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종교신문
2015/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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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史觀과 思想이 나와야한다  

 

[1994년 7월 20일, 종교신문]

 

 



"제3의 史觀과 思想이 나와야한다"



"한민족 공통의 史觀정립 … 국민화합 유도"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심장경색 증세로 김일성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고, KBS는 특종으로 보도했다.


국제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냉기류 속에 빠른 속도로 변모하고 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남북한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야단들이었다. 식료품 상점에는 라면, 곡물류 등의 식품이 바닥날 정도로 전쟁 위기가 미국으로부터 고조되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 미국 전 대통령이었던 카터에 의해 낭보가 날아들었다.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북한 김일성 주석이 만난다는 특보가 전파를 타고 날아와 온 국민은 일시나마 감격적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죽었다. 그렇다면 김일성의 사후 협상은 가능할 것인가. 아니면 남북간에 긴장이 고조되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인가. 그것이 사후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런 예측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김일성의 장례식이 끝난 후 곧바로 권력승계가 발표되면 다시 남북의 정상들이 만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왜냐하면 북한은 김일성의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답습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따라서 김정일이 권력세습자가 된다면 아버지인 김일성의 정책을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남북한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첫째 경제의 핍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둘째 핵무기의 생산을 비밀리에 진행하려고 했지만 국제적 압력에 제동이 걸린 점이다.

 

그리하여 첨단무기의 부품을 소련 사람들을 통해 밀매하려하다가 적발된 사실들이 그것이다.


셋째 북한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적화통일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아웅산 사건, 김현희의 비행기 폭파 사건, 간첩침투, 한국내 사회봉기 등 다양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오히려 경제면으로 낙후를 초래했고, 핵(核)으로 힘을 키우려고 했지만 도리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바람에 3중4중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기둥이었던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마저 유화정책으로 멀어져 가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고독과 충격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상낙원을 건설한다고 장담한 것이 백성들은 굶주리게 되었고, 세계의 아버지요 위대한 김일성 수령이라 존경받던 백성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뿐이랴. 믿었던 충신(忠信)이 반기를 들고일어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북한 당국자는 사상적 무장도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공염불임을 알았을 때 허탈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의 만남이 필요에 의해 성사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여하간 북한 정책은 적화통일을 버리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어디까지나 추종자들은 일인독재의 틀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북한은 입으로는 평화통일 운운하면서 끝내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는 정책을 한다면 한국과 북한간은 물과 기름과 같은 격이 될 것이다.

 




1. 歷史的 統一

 



한民族은 상고시대 때 통일되어 있었다. BC.8936년 백불(白佛) 또는 제석환인씨(帝釋桓仁氏)께서 우주 대자연을 깨달은 후 정통국을 세웠다. 나라를 세울 때 신시(神市)라고 했으며, 그곳은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이었다. 상상고시대는 부분적 통일이 아니라 핀란드, 스웨덴, 소련, 카자흐공화국, 전유럽 일대까지 十二桓國으로 통일되어 다스리고 있었다. 이 당시 절대 권력자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다.


선(禪)과 도(道)를 통한 대성인(大聖人)으로서 태양처럼 나타났을 때 12 부족국가는 스스로 따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BC.8936년 단군조선(壇君朝鮮) 第一期부터 단군조선 第二期인 치우(蚩尤 BC.2707년), 황제(黃帝 BC.2679년) 때까지 무려 6,257년간 전쟁없는 평화가 계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한민족은 대자연의 법칙을 준용하여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시켰던 것이다. 치우와 황제간의 10년 전쟁이 있은 후 BC.2357년 요단군(堯壇君) 때부터 다시 천하가 태평하게 되었다. 이때가 단군조선 第三期이다. 그러므로 요(堯 BC.2357년), 순(舜 BC.2284년), 하(夏 BC.2224년), 은(殷 BC.1766년), 주(周 BC.1122년)까지 그런대로 평화가 지속되어 왔다. 부분적으로는 부족간의 알력이나 사소한 세력다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BC.2357년에서 BC.284년 周나라가 망할 때까지는 2,073년간 표면적으로 태평세월을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전란이 극심했던 시대는 단군조선 第二期 치우(蚩尤 BC.2707년)와 황제(黃帝 BC.2679년)간의 싸움이었다. 친형제와 다름없는 사촌간의 전쟁이었다.


