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광우
2013/12/12(목)
조회: 1164
신라 비단 역사적 연구  

 

경북 상주의 이광우입니다.

한동안 이곳을 방문하지 못하였다가 한해를 정리하면서 이곳를 방문하여 글을 올립니다.

본인은 비단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비단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대와 현대의 역사는 역사학자도 완벽하게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자 자신들도 서로 결론을 내지 못하는 사항을 우리 일반인에게 교육을 하면서 강요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해서는 진정 의문이 많이 있습니다.

제발 한반도에 비단이 있었다는 삼국사기 이외의 자료를 알려주세요. 또한 한반도에 신라가 있었다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이중재 선생의 의견에 동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의 내가 배운 사항(잘못된 지식인지는 모르지만????)이 달라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좋은 결실이 있기를 기우너하면서 모든 분의 행복과 행운을 기우너합니다.

 

경북 상주에서  이광우

 


 

 

 반갑습니다.

 

  2013년 한 해, 책을 내 볼 요량으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 '동이는 천문학자' 제 1권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광우 선생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신라와 비단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이 제목 '웅상', '웅상과 부상'편에 실려져 있습니다. 다소 긴 글이지만 참고하십시요.

그리고 요약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한民族의 시원이 마고(麻姑)이니까 마고(麻姑)시대에 이미 베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神도 사람이고 보면 옷을 입어야 하니까 삼베를 재배해서 옷감을 지어 입었다고 봅니다. 1만 2천년 전 마고시대, 즉 神과 인간이 함께 살았던 시대에 북극성의 이름이 베가(직녀성)입니다. '베가'는 마고시대의 언어입니다. 산스크리트(천축국)의 언어인데 '베짜는 전문가'  라는 뜻입니다. '옥스포드 산스크리트 잉글리쉬'사전에 그 말이 실려있습니다.

 

 

 마고(麻姑)와 직녀(織女)

 

 기원전 12,000년 경에는 직녀성(織女星)이 북극성이었다. 그리고 생명의 원천인 인류시조 마고(麻姑)는 직녀성(織女星)에 있었다. 마고(麻姑)와 직녀(織女)의 천문학적 연관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과거 북극성과 그 위치를 살펴보면 기원전 1,500년부터 기원후 500년 사이 북극성은 '코카브'였으며, 기원전 2,500년경에는 '투반'이었고 다시 기원전 12,000년 경에는 '직녀성'이 북극성이었다." (위키백과)

 직녀성(織女星)은 천문학 적으로 동이족(東夷族)과 관계가 깊은 별이며 산스크리트 語이다. 베가는 '삼베를 짜는 집안'이라는 뜻이다. 직녀(織女)는 '삼베짜는 여자, 베틀을 돌리는 여자' 마고(麻姑)는 '삼베 여인' 마(麻)는 '삼마'라고 하는데 삼도 마도 같은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베는 훗날 한자어로 포(布)가 된다.

 *[M_ve.jpg. 織 직] M_ve.jpg me.jpg 다. M_베.jpg ve.
직물(織物). 옷깜, 옷 깜을 짜다.
  
<조선 고어 실담어 사전 280쪽>

 *[까. 가 家] 집. M_a.jpg M_gha.jpg gha: house, dwelling place. abode.
실담어 '까M_빙.GIF' 전문가(專門家)란 뜻을 한자(漢字)로 음역하여 <가 家>라한 것이다.
   <조선 고어 실담어 사전 12쪽>

 천구의 북극성은 약 25,800년을 주기로 세차운동(歲差運動)을 하기 때문에 북극성의 위치는 점점 주변의 다른 별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작은곰자리의 '폴라리스'가 북극성이다. 이 북극성은 앞으로 1,000년 정도는 지구의 북극에 가까운 밝은 별로서 계속 있게 될 것이지만 점차 북극에서 떠나게 되고 1만 3,500년 후에는 거문고자리(Lyra)의 제일 밝은 별인 직녀성(織女星 . Vega)이 북극성이 될 것이다.

