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5
이름: 종교신문
2015/2/3(화)
百濟文化 역사촌건립은 취소돼야 한다  

 

보도지면:종교신문
보도일자:1994년 06월 29일
 

 


 

百濟文化 역사촌건립은 취소돼야 한다

 

 

 

 

지난 6월 13일자 세계일보 1면에 실린 기사가 있었다. 다름아닌 백제문화권을 개발하기 위해 무려 1조5천억 원을 투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는 2001년까지 扶餘에 80만평 규모로 역사촌을 건립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내년부터 백제문화권을 개발하기 위해 國費와 地方稅 그리고 민간자본을 합해 총 1조5천25억 원의 재원을 7년 동안 조성하여 투자키로 했다고 한다.


백제문화 종합개발 투자계획안에 따르면 이 기간 중 國費가 2천6백83억 원이며 18%의 비율이다. 그리고 地方비는 3천2백억 원이며 20%이고, 나머지 민간유치가 9천3백40억 원에 62%를 투입키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公州 扶餘지구는 4개 부분으로 나누고 38개 사업으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그중 계룡산 지구는 금암대실지구를 택지개발 등10개 사업에 5천8백65억 원이며, 익산 지구는 문화유적 보존 정비 등 7개 사업단에 5백69억 원으로 되어있다. 이들 중 설계비용은 무려 73억 원이 되고 있다. 또 중요사업으로는 부여지구에 80만 평과 20만 평의 규모로 각각 조성되는 백제문화촌과 연구교육촌 건립에는 7백17억 원과 9백 57억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리고 공주 관광단지 조성은 40만 평에 1천8백23억 원의 재원이 투입된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공주 및 부여의 도시환경 정비에 4백2억 원이며, 백제 큰길 건설에 8백86억 원의 재원이 각각 조달된다는 것이다.


이 어찌된 일인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지 백제문화권을 가짜로 형성하여 한민족의 역사를 완전히 왜곡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단순히 백제의 유적이 있음을 보존하기 위해 백제 박물관이 엄연히 있거늘 어찌 백제의 실체가 있었던 것처럼 백제의 도읍지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치 실존했던 것과 같이 國費를 어마어마하게 낭비하면서까지 역사를 날조하려 하는가. 정부 당국에 묻고 싶다.


「上古史의 새발견」은 原典 5천94권을 정확하게 고증해 9백60쪽의 방대한 피를 토한 작품이다.


「上古史의 새발견」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송사(宋史), 양서(梁書), 자치통감(資治通鑑),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사기(史記),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 명사(明史), 책부원구(冊府元龜) 등 수많은 사서(史書)를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사 속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현 한국땅에 있었던 사실이 없다. 특히 백제는 충청도, 한강 이남과 전라도 땅에 있었던 사실이 없다는 것을, 三國史記 百濟篇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백제가 망한 후 지나대륙에서 이주해 온 백제의 유민들이 부른 한서린 노래가 있다. 바로 그것이 산유화(山有花)란 노래이다.


백제본기(百濟本紀) 온조왕편의 다음과 같이 간단한 기록을 소개해 본다.『惟此河南之址』라고 되어있다. 이 말은 백제가 하남의 터라는 말이다. 하남이란 식민사학자들은 강남의 터라고 풀이했다. 강남이 아니라 하남이다. 하남이란 支那大陸에 있는 하남성(河南省)을 말한다. 유차하남지지란 하남성의 터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하남성(河南省)임을 알 수 있는 글귀가 있다. 자치통감(資治通鑑) 2백1권 당기(唐紀) 17권 1938쪽에『高麗 百濟河北之民』이라고 적고 있다.


자치통감은 삼국사기를 기록할 때 고증본으로 사용된 책이다. 고려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를 말한다. 고구려 백제의 백성은 지금의 지나대륙 하북성 백성들이라고 되어있다.


또한 三國史記 의자왕편에 보면 고구려와 백제의 선조는 동일하며, 맴처음 시조는 堯임금의 아버지인 고신씨(高辛氏)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신라의 옛 조상은 중국 황제(黃帝)의 아들인 소호(小昊)금천씨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신라는 김씨 성으로 왕권을 이어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같이 본다면 백제와 고구려 신라는 한국땅에 있었던 사실이 없다.

 

옛 선조가 모두 지나대륙에 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삼국유사 첫머리인 기이권(紀異卷)편에는 복희(伏羲), 신농씨(神農氏), 황제(黃帝), 소호(小昊)금천씨, 전욱고양씨, 제곡고신씨(帝 高辛氏), 요(堯)임검 등은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시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려 초기까지도 아홉의 한국 중에 속하는 나라는 ①일본(日本) ②중화(中華) ③오월(吳越) ④둔라(屯羅) ⑤응유(膺遊) ⑥말갈(靺鞨) ⑦단국(丹國) ⑧여진(女眞) ⑨예맥(濊貊)이라고 적고 있다.


역사의 기록은 모두 한자로 되어있다. 필자는 한자로 된 원전을 1만5천 권 이상 살펴보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조상이 대륙에 있었기에 지나대륙은 우리 선조들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있지도 않았던 한국 충청도 부여 땅에, 어떤 정객(政客)의 입김에서인지 몰라도 역사왜곡을 하기 위해 백제촌을 건립한다면 자손들에게 치욕의 역사현장을 물려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후손들에게 떳떳한 백제의 문화유산을 물려주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를 날조 조작하고 식민사학을 도욱 고착화하려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역사촌 건립은 당장 중지되어야 하고 마땅히 취소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망국을 자초하는 역사날조는 후손들에 의해 민족의 반역이란 오명을 씻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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