그 후 단군조선 第四期인 진(秦 BC.255년), 한(韓 BC.255년), 조(趙 BC.255년), 위(魏 BC.255년), 초(楚 BC.255년), 연(燕 BC.255년), 제(齊 BC.255년) 때 고구려(高句麗 BC.231년), 백제(百濟 BC.213년), 신라(新羅 BC.57년)와 같이 춘추전국 시대를 맞아 전란이 끊이질 아니했다.
이상하게도 壇君朝鮮 第二, 四期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극심했다. 그러나 壇君朝鮮 第一, 三期는 평화를 구가하던 시대였다.


1, 3기는 대성인들이 출현하여 선정을 했으며, 禪과 道의 정치를 자연법칙에 따라 시정(施定)했기 때문이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에에는 큰 나라였던 고구려, 백제, 신라 속에서 三國인 위(魏 AD.220∼265년), 촉(蜀 AD. 221∼263년), 오(吳 AD.222∼280년) 나라는 지역간의 전란이 약 40년 동안 끊일사이 없었다.


그후 南朝, 北朝의 세력판도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南朝는 송(宋AD.420∼479년), 제(齊 AD.479∼502년), 양(梁 AD.502∼557년)으로 되었다. 그리고 北朝는 북위(北魏 AD.386∼534년), 동위(東魏 AD.534∼550년), 서위(西魏 AD.535∼556년), 북제(北齊 AD.550∼577년), 북주(北周 AD.557∼581년)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南朝는 AD.420년에서 589년까지 약 170년간 지속되었다. 北朝는 약 196년간 전란의 도가니가 계속되었다. 이때는 고구려 20대 장수왕(長壽王 AD.341∼421년) 이후이며, 고구려 25대 평원왕(平原王 AD.522∼563년)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백제는 21대 개로왕(蓋鹵王 AD.400∼425년)에서 27대 위덕왕(威德王 AD.529∼577년)까지이다. 그리고 신라는 19대 눌지마립간(訥祗痲立干 AD.414∼454년)에서 24대 진흥왕(眞興王 AD.537∼572년) 이후까지 전란이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隋 AD.589∼618년)나라는 30년간 지속되었고, 당(唐 AD.618∼907년)나라는 290년간 고구려, 백제, 신라 속에서 함께 전란을 겪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백제(百濟 BC.213∼AD.660년)가 망하고 고구려(高句麗 BC.231∼AD.668년) 또한 망한다. 이때 신라는 당나라와 합세하여 신라통일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작전으로 고구려, 백제가 망한 것으로 史書에는 기록하고 있으나, 고구려 백제가 망할 무렵 수(隋), 해(奚), 말갈(靺鞨), 왜(倭) 등이 복합적으로 협공하므로 어쩔 수 없이 고구려 백제는 망한 것이다. 신라와 당나라는 고구려 백제 속에서 기생하고 있었다.


그때 南朝(宋 齊 梁 陳 後粱)와 北朝(北魏 東魏 西魏 北齊 北周)는 자연 소멸되고 말았다. 이때 唐나라는 고구려가 소유했던 강역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고구려의 강역은 멀리 天山에서부터 몽고, 만주 일대, 섬서성 西安과 洛陽 이북 한반도 등 현재의 日本까지 광범위한 땅이었다.


백제의 강역은 섬서성 西安을 위시해서 산서성, 안휘성, 강소성 일부, 호북성, 호남성, 귀주성, 사천성, 광동성, 광서성, 운남성, 청해성 등 백제는 번성기에는 엄청난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다만 산동성은 일부에 지나지 아니했다.

