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국민법률신문
2015/2/3(화)
조회: 577
유라시아전역이 모두 한반도였다  

 

 

보도지면:국민법률신문


보도일자:1990년 9월 24일


 
 

 

 유라시아전역이 모두 한반도였다

 

고구려·신라·백제의 활동무대는 중坪鰥�


史記의 地名들은 모두 中國에 실존하는 역사와 동일

 

 

 

 

 중국·몽고·소련일부와 동유럽 동남아 일대가 모두 한민족의 고토였다고 주장하는 재야 사학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가 5천 년 전에 백두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며, 우리는 하루빨리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해당관서를 찾아다니며 우리역사 찾기에 일생을 바친 재야사학자인 李重宰씨는 왜곡된 한국 고대사를 바로잡겠다는 신념으로 上古史學會를 창립한 뒤 자료수집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처음으로 밝혀진 한民族史」란 책을 펴냈다.


 삼국사기에는 환인이나 환웅, 그리고 단군의 역사가 하나의 신화일 뿐이다.


 또한 고구려 신라 백제가 우리 한반도에 있는 것처럼 꾸며졌고, 신라 통일 역시 지금의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잘못 기록되어 전해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는 중국의 곤륜산인 태백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일부 사학자들은 태백산이 백두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큰 착각이라고 한다.


 사실상 삼국사기는 잘못되어 있으며, 김부식이 역사를 쓰면서 고구려를 BC.37년, 백제를 BC.18년, 신라를 BC.57년으로 했으나 이것은 모두가 엉터리로 조작된 역사라고 했다.


 김부식이 魏書의 원문을 참고로 하여 삼국사기를 썼지만, 가장 대표적인 魏書 역시 조작된 데다 또다시 역사를 조작해버린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든다면 삼국사기에는 금빛의 개구리 알과 같다고 해서 금와라 이름지었다고 했으나, 부여왕 해부루가 아들이 없어 산천에 빌고 제사를 지냈더니 어느날 연못 옆에서 말울음 소리가 들려 가보니 말이 큰돌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기에 왕이 이상히 여겨 부하들을 시켜 그 돌을 가지고 왔더니 그 속에 아이가 있어 금와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러나 魏書에는 주몽의 어머니 하백녀가 밀폐된 방안에서 햇볕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몸을 피신하여 다섯 되(5升)나 되는 알을 낳았다고 기록되었으며, 삼국사기 뒷면에는 하백녀인 유화가 밀폐된 방에서 나와 다섯 되나 되는 알을 낳았다고 서로 다른 神化說로 엮어 놓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구려의 역사는 광개토대왕의 비문에 있는 것처럼, 서역에 있는 비려국(비리국임)을 토벌했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환인천황 때 12개 나라 중의 하나가 비려국이었는데, 바로 그 비려국을 토벌했다는 사실은 고구려의 역사가 엄청나게 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호태왕비에 대한 연구의 저자인 왕건군(길림인민출판사)의 것을 일본인 원본강일이 1984년 12월 15일에 발행한 책자에서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魏書에서도 고구려편에는 분명히 주몽의 현손(5대손)이 을불리(乙弗利)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때가 BC.2099년, 서기로 따진다면 4088년 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기록은 유양잡조전집 예전편에, 중국 곤륜산길 서쪽의 가까운 길목에 고구려와 백제가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목천자전 예전편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고구려의 옛 고도가 요동군 낙양 3천6백 리요, 현도군 낙양 동북 4천 리라고, 삼국사기 잡지 제6 지리 4편에 기록되었다(개국마한왕검성 금서경지「대동부」와 고구려현명제왕음기, 참조).
 이같은 사실을 정리해보면 중국 동부와 서역 일부, 몽고, 그리고 만주와 한반도는 모두 고구려의 영토임이 분명하다.


 삼국사기 지리 4편에 고구려의 영토에 속하는 성들을 열거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바로「돈성까지 였다」라는 대목이다. 돈성이란 중국의 곤륜산과 천산산맥이 동쪽으로 뻗어있는 청해성 위쪽과 신강성 끝쪽, 영하성 끝쪽의 세 부분이 맞물린 곳에 돈황이 있었던 성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영토가 얼마나 넓었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신라 역시 삼국사기에는 혁거세 21년에 축성을 하고 그것을 금성이라 했는데, 지금의 경상도 경주에 있는 금성이 아니다. 삼국시대「아시아형세도」에 보면 중국의 감숙성에 있는 난주에 금성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바로 옆에 있는 경주라는 도시명이 금성삼국시대아시아형세도;북조 지도에 보면 기록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최근에 이상과같은 사료들을 뒷받침 해주는 사실들이, 서울대학교 任孝宰 교수팀이 한국형 선사시대의 유물을 소련의 카자흐공화국 잠불 지역에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과 흡사한 화살촉, 토기, 마제석기 등 40여 점을 수습했는데, 이같은 유물이 출토된 곳은 고구려 高仙芝 장군의 전투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한국문화의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 기원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문화의 기원을 두고 학계에서는 시베리아 기원설과 발해만 연안 등, 여러 학설이 제기되어 왔었다. 이처럼 한민족 문화가 중앙아시아 기원설을 입증할 자료로 쓰이게 될 것이며, 아울러 재야사학자 오재성 씨도 중국의 황하와 양자강 유역은 고대 한국의 영토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활동무대는 요동 평야 지역이라고 주장하면서 史記의 지명들이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반대로 중국에 그대로 실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창닫기



| 상고사 | 게시판 | 자료실 | 천문해자 | Music Box | Photo | Poem

Copyrightⓒ 2005 BC.8937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