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bc8937
2010/10/21(목)
조회: 1944
東夷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글  

 

이런 말 나온 지는 오래되었지요. 최근 다시 논란이 붉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東夷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글 

 

 

img19.gif   이글은 진태하 박사님의 강의 자료를 재구성 한 것으로 漢文이 많이 들어가 있는 논문을 읽기가 불편하신 분을 위해 이해가 쉽도록 편집하였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무식을 막론하고 대부분이 漢字는 中國의 漢族이 만든 것인데, 대략 서기전 3세기경(김민수 : 신국어학사)부터 차용하여 쓰고 있는 文字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특히 한글전용론자들은 漢字도 일찍이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학설과 주장에 대하여, 학문적인 고증도 없이 무조건 극력 부정함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글뿐만 아니라 漢字도 우리 民族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요,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漢字를 차용문자라는 누명을 씌워 이 땅에서 축출하려 함은 우리 祖上의 영광스러운 업적을 부정하는 바보 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漢字'라는 명칭이 주는 일반적인 선입견은 漢代에, 漢族에 의하여 만들어진 文字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1.漢字에 대한 선입견은 漢代의 문자

2.漢字는 중국의 漢族이 만든 것

이시간에는, 1 . 2 두가지문제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하겠습니다.

 

 

漢나라 이전에 秦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秦 이전에는 周나라가 있었고 또 그 전에는 殷나라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갑골문(甲骨文)은 殷나라 때 꺼고 周나라 때 金文이 나왔습니다. 秦나라 때 소전(小篆) , 그리고 漢 ...    이런데 

 

 

殷나라는 지금으로 부터 약 3400년전에 있었던 나라고 漢나라에서 殷나라 까지는 약 1200년 정도의 년대 차이가 있습니다. 殷나라 때 갑골문을 만든 사람은 북방민족중에서 동이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것은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아래 추가해설)


 

중국의 사학자 추군맹은

“華夏族是在我國原始社會末期, 以中原炎黃集團爲基礎, 融合了東方一部分夷人集團(主要是蚩尤和少昊這一支) 和南方一部分苗蠻集團(主要是女氅●和槃瓠這一支) 而形成的(華夏族起源考論)”

“화하족시재아국원시사회말기, 이중원염황집단위기초, 융합료동방일부분이인집단(주요시치우화소호저일지) 화남방일부분묘만집단(주요시여창●화반호저일지) 而形成的(화하족기원고론)”

이라고 한 바와 같이 중국민족 곧 화하족은 이른 시대에 이미 東方의 蚩尤(치우)와 少昊(소호)가 지배하던 이인집단이 융합되었다고 역설하였다.

蚩尤에 대해서도 추씨(鄒氏)는 역대 학자들의 고증을 들어 구려(九黎)의 군장으로서 동이집단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少昊에 대해서는 확실히 蚩尤의 후예로서 새를 토템으로 한 씨족부락이었으며, 그 발상지는 산동성의 곡부 일대이며, 약 5000여년전의 유적지인 「대문구문화」(山東省)는 곧 少昊의 집단인 東夷族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고증하였다.

蚩尤에 대하여 우리 나라 역사에서는 별로 연구된 바 없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少昊에 대해서도 中國의 五帝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반하여,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그 무덤까지 확인하고 분명히 東夷集團의 君長이었음을 역설하고 있음은 우리의 역사지식을 반성하게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韓民族의 발상지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좁은 韓半島가 아니라 저 광활한 흑룡강·송화강·요하를 중심으로 한 만주벌, 요동벌에서 시작하여 한반도로 진입하기 이전에 이미 황하류역으로 진출하여 황하문명의 주역으로서 활약하였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게 되면 韓民族의 역사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역사가 달라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일찍이 東夷族은 중앙아세아쪽으로, 동남아쪽으로 진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베링해협을 넘어 북남미대륙까지 진출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를 낳았을 때 궁둥이에 푸른 점이 있는 것을 일반적으로 「몽고반점」이라고 일컬어 왔으나, 이것은 동이족의 역사를 모르는 근대 서양학자들에 의하여 와전된 명칭이다. 앞으로는 마땅히 「동이반점」이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근래 우리 나라의 얼빠진 학자들 중에는 韓民族의 뿌리를 몽골에서 찾겠다고 헤매어 다니는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우리 韓民族의 연원은 은대 동이족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고구려 시대에도 이미 당시 어느 민족보다도 찬란했던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다. 몽골은 元代의 징기스칸에 의하여 돌출한 나라인데, 어찌 韓民族의 뿌리를 몽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마땅히 몽골의 뿌리는 우리 韓民族 문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일시 元나라의 침략을 받아 일부 차용된 문화 흔적 때문에 우리 민족의 뿌리를 몽골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근대 서양인들의 학설에 의하여 韓民族의 계통을 「알타이語系」에 속한다고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동이어계」에서 오히려 알타이쪽으로 전파되었음을 새로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와 중국어는 전연 이질언어가 아니라, 한자에 의하여 중국어가 형성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이족 언어로서 동계언어였음을 많은 자료로써 고증할 수 있다.