 마고는 삼신이라하고 마고삼신께서 태어나는 아기의 생명을 점지해주시는 것을 몽골리안 반점이라고 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엉덩이에 멍자국이 있으면 마고삼신의 증표인 것이다. 마고는 한民族에게 하늘의 도장을 찍어준 것이다. 이것이 천부인(天符印)이 아니겠는가?

출처 : 동이는 천문학자

 

 

 

부도지를 쓴 박제상은 신라 사람입니다. 한(桓)民族의 정통성을 신라가 계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신라는 위대한 나라입니다. 新羅는 '실라'를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실은 산스크리트 語로 우리말 실과 같은 뜻입니다. 

 태초에 인류가 번성하던 시기에 지구의 기온은 매우 따뜻했습니다. 그러므로 초기 인류는 옷을 입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지배하던 왕족, 귀족들은 옷을 입고 지냈습니다.

아래 그림은 흑피옥 유물입니다. 내몽골 우란찰포 지역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2만여 점의 유물 가운데 유일하게 옷을 입은 사람은 딱 한 명 뿐입니다. 바로 원시 인류의 지도자로 보이는 한 사람입니다.   

  

흑피옥 유물을 남긴 유적에서 유일하게 옷을 입은 사람, 머리에 새 장식이 있다. 제사장으로 보인다.  

 

  


 

 

 

1만 2천 년 전에 그들이 살았던 내몽골은 옷을 입지 않고 살 수 있는 무더운 지역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시베리아에 화산 활동이 심해서 온실효과가 극대화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최고의 명당은 한반도와 황해였습니다. 지금 발해만이 된 곳은 과거에 육지였습니다. 황해바다 전체가 육지였으며 중국대륙과 한반도는 붙어 있었습니다.

발해라는 이름은 그냥 생긴 이름이 아니며 산스크리트입니다.

 발해는 원래 '뻘밭'을 뜻하는 싯담어이다. 동국정운에 기록한 발(渤)자의 정확한 발음은 '뻘'이다. 즉, 갯뻘을 말한다. 또한 싯담어 사전에는 대평원의 뜻도 있다.   

 * 발(渤)[M_발.jpg] 동국정운 2:29
 * va-ra 산스크리트 : 뻘, 갯벌, 안개 자욱할.
(강상원, 漢字는 東夷族 文字 註釋 .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 193쪽) 

 va-ra(빠라)는 바다라는 뜻이다. 안개가 자욱한 뻘밭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해변을 말하며 벌(伐)이라는 명사로 사용될 때 평야, 대평원의 뜻도 된다. (비교 : 황산벌, 서라벌, 셔벌 등)

 몽골지역이 점차로 추워지면서 東으로 이주해 온 민족은 황해대평원에 정착하여 환웅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곳은 뽕나무의 원산지입니다. 우리 민족은 아무리 늦어도 8천 년 전에 이미 뽕나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아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이곳이 비단의 고향입니다. 단군시대에 와서는 누에치기가 완전히 자리잡아 백성들에게 누에치기를 권장했다고 부도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모든 백성이 하얀 비단옷을 입고 살았으므로 단군조선의 제후국 중에 '백민국'이라는 나라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사마천 사기 봉선서에 " 선인들과 장생불사의 약이 모두 거기에 있으며, 산 위의 물체, 새, 짐승 등의 색깔은 모두 흰색이며, 궁전은 모두 황금과 백은(白銀)으로 건축하였다. " 라고한 것은 중원을 광명으로 다스리던 배달국을 보고 한 말입니다. 물론 사마천은 그 역사를 몰랐고 그냥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고 전해들은 바를 기록으로 남겼던 것입니다.  

 신라는 비단을 세계화 하는데 공헌하였지 신라 자체가 그 종주국은 아닙니다. 비단의 종주국은 배달 나라입니다.


