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2
이름: 李開春
2010/3/13(토)
甲骨學은 짝퉁학 인가? -5/15-  
 

                             

 

            

                                           갑골학을 소개하며

 

                                                 - 중국 당국은 모든 자료를 공개하기 바란다. -

 

 

 


이차대전의 연합군 승리에는 비밀암호 해독이 커다란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호의 해독은 많은 정보와 상대방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있다.

문자의 해독 또한 그러하거니와

갑골문자는 이미 많은 정보는 약제용 가루가 되었고,

전쟁의 와중에 유실됐었다한다.

고가의 유물이 되어서 부호들의 장롱 속에 장을 박았으니

정서파악을 할만한 진정한 자료는 많은 량이 소실된 상태이다.

더더욱

동북공정과 아울러 북쪽의 유물을 은밀히 남쪽으로 실어내고 은패 날조함으로써

더 이상 갑골학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유물자료의 공개를 요청하는 바이다.


귀책열전龜策列傳에서 보았듯이

이미 사마천. 저소손이 살아있던 B.C80년경에도 갑골문이 적힌 龜甲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저소손의 말이다.

龜圖各有文在腹下文云云者此某之龜也略記其大指不寫其圖

거북의 그림에는 각각 배 밑에는 어떤 글이 적혀 있는데

이 거북은 무슨 무슨 거북이이다 라고 간략히 적어놓은 것이다.

그것의 대체적인 뜻만을 기록하고 그 그림은 옮겨 그리지 않았다. 고 했다. 

설문해자를 쓴 허신許愼(AD 30~124)또한 불과 100년 이후의 인물이고 보면

그 또한 갑골문을 보았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단지 허신이 6국문자를 버릴 때 함께 버린 것은 아닐까.

갑골문을 해독하는데 설문해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는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기도하다.

다만  BC80년경에도 갑골문자의 존재가 실존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방대한량의 유물로 보나 저소손의 말에 비춰 볼 때,

史記를 비롯한 그이후의 역서에 그 내용이 누락되었음은 의도적인 역사 단절을 의미하고, 

史記의 추종만으로는 올바른 古代史로 나아가지 못함을 의미한다.

 

전 세계의 古文字 거의가 해독된 마당에

갑골문은 占卜的인 내용으로 20%정도의 미진한 해석은 동양학의 수치이다.

이는 핵심 자료의 빈곤함이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 때문이다.




                                    甲骨


甲骨學: study of bone-and-shell inscriptions, Inscriptions on Oracles


1. 갑골문 연구사

1899년 청(淸)나라의 금석학 학자 왕의영(王懿榮)이 베이징의 한 약방에서

용의 뼈라는 것에 새겨져 있는 고대문자를 발견하였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유악이 1903년에 처음으로

갑골에 대한 저서 《철운세귀(鐵雲歲龜)》를 출간하였다.

나진옥(羅振玉:뤄전위)은 이 갑골이 허난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의 소둔촌(小屯村),

즉 은왕조 후기의 왕도 유적인 은허(殷墟)에서 출토된 사실을 확인하고,

현지에 직접 가서 갑골과 더불어 고대의 동기(銅器) ․옥기(玉器) ․석기 ․골기 등을 발굴하였다.

그리하여 과거 역사적 문헌 속에 파묻혀 있던 은왕조의 왕계(王系)가 문헌에 적힌 대로

조갑(祖甲) ․조을(祖乙) ․대을(大乙) 등과 같이 십간(十干)의 하나를 이름에 붙였다는 것,

특히 합동으로 제사를 지낸 왕명과 그 순위가 대부분 문헌의 세계(世系)와 일치하며,

나아가서 그 전승(傳承)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있어

갑골문자는 은왕조가 선조의 제전(祭典)을 점친 문장, 즉 복사(卜辭)임이 증명되었다.

그 후 고고학자의 과학적인 발굴로 이러한 갑골이 은허에서 멀리 떨어진 정저우[鄭州]에서도 발굴됨으로써 갑골문자의 분포 범위가 은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더욱 넓은 지역에 분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 범위도 넓은 것으로 추정되어,

갑골문자가 은왕대의 은허에서만 출토된 것으로 한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은허에 대한 과학적인 발굴 결과, 갑골과 더불어 동기 ․옥기 ․도기(陶器) 등도 출토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리하여 갑골학 연구는 유물 ․유적의 고고학적 연구와 함께 진척되어,

금석학의 한 분과로서의 협의의 갑골학에서

고고학을 포함한 광의의 갑골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앙연구원(中央硏究院)의 발굴을 주재한 동작빈(董作賓)은 2세기 이상에 걸친 은왕조 후반기의 복사(卜辭)를

① 갑골의 출토 상태,

② 서명한 점복사(占卜師)의 이름,

③ 제사를 받는 왕의 명칭,

④ 점복의 형성,

⑤ 문자의 자형(字形),

⑥ 서체(書體) 등에서 초기의 무정(武丁)에서부터 말기의 제을(帝乙) ․제주(帝村)까지의 5기로 구분한

《갑골문단대연구례(甲骨文斷代硏究例)》(1932)를 발표하여 갑골학의 신기원을 열었다.

