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
2009/8/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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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는 정도전 시공은 이성계  


설계는 정도전 시공은 이성계

fallinhosuk


2005.07.28 00:16

 


어느 시대 어느 왕조든 건국은 무장 출신이 하기 마련이다. 한의 건국자 유방, 당의 이연, 송의 조광윤, 명의 주원장, 청의 누르하치 등은 모두 무장이었다. 그러나 새 왕조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면 그때부터는 문치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삼게 된다. 정권을 잡기까지는 공격이 중요하므로 물리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권력이 안정되면 유지가 중요하므로 정상적인 정치 행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군인의 신분으로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후 옷을 벗고 최고 통치자로 취임하는 건 우리 현대사에서도 익히 본 바 있다.

 

 고려의 건국자 왕건도 조선의 건국자 이성계도 역시 무장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건국과 조선의 건국은 사뭇 다른 점이 있다. 고려가 건국될 당시에는 한반도가 세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으므로 무엇보다 물리력이 가장 중요했지만, 조선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고려는 한반도를 '통일'한 것이지만, 조선은 고려라는 왕조를 다른 왕조로 바꾼 것일 뿐이다. 아무래도 통일에 비해서는 왕조 교체의 경우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조선의 건국은 물리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조선은 이성계라는 뛰어난 무장이 건국한 왕조지만, 그 배후에는 그 보다 훨씬 뛰어난 두 명의 책략가가 있었다. 바로 정도전과 조준이다.

 

원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려가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면서 공민왕때에는 젊은 유학자들이 중심이 된 사대부 세력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고려 말의 권신들에게 맞서 개력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다가 이내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된다. 사대부 상층 세력인 이색, 정몽주 등이 온건파라면, 소장 학자인 정도전 일파는 급진파다. 온건파와 달리 급진파는 일찍부터 권력을 장악할 마음을 품고 그에 필요한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안 되면 힘으로라도 밀어 붙이겠다는 생각부터 벌써 유약한 고려의 문신답지 않은 기세다. 당시 왜구 토벌로 전국민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무장은 두명, 최영과 이성계였다. 이미 나이가 일흔인 데다 사실상 온건파의 물리력을 담당하고 있는 전통의 노장군 최영보다는 새로이 국민의 영웅으로 급부상하는 이성계가 여러가지 면에서 적임자였다.

 

 당시 이성계는 북으로는 홍건적, 남으로는 왜구를 물리치는 등 동분서주하면서 곳곳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미 1368년에 원은 중국 대륙에서 밀려나 몽고 사막으로 달아나 버렸는데도 식민지 고려는 여전이 이인임 일당의 친원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자기 힘으로 해방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런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원 게력과 맞서는 길은 원을 축출하고 새로이 일어난 명나라와 결탁하는 것밖에 없다.

탁월한 대세관을 가진 정도전은 이미 1375년 반원친명 운동을 벌이다가 이인임에게 배척받아 2년간 귀양까지 간 전과가 있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드디어 1383년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고 서로 의기투합한다. 이인임에 대한 공동 전선으로 출발한 이들은 우선 최영 세력과 결탁하여 이인임 일당을 제거하고, 1388년 역사적인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 세력마저 제거한다. 그리고 이때 이성계는 또하나의 인물인 조준을 얻는다.

 

 새로이 결성된 삼총사는 각자 능력에 따라 정확하게 역할을 나눠맡아서 일을 처리한다. 우선 정도전, 그는 학문, 문장, 병법, 정치 감각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으며 책략에도 능한 팔방미인으로, 조선 건국 과정의 총지휘를 맡은 핵심 브레인이다. 다음 이성계는 쿠테타ㅡ를 위한 물리력을 담당하고 있으며, 나중에 건국자가 될 신망을 쌓아 간다. 그리고 조준은 당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였던 토지 제도에 관해 해박한 경제통이다.

 

 정도전의 전략에 따라 이성계는 1388년 5월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곧바로 7월에 조준은 미리 준비해 놓은 전제 개혁안을 실행한다. 개혁안은 귀족들이 소유한 대토지를 몰수하고, 모든 토지를 사유할 수 없도록 하며 단지 수조권(소유권과는 달리 농민이 국가에 내는 세금을 수취할 수 있는 권리)만을 부여한다는 혁명적인 내용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색, 권근 등 온건 개혁 세력의 거물들이 반기를 든다.

그러나 이성계는 온갖 수단을 다해 백관회의에서 결국 이 안을 통과시켜 온건파의 손발을 묶는다. 이듬해 정도전은 우왕이 신돈의 자식이라는 기발한 구실을 만들어 왕위에서 끌어내린다. 온건판의 저항으로 일단 우왕의 아들 창왕을 옹립하지만 1년 만에 폐위하고 이성계의 영향력 아래 공양왕을 세우니 드디어 조선 건국은 절차만이 남게 된다. 이성계 일파는 공양왕의 손으로 우왕과 창왕을 죽에게 하고, 2년 만에 공양왕마저 폐위하고 간판 스타 이성계를 왕으로 삼아 조선을 건국한다.

 

 빈틈없이 진행된 건국 과정을 총지휘한 정도전은 새 왕조에 들어서도 탁월한 솜씨를 자랑한다. 한양 천도 당시 궁궐과 종묘의 위치와 각 궁전의 이름까지 모두 제정하고 새 왕조에 필요한 책들을 직접 저술하는가 하면, 어느새 번개같이 <고려사>37권을 쓰고 이성계의 공덕을 자랑하는 여러 악곡도 지었으며, 병제를 만들고 직접 군사 조련까지 하는 등 각종 제도와 문물을 만드는 데 일일이 관여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나라나 첨예한 건국 초기의 왕위 계승 문제, 이 민감한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가 결국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으 표적이 되어 그의 손에 죽고 만다.

 

 사실상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정도가 아니라 조선의 실제 건국자라 할 수 있다. 정도전이 기획실이라면 이성계는 생산 라인에 불과하며, 정도전이 건축 설계사라면 이성계는 설계도면대로 건축한 십장이나 다름 없다.

'왕자의 난'에서 보았듯이 정도전이 이성계의 세자 책봉에까지 권한을 행사하는 걸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작품'인 조선으로 인해 죽고 말았으니, 자기가 만들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손에 죽은 소설 속의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같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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