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
2009/8/1(토)
조회: 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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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아들이 어떻게 태종에게 직첩을받고 형조판서라는 고위직에 오를수 있었나요?  

정도전의 아들이 어떻게 태종에게 직첩을받고 형조판서라는 고위직에 오를수 있었나요?

pour9637 2008.09.12 23:53

답변 1| 조회 1,947

어디서 정도전의 후손이 멸족되지 않았단 말을 주워듣고 실록 뒤져보니까 의문의 기록이 있길래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태종 31권, 16년(1416 병신 / 명 영락(永樂) 14년) 6월 26일(병술) 5번째기사
정도전의 아들인 정진에게 직첩을 주라고 하다


정진(鄭津) 에서 직첩(職牒)을 주라고 명하니, 정도전(鄭道傳) 의 아들이었다.

 

세종 35권,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3월 6일(갑오) 2번째기사
형조 판서 정진의 졸기


형조 판서 정진(鄭津) 이 졸(卒)하였다. 정진봉화현(奉化縣) 사람이니, 정도전(鄭道傳) 의 아들이다. 홍무 임술년에 낭장(郞將) 에 임명되어 여러번 옮겨 사재 령(司宰令)전농 정(典農正) 에 이르렀다. 임신년에 태조 가 처음 왕위에 오름에, 정진 은 공신(功臣)의 적자(嫡子)로서 지방관에 보직되기를 간절히 원하여 연안 부사(延安府使) 에 임명되니, 연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훈가(勳家)의 아들이니 교만하고 자부심이 많아서 서무(庶務)는 친히 보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는데, 정진 이 임지(任地)에 가서 겸손하여 자기를 억제하고 정사에 부지런하니, 고을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한 해가 지나자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가 되고, 승진하여 공조 전서(工曹典書) 가 되었다가 형조 전서(刑曹典書) 로 옮겨졌다. 이 때 최안종(崔安宗) 의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그 시체를 첩의 집 문밖에 두었는데, 첩이 매질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없는 죄를 있다고 자복(自服)하였다. 옥사(獄事)가 이미 이루어졌는데, 정진 이 관청에 올려 말하기를,

“사람을 죽인 자가 그 흔적을 가리우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인데, 어찌 자기가 남편을 죽여서 그 문밖에 둘 이치가 있겠는가.”

라고 하면서 다시 그 아내를 국문하니, 과연 말이 궁하여 자복하였다. 그 당시에 공명(公明)하고 진실하다고 일컬었었다. 경흥부 윤(敬興府尹) 에 승진되고, 나가서 원주 목사(原州牧事) 가 되었고, 들어와서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에 임명되었다. 정해년에 판나주목사(判羅州牧使) 가 되고, 병신년에 인녕부 윤(仁寧府尹) 이 되고, 충청도 도관찰사(都觀察使) ·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 평안도 도관찰사(都觀察使) · 공조 판서 · 개성 유후사 유후(開城留後司留後) 를 역임하고, 형조 판서 로 옮겨져서 이 때에 와서 돌아가니, 나이 67세이다. 부고(訃告)가 들리니, 3일 동안 조회를 철폐하고 부의(賻儀)와 치제(致祭)를 내렸다. 희절(僖節) 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조심하여 두려워함을 희(僖)라 하고, 청렴을 좋아하여 스스로 억제함을 절(節)이라 한다. 두 아들이 있으니, 내(來)속(束) 이다. 상사(喪事)는 일절 《문공가례(文公家禮)》 에 따라 하고 불사(佛事)는 하지 않았으니, 유명(遺命)에 따른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5권 21장 A면

【영인본】 3책 64면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정도전은 조선 최대의 역적이고, 정도전때문에 서얼이 차별받았는데 그 아들은 형조판서... 뭔가 이상해서 지식in에 올려봅니다...
 
 
 

 
 

네, 답변 드리겠습니다.

 

 질문자가 문의하신 내용을 먼저 정도전에 대한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성무 박사의 견해를 그대로 인용하고, 태종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근간에 대해서 세조와 비교해서 살펴보는 것으로 답을 하겠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왕조를 설계한 설계자였으나 방원(芳遠)과의 권력투쟁에 희생되어 죽은 뒤에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정도전은 진(津)‧유(遊)‧영(泳 혹은 澹)‧담(湛)의 네 아들을 두었다.

