지의 거리수에 이르기까지 물어 익으로 하여금 소상히 기록하게 하였다. 고로 그것을 이름하여 산해경이라...

*적소의남자 : 붉게 수놓은 옷을 입은 남자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귀인이라는 말임.
*현이 창수사자 : 현이의 현은 북쪽을 가리키는 말로서 현이는 곧 북이(北夷)가 되며 더 정확하게는 단군조선 본국의 진한(震韓) 지역을 의미한다. 창수사자는 푸른물의 사자 즉 현이에 있는 푸른 물 지역 출신의 사자를 의미하는데, 이는 곧 북극수정자(北極水精子)와 통하는 말이다. 현이의 창수사자는 단군조선 본국의 사자 즉 천사(天使)를 가리키며, 북극수정자는 북극수의 정자 즉 천제의 아들임을 의미한다. 우에게 치수법을 전수한 분은 곧 단군왕검의 태자인 부루로서 단군왕검은 천제로 받들어지며 태자는 천제자로서 북극수정자이자, 단군왕검이 파견한 사자로서 창수사자로 기록된 것이다.
*金簡之書 金簡玉字 : 소위 금간옥첩을 가리킨다. 금박으로 된 책에 옥으로 새긴 글자를 말한다.
*通水之理 : 치수법(治水法)을 가리킨다.
*산해경 : 위 글에서 산해경은 곧 우가 도산회의에서 치수법을 전수받은 후 백익과 함께 명산대택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인문지리서인 것이다.

2. 산해경의 저작시기 고찰 : 서기전2267년경~서기전2247년경

위 오월춘추에서 산해경은 우가 치수법을 얻은 후 백익과 함께 명산대택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인문지리서임이 밝혀진다.

우는 순임금 시절에 사공 벼슬에 있었다. 사공은 건설담당으로서 당시 치수담당이었다. 순임금 시절의 홍수는 이미 요임금 시절에 시작된 것이다. 바로 서기전2288년에 요순9년 대홍수가 시작되었고, 곤이 치수를 맡았으나 9년동안 공을 세우지 못하여 서기전2280년에 당시 섭정이던 순이 곤을 처형하고 곤의 아들 우에게 다시 치수를 맡겼던 것이다.

요임금은 서기전2357년에 형 제지를 멸하고 나라를 차지하여 당나라가 되었으며, 전쟁을 일삼다 급기야는 단군왕검이 섭정을 하던 공상(空桑) 지역의 염제신농국을 기습점령하였고 이에 단군왕검의 외조부 홍제(洪帝)가 붕어하니 단군왕검은 무리 800을 이끌고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하여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구이의 추대에 응하여 조선을 건국하였던 것이며, 서기전2324년경 순의 아버지 유호씨에게 명하여 환부, 권사 등 100여명과 군사를 이끌고 가서 요를 깨우치게 하였는데, 황하에 이르자 요임금이 굴복하여 유호씨를 대접하고 황하물가에 머물게 하였다. 이에 유호씨는 요의 소행을 감시만 하게 되었는데, 이때 요임금은 순의 사람됨을 보고 자기사람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서기전2314년경 순의 나이 30에 등용하였다. 순의 나이 50인 서기전2294년에 요임금은 순에게 섭정을 맡겼다. 이후 서기전2288년에 9년대홍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순은 서기전2284년에 섭정을 마감하고 요임금을 유폐시키고 강제로 선양을 받아 천자자리를 찬탈하였다. 서기전2280년이 되도록 9년이 지났으나 곤이 치수를 성공치 못하므로 순임금이 우산에서 곤을 처형하였다. 이에 곤의 아들 우에게 치수를 맡겼는데, 우도 7년이 지나도록 노신초사하였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황제중경력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치수법을 얻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이에 13년째인 서기전2267년에 드디어 태자부루에게서 치수법을 전수받은 것이다.

태자부루를 만나는 방법을 일러준 사람이 자허선인(紫虛仙人)이라고 전한다. 서기전2333년에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하였고 이후 서기전2267년경에는 태자부루가 섭정을 하고 있었던 시기인데, 이에 태자부루를 진한(震韓)이라고 한다. 韓은 비왕(裨王), 보왕(補王) 즉 정사를 대신 맡은 왕, 섭정왕을 의미한다.