  [인용문] 


 

  사마 천(司馬 遷) /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自威宣燕昭, 使人入海, 求蓬萊方丈瀛州. 此三神山者, 其傳在渤海中, 去人不遠, 患且至, 則船風引而去. 盖嘗有至者 諸僊人及不死之藥皆在焉. 其物禽獸盡白而黃金銀爲宮闕. 未至望之如雲, 及到三神山反居水下. 臨之風輒引去, 終莫能至云. 世主莫不甘心焉. 及至秦始皇幷天下, 至海上, 則方士言之不可勝數. 始皇自以爲至海上而恐不及矣, 使人乃齎童男女入海求之. 船交海中, 皆以風爲解, 曰未能至, 望見之焉. 其明年, 始皇復游海上, 至琅邪, 過恒山, 從上黨歸. 後三年, 游碣石, 考人海方士, 從上郡歸. 後五年, 始皇南至湘山, 遂登會稽, 並海上, 冀遇海中三神山之奇藥. 不得, 還至沙丘崩.

 

 제나라의 위왕과 선왕, 연나라의 소왕(昭王) 이래로 사람을 바다로 파견하여 봉래, 방장, 영주(蓬萊, 方丈, 瀛洲)를 찾도록 하는 일이 잦아졌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삼신산(三神山)은 발해(渤海) 중에 있어 그 길이 멀지 않았으나, 선인(仙人)들은 배가 도착하는 것을 걱정하여 곧 바람을 일으켜 배를 멀리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미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선인들과 장생불사의 약이 모두 거기에 있으며, 산 위의 물체, 새, 짐승 등의 색깔은 모두 흰색이며, 궁전은 모두 황금과 백은(白銀)으로 건축하였다고 전한다.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않았을 때 멀리서 바다라 보면, 삼신산은 천상의 백운과 같으며, 거기에 도달하여 보면 삼신산은 오히려 수면 아래에 처해 있는 듯하다. 배가 막 다다르려고 하면 바람이 배를 밀쳐내어 시종 거기에 도달할 수 없었다. 속세의 제왕 중 그곳을 흠모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 방사들이 해상 신선 전설에 관하여 말하는 횟수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진 시황은 친히 해상으로 나아갔다가 삼신산에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워,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해상으로 나아가 이 삼신산을 찾도록 사람들을 파견하였다. 배가 해상에서 돌아와서 바람을 만나 도달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서, 비록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삼신산을 확실히 보았다고 말하였다.

 2년째, 진 시황은 다시 해상을 순유하며 낭야산(琅邪山)에 도달하고, 항산(恒山)을 거쳐 상당(上党)으로부터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5년 후, 진 시황은 남쪽으로는 상산(湘山)까지 순유하고, 회계산(會稽山)에 올라 해상으로 가서 삼신산의 장생불사약을 얻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얻지 못하고 귀경하는 도중에 사구(沙丘)에서 죽었다. (출판사 : 까치, p.192-193)

 

 


  갈홍(葛洪) / 신선전(神仙傳)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서 발췌한 상전벽해(桑田碧海) 

 

 " 麻姑 謂王方平曰 自接待以來 見東海三變爲桑田 向到蓬萊 水乃淺於往者略半也. 豈復爲陵乎"

 " 王方平 曰 東海 行復揚塵耳. "

 " 마고(麻姑)가 왕방평(王方平)에게 말했다. 곁에서 모신 이래 저는 동해가 세번이나 뽕나무밭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봉래(蓬萊)에 갔더니 바다가 다시 얕아져서 이전의 반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또 언덕이 되려는 것일까요? "

 " 왕방평이 대답했다. 동해가 다시 흙 먼지를 일으킬 뿐이네."

 

  [인용문 끝]

 


 갈홍(葛洪)은 동진(東晉)시대의 도가(道家)이며 호는 포박자(抱朴子)이다. 신선의 도를 닦으면 천지와 수명을 같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저서는 포박자(抱朴子, 내편 20권, 외편 20권), 신선전(神仙傳, 10권) 등이 있다. 

 갈홍(葛洪, 283~343)이 살았던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신선도(神仙道)와 연단(鍊丹) . 태식(胎息) . 방중술(房中術)등을 주장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도교(道敎)를 믿지 않고 오히려 그 폐단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갈홍(葛洪, 283~343)이 살았던 시기는 도교(道敎)를 숭상하는 사람이 불교(佛敎)보다 더 많았던 시대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고구려 신라 유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풍납토성 경당지구, 경주 기린총(천마총), 기타 적석목곽분 등에서 다량의 운모(雲母)가 발견되는 것은 도교(道敎)와 관련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그 것이 불교유적이라고 주장한다. 

