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3
이름: bc8937
2009/9/18(금)
북회귀선.JPG (94KB, DN:340)
북회귀선(北回歸線)  

 

일구(日晷) 


《강목(綱目)》 당 현종(唐玄宗) 개원(開元) 9년 항에, “태감(太監) 남궁열(南宮說)을 보내어 일구를 측정하기 위하여 남쪽인 교주(交州)에 가서 8척이 되는 표목(表木)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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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交州)는 한(漢)나라 때 교지(交趾)였다가 교주(交州)로 바뀌었으나 이 지역은 지금의 광서 광동 귀주성 일대였습니다.

좀 넓었지요.

수나라 때 교주(交州), 당나라때 교주(交州)가 지금의 월남 하노이 부근입니다. 한(漢)나라 때 교지(交趾)가 여기였던것 같습니다.

주로 남쪽 지방을 가리키는 것인데 조선시대였던 위의 글에서는 당나라때 교주(交州)를 가리키고있으므로 지금의 하노이 부근 일 것 같습니다.


하지(夏至)에 일구의 그림자는 남쪽으로 3촌 3분이 나타난다. 남과 북이 거리가 3천 6백 88리(里) 90보(步)인데, 일구의 차는 1척 5촌 3분이 된다. 곧 24리 31보 남짓한 거리에서 그 일구는 1분의 차가 생긴다. 교주에서 북으로 7백 95리에 가면 여기가 바로 하지에 태양이 똑바로 내려 비추어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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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북회귀선(北回歸線)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회귀선(北回歸線, Tropic of Cancer)은 북위 23° 26′ 22″를 지나는 위선이고 하지 때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곳입니다. 즉, 교주(交州)에서 북으로 7백 95리를 가면 위도가 북회귀선(北回歸線)인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교주(交州)의 위치는 북회귀선(北回歸線)아래에 있으니 더욱 명확해지는군요.  

 

그러니까 남북으로 1만 9천 2백 리 남짓한 거리에서 표목과 그림자가 꼭 같게 된다. 요(堯) 시대에 화중(和仲)이 가서 있던 북방[朔方]의 유도(幽都)라는 곳이 바로 여기인 듯하다. 1만 9천 2백 리 남짓을 반으로 나누면 9천 6백 리 남짓이 되는 셈이니,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 데서 북으로 9천 6백 리 남짓이 되는 곳에 가면 곧 한대와 열대의 중간 위치로 가장 살기 좋은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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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 유도(幽都)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쉽지않습니다. 유도(幽都)는 교주(交州)의 반대 개념으로 쓰여졌는데 북쪽을 가리키고있으므로 북회귀선(北回歸線)에서 북으로 9천 6백 리를 가면 되는데, 한대와 열대의 중간 위치로 가장 살기 좋은 땅이다. 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하투지역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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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관리자님 지명확인 내용을 보고 수정 본을 올립니다. 내용무(꽃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