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4
2009/8/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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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입지않은 장수, 삼봉 정도전  


갑옷을 입지않은 장수, 삼봉 정도전

 damulje

2006.02.15 22:26

 

조선초, 그야말로 왕조창업의 기틀을 다진 삼봉 정도전(1342 ~ 1398), 그러나 노선이 달랐던 태종 이방원에 의해 숙청 당한후 조선시대 내내 역신으로 남아 현재 그 묘지까지 알수 없는(현재 있는 정도전의 묘는 가묘임) 비운의 정치가인 삼봉 정도전에 대해 그가 무인으로서 얼마만큼 호방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조선 성종때의 문신인 서거정(1420~1488)의 저서 "태평한화"에 실린 정도전의 일화 입니다.

 

[ 이숭인(1349~1392)은 조용한 산방에서 시를 짓는 것을 평생의 즐거움으로 생각했고 권근(1352~1409)은 따뜻한 온돌에서 화로를 끼고 앉아 미인 곁에서 책을 읽는 것을 즐거움으로 말했다. 그러나 정도전은 두사람과 생각이 달랐다.

'첫눈이 내리는 겨울 가죽옷에 준마를 타고 누런 개와 푸른 매를 데리고 평원에서 사냥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

 

태조(1392~1398)를 도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설계한 문신으로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얼마나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일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정도전은 현존하는 병서 "진법(陣法)"외에도 "오행진(五行陣)","출기도(出奇圖)","강무도(講武圖)","팔진삼십육변도보(八陣三十六變圖譜)","태을칠십이국도(太乙七十二局圖)" 등과 같은 많은 병서를 저술할 정도로 군사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중 삼봉집에 실린 "진법"만이 현재까지 전해져 올뿐 다른 병서는 모두 유실되고 말았습니다.

정도전은 바로 이를 토대로 조선초, 고토수복의 일환인 요동정벌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지난날 1388년 최영 장군(1316~1388)이 추진했던 요동정벌을 당시 이성계를 통해 저지한 인물이 정도전임을 감안한다면 생각해보면 실로 역사의 엉뚱함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현상만을 놓고 본다면 정도전의 이같은 운신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른바 표전문 사건으로 정도전의 소환을 요구한 명나라는 사실 조선과 마찬가지로 건국초기라 아직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명태조 주원장이 사실 원했던건 조선이 여진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미리 쐐기를 박고자 함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 증거가 주원장이 1395년 당시 요동에 나가있는 요왕에게 "만일 조선이 20만대군을 내어

쳐들어 온다면 우리 군대가 어찌 막겠는가?"라고 말할 정도로 조선과 여진의 협공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명나라도 나라의 체계나 군사력이 아직 확고하지 못했고 원나라의 잔존세력도 도처에 남아있었기에 조선만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초기의 요동정벌 역시 온건세력들의 끊임없는 반발에 의해 끝내 실현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도전의 "진법"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삼봉집에 따르면 정도전은 중국 역대 병법가들의 이론뿐만이 아니라 법가,도가에 이르기까지 제자백가의 사상을 섭렵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 현실에 맞는 독창적 병법이론을 세우게 됩니다.

특히 정도전은 "인의(仁義)"를 중시하고 절제를 병법의 요체로 강조했다고 합니다.

진법 총론에서 정도전은 "군대는 신(信)으로 다스리고 승리는 기(奇)로 거둔다. 신은 항상 불변이나 전투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다. 따라서 움켜쥘 땐 움켜쥐고 풀어줄 땐 풀어줌으로써 항상 변화무쌍하여 적이 예상할수 없게 해야 한다."고 설파 합니다.

 

훗날 변계량(1369~1430)은 저서 "진설문답"에서 조선초 3대 진법서로 꼽힌 정도전,이제현(1287~1367),하륜(1347~1416)의 진법중 정도전의 진법에 대해 "공수(攻守)에 대한 삼봉의 전술에 대해 다른 이가 감히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정도전의 진법에는 총술(銃述),결진(結陣),장수론(將帥論),전비(戰備), 병기와 지형,승패,공격 후퇴 시기,공수(攻守)요건,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바꿔말해서 정도전의 군사학은 실전위주의 군사훈련을 지향했다고 합니다.

비록 정치적 싸움에 패배하여 비명에 갔지만 삼봉 정도전의 군사학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그 가치가 인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문신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무인으로서도 훌륭한 군인으로서의 전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정도전의 출생연도는 1337년,1339년 등 여러가지가 알려져 있지만 봉화 정씨의 족보에는 정도전의 출생연도가 1342년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 변계량 역시 조선 세종(1418~1450)때 "진법서"서를 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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