 운모(雲母)는 포박자(抱朴子) 내편 제11 선약(仙藥) 편에서 상약(上藥)으로 분류하고 있다.

 "운모에는 5종류가 있으나 사람들은 그것을 잘 분별하지 못한다. 5색을 두루 갖추면서도 청색이 많은 것을 운영(雲英)이라 하는데, 이는 봄에 복용해야 한다. 5색을 두루 갖추면서도 적색이 많은 것을 운주(雲珠)라 하니, 이는 여름에 복용한다. 5색을 두루 갖추면서도 백색이 많은 것을 운액(雲液)이라 하며 이는 가을에 복용한다. 5색을 두루 갖추면서도 흑색이 많은 것을 운모(雲母)라 하니 이는 겨울에 복용한다. 청색과 황색이 도는 것은 운사(雲沙)라 하며 이는 초여름에 복용한다. 색깔이 아주 흰 것은 인석(인<麟에서 鹿 대신 石>石)이라 한다. 운모를 적절한 계절에 제대로 만들어 "1년을 복용하면 온갖 병이 물러나며, 3년을 복용하면 늙은이도 어린아이처럼 돌아오며, 5년 동안 (복용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능히 귀신도 부리게 되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옷이 젖지 않고, 가시밭을 걸어도 피부가 상하지 않으며, 선인(仙人.신선)을 만날 수 있으며ㆍㆍㆍ10년을 복용하면ㆍㆍㆍ자연(自然)을 다스린다" (번역 : 연합뉴스 김태식)

 진 시황이 도사(道師)의 말만 듣고 수은을 복용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당시 도교(道敎)는 황제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위대한 사상이었다.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내용이 실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럼 이 이야기의 비밀을 더 파헤쳐 보기로 한다.


 봉선서(封禪書)에 기록하기를 발해(渤海)는 삼신산이 있는 곳이라 하였고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등 세개의 산이 있는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신선전(神仙傳)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인하여 봉래(蓬萊)가 물에 잠겼다고 말한다.

 그렇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것인데, 바로 발해(渤海)가 수몰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상(扶桑)이 있는 곳은, 발해(渤海)의 해중(海中)이고 그 해중(海中)에 삼신산(三神山)이 있으며 삼신산(三神山)은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을 일컫는 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사마천은 삼신산(三神山)은 발해(渤海) 중에 있어 그 길이 멀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선인(仙人)들이 바람을 일으켜 배를 멀리 보냈다고 하였다. 이것은 십주기(十州記)에서 기록한 " 물살이 크고 거칠며 무서운 파도가 친다. "한 것과 일치한다. 

 발해는 원래 '뻘밭'을 뜻하는 싯담어이다. 동국정운에 기록한 발(渤)자의 정확한 발음은 '뻘'이다. 즉, 갯뻘을 말한다. 또한 싯담어 사전에는 대평원의 뜻도 있다.

 * 발(渤)[M_발.jpg] 동국정운 2:29
 * va-ra 산스크리트 : 뻘, 갯벌, 안개 자욱할.
(강상원, 漢字는 東夷族 文字 註釋 .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 193쪽) 

 va-ra(빠라)는 바다라는 뜻이다. 안개가 자욱한 뻘밭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해변을 말하며 벌(伐)이라는 명사로 사용될 때 평야, 대평원의 뜻도 된다. (비교 : 황산벌, 서라벌, 셔벌 등) 

 박달이라 하는 것도 발해와 같은 뜻이다. 산스크리트 밝,박,발(渤)은 va-ra : 바다, 갯뻘의 뜻이고, 달(dhar)은 땅(따.地)을 의미한다. 발해(渤海)의 海는 땅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나 나중에 수몰되어 바다가 되었으므로 발해(渤海)라 하였다.

