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2
2009/8/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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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학자 정도전이 남긴 '암호'는?  

 

 

조선 최고의 학자 정도전이 남긴 '암호'는?
 
[비나리의 초록공명] 토지제도가 문란하면 국가체계 바로 안선다는 교훈
 
우석훈  
 
 
정도전은 우리 집안의 원수라는 이유로 정씨와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집안에 내려온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을 노비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괴롭혔던 나의 할아버지들을 생각해보면, 나의 혈통이 별로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것을 가끔 생각하게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정도전이 담을 넘다가 끌려 내려와 칼을 맞고 죽었다고 기록되었나?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어떤 책에는 자결했다고 하기도 하고, 맞아죽었다고 되어있기도 하는데, 조선을 세운 정도전은 서부시대의 전설처럼 신발을 벗고 죽지는 못했다.
 
성균관을 세운 건 신돈인데, 성균관은 정도전을 만들고, 결국 정도전은 역성혁명론을 만들고, 이성계를 앞세워 조선조를 개국하게 된다.
 
신돈은 전민변정도감으로 중국사에서 실행되지 않은 여전론을 실제로 시행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각해서 공민왕이 보낸 - 혹은 다른 사람이 보냈는지 잘은 모르겠다 - 자객에게 죽고, 이렇게 내려간 토지개혁을 결국 정도전이 균전론으로 실시하게 된다. 이 균전론 위에 조선이라는 하나의 왕조가 서게 되고,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왕조가 바로 이 조선조이다.
 
사전이 늘어나면서 천석군이니 만석군이니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정약용이 전론과 경세유표를 거쳐서 여전론과 균전론을 다시 정리해서 토지개혁을 기획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마지막으로 정리된 경세유표는 결국 세상에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 아주 나중의 일이다.
 
책과 표라는 것이 있는데, 책은 여러 사람에게 읽힐 목적으로 쓰여진 글을 말하고, 표는 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글을 말하는데, 정약용의 농지개혁의 프로그램은 언젠가 후세에 읽게 될 어느 왕을 위해서 미리 써놓은 경세유표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처음에는 좀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머지 부분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간을 하고 있지 않다가 죽기 전에 정약용이 마지막으로 원고정리하면서 여기에 경세유표라는 이름을 달아준다.
 
그러나 그것은 보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경세유표가 발간된 게 아마 조선조가 망하게 되는 고종의 명령이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망해가는 조선의 황제 고종이 어쩌면 자신을 위해서 정약용이 써놓았을지도 모르는 정약용의 ‘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고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그 스무살 때의 기억이 갑자기 어른어른 거린다.
 
정도전과 과전법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학자는 어쨌든 정도전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토를 달기가 쉽지 않고, 정도전이 설계한 프로그램은 오랫동안 흐뜨러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움직였다. 시스템 설계사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정교한 프로그램을 만든 셈이다.
 
정도전의 정치 프로그램은 과전법 위에 서 있다. 문신과 무신 사이의 힘의 관계를 잘 조절하는 신권주의 프로그램을 통한 왕권견제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어려운 말이라서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고, 토지제도가 문란해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한 것 같기는 하다.
 
토지제도만 보면 여운형과 이승만은 정적관계이지만 결론적으로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고, 박헌영은 별로 전해진 바가 없어서 생각을 알기가 어렵고, 백남운은 더 급진적인 생각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월북한 이유로 자료들이 사라져서 찾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50년 전쟁으로 중단된 토지개혁은 흐름상으로는 신돈과 정도전 그리고 정약용의 줄기를 타고 흐르는데, 헌법에 이러한 사항이 들어간 것은 1987년 9차개정헌법 때 들어갔다. 이걸 정부가 뒤집어버린 일은 정도전 이후로 노무현 때 개정된 농지법이 처음이기는 하다. 하다 보니까 문란해진건데, 노무현은 이걸 법적으로 허용해주었다. 놀랍기는 놀라운 일이다.
 
이걸 맨 앞에서 끌고 간 사람이 사실상 이헌재인데, 드디어 이헌재가 외환은행 매각사건으로 생긴 명예롭지 못한 일로 감옥에 가는 것 같다. 경제사적인 시각으로만 평가하면 이헌재는 토지제도를 문란하게 만든 조선총독부만큼 나쁜 사람인 것 같다.
 
공민왕은 신돈을 세우고 신돈은 성균관을 만들고, 신돈이 북벌을 시킨 최영의 세력이 신돈을 끌어내리는 무력으로 다시 형성된다.
 
성균관에서는 정도전이 배출되고, 정도전은 새로운 과전법을 만들고, 성균관을 만든 최영이 키운 이성계는 정도전에 의해서 왕이 되고, 이 과정에서 정도전은 한국형 정교분리 사상인 억불정책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해서 진압당한 불교는 당취를 만들어 본진은 금강산으로 그리고 온건 당취파가 지나친 온건파로 금강산에 합류하지 못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이 사람들을 땡초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땡초들이 조선시대의 민중문화사 내내 사라지지 않고 있다가 도법을 만들고 도법은 인드라망을 만들고, 인드라망은 수지행을 만들어내었다. 참 놀라운 일이다.
 
수지행이 ‘덜 먹고 덜 사는 것’을 철학으로 만들어볼 것을 나에게 얘기할 때마다 나는 잠깐씩이지만 정도전이나 정약용이 과전법과 균전론 혹은 여전론 같은 데에서 구연하고 싶었던 세상이 과연 페티와 미라보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과 과연 얼마나 다른 세상일까라는 질문을 문득 해본다. 서양경제사에는 페티와 미라보라는 이름보다는 명재상 콜베르가 더 길게 기록되어 있다.
 