 

이 땅은 백제가 망한 후 모두 신라가 차지한 것이다. 당나라는 고구려 땅, 신라는 백제 땅을 가졌을 뿐 신라가 통일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식민사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신라가 통일하였다하여 통일신라란 말을 거리낌없이 난발한다. 이것은 역사를 잘못 안 것이므로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民族의 역사적 통일은 단군조선 1, 3기이다. 이때는 모두 禪과 道를 통한 聖君이 선정을 했기 때문이다. 신라가 대성업을 이룩한 것은 독자적 행위가 아니므로 신라통일을 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필자의 저서「上古史의 새발견」960쪽, 신라는 대륙에 있었다, 참고).


신라가 망한 것은 56대 경순왕(敬順王 AD.927∼935년) 때이다. 新羅本紀에 보면 경순왕 8년 가을인 9월이었다. 고려(高麗 AD.935년) 太祖에게 항복한 곳이 적혀 있다. 운주계(運州界) 30여 郡과 縣이다. 운주계를 조사해보니 운성(運城)이었다. 운성이 운주계이며, 이곳은 대륙 산서성 안읍현(安邑縣)임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과 일치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 AD.935년)은 당나라 이연(李淵 AD.618∼907년)에 이어 후당(後唐 AD.923∼936년)의 혈통으로 이어져왔기 때문에 王建은 대륙에서 신라로부터 항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신라와 백제의 국경에는 고구려와 말갈이 있었는데, 말갈이 자주 신라와 백제 국경을 침공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말갈의 선조는 물길(勿吉)이며, 말갈의 후예는 발해(渤海)이다. 발해가 한반도에 없었듯이 말갈도 현 한국 땅에 없었으므로, 신라가 대륙에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가 등극한 후 후당(後唐 AD.923∼936년), 후진(後晋 AD.936∼946년), 후한(後漢 AD.947∼950년), 후주(後周 AD.951∼960년)인 고려와 함께 있었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4년에서 14년 사이로 사라져 갔다.


그 후 송(宋 AD.960∼1279년), 북송(北宋 AD.960∼1127년), 남송(南宋 AD.1127∼1279년), 거란(遼 AD.907∼947년), 금(金 AD.1115∼1234년), 몽고(蒙古:元 AD.1206∼1368년), 명(明 AD.1368∼1661년) 나라들과 함께 고려(高麗 AD.935∼1395년)도 같은 시대 같은 땅인 대륙에서 운명을 함께 한 것을 볼 수 잇다. 하지만 고구려·백제·신라 보다 오히려 고려가 당나라가 망한 후 삼한(三韓) 땅을 통일한 것으로 사서(史書)에서는 기록하고 있다(필자의 저서「上古史의 새발견」참고).


특히 한치윤은 해동역사(海東繹史) 삼한편(三韓篇)에서, 三韓 땅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三韓 땅은 만주 일대와 몽고 일부, 그리고 天山 신강성(新疆省), 청해성(靑海省) 일부이다. 따라서 대륙 남부에 있는 광주(廣州), 홍콩, 운남성(雲南省) 등 대단히 넓은 지역이었다.


고려(高麗)가 삼한(三韓) 땅을 통일했다고 하는 것은, 주로 하북성(河北省) 일부와 산서성(山西省), 섬서성(陝西省), 그리고 산동성(山東省) 일부, 하남성, 호북성, 호남성, 안휘성, 강소성 일부이며, 귀주성, 사천성, 광동성 등을 걸친 광범위한 지역에 고려는 강역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리·구려·고려(高驪), 또는 고구려(高句麗), 고려(高麗)의 이름이 폭넓게 전해져 왔기 때문에 지금도 한국의 국호를 코리아·코레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통일은 삼국이 망한 후 고려가 통일을 했던 것으로 정사(正史)들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2. 南北間 思想的 統一

한민족은 상상고시대 때 반고환인씨에 의해 天·人·地를 기준하였다. 天·人·地는 곧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삼원일체(三源一體) 사상이다. 바로 이러한 것은 우주를 바탕하여 대자연의 법칙사상을 뜻하는 것이다.


