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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9
이름: 한미신문(L.A)
2015/2/3(화)
한民族史 / 天符印의 정의  

 

보도지면:한미신문(L.A)
보도일자:1996년 09월 15일

 


 한民族史 / 天符印의 정의 

 

 

 

           한民族史

 

    우리가 태어남은 歷史가 태어나는 것이요.
    우리가 살아 있음은 歷史가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 있음은 歷史가 죽어 있는 것이요.
    우리가 살아 있음은 歷史가 영원히 살아 있음을 뜻한다.
    歷史가 살아 숨쉴 대 우리가 살아 숨쉬는 것이요.
    위대한 歷史가 탄생될 때, 우리의 祖國은 영광의 그날이 오리라.
    그러기에 영원히 살아 숨쉬는 歷史가 탄생될 때.
    비로소 우리의 生命과 祖國은 영원해 지리라.

 

 

 


  오늘날 우리나라 역사는 완전히 토막 나 버리고 불구자와 같은 몸으로 비참한 현실을 살아온 것과 다를바 없다. 三國史記 본문을 제대로만 보았어도 엉터리 역사는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三國遺事에는 복희씨(伏羲氏) 이후 소호(小昊), 고양씨(高陽氏), 고신씨(高辛氏), 요(堯), 순(舜) 모두가 三國(高句麗·百濟·新羅)의 시조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더구나 반고(盤古) 성인이 환인(桓因)이라는데 한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삼묘족(三苗族)의 시조가 반고환인(盤古桓因)이며, 삼묘족(三苗族)은 한民族의 선조임이, 三國史記 百濟本紀 義慈王篇 마지막에 잘 나타나 있다(則三國朝鮮豈其古聖人之苗裔耶).


  한편 김부식(金富軾)은 신라(新羅) 고사(古事)를 믿을 수 없어 스스로 역사를 고쳤노라고 자백(自白)하고 있는 글귀가 보인다(百濟本紀 義慈王篇 끝부분).


  고쳐지고 망가진 歷史를 다시 김부식(金富軾)이 고친 것이다. 그것을 日本, 中國 史家들이 더 철저하게 왜곡시킨 것을 그대로 한국의 歷史로 받다들였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식민사학자(植民史學者)들이 무조건 日本과 中國學者들이 잘라버리고 조작한 역사를 하늘처럼 믿으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漢文 해독실력이 부족하고, 따라서 한民族史를 바로잡으려는 성의가 하나도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필자는 뼈와 살을 깎는 인고(忍苦)를 겪으면서 약 6개월간 하루에 10시간 이상 漢文으로 된 原文과 씨름하면서 사명감으로 한民族史를 엮어 나간 것이다.

 

 

 


        天符印의 정의

 

 

  天·人·地 삼원일체(三源一體)에서 음양(陰陽)이 생(生)한 다음 五行(金·水·木·火·土)은 대자연의 대변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반고한인(盤古桓因)께서 곤륜산 우전국(于 國)에서 돈황(敦煌)으로 내려오기 전에 이미 오행문자(五行文字)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고한인(盤古桓因)께서는 상원갑자(上元甲子)년 음력(陰曆) 十月三日에 흑수삼위태백(黑水三危太白)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정했다는 기록이 정설(定說)로 되어있다.

 


  3백5십만 년 전후로 삼묘족(三苗族)은 산아제한도 없이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했던 것으로 보아, 물질문명보다 정신문명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는 물질문명이 발달한 반면 정신문화의 퇴조로 인하여 사회는 불안전하고, 인간은 이성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上上古社會는 현대와는 반대되는 측면이 많았다. 예를 들면 반고한인(盤古桓因) 때 역사를 기록해 두었고, 법화경(法華經)이 있었다는 글귀가 있어 옮겨 보기로 한다.

 

  해동역사(海東繹史) 本文 卷二 檀君朝鮮 17쪽(本著 '三苗族의 血統關係考察' 註119 참고)에 보면 盤古桓因 때 이미 동굴 벽화와 더불어 역사를 기록한 것을 감추어 놓았다고 되어있다. 다라서 법화경(法華經)은 물론 병법(兵法)과 다른 경서(經書) 등도 함께 비장시켜 두었지만, 그것을 한곳으로 기록을 옮겨 놓지 못해 비장된 역사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안타가워 했다. 단 한 사람의 현인(賢人)이라도 기록해 두었다면 하는 아쉬운 글을 한치윤(韓致奫)은 해동역사(海東繹史)에 통곡하듯 적고 있다(註119 참고).

 

  天·人·地 三源一體의 철학사상을 정립한 뒤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자연법칙 철학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기에 반고한인(盤古桓因)은 上元甲子年 음력 十月三日에 神市를 정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 환단고기(桓檀古記), 신단실기(神檀實記), 태백속경(太白續經) 등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반고환인이 곤륜산에서 내려올 때 천부인(天符印) 3개(三個)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천부인(天符印) 3개는 다름아닌 하늘과 사람과 땅의 진리(眞理)가 새겨진 문서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천부인(天符印) 하니까 도장인 줄 알지만 그것이 아니다. 여기서 인(印)이란 참된 진리가 수록된 문서를 뜻한다. 印에 대한 주석을 달았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천부(天符)란 하늘의 부적이다. 즉 하늘의 부적이란 하늘의 진리를 뜻한다. 하늘에 대한 현묘(玄妙)한 진리서(眞理書)를 天符라 한다.


  符란, 대나무나 목판을 만들어 증거가 될 수 있도록 글을 새겨 절대권자가 행사할 수 있는 옥새와 같은 것이다. 즉 임금의 상징으로 대나무에 새긴 글을(상징적으로 샛길 수도 있음. 그러나 桓因天皇 때 이미 각종 經書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大權을 쥐는 자에게 天符印을 가지고 다스릴 수 있도록 진리를 글귀로 새긴 것을 뜻한다) 符라 한다. 符란 경명주사로 붉을 글씨를 쓴 부(符)가 아니라, 天子가 지니고 다스릴 수 있는 절대의 眞理가 담긴 진리훈(眞理訓:진리를 가리키는 말, 즉 교훈)인 것이다. 天符印을 손에 쥔 자는 天子가 될 수 있는 권능(權能:절대적인 권력을 능히 행사할 수 있는 것)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天과 人, 그리고 땅의 진리를 새긴 글귀를 天符印이라 한다.

 


  盤古桓因께서 곤륜산(崑崙山)에서 내려오실 때 天符印 3개를 가지고 돈황에 이르러 흑수삼위태백(黑水三危太白)의 가장 좋은 자리에 신시(神市)를 정했다. 그것도 아무 곳이나 아무 때나 정한 것이 아니라 上元甲子年 음력 十月 三日에 도읍을 정했다.


  여기서 上元이란 盤古聖人을 뜻한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五行의 간지법(干支法)을 반포했기 때문이다. 반고성인의 夫人을 상원(上元)부인이라 하는데 이름은 막지(莫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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