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6
이름: 삼봉집 제4권
2009/8/31(월)
조회: 1523
소재동기(消災洞記)  
삼봉집 제4권
기(記)
소재동기(消災洞記)

도전(道傳)이 소재동(消災洞) 황연(黃延)의 집에 세들어 살았다. 그 동리는 바로 나주(羅州)에 속한 부곡(部曲)인 거평(居平) 땅으로, 소재사(消災寺)란 절이 있어 동리 이름을 삼은 것이다. 동리는 주위가 모두 산인데 그 북동쪽에는 중첩된 봉우리와 고개들이 서로 잇달았으며, 서남쪽에는 여러 봉우리가 낮고 작아서 멀리 바라볼 만하다. 또 그 남쪽은 들판이 평평하고 숲 속에 연기가 나는 초가 10여 호가 있으니, 이는 바로 회진현(會津縣)이다.
이곳의 유명한 산수로는 첫째가 금성산(錦城山)인데, 단정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동북쪽에 웅거하고 있으니 이는 곧 나주의 주산[鎭山]이며, 둘째가 월출산(月出山)인데, 청수하게 우뚝 솟아 동남쪽을 막고 있으니 이는 영암군(靈巖郡)과의 경계이며, 셋째가 금강(錦江)인데, 나주의 동남쪽을 경유하여 회진현을 지나 남서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동리에서 바다까지는 거리가 수십 리다. 그 산의 아지랑이[嵐]와 바다의 장기[瘴]가 사람의 살에 침입하면 병이 때없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아침 저녁 어둡고 밝을 적에 기상이 천만 가지로 변화하니 역시 구경할 만하다.
동리에는 다른 초목이 없고 누런 띠[茅]와 긴 대[竹]만이 소나무ㆍ느티나무의 사이에 있으며, 민가의 문과 울타리는 이따금 대나무를 목재 대신으로 썼는데, 그 시원하고 맑은 모습이 먼 데서 온 사람을 즐거이 살게 만든다.
그리고 동리 사람들은 순박하고 허영심이 없으며 힘써 농사짓기를 업으로 삼는데, 그 중에서도 황연은 더욱 그러했다. 그의 집에서는 술을 잘 빚고 황연이 또 술마시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술이 익으면 반드시 나를 먼저 청하여 함께 마시었다. 손이 오면 언제나 술을 내어 대접하는데 날이 오랠수록 더욱 공손했다.
또 김성길(金成吉)이란 자가 있어 약간의 글자를 알았고, 그 아우 천(天)도 담소(談笑)를 잘했는데 모두가 술을 잘 마셨으며, 형제가 한집에 살았다. 또 서안길(徐安吉)이란 자가 있어 늙어 중이 되어서 안심(安心)이라 불렀는데, 코가 높고 얼굴이 길며 용모와 행동이 괴이했으며, 모든 사투리ㆍ속담, 여항(閭巷)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또 김천부(金千富)ㆍ조송(曹松)이란 자가 있는데, 그들도 술을 마시는 것이 김성길ㆍ황연과 비슷했다. 날마다 나를 찾아와 놀고, 매 철마다 토산물을 얻게 되면 반드시 술과 음료수를 가지고 와서 한껏 즐기고서 돌아갔다.
나는 겨울에 갖옷 한 벌, 여름에 갈옷[葛] 한 벌로써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며, 기거 동작에 구속되지 않았고 음식도 마음대로 먹었다. 그리하여 그 두세 학자들과 강론하다가는 개울을 따라 산골짜기를 오르내리는데, 피곤하면 휴식하고 흥이 나면 걷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만나면 이리저리 구경하며 휘파람을 불고 시를 읊느라고 돌아갈 줄 몰랐다. 어떤 때는 농사꾼 또는 시골 늙은이를 만나, 싸리포기를 깔고 앉아서 서로 위로하기를 옛 친구처럼 하기도 하였다.
하루는 뒷산에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다가, 그 서쪽 한 곳이 좀 평평하고 그 아래로 넓은 들이 펼쳐 있는 것이 좋아 드디어 종에게 명하여 묵은 숲을 베어내고 띳집 두 칸을 지었는데, 풀을 가지런히 하지도 않고 나무를 깎지도 않은 채 흙을 쌓아 뜰을 만들고 갈대를 엮어 울타리를 만드니, 일이 간략하고 힘이 적게 드는데도 동리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어서 며칠이 못되어 완성되었다. 그래서 편액을 초사(草舍)라 하고 곧 거처했다.
아! 두자미(杜子美)는 성도(成都)에 있을 적에 초당(草堂)주D-001을 짓고 산 것이 겨우 한 해를 지냈을 뿐인데, 초당의 이름은 천년을 전한다. 내가 이 초사에서 얼마나 살 것인지, 내가 이곳을 떠나간 뒤에 이 초사가 비바람을 맞아 무너지고 말 것인지, 들불에 타거나 썩어 흙덩이가 되고 말 것인지, 아니면 후세에 알려질지, 알려지지 않을지, 모두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찬찬하지 못하고 너무 고지식하여, 세상의 버림을 받아 귀양살이로 멀리 와 있는데도 동리 사람들이 나 대접하기를 이렇듯 두텁게 하니, 어쩌면 그 궁한 것을 불쌍하게 여겨서 거두어 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먼 지방에서 생장하여 당시의 의논을 듣지 못하여 내가 죄 있는 자인 줄 몰라서인가? 아무튼 모두 후대가 지극하였다. 내가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감동이 되므로 그 시말을 적어서 나의 뜻을 표하는 것이다.

