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5
이름: 李開春
2010/2/21(일)
甲骨學은 짝퉁학 인가? - 1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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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짝퉁의 지존 남보광(藍葆光)

 

 

 

                               董作賓 著 [甲骨學 六十年]   동작빈 저 [갑골학 육십년] 중에서

 


갑골문을 가짜로 새긴 것이 도처에 널려있을 정도로 많았는데 그 수량이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가짜를 새긴 사람은 자연 한 사람만은 아니었으니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사람은 남보광(藍葆光)이란 자였다.

남보광은 하북성 사람인데 나는 1928년 가을 제1차 은허(중국[河南省][安陽縣][小屯村]하남성 안양현 소둔촌에 있는 고대 상(商) 나라 수도 유적지 )발굴 때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30살 정도의 약관으로 문약한 서생 같았다.

영리하고 솜씨가 좋은 사람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어릴 때부터 아편을 피우는 나쁜 습관에 젖어 바른 일에 힘쓰지 않고 여러 해 동안 창덕부(彰德府)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 가짜 골동품을 장난삼아 만들었는데 글자가 새겨 있지 않은 동기, 갑골판, 녹각, 전두(箭頭 화살촉)위에 갑골문자를 새길 수 있었다고 한다.

골동품 상인들은 그를 이용하여 가짜 골동품을 많이 만들게 해서 평진경호平津京滬(북경,천진,남경,상해)의 동료를 속이고 그들은 또 그것으로 서양인들을 속였는데 남보광은 자기 손으로 만든 물건을 돈으로 바꾸어 아편을 필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골두(字骨頭)를 모방해서 새겼는데 그 작품을 나에게 보여준 적도 있었다.

원래 골동상인들은 은허에서 나온 글자가 없는 귀갑과 우갑골(점치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글자가 없는 갑골이 글자가 있는 것보다 많다.) 녹각, 수골 등을 싼 값에 사서 그에게 새겨달라고 했던 바, 재료는 옛 것이고 문자는 새 것으로, 그는 무늬를 새기거나 갑골문을 조각하여 괴상한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고 무늬나 갑골문도 새겼는데 판로가 매우 좋아 골동상인들이 모두 그에게 아첨할 정도였다고 한다.

유철운이 갑골을 수집한 뒤부터 가짜가 섞이더니 1928년에 이르러서는 계속 가짜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남보광은 갑골문자를 많이 베낀 책자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유철운, 나진옥이 출판한 각 책들도 모두 베껴두었다.

그러나 그는 한 글자도 알지 못했다. 그는 부스러진 조각들에 한 글자를 새길 때 조각들을 거꾸로 방치해 두었으면 곧 뒤집혀진 글자를 쓰게 되었다. 심지어는 전편 모두를 뒤집어서 쓰기도 했다.

새길 때는 책자를 보고 베꼈는데 새기는 것이 익숙해 진 뒤에는 어떤 글자가 생각나면 곧 그 글자를 새길 정도로 새기는 솜씨도 좋아서 문외한들이 볼 때는 매 판 매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갑골문 같았다.

갈수록 더욱 진보하여 완전한 조각만을 베낄 뿐 아니라 새기는 기술도 정밀하기 짝이 없어 완전히 진짜와 혼동할 정도여서 복제판과도 같았다.

그가 일찍이 귀복갑(龜卜甲) 하나를 보내왔는데 뒷면을 뚫고 불로 지진 것은 모두 원래의 것이었다.

그는 이것의 앞면에다 매우 정성스럽게 몇 단의 복사(점을 친 내용)를 새겼는데 확실히 출토된 것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그가 문예(文例)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은 글자를 새긴 위치와 좌우행이 모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알려주진 못했다.

내가 보았던 가짜들에 의하면 민국초년과 광서 말년(1912년)에 만들어진 것은 대부분 구독(句讀)이 안 되며 혼란스럽게 섞여 질서가 없고 중간에는 뒤집힌 글자가 있었는데 이는 그 때의 스타일이었다. 

그 뒤에는 통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통하지 않는 구절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었고 최후에는 전문을 모방하여 새긴 것이었다.


갑골학도 먼저 -가짜를 구별하는- 조예가 필요하게 되었으나, 안양에서 다년간 목사를 지낸 멘지스(1885-1957캐나다 Menzies James Mellon)박사는 1914년부터 갑골문자를 찾아 나섰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최초로 구입했던 대골판(大骨版)은 전부 새 우골(牛骨)에 모방해 새긴 것으로 소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썩은 냄새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오로지 작은 것들만을 사는데 온 정력을 기울여 탐구하여 마침내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1904년에서 1908년에 이르기까지 영국인 쿨링, 미국인 칼휀트,가 소장한 갑골문자가 훗날 “고방이씨장갑골복사”[庫方二氏藏甲骨卜辭]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수록된 갑골은 모두 1687片이다.

그 중 큰 조각은 과반수가 가짜이다. 


1919년에 또 대량의 가짜가 나타났는데 이때  통허 시경훈(通許 時經訓)선생이 구입하였다.