점칠 때 사용한 갑골은 은허 이외의 초기 유적에서는 멧돼지나 노루의 뼈도 섞여 있었으나,

은허에서 나온 것은 거북의 복부와 등의 딱지 또는 물소의 견갑골에 한정되어 있다.

점은 갑골 뒷면에 불을 쬐어 표면에 생긴 갈라진 금, 즉 조(兆)로 길흉을 점쳤다.

조가 잘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 불에 쬐는 뒷면을 깎아내는 가공을 하였고,

이것도 점점 더 복잡해져서 은허시기에 가장 정교하게 되었다.

점을 마친 뒤에 조 옆에 점을 친 이유를 새겼는데,

이것이 복사, 즉 갑골문자이다.

간혹 갑골 이면에 주(朱) 또는 묵(墨)으로 글씨를 쓴 것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면 갑골문자는 조각된 문자가 아니어서,

고유한 의미의 금석학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갑골학은 금석학에서 발전하여 고고학적 부분에도 확대되었는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왕조의 문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중국 고대문화사의 연구에 필요불가결한 보조학이 되었다.

naver백과사전 등에서 있는 갑골학의 개괄적인 내용을 발췌함.


☞  위내용은 완벽한 해독을 했다고 규정지음으로써 가능해지는 설명이다.

      위와 같은 해석 방법으로 본다면

      제사를 지낼 때마다 수 백 명을 희생 냥으로 죽였다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 저야 한다.



1. 발굴된 갑골문의 량


1984년 후허우쉬엔(胡厚宣)이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당시 중국과 타이완, 홍콩뿐 아니라 일본. 영국.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쏘련 .스웨덴. 스위스. 싱가폴. 벨기에.한국등 12개국의 공공기관 또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갑골문 자료 즉 갑골조각은 도합 154.604개에 이른다.

그러므로 학계에서 는 발굴된 갑골 총 수량은 대략의 수로 15만 조각이라고 일컫지만, 1955년에 발표한 [은허발굴](학습생활출판사)에서 후허우쉬엔이 언급한 16만 편이라는 통계숫자에 따라 그대로 16만 편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

후허우쉬엔의 계산대로 한 조각에 평균 10자씩 새겨져 있다고 보면,

15만 조각이라고 해도 갑골문자는 총 150만 자가 된다.......

웬만한 크기의 책 20권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 아닌가. 그야말로 방대한 상대문화 자료이다.[漢字學 講義]최영애 통나무1995 p302-인용


☞  집중적인 발굴의 시기는 전쟁와중이었고  많은 자료가 피난 중 유실되었으며,

문예혁명의 시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어떤 수난을 당했는지에 관한 내용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뜻있는 분들의 말을 빌면,

발굴되는 북쪽의 유물이 남쪽으로 이전되는 현실에 비추어

미 공개된 유물의 량은 짐작하기 어렵다 한다.


1.  가짜 소동


이미 서두에서 소개했듯이 가짜 소동은 대단 했던듯하다.

애초에 약제로 팔릴 경우는 갑골의 문자를 지웠으나, 뒤에 유물로써의 가치를 인정  받으면서부터는 도굴된 귀갑 우골 중에 문자가 없는 것에는 골동상인들이 위조하여 모조품을 만들었다. [갑골학60년]p183

최초의 갑골문자 수록인 鐵雲藏龜에도 3편의 위각이 있고 

칼휀트씨가 手書한庫方二氏藏甲骨卜辭에도1689편 중 54편은 전체僞刻위각 62편은 부분僞刻이 있다. [갑골학60년]p190


☞  가치가 될 만한 것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이 가짜이다.

가짜를 만든 짝퉁의 지존 남보광이 시대의 사기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나,

갑골문에 관한 한 당대 누구도 따르지 못 할 기예의 소유자였음은 틀림없다.

