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9
이름: 강철군화
2009/8/11(화)
조회: 1180
view.html(Load:193)
노무현과 정도전과 진시황  
노무현과 정도전과 진시황

비전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알며, 직언에 귀기울이고, 널리 인재를 구할 줄 아는 국가지도자를 기다리며

 

1.노무현, 정도전과 진시황을 말하다

 

노무현은 작년 12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출입기자들과의 송년 만찬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자문(自問)에 자답(自答)하는 방식으로 ‘역사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영웅이 시대를 만든다’고들 하지만 아닌 것 같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지만 당시 지배세력은 세종 사후 한글을 거부했고, 정조가 키운 세력도 정조가 죽은 바로 그해 ‘일망타진’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신문에서는 "세종·정조 같은 영웅도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다는 취지였다"고 했지만, 나는 솔직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2006년 신년사에서는 '열린마음으로 대화'를 강조했지만, 그의 속내는 여전히 소위 기득권 세력과의 각세우기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조 사후 개혁 세력이 기득권 세력에 의해 일망타진당했던 일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내년 한해는 지난 한해 동안 흐트러졌던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2007년 대선에서 기필코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결기가 읽혀졌다

 

노무현 세종과 정조 이야기를 한 후, "오히려 역사를 바꾼 사람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라고 했다. 그는 시대흐름과 맞물려서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전날 전직 청와대 참모들과의 만찬에서는 정도전 외에 중국의 진시황 얘기도 했다고 한다.

무현이 무슨 뜻으로 정도전과 진시황을 들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정도전과 진시황은 노무현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2.정도전-비전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지도자

 

1) 정도전부터 보자. 내가 아는 정도전은 '준비된 지도자'였고, 일을 당하여 남의 탓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2) 정도전은 고려말 등장한 신진사대부 세력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당시 고려는 물론 원나라에서도 이름을 떨쳤던 목은 이색 아래서 수학했고, 정몽주,권근 등 당대 최고의 인물들과 교유했다.

 

정도전은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사상이었던 성리학을 받아들여 자신의 철학으로 소화해 냈다그는 고려말 외세의 침탈과 권문세가의 탐학 속에 신음하던 민중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었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

 

정도전은 33세때이던 우왕1(1375) 권신 이인임의 친원(親元)정책에 격렬하게 반대하다가 나주로 유배를 간 이후, 10년 동안 정치낭인 생활을 했다. 이 시기 그는 백성들이 겪는 민생고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민본주의 정치의식을 다졌고학문을 닦았다. 이성계의 함주 군영으로 찾아가 역성혁명의 의지를 다진 것도 이 시기였다.

 

1388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집권한 후, 정도전은 이성계의 오른팔이 되어 과전법 시행 등 일련의 개혁정책을 밀어붙였고, 이어 조선왕조를 개창했다후일 태종 이방원의 집권으로 상당 부분 변형이 가해지기는 했지만, 조선왕조 500년은 정도전이 그린 큰 그림대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도전의 개혁의지는 지식인의 관념의 소산이 아니었다. 10년 유배생활 속에서 민중들이 겪는 질곡을 자신이 체험하면서 다져진 것이었다.노무현'개혁의지'라는 것이 운동권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형성됐고, 국민들의 실제적인 삶과는 동떨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도전은 벼슬자리에서 떨려나갔던 시절, 학문을 닦고 경세의 방안을 궁리했다. 이성계의 측근으로 실권을 쥐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겠다는 설계도가 쥐어져 있었다.

 

정도전은, 노무현이 집권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도 그놈의 로드맵만 그리고 있는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3)  아울러 정도전은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다 불우한 처지에 떨어졌으면서도 정도전은 하늘이나 세월을 탓하지 않았다. 유배 생활 첫 해에 쓴 <심문> <천답>이라는 글에서 정도전은 "하늘과 사람이 감응하는 데서 주동적 역할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착함과 의로움이 현실에서 승리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하늘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하늘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 정도전의 생각이었다.

정도전은 모순에 가득 찬 현실을 바로잡고 역사를 만드는 것은 주체적인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고 본 것이다. 그가 유배 생활 9년째 되던 해에 함주의 이성계를 찾아가 역성혁명의 의지를 다졌던 것도 이러한 생각의 소산이었다.

 

조금만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도 언론탓,국민 탓을 하는 노무현이 정도전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다.

 

4) 노무현 "오히려 역사를 바꾼 사람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라면서 시대흐름과 맞물려서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종도, 정조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는데, 정도전은 세상을 바꿨고, 그것은 시대흐름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흐름과 맞물린다고 누구나 역사에 남는 업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의 흐름을 놓치고, 자기 자신과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도 얼마든지 있다.

 

정도전이 시대흐름을 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난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다스리면서 미래를 준비할 줄 아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정도전이 시대의 흐름을 탄 것만 보았지, 정도전이 시대의 흐름을 타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보지 못한 것 같다.