남보광과 기타 갑골을 위조한 사람들은 그저 돈을 벌기위해 옛 것을 좋아하는 중국과 외국의 허다한 선비들을 속였고 동시에 은상시대의 중요한 사료들을 어지럽혔으니 그것에 관련된 후과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董作賓 著 [甲骨學 六十年]   동작빈 저 [갑골학 육십년]  Page - 100 - 에서

 

진짜와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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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갑골판甲骨版이라고 한다.

이 것 또한 남보광이 만들어낸 짝퉁의 원조쯤 되는 가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고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문맥이 통하지 않는 글자들이 여기 저기 중복되어 그려져 있다. 더욱 세밀한 분석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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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남보광이라는 자가 새겨 넣었을 만한 가짜 文字 자체를 지워 놓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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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글자가 새겨진 부분을 떼어내서 우측 갑골 그림속의 문양과 자세히 비교해 보면 글자의 서체형은 물론이거니와 글자의 마모 상태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3000년 만에 세상에 나타날 때의 본래모양은 우측의 문양만이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1900년 산동 유현(山東 濰縣)의 골동품 상인 범유경(范維卿)이 안양(安陽)에 가서 갑골 판을 사들였는데 字수 당 엄격하게 값을 쳐서 字 당 銀 2兩5錢을 주었다고 하였으니 남보광이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훼손되지 않은 본래의 모양그대로의 원본은  아래 그림이 아닐까?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甲骨天文에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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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甲骨版에는 이중 삼중으로 원본을 훼손한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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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고의적으로 원본의 자취를 지우려고 센드 페이퍼로 사포질을 해서 원문을 말끔히 제거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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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글자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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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사기를 칠 모양이었으면 더 많은 글자를 새길걸 그랬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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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갑골문은 점쟁이가 점을 친 내용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지기로는  옛날에 점을 칠 때 거북껍질이나 소뼈에 구멍을 뚫거나 불로 지져 거기에 생기는 갈라짐을 보고 길흉(吉凶)을 판단했고. 점을 친 뒤에는 그 내용을 복조(卜兆금이 간 모양) 곁에 쓴 다음 이를 새겨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거북의 등껍질은 본래는 점을 치는 기본 도구인 시귀(蓍龜)로만 사용되었던 것이었고 그 위에 점 친 내용까지를 기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점 친 내용을 기록한 곳은 거북 등껍질이 아닌 소나 말 짐승들의 견갑골등에 기록했던 것 같다. 뒷날 사기꾼 들이 牛肩甲骨에 적힌 글을 거북등 껍질에 모사 각인한 듯하다.  


아직껏 위 글에는 해독하지 못한 글자가 있다.

가짜인가 진짜인가를 정확히 구별하기위해서는 과학적인 분석과 아울러 모든 문자의 뜻이 일관성이 있게 정의되고 문장이 정확히 이해될 때 그 진위가 판명될 것이다.

그러나 현존 하는 자료만으로는 완전한 해독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해독 했다는 문자들 역시 그 정확성을 담보할만한 충분한 근거자료는 없다.

 

 

解讀해독된 글자의 신빈성

 

갑골문을 발굴, 정리, 문자를 해독하고, 갑골문을 통해 은왕조의 계보를 밝힌, 동작빈은 그의 저서 [甲骨學 六十年갑골학 육십년]에 솔직한 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그때 자기가 맞춘 것이 반드시 맞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현재 갑골문자중 많은 글자들을 사람들이 맞추고 있다. 만일 한 글자를 네 사람이 맞추었다면 누가 옳을까? 商상나라의 貞人(정인:점쟁이)들이 죽은 지 3천여 년이 지났으니 어떻게 그들을 다시 청하여 이런 수수께끼의 해답을 요청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정확한 해독을 했을까?


우선 아래 두 字의 해독 내용을 검토해 보자.   

위 卜辭복사의 내용 중에 辛酉卜賓貞이란  “신유 날에 빈이라는 점쟁이가 점을 쳤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賓은 점쟁이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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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안에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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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을 적을 때 맨 앞에 날짜로 干支를 적고 다음에 卜자를 써서  00卜날 점을 쳤다라고 적고 그 다음 貞자 앞에 점쟁이 이름을 적어 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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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정 자에는 “점괘를 묻는다”라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위 상형이 어떻게 해서 貞자로 읽혀지느냐 하는 것이다.   

최초 갑골을 해석한 학자인 郭沫若. 王國維(곽말약. 왕국유)등이 貞자는 鼎자의 의미이고 鼎은 은(殷)·주(周)시대의 제기(祭器)로서 점을 치는데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 상형을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그릇모양이고 고대에 점을 칠 때에도 이용하는 제기(솥)등의 모양이라는 것이다.

한편 최초에 갑골의 수집과 연구에 몰두하여 1903년에『철운장귀(鐵雲藏龜)』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갑골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劉鐵雲유철운은 貞자가아닌 問자의 상형이라고 주장 했다.


상형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나는 유철운의 問자라는 해석에 동감한다. 


 
甲骨學은 짝퉁학 인가?   - 2 / 15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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