하·은시대만 소급하여도 국경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인접해서 또는 중국의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융합해서 살았던 두 민족이 마치 무슨 장벽을 쌓아 갈라놓은 것처럼 전연 이질언어로서 한장어계로서 고립어에 속하고, 한국은 알타이어계로서 교착어에 속한다는 것은 일반상식으로 생각하여도 불가능한 것이다.

모든 단어가 「日·月·山·川·人·木·水·火」 등처럼 단음절어로서 형성된 것은 자연적인 언어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언어현상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단음절로서 구성된 漢字가 쓰이기 이전의 古代 中國語는 이미 사라졌으나, 그 흔적은 동이계어의 주류로서 남아 있는 韓國語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구체적인 고증을 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나, 지면 관계로 구체적인 고증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럼 東夷의 夷字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겠습니다.

夷 字의 자형을 갑골문 부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殷代의 갑골문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것을 예전에는 사람人字로 풀었었는데 최근에 새롭게 밝혀낸 것이  이게 활(弓) 이라는 것입니다. 즉, 활(弓) 은 평상시에 활줄을 풀어 놓아야지 계속 걸어놓으면 탄력이 떨어져서 못 쓰기 때문에  이게 활은 활인데 활 줄을 풀어 놓은 것입니다.

 

       

 

사람人字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비슷하죠? 

하지만 이 두글자는 서로 다른 글자 입니다.

 

 

그 다음에 맨글어 진 것이  이겁니다. 활을 그리고 그 위에 화살을 엊져서 그렸습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활과 화살이 맞죠?  이게 夷 입니다. 그래서 東夷는 동방에 활을 잘 쓰는 민족이다란 뜻이예요. 갑골문에 사람人字 와 비슷해서 혼돈이 생기므로 나중에 혼돈을 피하기 위해서 활위에 화살까지 얻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분명해졌습나다.

계속해서 ....

한자는 도안화 되지요?

 

 

 -->  

 

 

 이것이 나중에  이렇게 되고 그 다음에  이것이 소전체에 와서는  이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漢代에 완성 된 夷字는 큰대(大)에 활궁(弓) 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글자 처럼 보이게 되었는데 원래의 형성 과정은 그렇지가 않은 것입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누가 지었죠? 

학생들 :   허신(許愼)

그렇죠. 허신(許愼)이 기록한 것은 소전체를 보고서 해설을 했기 때문에 잘못 된 해석이 나온 거예요.

그 당시에 甲骨文字를 보지 못했던 거예요.

따라서 우리 학자들도 끓임없이 노력하여 새롭게 주장되는 학설들을 지속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갖추어야겠습니다.

이제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인용하더라도 공부를하긴하되 허신(許愼) 같은 大학자도 실수를 할 때가 있다는 것은 항상 염두해 두셔야합니다.

 앞에서 考證한 바와 같이 漢代는 고사하고 秦과 周代를 소급하여, 漢의 建國으로부터 약 1,400년 이전 殷代에 이미 文字가 매우 발달하여 쓰였으니, 漢字는 漢代의 文字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밝혀졌습니다. (漢字는 漢代의 문자가 아니라 殷代에도 이미 文字가 매우 발달하여있었다)

또한 殷代에는 '漢'이라는 글자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漢族'이라는 명칭도 있을 수 없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漢'이라는 글자는 서주시대(西周時代) 청동기인 '父乙槺●'의 金文에서 처음 나타나지만 '漢族'이라는 명칭을 뜻한 글자가 아니라, 水名으로 만들어진 글자이다. (漢字는 중국의 漢族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이다)

 


 

필자가 몇 년전 「大東夷文化硏究會」를 결성하였더니, 어느 국사학자가 하필 「東夷」라는 말을 붙이었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질문을 받은 바 있다.

「東夷」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우리 스스로 「동쪽 오랑캐」라는 뜻으로 익혀 왔기 때문에 심지어 국사학자까지도 「東夷」라는 말이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국어사전에 「東夷」에 대하여 “옛날에 중국 사람이 자기들 동쪽에 있는 한국·일본·만주 등의 나라나 종족을 멸시하여 일컫던 말”이라고 풀이하여 놓았고, 모든 字典에 「夷」에 대하여 “오랑캐 이”라고 대표 훈음(訓音)을 달아 놓았으니, 일반인들은 「東夷」에 대하여 올바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먼저 후한시대(後漢時代 . AD 100년경)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해자》에서 「夷」字에 대한 풀이를 보면 “東方之人也, ●(從)大 ●(從)弓”이라고 한 바와 같이 東方의 사람이라고만 언급하였지, 결코 비하하여 동쪽의 오랑캐라고 말하지 않았다.

