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bc8937
2008/10/23(목)
조회: 3342
구미호가 나타날 태평성대를 기다리며(구미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마침 좋은 답변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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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신완순 (2007-07-12 13:20:49) 

 통일한국 칼럼6. 구미호가 나타날 태평성대를 기다리며(구미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 놀이를 어릴 적에 누구나 한번쯤은 다 해 봤을 것이고
지금도 우리의 어린이들이 그 놀이를 하고 있지만
정작 이 놀이의 유래나 의미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 놀이에서
여우가 잠자고 세수하고 밥먹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묻고 확인하는 구성이
우리가 매일 일상적으로 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이 놀이가 재미있으면서도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일상적인 편안함에서
여우인 술래를 놀리는 것에 대한
가학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첫 번째이고,

여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묻는 대목에서
혹시 살아있어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 두 번째인데
이러한 것들이 어울려 묘한 자기만족과 흥분
그리고 카타르시스와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다.

'여우죽이기'는 주(周)나라의 동이(東夷)폄하 방편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만족의 대상인 여우가
우리민족의 기본 정서에 녹아있는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꼬리가 아홉 개 달렸다는 구미호(九尾狐)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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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구미호에 대한 시각은
“천년 묵은 여우”,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
“불여우”,
“둔갑을 하고 남자를 홀리거나 정기를 빼앗아 먹는 여우”,
“인간이 되기 위하여 인간의 간(肝)을 빼 먹는 여우”,
“아주 교활하고 지능적이며 속이기 잘하는 간사한 사람 또는 여자” 등으로 인식을 하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그 동안에 보아왔던 전래동화나 소설, 영화 같은 대중매체에서
구미호 또는 여우의 이미지를
위에 열거한 것처럼 묘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에 개봉되었던 영화 “구미호”의 시리즈가 그렇고
근래에 개봉이 되었던 “구미호외전” 또한
현대적으로 그린 것일 뿐 이러한 도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온 대표적인 동물이 까마귀와 여우이다.

까마귀는 최근 중국의 역사찬탈음모인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삼족오가 고구려의 상징물처럼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우 특히 구미호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하다.

고대사로 올라가다보면
까마귀와 여우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하고 가장 닮은 동물이며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되어있다.

고구려 벽화에도 나오고
삼족오로 그려지는 까마귀는
모든 짐승들이 어미가 새끼를 기르기 위해 먹이를 구해주지만
까마귀는 어미가 늙고 힘이 없을 때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반포조(反哺鳥)로
천손민족으로서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하고 맞아 떨어지는 데에 기인한다.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며 상서로움을 나타낸다"

여우 또한 죽을 때 자기가 왔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죽는다는 즉 수구(首丘)를 하기때문에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사는 동물이라 생각을 하여
신령스럽게 여겨 온 것이다.

허신(許愼)의 <설문(說文)>에는
“여우에게는 세 가지 덕(德)이 있는데
색깔이 중화(中和)인 점과
앞은 작고 뒤는 큰 것이 그 것이다.
죽을 때 수구(首丘)를 한다.”라고 하여
여우를 긍정적인 이미지의 동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우 특히 구미호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는
우리의 역사말살과 민족의 혼을 빼앗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육조(六朝)시대에
이라(李邏)가 주해한 천자문(千字文)에서는
“주벌은탕(周伐殷湯)”을 설명하면서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왕의 부인인 달기(妲己)를
구미호로 비유하고 있으며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도
달기(妲己)를 구미호정(九尾狐精)으로
묘사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즉 나라를 망하게 한 요녀라는 것이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왕의 부인이었던 달기는
원래 동이족(東夷族)이었으며
은나라 역시 우리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우리 동이족이 건설한 나라였으며  

달기는 주왕이 동이족에 대한 잔혹한 통치와 같은
종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대하여
줄곧 반대를 하였으나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건국하면서
은나라의 정통성과 동이족을 말살하려 했던 것에서

달기가 구미호로 바뀌게 된 것이며,
주나라 왕실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동이귀주(東夷歸周, 동이(東夷)가 주(周)에 귀착(歸着)되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동이의 역사와 문화를 깎아 내리기 위해
후대에 폄하하고 왜곡하여 쓴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미호가 갖고 있던 원래의 모습과 본뜻은 무엇이었을까?

단군조선의 제2대 단군이었던 부루(夫婁) 단군 시절에
<규원사화 단군기>에 구미호와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

“이 때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는데,
털은 밝고 희고 꼬리가 아홉 개가 달린 짐승이
서책(書冊)을 입에 물고 상서(祥瑞)함을 드러내는지라,

이에 고시씨에게 상을 내리고
나라 안에 영을 내려 음악을 연주하게 하여 매우 즐기며,
또한 ‘조천무(朝天舞)’를 지었다.
(時有, 神獸出於靑丘, 白毛九尾, 銜書作瑞,
乃賞高矢氏, 令國中奏樂而致歡, 又作朝天之舞.)”라고 되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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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에서 발굴된 진.한시대의 전각화. 왼쪽에 삼족오 오른쪽에 구미호가 보임>

제17대 여을(余乙) 단군 시절에도

“태백산(太白山)의 남쪽에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는데,
꼬리는 아홉 개이며
밝고 흰 털을 지녔으며
흡사 이리 같았으나 사물을 해치지는 않았다.
이 해에 제후들을 크게 모으고
진번후(眞番侯)에게 상을 주었다.
(有異獸出于太白之陽, 九尾白毛,
似狼而不害物. 是年, 大會諸侯, 賞眞番侯.)”라고 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지리서로 알려진 <산해경>의 <대황동경>에는

“청구국(靑丘國)에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九尾狐)가 있다.”라고 되어 있으며
곽박의 注(주)에는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며 상서로움을 나타낸다.”라고 하였다.

