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5
2009/8/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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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정도전, 역시 당대의 논객이었다  

천하의 정도전, 역시 당대의 논객이었다
[태종 이방원 55] 정통유학과 도참설의 한판 대결 4
 
07.03.13 16:41 ㅣ최종 업데이트 07.03.14 08:24  이정근 (ensagas) 
 
 
 
나라의 성쇠는 지리에 있지 않습니다

"주나라 성왕이 겹욕(郟鄏)에 도읍을 정하여 관중으로 30대 8백 년을 이어왔습니다. 11대손인 평왕 때에 이르러 주나라가 일어난 지 4백 49년 만에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진나라 사람이 서주 옛 땅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주나라는 30대 난왕에 이르러 망하고 진나라 사람들이 이를 대신하였습니다. 이로 미루어보면 30대 8백 년이라 하는 주나라의 운수는 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BRI@역사를 꿰뚫어 왕조의 성쇠는 지리적인 조건이 아니라고 설파하고 있다. 막사는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사위는 고요하고 밤하늘에 별은 반짝이는데 막사 안은 열기로 가득했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정도전이 말을 이어갔다.

"한 고조가 항우와 함께 진나라를 칠 때 한생이 항우에게 관중에 도읍할 것을 권했으나 항우가 궁궐이 다 타버리고 사람이 많이 죽은 것을 보고 좋아하지 아니하니 어느 사람이 술수로 항우를 달래며 '벽을 사이에 두고 방울을 흔들면 그 소리는 듣기 좋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니 부귀해진 뒤에는 고향 산천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하니 항우가 그 말을 믿고 동쪽 팽성으로 돌아가고 한 고조는 유경의 말에 의하여 그날로 서쪽 관중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항우는 멸망했으나 한나라의 덕은 하늘과 같았습니다.

이후로 우문씨의 주나라와 양견의 수나라가 서로 이어가면서 관중에 도읍하고 당나라도 역시 도읍하여 덕이 한나라와 같았으니 이것으로 말하면 국가의 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지리의 성쇠(盛衰)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천자가 된 사람이 많지만 도읍한 곳으로는 서쪽은 관중으로 신이 말한 바와 같고, 동쪽은 금릉(金陵)으로 진나라, 송나라, 제나라, 양나라, 진나라가 차례로 도읍하였습니다. 중앙에는 낙양(洛陽)으로 양나라, 당나라, 진나라, 한나라, 주나라가 계속 이곳에 도읍하였으며 송나라도 도읍을 하였는데 송나라의 덕이 한나라, 당나라에 못지않았습니다. 북쪽에는 연경(燕京)으로서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가 도읍을 하였습니다.

술수한 자는 믿을 수 있고 선비의 말은 믿을 수 없습니까?

중국과 같은 천하의 큰 나라도 역대의 도읍한 곳이 수사처(數四處)에 지나지 못하니 하나의 나라가 일어날 때 어찌 술법에 밝은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진실로 제왕의 도읍한 곳은 자연히 정해 좋은 곳이 있고 술수로 헤아려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삼한(三韓) 이래의 구도(舊都)로서 동쪽에는 계림(鷄林)이 있고 남쪽에는 완산(完山)이 있으며 북쪽에는 평양이 있고 중앙에는 송경(松京)이 있는데 계림과 완산은 나라의 한쪽 구석에 있으니 어찌 왕업을 편벽한 곳에 둘 수 있습니까? 평양은 북쪽이 너무 가까우니 신은 도읍할 곳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전하께서 기강이 무너진 전조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백성들이 소생되지 못하고 나라의 터전이 아직 굳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모든 것을 진정시키고 민력(民力)을 휴양하여 위로 천시(天時)를 살피시고 아래로 인사(人事)를 보아 적당한 때를 기다려서 도읍터를 보는 것이 만전(萬全)한 계책이며 조선의 왕업이 무궁하고 신(臣)의 자손도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지금 지기(地氣)의 성쇠를 말하는 자들은 마음속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말을 전해 듣고서 하는 말이며 신의 말한 바도 또한 옛사람들의 이미 징험한 말입니다. 어찌 술수한 자만 믿을 수 있고 선비의 말은 믿을 수 없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자칫 불길함이 없도록 하소서." - <태조실록>

모든 사람의 입을 얼어붙게 한 정도전

역시 천하의 정도전다운 논리다. 역사관(觀)을 바탕으로 깊은 학문이 아니면 뽑아 올릴 수 없는 대단한 논증이다. 천하의 논객 정도전은 상대를 설복시키는 방법으로 설(說)보다는 역사가 더 주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도전이 말을 마치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학대사가 수염을 쓰다듬을 뿐 유구무언이다. 좌중의 모든 사람의 입이 얼어붙은 것이다.

밤하늘에 별빛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별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 것 같기도 한 침묵이 흘렀다. 옆 사람의 숨소리가 들릴 듯한 적막 속에서 길게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륜이 내뿜는 호흡에 등불이 꺼질 듯이 살랑거린다.

정도전의 설명을 듣는 순간 이성계의 의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도전이 누구인가? 지금은 군신(君臣)으로 상하가 구별되었지만 혁명호(革命號) 라는 배를 같이 타고 가는 동지가 아닌가? 정도전이 저토록 반대하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려서 같이 타고 갈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다.

그렇지만 권중화가 새로운 도읍지로 계룡산을 추천하고 토목공사를 벌일 때는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던 정도전이 하륜이 추천한 무악산은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게임은 끝났다. 다음 상대는 누구냐?

밤은 깊어가고 군막은 조용했다. 정도전의 논리에 반박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주위를 휘둘러 본 정도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절반의 승리를 감지하고 있었다. 이성계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머지 절반은 무학이다. 게임은 끝나지 않았지만 정도전은 이미 표적을 바꾸고 있었다.

무악을 새로운 도읍지 후보로 점지한 태조 이성계는 갈등을 느꼈다. 계룡산을 포기하고 무악을 선택했는데 또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개경을 한시 바삐 벗어나고 싶은데 갈 곳을 정하지 못했으니 답답했다. 갈등의 골은 무악을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을 때 잠자코 있던 서운관이 결정타를 날렸다.

"무악은 장래에 나라를 도둑질 할 사람이 살 땅입니다."

이성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백년은커녕 눈앞에 닥친 천도 문제가 시급하지만 자신이 목숨 걸고 세운 나라를 누가 도둑질해간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도 고려라는 나라를 도둑질한 사람이지만 자신 아닌 또 다른 사람이 자기가 세운 나라를 도둑질 할 것이라 말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나라를 도둑질 할 사람이 살 땅이란 말인가? 도둑질 한 자들이 살 땅이란 말인가? 나라를 도적질 할 괴수들이라면 구월산이나 지리산 같은 깊은 골짜기에 살아야지 이렇게 야트막한 야산에 살 일이 없을 것이고 나라를 도둑질한 자들이 대역무도 죄로 능지처참 당하지 않고 살 땅이라면 나라를 빼앗았다는 것이 아닌가?'

서운관에게 도적질 할 사람이 살 땅이냐? 도둑질 한 자들이 살 땅이냐? 되묻고 싶었지만 자신이 고려를 도둑질한 처지에서 마음이 켕겼다. 좌중의 신하들이 비웃을까봐 입밖에 내지 못했다. 현재 이들이 막사에서 토론하고 있는 발치 아래 전, 노가 살고 있다. 이튿날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일행은 인왕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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