 흔히, 배달(倍達)을 밝달이라 하고 박달이라고도 하는데, 지명을 말할 때는 발해(渤海)라 하고, 민족을 말할 때는 배달(倍達)이라 한다. 박달나무는 배달(倍達)을 상징하는 나무를 말하며 이를 웅상(雄常)이라 한다.

 배달(倍達)은 산스크리트 pyaina-tal(뻬야이나 따) 빼여나게 태어난, (천부적)하늘이 내린, 초월적인의 뜻이 있고, veda-artha(베다 아르 따), "지혜에 통철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강상원, 漢字는 東夷族 文字 註釋 . 한자는 동이족 문자 주석 190쪽) 

 발해의 원래 뜻이 밝혀진 만큼 고대의 기록들에서 숨겨진 사실들을 잘 해석하면 잃어버린 발해의 강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발해(渤海)는, 넓은 평원에 있었던 대동이(大東夷)의 거주지 였다가 약 5천 년 전부터 서서히 뻘로 변해갔으며, 그래도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 등은 높은 지대였으므로 육지가 섬으로 변할 때까지 별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후 육지에서 섬으로 변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신비한 신선들의 세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훗날 단군께서 이곳에 도읍을 정했으나 곧 대홍수를 맞게 되었다. 발해가 결정적으로 물에 잠기게 된 것은 단군조선이 개국한지 37년(甲辰年)이 되던 해에 일어났던 대홍수 때문이었다. 

   

 

 

십주기(十洲記) / 동방삭(東方朔) 

 

 " ... 扶桑在東海之東岸,岸直,陸行登岸一萬里,東復有碧海。海廣狹浩污,與東海等。水既不鹹苦,正作碧色,甘香味美。扶桑在碧海之中,地方万里,上有太帝宮,太真東王父所治處。地多林木,葉皆如桑。又有椹樹,長數千丈,大二千余圍。樹兩兩同根偶生,更相依倚,是以名為扶桑。仙人食其椹,一体皆作金光色,飛翔空立。其樹雖大,其葉椹故如中夏之桑也。但椹稀而葉赤,九千歲一生實耳。"

 

 " 부상은 동쪽 바다 앞 언덕에 우뚝서 있는 나무이다. 육지에서 그 기슭에 오르르면 일 만리를 가야 한다. 동해와 같이 동쪽에서 물이 들어왔다 나가는데 물살이 크고 거칠며 무서운 파도가 친다. 물은 원래부터 짜거나 쓰지 않고, 푸른 정색에 맛이 감미롭다. 부상은 동해의 바다 가운데 있으며 그 넓이가 만리이다. 위에는 태제궁이 있고 태진동왕부가 다스리는 곳이 있다. 그 땅의 숲에는 부상나무가 많다. 잎은 뽕나무와 비슷하고 길이와 그 수가 천장(千丈 : 1丈은 10尺)이며, 둘레가 스무 아름인데 양쪽 모두에 뿌리가 함께 뻗어나 있고 서로 뿌리에 의지하고 있다. 부상(扶桑)이라고 하며 선인들이 '오디'를 먹고 산다. 모두 금빛으로 치장하고 공중을 날아 다닌다. 비록 나무가 크기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여름이면 잎과 '오디'가 영근다. 오디와 잎이 붉은색으로 열리면 구 천 년에 한번 열린 것이다. "


  [인용문 끝]



 곽박은 산해경 주에서 부상(扶桑)은 나무라고 했다. 그리고 신목(神木), 부목(扶木), 약목(若木)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신(神)의 나무이다. 부상(扶桑)은 고대 신화에서 대표적 신목(神木)으로 보는데 고구려 벽화에도 부상(扶桑)이 그려져 있다. 부상(扶桑)은 해가 뜨는 곳에 있기 때문에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에게는 영생(永生)과 불사(不死)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구려 부상수

 

 이러한 고대의 이야기를 현대인들은 믿지 않으며 황당무계(荒唐無稽)하다고 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학문하는 입장에서면 황당무계(荒唐無稽)란 말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겸허한 마음으로 배움에 임해야 한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동방삭(東方朔)의 저술서를 비롯하여 산해경 등이 모두 중국 지괴소설(志怪小說)의 원조라고 폄훼하고, 진(晉)나라 이후의 위작(僞作)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태도이다. 모르는 것은 의문으로 남겨두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전하고 자기의 군설을 말하지 않는 것이 학자의 도리일 것이다.

