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3
2014/2/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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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임과 최영, 정몽주와 정도전. 같고도 다른 두 쌍 역사이야기  

 이인임과 최영, 정몽주와 정도전. 같고도 다른 두 쌍  역사이야기  2008/12/0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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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 선초의 격동기에 우리는 정몽주와 이방원의 설전을, 그리고 거기서 흘려진 선죽교의 핏방울을 기억한다. 그의 죽음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우리는 조선건국의 격동을 위화도 회군과 이어지는 정몽주의 죽음으로 그 과정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틱한 과정을 더 깊이 파고들면 나는 거기서 당시 시대를 움직였던 4명의 대표주자의 모습들에서 당시 고려 말의 정치 상황에 더 근접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인임과 최영, 그리고 정몽주와 정도전은 각각 당시 시대의 4가지 대표 세력들의 필두에 위치한다. 수구주의자 이인임, 보수주의자 최영, 온건개화파 정몽주, 급진개화파 정도전. 그리고 이들의 부침에 의해 결국, 고려, 나아가 조선의 역사는 크게 뒤흔들리게 된다.

 

이들 중 먼저 두각을 드러낸 이들은 이인임과 최영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친원 권문세족을 그 뿌리로 하는 고려의 수구-보수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공민왕때의 여러 외적의 부침 속에서 자신을 뚜렷하게 드러낸 이들은 공민왕 사후, 우왕을 이인임이 옹립함으로써 정계의 중심에 등장하게 된다. 이인임은 재상으로써 나라 살림을 좌우하였고, 최영은 군권의 통수권자로써 외적과 싸우며 고려 조정의 방패 역할을 하였다.

 

고려의 문무를 상징하는 인물들이었으나 이들의 행로는 너무나 명확히 차이가 났다. '황금보기를 돌같이'라는 부친의 신조를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최영과는 달리 이인임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자기 재산을 불리우고 매관매직을 일삼아 고려 조정을 크게 어지럽혔다. 우직하고 담백하여 탐욕이라고는 모르던 최영과 노련하며 약삭빨랐던 권신 이인임. 이들은 고려사회의 기득권자라는 부분에서는 동일하였으나, 그들의 태도는 이와같이 차이가 존재했다. 최영은 자신의 신념을 다해 기울어져가는 고려조정을 붙들어 일으키려는 보수주의자였으며, 이인임은 자신의 배경과 힘을 이용해 고려를 주무르려던 수구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인임의 권력 농단이 심해짐에 따라 우왕은 이인임에게 큰 위협을 느끼게 되고, 이에 최영에게 명하여 이인임을 제거하도록 하니, 이 때 최영이 이인임을 제거하기 위해 끌어들인 인물이 바로 이성계였다. 이인임은 평소에 이성계의 야심을 경계하여 최영에게 '이성계는 왕이 되려 할자'라며 경고했으나, 오랫동안 이성계와 함께 전장을 누빈 최영에게 있어서 이성계는 전우였고, 비리의 온상이나 다름없었던 이인임에 비해 청렴하고 인망이 있던 이성계는 더 믿음직한 동맹자였다.

 

그리하여, 최영은 이성계와 함께 이인임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다. 그러나, 이인임에게 연민을 느낀 최영은 우왕에게 청하여 그의 목숨은 구명해 주었고, 이인임은 자신의 모든 권세를 잃고 유배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제 청렴하고 담백한 무장 최영이 고려를 좌지우지 하게 됨에 따라, 고려는 안정의 길로 접어드는가 싶었다.

 