주) 澹은 정도전의 둘째동생 도존(道存)의 아들이고, 湛은 정도전의 막내동생 도복의 아들 淇를 태조살록에 오기한 것이다. 정도전은 津, 游, 泳의 세 아들을 두었다. 이러한 요류는 필자가 태조실록을 그대로 인용한 것에 기인한 것이다. 봉화정씨 세보를 통하여 바로 잡는다.그러나 둘째 아들 유(游)는 정도전이 피살되던 날 함께 피살되었고, 넷째 아들(湛)은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정도존의 아들 澹은 집에서 自刎하였다.
맏아들 진(津)은 순군옥(巡軍獄)에 갇혔다가 수군(水軍)으로 충원되었다. 정도전의 아들들은 1411년(태종 11)에 서인(庶人)으로 폐해졌다가 1416년(태종 16)에 복권되어 진(津)은 형조판서에 이르렀고, 영(泳)의 손자 정문형(鄭文炯)은
 주) 정문형은 영의 손자가 아니라  진(津)의 손자이다. 진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맏은 용인현령을 지낸 래(來)이고, 둘째는 직산현감을 역임한 속(束) 이다. 정문형은 진의 차자 속의 장자이다. 따라서 여기 표현은 잘못이고, 정진의 손자, 또는 정도전의 증손, 또는 정속의 맏아들이라고 해야 옳은 것이다.  
세종 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조에 우의정에 이르렀다. 진(津)의 아들 래(來)는 용인현령을 지내다가 서인(庶人)으로 폐해지자 평택으로 낙향했다. 평택에는 지금도 그 자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정도전의 두 동생 중 첫째 동생인 도복(道復)은 한성판윤으로 있다가 정도전이 제거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영주로 낙향했고, 둘째 동생인 도존(道存)은 그날 정도전과 함께 피살되었다.
  정도전은 역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왕조 내내 신원(伸寃)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종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증건 하면서 그 설계자인 정도전의 공로를 인정해 1865년(고종 2)에는 그의 봉작(封爵)을 회복해 주었고, 1870년(고종 7)에는 문헌(文憲)이라는 시호(諡號)와 유종공종(儒宗功宗)이라는 편액(編額)을 내려 주었다.
 
 태종과  세조는 유혈정변을 통해 집권하여 왕권의 강화를 꾀한 군왕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많은 희생자들이 속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태종보다 세조가  보다 많은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은(뭐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수도 있는데 저 개인 생각이) 두 임금의 정치적 능력의 차이와 그 희생자들에 대한 처리의 차이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태종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  특히 공신이라도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면 거리낌없이 숙청을 단행하였습니다. 자신을 왕위에 끌어올린 1등 공신이요, 처남인 민씨 형제들부터, 자신의 최 측근인 이숙번, 게다가 아들 세종의 장인이요, 자신의 사돈인 심온에 이르기까지 배신자요 냉혹하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과감하게 숙청하였습니다. 그렇게 했기때문에 세종의 32년 왕도 정치도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태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악역은 태종이 도맡고 세종은 그 찬란한 영광를 받았다면 너무 과한 걸까요.

 이러한 태종의 일년의 노력으로 세종조의 융성기가 있었던 데 비해 , 세조는 공신들을 우대하고 신임하여 중차대한 역모 이외에는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공신들을 제거할 수 없었으며, 그들이 저지르는 폐행에도 수수방관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신숙주, 한명회, 정인지, 홍윤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인데 이들은 그 당시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은 횡포를 저질러 백성들은 온갖 고통에 시달려야 했으며, 훗날 세조의 손자로 즉위하는 성종이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지방의 사림을 대거 등용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극심한 사회 문제를 초래하게 된 것은 아주 잘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태종의 기본 통치철학이  정도전의 큰 아들을 복권시켜서 형조판서까지 이르게 하고 정도전의 손자는 세종대에 우의정까지 지낼 수 있었던 기반은 아니었을까요, 이에 반하여 세조라면 그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했으리라고 봅니다.


출처 : 이성무 박사의 정도전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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