아담 스미스가 마차 여행 중에 파리에 머물렀을 때 과연 페티를 만났는가 만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는데, 나는 스물 두살 때에는 이런 게 전혀 궁금하지 않았는데, 마흔에 가까와지면서 나도 이게 너무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보스턴 티 사건(미국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의 바로 그 명령권자의 아들일텐데, 그는 역사에 이름 한 조각 외에는 남긴 것이 없다.
 
이게 왜 중요할까? 엥겔스와 포돌린스키 사이의 논쟁이 과연 만약 역사 속에서 벌어졌다면 스미스와 페티 사이에도 같은 논쟁이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이 남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포돌린스키가 물리학과 경제학을 혼동했다는 약간 비겁한 말로 포돌린스키의 질문에 대해서 답을 피하면서 비판했다.
 
바로 그 질문이 우리나라의 농지제도와 유기농업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것 같은데, 그 대답을 찾자고 내 앞에 있던 많은 학자들이 뒤적거렸던 아담 스미스의 편지들을 다시 뒤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더 이상 정도전이 나올 수 없는 부동산 체제
 
그나저나 성균관 유생에 불과하던 정도전이 최영의 후계자 정도인 무신 이성계와 손을 잡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가끔 궁금하기는 하다. 야사들은 정도전이 자기가 역성혁명을 성공시킨 장본인이라고 엄청 뻐기고 다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게 진짜인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하여간 기분 묘하기는 했을 것 같다. 고려의 길고 긴 무신정권 시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정도전이 무인 이성계 일당과 손을 잡으면서 정말 자신이 담을 넘어가다가 칼 맞고 죽게될 것이라고 역사가 기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몰랐을까?
 
그나저나 정도전이 만든 사회 프로그램과 경제 프로그램은 가장 긴 왕조를 만들 정도로 잘 만들기는 한 것 같다. 이미 우리나라도 복잡해지기도 했을 뿐더러 그렇게 긴 호흡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학자를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신돈처럼 배포 큰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시 천 년이 흘러도 정도전 같은 사람은 나오지 못할 것 같다. 아마 세계사를 통털어도 정도전 같은 사람은 정도전 한 명이었을 것 같다. 사상이 체계를 만든 건 아마 플라톤과 정도전 정도가 전부 아닐까?
 
곰곰이 상상해보면 정도전이 뭔가를 알았을 때 나중에 생겨날 문제를 예비해서 몇 가지 장치를 만들어놓기는 했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정도전쯤 되는 사람이 자신의 시스템이 움직였을 때 생겨날 부작용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대비책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는 징표를 남겨놓지는 않은 것 같다.
 
요즘 표현대로라면 어깨들한테 세상을 넘기고 경복궁의 틀을 잡고 법전체계를 만들면서 그 첫 출발이 시작되던 그 며칠 동안에 정도전은 한양을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때는 바야흐로 어깨들의 시대이다. 그리고 좋아했을까? 왕국을 열었으니 이제 잘 먹고 잘 살겠다. 그렇게 좋아했을까? 불교가 다시 창궐하면 어떻게 할까와 같은 고민을 했을까?
 
이미 고려조에 시행된 과전법을 조선조에서 어떻게 강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성균관의 커리큘럼을 짜면서 뭔가 약간의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그는 아주 길게 생각했던지 아니면 너무 짧게 생각했던지 하여간 둘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정도전은 다시 환생할 수 있을까?
 
생각지도 않던 어깨의 아들 방원에게 칼 맞고 죽은 것이 역사에 남은 마지막일지는 그도 아마 몰랐을 것 같다. 그걸 진짜 몰랐을까? 정말 그의 당대에 문신 역사가 열려서 평온하게 그 혼동기가 지나갈 것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결국은 어깨들에 이어서 부동산 투기꾼이 된 만석꾼들이 나라마저 일본에 팔아먹으며 끝나버린 왕조를 열었던 디자이너의 며칠 간의 고민을 따라서 생각해보지만, 내 무딘 머리에서는 별 재미있는 상상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라면 그 순간에 뭘 생각하고, 뭘 고민했을까? 하다못해 그 보다 훨씬 후학인 정약용도 경세유표를 생각했는데, 역사 속에 등장하지 않은 정도전의 비망록 같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마치 중세철학의 모든 전공자들이 사라져버린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곡 2편을 읽고 싶은 충동에 감싸이는 것과 비슷한 욕구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뻥튀기나 팝콘을 보는 것 같다. 팝콘을 튀기면 어떤 팝콘은 터져 있고, 어떤 팝콘은 타고, 어떤 팝콘은 입을 벌리지 않고 있다.
 
입을 벌리지 않고 있는 팝콘에게... 너는 왜 그러고 있니? 물어보고 싶다.
 
터지지 않은 팝콘을 위해서 전자렌지에 집어넣기 전에 뭘 해줘야 할까? 뻥튀기 장사의 마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부디 잘 터져서 옥수수가 하나하나 다 터지기 바라는 뻥튀기 장사의 심정과 정도전의 심정이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입을 벌리지 않을 옥수수와 타버릴 옥수수에 대해서 팝콘을 튀길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전법을 만든 정도전이 철종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를 내릴 것인가? 이런 게 가끔 궁금하고, 정도전의 숨겨진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팝콘들아, 대화를 해, 대화를, 소통하란 말이야!"
 
이런 바보같은 말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바야흐로 전자렌지 속으로 들어갈 팝콘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같은 질문들은 ‘어깨 시대’를 열었던 성균관 출신의 정도전 머리 속으로 들어가봐야나 알 수 있는 대답일 것 같다.
 
  
 
 

* 글쓴이는 경제학박사로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 최근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 - 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88만원 세대>를 출간했습니다.

 
 
 
 
기사입력: 2006/06/18 [16:2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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