그러나, 최영이란 인물은 위대한 군인이었으나 훌륭한 정치가는 못되었고, 근본적으로, 당시 고려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막대한 권력과 부를 누리며 대농장을 경영하여 고려사회의 병폐가 되었던 권문세족. 이들이 타파되고 농민들이 토지를 가지고 권문세족에게 수탈되지 않는 건전한 민생과 국가 재정을 확립하는 일, 나아가 소수 특권층에게만 집중되었던 정치 권력을 보다 넓은 사회계층에게 개방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할 고려사회의 통풍. 이것은 기본적으로 권문세족이 그 뿌리에 있는 최영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본인이 아무리 청렴하다 하나, 그는 기존의 고려의 정치를 보면서 성장하였고, 그랬기에 그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없었으리라. 더구나 고려 권문세가는 지속적으로 서로 통혼하여 혈연, 지연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기에, 최영이 권문세족에게 칼을 겨눈다는 것은 결국 그의 친지, 친구에게 칼을 겨눈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그는 결코 그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권세를 이용할줄 알았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던 수구주의자 이인임, 그리고 청렴결백했으며 국가에 대한 충성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보수주의자 최영. 그렇기에 이들은 서로 닮은듯 다른 인물이다. 둘다 보수주의자라고 하나, 그 둘의 차이는 너무도 크고 깊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같은 배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이기에 고려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그러나, 시대적 요구는 이제 숨이 막혀 쓰러지려 하는 고려에 통풍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등장한 인물들이 바로 개혁파의 두 거봉, 정몽주와 정도전이었다. 이들은 이와같은 고려사회의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신진 사대부 계층이었고, 그것을 위해 이성계를 이용하려 했다. 흔히들 정몽주를 고려의 충신으로만 기억하는 까닭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정몽주가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정몽주는 오히려 위화도 회군 이후 공양왕의 옹립까지는 이성계와 뜻을 같이한 인물이다.

 

위화도 회군은 고려 사회에 일대 격변을 가져왔다. 겉으로는 우왕과 최영을 이성계가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것으로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영을 필두로 하는 보수주의 세력을 정도전이 대표하는 개혁파 세력이 몰아낸 상황이었다. 이제 칼자루는 개혁파가 쥐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개혁파 역시 그 내부에는 큰 갈등이 드러나고 있었으니, 온건파인 정몽주와 급진파인 정도전의 갈등이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이색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며, 당시 시대의 모순을 파악하고 그 해결을 고민하는 선까지는 동일하였다. 그랬기에, 이성계가 아직까지 고려의 신하를 자처하며 개혁파의 상징적 존재로 남아있던 상황까지는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그 해결책이 서로 달랐기에 이들은 서로 갈라설 수 밖에 없었다.

 

정몽주에게 개혁의 대상은 썩어빠진 권문세가였고, 그것을 개혁하여 고려 조정을 반석위에 세우고자 하였다. 한 마디로 체제 내 개혁을 꿈꾸던 인물이다. 반대로 정도전에게 있어서, 고려 조정은 이미 권문세가와 오랫동안 같이한 동반자였기에 근본적으로 고려조정을 무너뜨려야만 진정한 개혁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정몽주는 성리학에서 주장하는 충,효의 가치를 최선으로 여겨, 개혁을 충효를 실현하는 도구로 인식한 반면, 정도전은 충효의 가치 역시 성리학이 꿈꾸는 이상세계를 실현하는 도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계의 야심이 드러남에 따라, 이 두 동지의 길 또한 달라지게 된다. 정몽주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정도전은 고려를 무너뜨리기 위해 서로를 쓰러뜨려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를 위해 정몽주는 공양왕과 손잡아 정통성의 힘을 얻었고, 정도전은 이성계와 손잡아 무력의 힘을 얻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정계에서 팽팽히 대립하였고, 공양왕의 정통성에 힘입은 정몽주는 정도전의 월권행위를 문제삼아 그를 파직시키고 유배에 처하는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정몽주의 승리는 거기까지였다.

 

