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5
이름: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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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문자해제  

발해문자해제
고려사태조세가에 보면 발해국에 문자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자가 있다고 해서 한자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발해국 자신의 문자가 있다는 말이다. 즉, 발해국은 자기문자가 있는 자주성을 갖춘 왕국이다.
12년 봄, 북쪽 진에서 "적국 사람이 진에 들어와서 판자쪽을 나무에 걸어 놓고 돌아갔다"고 상주하면서, 그것을 가져다 바쳤다. 그 판자쪽에는 "보로국과 흑수국 사람들이 모두 신라국과 화친하고자 한다"는 열 다섯 글자가 씌여 있었다.주1),{三國史紀},
내용은 한자와 발해문자로 기록했다고 한다.이것은 발해문자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백의전서 옥진총담(玉塵叢談)에 (李白識渤海文).AD8세기 중기, 발해국에서 당에 보낸 국서를 이백이 능히 알았다.
 당나라 시선 이백(이태백)은 발해문자에 정통하였다.주2),金光錫, 『渤海族的形成及其社會形態分析』, 1991, 香港.
발해 문자를 연구하고 있는 대진대 사학과 김재선 교수는 "'이태백전서·옥진총담'에는 '발해국에서 당으로 보낸 서신이 있었는데 온 조정에서 이를 해독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태백은 이를 해독하고 회답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며 "이태백이 742년에서 744년까지 한림원공봉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의 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발해 말기 일본을 방문한 발해 사신 2명의 이름이 '주부리'(·목현의 수령)와 '마부리'(·석현의 수령)이었는데, 당시 한 관리만이 이 글자를 알고는 '이국(발해)에서 만든 글자라고 하자 발해 사신이 매우 감탄했다'는 기록도 있다.주3),대진대 사학과 김재선 교수.발해기와문자 128자 가림다정음 38자. 발해문자해제 이상 발해기와 문자128자 중 65자를 해석한다.주4),金光錫, 『渤海族的形成及其社會形態分析』, 1991, 香港. 발해국은 이 문자로 한자와 혼용하여 역사서인 서기(書記)와 대당공식문서를 썼다.시선 이백(이태백)은 발해문자에 정통하였음을 증명한다.즉, 발해국은 자기문자가 있는 자주성을 갖춘 왕국이다.
발해문자해제,발해기와 문자128자 중 65자를 해석한다.
발해국(渤海國)은 태평성세(太平盛世)를 누린다.
백성들이 밭과 들에서 경작을하고 생활은 부유하다. (百姓在田野種田,生活富有)
발해국의 주민들은 희망감이 충만하고 가족간에 서로믿고 즐거움이 넘친다.
철을 녹여 무기, 공구, 가정용구를 만든다.
일터에서 가정에 돌아오면 가정에 화기가 넘친다. 사회상 규율이 엄격하고 사회악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린다.
백성들은 부처와 주역을 믿고 또 하늘, 땅, 산, 하천 등 대자연을 믿는다.
백성들은 신의 은혜에 감사하고나서 온 복락을 믿는다.
발해는 농업생산이 풍부하고 발해주민이 제작한 농기구 무기가 너무진귀하다.
백성들은 대인관계가 좋다. 특히, 예의가 바르다.
또한 전사한 전사자의 영혼을 추모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보덕황제(保德皇帝)는 전사자를 추모하고 살아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포필진 병복을 교환해 준다.발해기와 문자 제작자는 김가, 박가, 등이다.是本人憑個人的歷史意識推理寫出來,這涉及史學和文學的部分.주5),金光錫해제.
발해국은 자기문자가 있는 자주성을 갖춘 왕국이다.
이백이 발해문자 전문가이다.야만민족은 문자가 없다. 발해국은 자기문자가 있는 문화민족이다. 발해국은 이 문자를 사용하여 많은 서적들을 발간하였다고 한다. 발해국은 동북아의 지도력있는 민족국가이다.
 이백은 발해에 대해 관심이 깊었고 잘 알고있었다.
정혜공주가 당나라의 태학에 다닐 때 국자감의 박사로 부터 이백의 시문과 도연명의 시문 강의를 2년간 받았다.
이백의 정혜공주에 대한 인상, 아니 발해에 대한 인상은 아주깊다.
이백이 발해에 대해서 고려, 또는 백제로 인식한 것은 아주 담백하다.
이것은 당시 당나라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이라고 본다
이백은 청년시절을 거의 사세로 여행을 했기 때문에 민초들의 생활상을 잘 안다.
따라서 발해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이백의전서 , 嚇蠻書, 內有記載  李白看渤海為高麗﹐百済。可見李白看渤海為異國. 발해는 고구려, 백제,唐시선 '이태백' 이 발해를 이국으로 보았고 唐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唐人들의 보편적인식은 발해를 고구려, 백제 등으로 인식하였다고한다.
그러니까 대당과의 관계에 있어 1국과 1국의 관계이다. 따라서 발해국은 중국 외의 고대국가 이다. 소위 발해국이 당나라의 일개 지방정권이라는 논
리는 당의 외교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발해는 자주성갖춘 고대국가 이다.
발해의 풍속은 고구려 거란과 같다. 그리고 발해는 고구려어사용,가림다정음 38자를 표기했다.
발해와 고구려의 법속이 동일하다.
여기서 발해와 고구려는 문화적 특성과 상호 관련성 등을 많이 발견 할 수 있다.
더욱이 고구려가 발해의 수중에 들어갔고 말갈이 발해의 호구로 전부 변성하였다.
고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 발해의 문화적 특성과 연관성은 계승관계를 증명 한다.
발해국은 자기문자가 있는 자주성을 갖춘 고대왕국이다.
이백이 발해에 대해서 고구려, 또는 백제로 인식한 것은 아주 담백하다.
발해, 고구려, 백제는 한민족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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