서기전2267년에 태자부루는 동북의 아사달을 떠나 발해만 유역의 번한을 거쳐 양자강 북쪽에 있는 도산에 이르렀다. 반달간 번한지역에 머물면서 청문을 하였고, 순임금으로 하여금 들리게 하여 치수경과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시간과 달력을 협의하여 맞추고 율도량형을 맞추었으며, 이후 번한을 대동하여 도산(塗山)으로 가서 회의를 주관하였다. 회의주관이라는 말은 태자부루가 주체가 되었다는 말이며, 초대받은 입장이 아닌 것이므로, 이때의 단군조선 직할 영역은 양자강에 이르는 것이 된다. 즉 양자강 이북에 있는 회수라는 강 유역까지 단군조선의 번한지역에 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순임금의 나라는 천자국으로서 요임금이 단군조선에 굴복한 이후 정식 천자로서 인정을 받은 나라로서 제후국에 해당하며, 순이 천자자리를 찬탈함으로써 순임금은 아버지 유호씨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며 이때에 이르러 순임금이 정식 천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도산회의에서 번한은 진한 태자부루를 대신하여 사회를 보았고, 이때 태자부루를 북극수정자라 칭하였으며, 천제자라 칭하였다. 이에 우가 천제자의 가르침을 잘 따르겠다 맹약하면서 치수법을 전수받았던 것이다. 이후 우는 치수에 성공함으로써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리하여 우는 단군조선의 후원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도산회의를 도산회맹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태자부루는 순을 대신하여 참석한 우에게 치수법을 전수하고, 순이 단군조선 직할영역(번한 접경지역)에 마음대로 설치한  유주와 영주를 거두어 들여 단군조선 영역에 편입시켰으며, 5년에 한번씩 순행할 때 우공(虞貢)의 사례(事例)를 보고토록 하였다. 이리하여 서기전2267년부터 서기전2247년까지 순임금은 20년동안 4차례에 걸쳐 우공의 사례를 보고하였던 것이다.

서기전2267년부터 우는 본격적으로 치수에 돌입하여 얼마되지 아니하여 마무리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책이 바로 산해경이다. 이는 도산회의에서 하교된 우공의 사례에 속하는 것이다. 즉 5년에 한번씩 우공의 사례를 보고토록 한 내용에 산천지리와 인문지리에 관한 것도 함께 보고토록 하였으니 이에 만들어진 책이 바로 산해경이 되는 것이다. 즉 산해경은 서기전2267년경이후 서기전2247년경 사이에 만들어진 책이 된다.

서기전2240년에 태자부루가 단군조선의 2대 단군이 되었고, 순임금은 서기전2247년 이후 다시 마음대로 단군조선 번한영역에 유주와 영주를 설치하였는데, 부루단군이 이를 정벌하였고 이후 순을 제거하게 된 것이다. 이에 유호씨는 작은 아들 유상과 우의 군사로 하여금 순을 치게 하였으며, 드디어 서기전2224년에 순은 우의 군사에게 창오의 들에 도망하던 중 죽임을 당하였고, 이에 두 아내도 강물에 투신자살하였던 것이다.

3. 우공(禹貢)은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우공(虞貢)은 순(舜)임금이 단군조선에 한 보고체계

어떤 자들은 상해경을 하나라 시절에 지어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하나라는 서기전2224년부터 서기전1766년까지 존속한 나라이며, 서기전2224년부터 서기전2198년경까지 하나라와 유호씨가 전쟁을 하였으므로, 백익이 산해경을 짓기 위하여 산천을 돌아다닐 시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산해경은 우가 사공의 벼슬에 있을 때인 서기전 2280년 이후 더 정확하게는 도산회의가 있었던 서기전2267년 이후에 우공(虞貢)의 사례로 작성된 것이 된다. 역사날조자들은 우공(禹貢)이라고 주장하면서 우공(禹貢)은 우(禹)의 나라 즉 하(夏) 나라의 제후들이 우(禹)에게 바친 조공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우공(禹貢)은 바로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보고하는 체계이며, 우공(虞貢)은 순임금이 단군조선에 보고하는 체계가 되는 것이다. 산해경은 요순9년대홍수 때문에 지어진 책이므로 우공(禹貢)을 포함하는 우공(虞貢)의 사례(事例)인 것이다.

하나라 시조 우는 서기전2224년에 순을 죽인 후  곧바로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자칭 하왕이라 하면서 천자자리를 차지하였는데, 이후 단군조선의 사자 유호씨와 줄곧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우는 정식천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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