 

 

 

消災洞記 005_346c


道傳賃居消災洞黃延家。洞卽羅屬部曲。居平之地。有寺曰消災。故以爲名。環洞皆山也。而其北東則重巒疊嶺。形勢相屬。西南諸峯。低小可以眺望。又其南。原野平衍。樹林煙火。茅茨十餘戶。乃會津縣也。其名山水。曰錦城山。端重奇偉。以據乎東北。羅之鎭也。曰月出山。淸秀突兀。以阻乎東南。靈巖郡界也。曰錦江。由羅東南流。過會津縣南。西入海。洞距海數十里。其山嵐海瘴之氣。中人肌膚。病作無時。然朝夕晦明。氣象萬千。亦可翫也。洞中無異草木。唯黃茅脩竹。間於005_346d松枏。人家門戶藩籬。往往以竹代木。其蕭灑淸寒之狀。使遠人亦樂而安之也。居人淳朴無外慕。力田爲業。延其尤也。家善釀。延又喜飮。每酒熟。必先觴予。客至。未嘗不置酒。日久益恭。有金成吉者頗識字。其弟天能談笑。亦皆善飮。兄弟同居。有徐安吉者老爲僧曰安心。高鼻長面。容儀詭怪。凡方言俚話。鄕井閭巷之事。無不記。有金千富者曹松者。其飮亦成吉,延之流也。日從予遊。每得時土物。必持酒漿而來。盡歡乃去。予寒一裘暑一葛。早寢晏起。興居無拘。飮食惟意。與二三學者。講論之餘。夤緣溪磵。登降巖谷。倦則休。005_347a樂則行。其遇佳處。徘徊瞻眺。嘯詠忘歸。或逢田父野老。班荊而坐。相勞問如故。一日登後岡以望。愛其西偏稍平夷。下臨廣野。遂命僕剔去椔翳。構屋二間。不翦茅。不削木。築土爲階。編荻爲籬。事簡而功約。而 一本無而字 洞人皆來助之。不數日告成。扁曰草舍。因居之。噫。杜子美在成都。構草堂以居。僅閱歲而已。而草堂之名傳千載。予之居草舍幾時。予去之後。草舍爲風雨所漂壞而已耶。野火所延爇。朽爲土壤而已耶。抑有聞於後歟。無歟。皆未之知也。但予以狂疏戇直。見棄於時。放謫在遠。洞人遇我甚厚如此。豈哀其窮而005_347b收之歟。抑長生遠地。不聞時議。不知予之有罪歟。要皆厚之至也。予且愧且感。因記其本末以致意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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