 

3.진시황-직언을 용납하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지도자

 

1) 진시황과 노무현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래도 진시황을 노무현과 비교해서 말한다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직언(直言)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와, 그리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자세가 그것이다.

 

2) 우리는 흔히 진시황을 포학무도한 전제군주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은 천하통일을 이룩한 후의 모습이다. 그 이전에 진시황은 충언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인물이었다.

 

진나라는 원래  효공이 위()나라 사람 상앙을 받아들여 변법(變法),즉 개혁을 단행한 이후, 다른 나라 출신이더라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중용해 왔다. 이렇게 중용된 외국 출신 고관들을 객경(客卿)이라고 한다. 당연히 진나라 출신 왕족이나 귀족들은 객경들을 질시했다.

 

한나라 출신 정국의 간첩사건과 한나라 출신 재상 여불위의 숙청 이후, 진나라의 기득권 세력들은 객경들은 궁극적으로 본국에 충성하는 자들이니 쫒아내야 한다고 진언했다. 진시황은 이를 받아들여 축객령(逐客令) 을 내렸다. 

 

이때 초나라 출신 이사가 상소를 올렸다. 그는 진나라의 역대 군주들이 객경들을 중용해서 국정을 개혁하고 외적을 물리친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축객령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이어 그는 갖가지 보물, 문화예술,미녀와 말 등이 외국에서 들어온 것임을 상기시키면서 만일 진나라가 물건만 아끼고 사람’, 즉 객경들을 모두 쫒아낸다면 여자,음악,보물은 중시하고 백성들은 경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진시황은 이사의 상소를 듣고 크게 깨달아 축객령을 거두고 이사를 중용했다.

 

진시황은 돈약이라는 사람이 재주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였다. 돈약은 나는 대왕에게 절을 올리지 않는 습관이 있다. 대왕께서 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이 말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진시황은 돈약의 말을 받아들였다. 진시황과 만난 돈약은 진시황이 재상 여불위와 사통했던 모후(母后)를 감금한 것을 비판했다.진시황은 노했지만, 돈약을 내치지는 않았다.

후일 돈약은 진시황에게 천하통일의 대계를 진언했다. 그는 한나라와 위나라로 가서 재상들을 포섭하고, 조나라와 연나라로 가서는 이간책으로 국가를 약화시키는 등 큰 활약을 했다.

 

노무현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나? 언론이 자신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할 때, 얼마나 마음을 비우고 그 비판을 받아들이나? 자신의 잘못을 정면으로 지적한 비판언론사의 사장이나 편집국장, 담당 기자를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대접하면서 당신 말이 맞았다. 내 잘못을 지적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도량을 노무현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3) 진시황은 인재를 널리 구했다.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인재는 나라 밖에서도 구하는 것은 진나라의 귀한 전통이었다. 송나라의 홍매는 <용재수필>에서 일곱 나라가 천하를 다툴 때 세상의 인재를 끌어당기지 않는 나라가 없었다. 그러나 6국에서 등용한 재상들은 대개가 종친이거나 그 나라 사람들이었다….유독 진나라만이 이와 달라 처음 진나라를 위해 패업을 이루게 한 자는 위나라 사람 공손앙이었다. 그 외에도 조나라 사람 누원이 있으며, 장의,위단,범수 등은 모두 위나라, 채택은 연나라, 여불위는 한나라,이사는 초나라 사람이다. 진나라는 이들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나라 일을 맡기고 의견을 수렴했다. 진나라가 끝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이들의 힘이었다고 했다.

 

진시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왕전,왕분,위료,이사,요가,돈약 등 문무의 인재들을 널리 구했고,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반면에 노무현코드인사라는 말에서도 보듯, 그저 자기 주변에서 자기 뜻을 맞추는 사람 밖에는 기용할 줄 모른다. 청와대는 비서실장에서부터 비서관,행정관들까지 같은 얼굴들이 자리만 바꿔가며 일하거나, 한번 청와대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대복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산시절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에게 청와대 비서관을, 자신이 정신적 스승이라고 하는 신부에게 과거사진상규명위원장을 맡기는 것이 노무현이다. 국방장관과 KBO신임 총재는 노무현의 상고 선배이다. 나라밖에서까지 널리 인재를 구했던 진시황과는 너무나 다르다.

 

4.새해를 맞으며 

 

이제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2007년 대선을 예비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2007년 대선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제 말이나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좌고우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이고, 어떤 사람들을 쓸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정작 대통령에 당선된 후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법석을 떨 게 아니라, 미리 로드맵이건 청사진이건 보여주고, 그것으로 당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에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남의 탓, 언론 탓 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자기 주변을 맴돌아온 고만고만한 인사들 외에도, 함께 국가를 경영할만한 인재라면 자신과 반대편에 섰던 이라도 거둘 줄 알고, 싫은 소리를 해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2006년은 그런 국가지도자가 등장하는 한 해, 지금 거론되고 있는 차기 대선 주자들이 그런 인물로 자신을 가다듬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너무 큰 걸 바라는 것일까?).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