반고환인씨께서 주창한 자연사상에 의해 6,257년간 구이(九夷)의 선조들은 통일을 이룩해 왔던 것이다. 그 이후 요순(堯舜) 시대에 잠깐 평화통일이 있었다. 요(堯), 순(舜), 하(夏), 은(殷), 주(周) 나라 때까지 약 2,073년간 겉으로는 통일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은(殷)나라 때 갈등이 많았던 것으로 사서(史書)는 기록하고 있다.


남북은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었다. 남북이 하나가 되려면 첫째 민족사관과 사상적인 통일의 작업이 빨리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남과 북은 낡은 정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의 사슬에서 벗어나 민간 차원의 거국적인 통일준비위원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의 통일 방안은 한민족의 공통된 한민족 사관을 정립하는 길이 급선무이다.

 

한민족 사관을 전제로 한 한민족 통일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남북의 정치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남과 북이 정치를 앞세워 통일하려고 한다면 전례처럼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많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한은 민주적 평화통일의 원칙을 버리지 않는한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북한은 무력으로 통일이 실패했음을 인지하고 있다. 다음은 남한에 혼란을 조성하여 통일을 하려는 것 또한 실패하였다. 그리고 과거처럼 비행기를 폭파하고 사람을 납치하여 공작간첩을 사용하려는 태러행위도 실패하였다. 그렇다고 연방제 통일방안도 불가능한 현실이고 보면 북한은 최종적으로 핵 기구를 내세워 마지막 수단으로 전략화 하려는 것 또한 실패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남은 것은 죽느냐 사느냐, 그리고 산다면 어떻게 북한의 체제를 존속시켜야 할 것인가. 기아에 굶주리고 배고픔에 지쳐 죽음을 걸고 탈출하려는 백성들을 보고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일 것이다.
북한은 냉엄한 현실에서 평화냐 전쟁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불가하다. 그렇다면 평화를 택해야 한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의 실정이다. 공산국이었던 종주국 소련도 중국도 개방화의 물결 속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몇 사람의 탐욕에 의해 적화통일의 망상을 갖는다면 그것은 자멸의 길로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김일성의 거목은 무너졌다. 언제까지나 김일성 체제대로 가리라는 꿈은 버려야 한다. 북한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쿠테타 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북한당국은 똑똑히 알아야한다. 이제 더 지체할 수 없는 처지에 와 있는 것이 북한이다. 북한은 94년보다 95년 96년이 갈수록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김일성의 정책을 고수하면 할수록 북한사회는 붕괴의 위험에 도사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민족은 대운기(大運氣)를 맞이하고 있다. 21세기를 향해 한민족은 힘차게 달려야 할 시점에 와있다. 만약 북한당국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스스로 불행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남북은 한민족 사관을 정립한 후 사상적인 통일의 길로 매진해야 한다. 남과 북이 살길은 통일된 조국이다. 힘이 뭉쳐 용솟음칠 때 비로소 민족정기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3. 結 論



한민족은 일찍부터 백의민족이라 했다. 백의민족이란 우주의 본체와 만물의 본질이 희다(白)는 뜻이다. 萬有萬物의 본체가 흰 것이므로 한민족은 흰옷을 입고 살았기에 白衣民族이라 불려지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 민족인가. 그리고 배달국 또는 배달민족이라 불려왔다. 배달이란 도를 통하여 이어온 민족이란 뜻이다.


21세기는 과학문명의 시대이다. 상고시대는 전쟁의 시대였다면 현재는 경제가 집정하는 시대이다. 이제 우리 눈앞에 빛(光)의 시대가 왔다. 머지않아 이화세계(理化世界)가 다가올 것이다.

 


한민족은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전세계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 바로 이 길을 한민족에게 사명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북은 뭉치고 합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길만이 진정한 평화를 찾는 한민족의 통일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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