정통성과 무력의 대결은 서로가 일정한 한계가 있다. 무력이 힘으로 정통성을 갈아 엎겠다고 하면, 정통성에게는 그것을 막을 힘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게되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반대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고, 심각한 경우, 또다른 무력에 의해 그 자신이 다시 뒤집어질 위험성에 노출되게 된다. 그렇기에 무력은 함부로 정통성을 갈아 엎지는 못한다. 이 사실을 이성계도, 정몽주도, 정도전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정몽주는 절대적인 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정도전 등 이성계파 대신들을 몰아내고 승리를 거머쥘 순간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이 없는 정통성은 결국 무력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 궁지에 몰린 무력이 실력을 행사하겠다고 하면, 아무리 상대를 몰아 붙였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뒤집어질 위험성이 있는것이 힘없는 정통성의 한계이다. 바로 이 현상이 이 순간에 일어났다. 이방원에 의한 정몽주 암살이 바로 그것이다. 고려의 전 군권이 이성계에게 있는 이상, 정몽주는 이성계가 스스로 몸을 움추린 만큼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방원의 정몽주 암살은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반대파의 리더인 정몽주를 제거했다는 표면적인 의미 이외에도 지금까지 힘을 쓰기를 자제하던 무력이 실력행사를 시작했다는 선언적 의미 또한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쉽게 말해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기어올라도 봐줬지만 이제 까불면 어떻게 될는지 알라는 것이다. 고려를 지키고자 하는 세력의 입을 공포로 닫아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몽주를 선택한 것은 이성계파의 정치적 계산이기도 하다. 정몽주는 근본적으로 신진사대부계층-다시 말해 현재 고려 조정의 권세가 계층이 아니다. 만약, 고려 조정의 뿌리깊은 권문세가 일족의 사람을 죽였다면, 이성계파는 권문세가 전체의 큰 저항에 직면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성계의 즉위를 당기기는 커녕 오히려 즉위가 더 힘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정몽주는 반대파의 리더라는 상징적 의미 이외에도 이런 정치적 안배에 의해 그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지금까지는 이성계의 아들 중 하나였던 이방원이 자신의 입지를 크게 주장하게 된 사건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제 고려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힘을 잃었다. 구심점을 잃어버린 정몽주파는 일부는 제거되었으며 일부는 이성계파에 투항하였고, 일부는 조정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조를 지켰다. 결국 정도전은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개혁을 성공한 것이다......물론, 이후에 이방원과의 다툼에서 패하여 쓰러짐으로써 결국 그 역시 행복한 죽음을 맞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인임과 최영, 정몽주와 정도전은 모두 그 말년이 좋지 못했다. 이인임은 권세를 탐하다가 죽음을 당했고, 최영은 고려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여 개혁파에게 도전을 받아 죽었으며, 정몽주는 자신이 이용하려던 힘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정도전은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 죽었다. 이런것을 무상하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중, 수구주의자인 이인임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깨끗하지도 않았으며, 친원파로써 외세에 의존적이었고, 자신의 힘과 권세를 과신하여 자신이 해야할 일을 망각한 인물. 만약 이 인물이 빌미를 주지 않았다면, 최영이 이인임을 제거하고, 다시 이성계가 최영을 제거할 수 있었을까. 결국, 수구주의자의 부패와 욕심이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최영이 조정의 버팀목이 되고, 정도전이 이에 도전하며, 정몽주가 이를 중재하여 피의 숙청이 아닌 온건한 개혁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치료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정치가로써 위 네 사람 중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은 이인임이다. 부패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데만 유능한 인물은 그 사회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파괴하고 모순을 증폭시켜 백성들의 삶을 궁핍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철저히 비호하여 그들로 사람의 담을 쌓아 권세를 확고히 함으로써 사회적 모순 해결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들은 이러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핑계를 들이대며 민중을 속이고 반대파를 숙청한다. 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이런 상황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백성들의 삶은 고단해지고 사회 모순은 더더욱 증폭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영은 어쩔 수 없이 칼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권세가들이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는 정도전이다. 정도전과 같은 급진개혁세력은 기존 시스템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려하고, 그리 된다면 그 사회 기득권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에 기득권 계층은 정도전 같은이를 좋게 말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안정된 사회 시스템이 뒤집어지는 상황을 싫어하는 민중들 역시 정도전을 두려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세운 조선 왕조 오백년 역사동안, 정도전이 역적의 이름을 쓰고 있었어야만 했던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유형은 최영이나 정몽주와 같은 인물들이다. 최영은 청렴결백함과 곧은 의지의 상징으로, 정몽주는 곧은 절개와 충성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최영에게서는 올바른 가치관을 수호하기 위해 강하게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결단력을, 정몽주에게서는 사회의 모순을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선각자의 모습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에 정도전의 거침없는 추진력과 이상 사회에 대한 꿈을, 그리고 이인임에게서는 그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세련된 정략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려 말의 이런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과연 이 나라는 지난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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