<예문유취(藝文類聚)>에서도
“<서응도(瑞應圖)>에이르기를
육합(六合, 하늘과 땅과 동서남북)이 하나로 되면 구미호가 나타난다.”라고 되어 있으며

<백호통(白虎通>에도
“임금의 덕이 지극하면
새나 짐승에까지 미치게 되며 구미호가 출현한다.

꼬리(尾)가 아홉(九)라는 것은
마땅히 자손의 번식이 후대에 성대하게 된다.”라고 하여
위 규원사화의 기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부루단군의 제후 승인이 구미호 등장으로 대체

이렇듯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매우 신령스러운 동물이며

구미호가 나타나면
임금께서 친히 큰 상을 내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연회를 열어
태평성대를 경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부루 단군 시절에
구미호의 출현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우(夏禹)이다.

우(禹)는 홍수를 다스리고
하(夏)나라를 건국하였으며
천하를 9주(九州)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루 단군과 우(禹)와의 관계에 대하여
<규원사화 단군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보다 앞서 부루가 물과 땅을 모두 안정시키고 나니,
하우(夏禹)가 마침 당요(唐堯) 9년의 홍수를 다스리기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모두 도산(塗山, 지금의 양자강 근처)에 모였다.

부루 역시 명을 받들고 가서 함께 모이며
신지로 하여금 보옥 및 활과 화살을 지니고 따르게 하니,
치우헌원대전 이후
두 나라가 처음으로 옥과 비단을 가지고
서로 만난 것으로서,

가히 동방회맹(東方會盟)의 시초라고 할 만하다.”라고 하여
부루단군이 태자시절
우임금에게 치수의 법을 알려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것이 전도되어
한(漢)시대의 조엽(趙曄)이 편찬한
<오월춘추 월왕무여외전 吳越春秋 越王無余外傳>에서

“우(禹)가 나이 30이 되도록 장가를 못 들어
도산(塗山)에 이르러 때가 저물고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구미호가 나타나서 우가 장가를 가게 될 징조라 말하고
구미호의 색깔이 흰 것은 우의 옷을 뜻하고
아홉 개의 꼬리는 우가 왕이 될 증거다라고 하였다.”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구미호는
부루태자를 의미하며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홍수를 다스리는 치수법을 배우는 것이며

장가를 가고 왕이 된다는 것은
부루태자의 승인을 얻어
제후국의 나라를 통치하는 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위의 <오월춘추>는 주객을 전도시켜 놓은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미호는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이며
제왕의 덕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또한 책을 물고 나타났다는 것은
위 전각화에서 보듯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원사화 단군기>에서
청구(靑丘)에 구미호가 나타난 것은

청구지역 즉 지금의 산동성 인근 유역이
단군조선의 강역임을 밝혀주고 있다.

이를 <산해경>에서도
똑같이 청구국에
구미호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어 신뢰감을 더하고 있다.

삼족오와 구미호는 태평성대 갈구하는 우리 문화의 원형

<중국신화대사전>을 쓴 원가(袁珂)는

“한나라 시대의 석각화상 및 전각화를 고찰해보면
항상 구미호와 백토, 두꺼비와 삼족오가
서왕모의 곁에 나란히 있는 것은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후대의 사방신수(四方神獸)는
위 구미호와 백토, 두꺼비 그리고 삼족오가 변하여 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즉 구미호는 청룡으로
삼족오는 주작으로
백토는 백호로
두꺼비는 현무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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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도 하나인 청룡의 모습 - 구미호가 변하여 청룡이 된 것이라 함>

필자는 이전의 칼럼 중

“요순의 성인정치와 단군조선의 순방지치(淳厖之治)”을 통하여
중국의 요순시대는 태평성대가 아닌 허구이며
우리 단군조선의 순방지치를 흉내낸 것에 불과함을 밝힌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손민족인 우리 민족은

이미 단군 이전 시기부터 동아시아를 지배해 왔고
단군조선에 들어서도
찬란한 업적과 문화를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단군왕검의 뒤를 이은 부루단군 또한
세계 공통으로 보이는 홍수설화시대에 태어나
선진적인 치수법을 우에게 전해주었으며

홍수가 다스려지고 난 뒤 태평성대가 거듭되니
구미호가 책을 물고 나타나
상서로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삼족오와 더불어 구미호는
우리 문화의 원형인 것이다.

비록 왜곡이 되고
그 원형을 대부분 간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 시대에,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놀이는

그 옛날에 누렸던 우리의 태평성대를 갈구하며
그 시대로 돌아가려는 복본(復本)의 의지에서 발현된
민족적 잠재 욕구의 표현이 아닌가 한다.

우리 시대에도 구미호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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