진짜와 혼동될 정도의 기술이라면

당대의 갑골학자들 보다도 더 정확히 상형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많은 상형들 중에 남보광 만이 보았던 상형이 그려져 있다면

그것은 자료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섣불리 가짜라 하여 용도폐기 할 필요는 없다.

또한

당시 외국인이 수집한 갑골자료는 거의가 가짜라고 기술되어있다.

그런데

그 당시 중국에까지 와서 비싼 값의 돈을 지불해가며 수집한 것들이

거의 모두 가짜라고 하는 이야기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집트 ,인도등의 고고학 발굴에는 서양인들이 많이 참여했다.

그 중 전문적인 고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의사, 목사, 건축가등의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었었다.

그러나 이들은 본국에서 최소한 기초적인 고고학의 교양을 쌓은 자들이다.

한 두 번의 속임수에 넘어갈 수 있을지언정

거의 모두 가짜를 구입했다는 데는 수궁이 가지 않는다.

서령 가짜라 할지라도 위와 같은 이유로 용도폐기 할 이유는 없다.



1. 발굴된 유물은 버린 것인가? 묻은 것인가?


☞  발굴된 유물은 대개는 지하의 구덩이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점을 치고 난 다음 갑골을 어떻게 처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추정이 있게 되었다. 즉<棄:버리다>설과,<薶:묻다>설이라는 두 가지 추측이 있었다.

나진옥은 <殷商貞卜文字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龜策傳에 <己즉棄去(다 쓰고 난 다음에는 내다 버렸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 출토된 骨과 甲을 살펴보면 한 번 사용한 것이 아니라 몇 번 반복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 陳邦福은 [殷墟薶契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卜骨을 매장한 사실은 [周禮]나 [史記]에 기록된 바가 없다 다만 [곡례]에 <龜策폐즉埋之 (갑골을 다 쓴 다음에는 매장하였다)>. 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

이 구절에 대하여 鄭玄은 <사람들이 그것을 더럽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주석을 달았다.

은대 복골 처리에 관하여는 史官이 전적으로 관장한 바도 없고,

책에 기록된 바도 없음으로 확실한 실정을 알아낼 방도가 없다. [갑골학60년]p42

또, 13차 발굴 때 한 구덩이에서 18.000편을 얻었는데,

구덩이 속에서 북쪽 벽에 바짝 기대어 구부린 채 엎어져 있는 인골이 있었는데,

대체로 갑골 무더기 속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동시에 묻힌 듯하다.

이 발견으로 갑골문자 중 일부는 뜻있는 매장임이 증명되었는데,

석장여는 이 구덩이가 무덤이 아니며 묻힌 사람은 다름 아닌 갑골을 보관하던 사람으로,

갑골이 매장되니까 그 것과 함께 순직하려고 뛰어든 것이라고 했다.....

갑골을 관장하던 사람이 순직했으니 혹 어떤 변고가 있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갑골학60년]p70


☞  나진옥은 구책열전을 세밀히 읽지 않은 듯하다.

책에는 하나라와 은나라에서는 점을 친 뒤에 갔다 버렸고

주나라에 들어와서는 귀갑을 보물처럼 언제나 보관해 두고 다시 보았다고 쓰여 있다.

시대마다 그 쓰임새가 달랐고 증인이 없으니 해답은 썰 뿐이다.

다만 사람이 함께 묻혀있었으니 매장 쪽으로 심증이 갈 뿐이다.

일제시대 우리의 서적이 불살라졌고 분서갱유 문화혁명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아마도 허신이 6국문자를 버릴 때쯤은 아니었을까하는.......


1. 비운의 갑골학자


갑골의 비밀 갑골문의 연구는 왕의영, 유철운을 이어 나진옥과

그의 제자 왕국유에 의해 집대성되어 은대의 사회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모두 비극에 끝나 사람들은 이를 갑골문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진옥: 유철운의 친구로 일본에 망명했다가 만주 괴뢰정권에 관련하여 지탄을 받았다.

왕국유: 전통복장을 하고 변발을 허리께까지 드리우고 다녔는데 청의 마지막 황제 부의에게 제왕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청조의 몰락을 바라보다가 이를 비관 자살로서 인생을 마감했다.

