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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9
이름: 노성매
2006/7/7(금)
발해(渤海) 1  
 

  율곤학회에서는 발해사에 대해,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곤선생의 저서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발해 부분을 모아 편집했습니다.


 


 

     ① 발해(渤海)의 근원

  발해(渤海)라는 이름은 대조영에 의해 처음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은 상당히 오래된 것 같습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보면, 발해군이라는 이름으로 한나라 때부터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하북성 하간현을 중심으로 하북성, 산동성 일대를 발해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渤海郡. 漢置. 今直匠河間縣以東至滄縣. 北至京兆安次縣. 南至山東無 縣. 皆其地…


 
  장삼식(張三植) 저(著)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에 있는 후한(後漢)의 계보도입니다.


 


  후한 3대 장제(章帝)의 셋째 아들이 천승왕신(千乘王侁)인데, 천승왕신의 손자 유홍(劉鴻)이 발해왕(渤海王)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해왕 유홍의 아들이 다시 후한의 9대 왕 질제유찬(質帝劉纘)이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대조영이 독자적인 나라이름을 발해라고 이름붙였던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지명으로 사용되어왔던 발해라는 지역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대조영이 당나라로부터(713년) 발해군공(渤海郡公)이라는 관작을 수여받아 발해 지역을 다스리다가, 차츰 세력을 넓혀 발해군에서 발해국(渤海國)으로 발전한 듯 합니다.


  그런데 연호(年號)까지 독자적으로 사용한 상당히 거대한 나라였음에도, 국사대사전 등 우리의 기록에는 과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중국 내지 중화(中華)의 변두리로 발해를 밀어내고 있으니 좀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야후의 두산세계대백과에는 발해가 흑수말갈과 상당히 적대관계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말갈을 복속시키고 그곳에 지방관제인 부(府)를 설치했다고 되어있습니다.

 (발해의 세력이 강해지자, 흑수말갈(黑水靺鞨)이 발해와의 화친관계를 깨고 당나라에 보호를 요청하였다. 이에 반발한 무왕은 동생 대문예(大門藝)에게 군대를 이끌고 흑수말갈을 공격하도록…선왕 때 동북방면의 말갈부락을 복속시키고 그곳에 부(府)를 설치하였다.)


   중학교 국사책 상권 84쪽 지도에는  지방관제인 부(府)을 설치했다는 그곳에,  발해의 5경(京)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1934∼35년 사이에 일본인들에 의해 학술조사가 실시되었다는데, 그때 일본인들에 의해 발해 유적의 발굴이 아닌, 발해의 이식작업이 이루어졌는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발해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거란의 요(遼)나라 역시 발해를 본떠 똑같은 이름으로 5경을 두었는데,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거란과 발해와의 구체적인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해본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발해의 5경은 바로 요(遼)나라의 5경과 일치하지는 않을까요.

 



 
    ② 대조영의 혈통문제


   야후의 <두산세계대백과> 인용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는 본래 고구려의 별종(別種)이었다는 《구당서》의 기록과, 속말말갈인(粟末靺鞨人)이었다는 《신당서》의 기록이 병존한다. 종래 이 때문에 이를 둘러싼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한편, 한국측의 기록인 《신라고기(新羅古記)》 《제왕운기(帝王韻記)》에서는 대조영을 고구려 장수라고 표기하였다. 대조영의 출생과 성장과정에 관한 더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이홍식(李弘植) 저 <국사대사전> 인용

…건국의 방침은 고구려의 부활에 있었으며, 이는 제2대 무왕(武王)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어 "이 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夫餘)의 유속(遺俗)을 지킨다" 하고 수호(修好)를 청한 일과, 제3대 문왕(文王)이 일본에 보낸 국서(國書)에 스스로 고구려 국왕(高句麗國王)이라 칭하고 있는 점 등으로도 명백하다.…



  종합하자면,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 내지는 말갈인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말갈 역시 한민족입니다.

  말갈의 조상은 물길(勿吉)이며, 물길의 조상은 읍누( 婁), 읍누의 조상은 숙신(肅愼)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재발견"의 저자 복초최인 씨는, 숙신이 한민족의 선조라고 주장했습니다.(율곤 이중재 저, 상고사의 새발견 141쪽)

  말갈 역시 한민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갈편을 참조하시길. (→말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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