허신(許愼)의 풀이에 대하여 청대(淸代)의 단옥재(段玉裁)는 오히려

“惟東夷 ●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유동이 ●대 대인야, 이속인, 인자수, 유군자부사지국.”

이라고 한 바와 같이 夷族의 풍속이 어질고, 그래서 장수하는 민족이며 군자가 끊어지지 않는 나라라고 극찬하였다.

후대에 와서 「夷」의 다른 뜻이 파생되기도 하였지만, 중국에서 「夷」를 「오랑캐」라고 멸시하여 일컬은 일이 없다. 더구나 「오랑캐」라는 말은 中國에서 연원된 말이 아니라, 《용비어천가》에 의하면 우리나라 북쪽 두만강 일대에 살면서 자주 국경을 침범했던 여진의 北쪽에 살던 소야인국과 대야인국을 통칭하여 「올량합(兀良哈 . 오랑캐)」 또는 「올적합(兀狄哈 . 우디거)」라고 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夷族」은 곧 우리의 祖上인 줄도 모르고 「夷」를 「오랑캐 이」라고 칭함은 제 조상을 스스로 욕하는 결과가 되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夷」字를 갑골문과 금문에서 찾아보면 「 ●, ●, ●, ●」(甲骨文), 「 ●, ●, ●, ●, ●, ●, ●」(金文) 등과 같이 許愼이 풀이한 「大 + 弓」이 아니라, 甲骨文에서는 활의 모양만을 상형한 것인데, 金文에 이르러 활 위에 화살을 포개놓은 모양을 상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소전체에 이르러 자형이 「 ●」와 같이 변하여 「大」字에 「弓」字를 더한 것 같이 보이지만, 「大」는 곧 화살의 형태가 변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하간 「夷」는 본래 활을 상형한 것임은 틀림없다. 이로써 볼 때 「東夷」는 곧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을 지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夷」는 「오랑캐 이」가 아니라, 「큰활 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오늘날 우리의 여궁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여 매회 금메달을 휩쓰는 것은 개인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이족」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고대에 있어서 東夷의 지역은 한반도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산동을 중심한 일대였음을 먼저 올바로 인식해야,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바로 알 수 있다.

 


 

원래 중국말에는 오랑캐라는 훈(訓)이 없어요. 

「오랑캐」라는 말은 中國에서 연원된 말이 아니라, 《용비어천가》에 의하면 우리나라 북쪽 두만강 일대에 살면서 자주 국경을 침범했던 여진의 北쪽에 살던 소야인국과 대야인국을 통칭하여 「올량합(兀良哈 . 오랑캐)」 또는 「올적합(兀狄哈 . 우디거)」라고 한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올량합(兀良哈 . 오랑캐) ---->   올랑하 , 올랑카 , 오랑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아직 고고학적으로 그 실체가 분명하게 밝혀지지않았지만 가장 오래 된 국가인 夏나라를 중심으로 동 . 서 . 남 . 북 변방의 족속들을 가리키는 말이 북적, 서융, 남만, 동이 였던 것입니다.


北狄 : 북쪽의 오랑캐가 아니라 '이리적' 字 예요. 북쪽에는 이리떼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전을 만들면서 모두 오랑캐라고 번역을 해놓았어요. 조상님들도 후손을 잘못만나서 호되게 욕먹고 있는 것입니다.

西戎  :  '장창융' 字 입니다. 서쪽의 병사들은 길다란 창을가지고 다닌다고 쓴 것입니다. 투루크의 전사들이 말을 타고 장창을 들고 싸우는 장면들을 영화에서 많이 보았을 줄 압니다. 이들은 모두 서쪽 사람들이죠.

南蠻 :  '벌레충' 字가 들어가 있죠. 그 지역사람들이 벌레라서 그런게 아니고 대륙의 남쪽은 무덥고 습한 기후때문에 원래 벌레들이 많아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東夷 : 자, 이제 東夷, 동이는 어질다고 했지요. 仁也...

 

 

 동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고,

中國 학자들은 殷代의 '甲骨文'은 古代 여러 부족 중 황하 이북의 북방민족인 '동이족'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夏나라는 지금의 西安에 있었다고 쳐도 그 동쪽과 북쪽은 모두 夷族들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인류가 지금까지 만든 약200여종의 문자가운데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은 문자가 약 50여자 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현재 30여종이 실용적으로 쓰여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실용문자사용인구 세계 제13위에 속한다고 합니다.

표의문자로써 가장 발달한 漢字

표음문자로써 가장발달한 한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가장 우수한 文字 두가지를 직접 만들어서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만 유일 하다는 것을 잘 인지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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