왕의영: 의화단 사건 이후 외국군대가 중국에 진주하게 되자 이에 분노 자결했고,

백화문으로 사회를 풍자한 "노잔유기(老殘遊記)"를 남기기도 하고

기인으로 유명했던 유철운은 백성들의 참상을 보다 못해 정부의 허가없이 관곡을 풀어 나누어준 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1. 갑골문 연구사


1. 제 1기 (1899년-1927년) 

        갑골문이 중국의 고문자 자료라는 것이 확인되어 개인별로 수집, 연구되었던 시기

        개인에 의해 갑골문이 수집, 연구되면서 갑골문 자료가 商代 역사 연구의 중요한 고증자료로 인식되어 중국 고문자학계에 새로운 발전을 가져다 준 시기


  (1) 1899년 : 王懿榮에 의해 갑골문이 발견됨

  (2) 1903년, 劉鶚 <鐵雲藏龜>

최초의 갑골문 수록집

王懿榮이 소장했던 갑골과 자신이 별도로 수집한 갑골 총 5000여편 중에서 1058편을 선별, 탁본한 것

  (3) 1904년, 孫詒讓의 <契文擧例>

최초의 갑골문 연구서

총 185개의 글자를 한 글자씩 고석한 후에 갑골문의 내용을 日天·貞蔔·蔔辭·鬼神·蔔亻·官氏·方國·典禮·文字·雜例의 10가지 세목으로 분류함으로써, 본격적인 갑골문 연구가 시작됨

(4) 1910년-1916년 羅振玉의 연구

1910년, 자신이 소장한 갑골을 탁본하여 <慇墟書契前編> 20권을 펴냄

1910년, <慇商貞卜文字考>

지금까지 湯陰으로  잘못 알려져 왔던 慇墟의 위치를 安陽縣 小屯邨이라고 밝힘

慇墟에서 나온 갑골이 商代 말기의 武乙, 文丁, 帝乙의 三王 시기의 것이라고 밝혀 최초로 갑골의 구체적 시대를 고증해냄

1914년, <慇墟書契攷釋>

  : 형체가 불규칙한 갑골 문자의 연구를 위해 <說文>에서부터 金文으로 거슬러 올라가, 金文에서 蔔辭를 살펴야 한다는 갑골문자 고석 방법을 제시

  (5) 1917년, 王國維, <慇卜辭中所見先公先王考>

 갑골 문자의 고석을 통해 <史記·慇本紀>에서 기록하고 있는 商代 왕조의 世次의 일부가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그 착오를 교정

 -->이로부터 갑골문 자료는 商代 역사 연구의 중요한 고증자료로 인식되게 됨

 갑골문과 같은 고고학적 자료의 연구를 통해 <史記>와 같은 고문헌의 내용을 증명하고 착오를 교정하여 고대 역사의 진정한 면모를 파악하자는 “二重證據法”을 제창함


제 2기 (1928년-1949년)

국가의 주도로 갑골이 체계적, 과학적으로 발굴됨으로써 갑골문 연구가 종합적으로 연구, 발전된 시기

中央硏究院이 설립되어 대규모의 은허 발굴 조사단이 구성되면서 과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진 시기


  (1) 郭沫若의 연구

  1929년부터 갑골 刻辭에 대한 연구를 시작

      갑골문을 주요 사료로 삼아 商代 사회를 연구하여 많은 성과를 거둠

  1930년, <中國古代社會硏究>

  1931년, <甲骨文字硏究>

  1933년, <蔔辭通纂>

  1937년, <慇契粹編>

  (2) 董作賓의 연구

1928년부터 1937년까지의 10년간 中央硏究院 歷史語言硏究所 주도로 15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慇墟 발굴 작업이 있었을 때, 1928년부터 1934년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이 발굴 작업에 참여하였던 사람

        ․특히 갑골문의 시기 구분[斷代] 연구에서 많은 성과를 남김

1928년 제 1차 발굴 작업을 주관하면서 서로 다른 세 곳의 구덩이에서 출토된 갑골문자의 字形이나 書體가 동일한 구덩이에서 나온 것들끼리 한 조를 이루면서 각기 다른 특색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것을 통해 시기 구분의 기준이 되는 큰 단서를 얻게 됨

1929년 제 3차 발굴에서 출토된 大龜四版에 새겨진 복사를 통해 “○○卜, ○貞”의 형식에서 卜字와 貞字 사이의 글자가 貞人의 이름이라는 것을 밝혀내어, 그것이 地名이나 職官일 수 있다고 보았던 종래의 설들을 불식시키는 한편, 같은 귀갑에 보이는 貞人들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貞人들이므로 貞人이 시대 추정의 중요 단서가 될 수 있음을 밝힘

1931년, <大龜四版攷釋>에서 갑골문 시기 구분의 근거가 되는 8가지 항목을 제시

1933년, <甲骨文斷代硏究例>에서 시기 구분의 근거로 10가지 항목[十項標準]을 제시하고 이를 근거로 갑골문의 시기를 총 5기로 분류


        ※ 10가지 시기구분의 표준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직접 표준 4개와 갑골 복사가 직접 표준 4가지에 해당되는 항목이 없는 경우 적용되는 간접 표준 6가지로 나뉨


        <직접 표준>

        ① 商 왕조의 왕실 世系인 世系

        ② 제사지낼때의 先王의 칭호인 稱謂

        ③ 점을 묻고 기록하는 관리인 貞人

        ④ 갑골문이 발견된 구덩이의 위치인 坑位

        <간접 표준>

        ① 商 왕조 주변의 小國 이름인 方國

        ② 관리 이름인 人物

        ③ 점복 내용의 종류인 事類

        ④ 文例나 특수 용어 등의 차이인 文法

        ⑤ 글자체의 변화인 字形

        ⑥ 서체의 변화인 書體


※ 갑골문의 分期

慇이란 商의 왕인 盤庚이 홍수의 범람을 피해 기원전 1384년 慇으로 천도한 후부터 붙혀진 이름

        이 때부터 기원전 1121년 慇이 週에 망할 때까지의 273년간 총 12명의 왕이 통치

        董作賓이 1932년, 갑골문의 시기를 총 5기로 구분한 이래 갑골문을 5기로 나누는 시기구분이 현재까지 이용되고 있음



제 3기 (1950년-현재)

은허 이외 지역에서도 갑골 발굴되고 西週 시대의 갑골도 발굴되는 등, 새로운 유물의 계속적인 출토로 갑골문 연구 재료, 내용, 방법이 다양화되는 시기


※ 1950년대 이후부터 河南 鄭州 二里岡, 山西 洪洞 坊堆邨, 陝西 長安 張家坡, 北京 昌平 白浮邨, 陝西 岐山 鳳雛邨과 扶風 齊家邨 등지에서 갑골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二里岡만이 商代의 유적지이고 나머지는 모두 週代의 유적지임. 여기서 발견된 갑골은 대부분 週代의 것


(1) 갑골문 어법 연구 시작 :

1953년, 管燮初의 <[慇墟甲骨刻辭的語法硏究> -체계적으로 갑골문 어법을 연구한 최초의 학위 논문

(2) 1978년, 학술 단체인 古文字硏究會가 성립 : 전문 학술지인 <古文字硏究>가 정기적으로 출판됨으로써 학술 교류가 활발해지고 전문 인력이 대량 배출되어 뛰어난 연구 성과를 거두고 있음

  (3) 1983년, <甲骨文閤集>13권 출판 : 中國社會科學院 산하 歷史硏究所 주재로 郭沫若이 주편을 맡고 胡厚宣이 총 편집 책임을 맡아 출판함

이전에 저록된 갑골 중 연구의 가치가 있는 갑골 41956편을 뽑아 5期에 의거하여 분류

다시 각 시기별로 ① 계급과 국가, ② 사회 생산, ③ 사상 문화, ④ 기타로 나눈 후 다시 22개의 내용으로 구분 --> 이 책은 과학적인 체례와 실용적 가치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갑골문의 집대성적인 저작으로 손꼽힘

  (4) 1999년, <甲骨文閤集補編> 출간 : 全7捲 / 20세기에 출토된 갑골의 총정리

           한자학강의/ 김시연/ -인용-



                              =계속=


                   
번호제 목이름첨부작성일조회
     저서 '환단원류사' 구입 문의
154   허망한 것이 아니였다. 李開春   03/19(금)  1955
153   세 발 두꺼비 세 발 까마귀 李開春   03/15(월)  1555
152   甲骨學은 짝퉁학 인가? -5/15- 李開春   03/13(토)  2157
151   이런 걱정도 팔자소관 꽃신   03/10(수)  1551
150   고대 천문학개론天文學槪論 소개 李開春   03/10(수)  2796
149   宋元王龜 李開春   03/03(수)  1458
148   甲骨學은 짝퉁학 인가? -3/15- 李開春   02/23(화)  1466
147   甲骨學은 짝퉁학인가? - 2/15 - 李開春   02/22(월)  1589

 
처음 이전 다음       목록 쓰기

ⓒ Copyright 1999~   TECHNOTE-TOP / TECHNOTE.INC,



| 상고사 | 게시판 | 자료실 | 천문해자 | Music Box | Photo | Poem

Copyrightⓒ 2005 BC.8937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