 대개 서진(西晉:265∼316)과 동진(東晉:317∼419) 때 등장한 저서들 중에는 황당한 것이 많지만, 그것은 막 시대가 바뀌어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관이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원대륙에서 단군조선을 이끌어 왔던 동이(東夷)의 세력이 북쪽으로 조금 밀려나면서 단군성조께서 전하셨던 신교의 뿌리가 흔들리고 유교, 불교, 선교의 가치관이 정립되던 시기였다. 단군조선은 선인(仙人)이 다스리는 나라 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 시기에는 신선과 방사의 이야기가 넘쳐났던 것이다. 그러한 때에 신선과 방사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기록으로 남길 때, 그 사실들이 너무 오래전 이야기이므로 정확하게 서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대에 글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수도(修道)를 하였거나 왕족, 귀족 출신으로 황당무계한 글을 쓸 만큼 수준이 낮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한 것인데 당시 학자들의 합리적 사고와 어휘 부족으로 인한 기록상의 한계 때문에 책 내용이 이상해 진 것이라고 본다. 동이족 싯담어와 원어민의 사투리, 그리고 잦은 전쟁과 수십 국으로 분할 된 나라에서 서로 말들이 뒤섞여 버렸기 때문에 그런 와중에 세월이 많이 흐르고, 더러는 지워지고, 기억마져 희미해져, 선조나 스승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상(扶桑)이 해가 뜨는 동방에 있다고 한 것은 동해 쪽 육지에 뽕나무가 무성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1만 년 전 서해바다는 육지였기 때문이다. 십주기(十洲記)에서 육지였던 곳이 점점 수몰되어 바다로 변해가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부상은 뽕나무이다. 식용이나 약재로 쓰는 뽕나무는 두가지가 있다. 그것은 검은 오디가 열리는 일반 뽕나무와 붉은 오디가 열리는 산뽕나무(구지뽕, 뫼뽕)를 말하는데 특히 산뽕나무 잎을 먹고 자란 누에에서 뽑은 실을 으뜸으로 친다. 

 

M_10352.jpg      M_20352.jpg

뽕 오디                                                               구지뽕 오디

 

 

 십주기(十洲記)에 동해 가운데 그 넓이가 만 리나 되는 신선들의 나라가 있었다고 기록하였고, 신선들은 오디를 먹고 산다고 하였는데 내용상으로 보아 검은 열매가 열리는 뽕나무와 붉은 열매가 열리는 산뽕나무를 말한 것이다. 특히 붉은색 오디가 열리는 것을 구천세일생실이(九千歲一生實耳)라 한 것은 구지뽕을 기록한 것이며 이것은 뽕나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아주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만 구지뽕이 잘자라는 것도 십주기(十洲記)의 기록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지금은 물속에 잠겨버린 발해가 예전에는 만 리나 되는 육지였고, 그 육지에서 자란 뽕나무를 부상이라 하고, 뽕나무의 원조 고향인 만큼 엄청나게 잘 자라서 숲에는 부상나무가 많고, 그 높이는 천장이나 되고, 둘레가 스무 아름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런 오래된 뽕나무에서 상황(桑黃)을 채취하면 명약 중의 명약이 되는 것이다. 상황(桑黃)은 뽕나무에서 자라는 노란버섯'인데 항암 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우수한 약재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 / 단군기(檀君紀) 발췌

 

" ... 御國三十餘年, 正値洪水, 浩波溜天, 懷襄遼滿之(時)[野], 浿水漲溢平壤沈潛. 乃遣四子, 遍相土地之宜, 占居阿斯達下唐莊之野, 今文化.九月山下, 有莊莊坪, 卽其地也. "

" ...나라를 다스린지 30여 년만에 홍수를 만났는데, 어마어마한 파도는 하늘까지 치솟아 요만(遼滿)의 들녘을 품으며 올라서니 패수의 물은 불어 넘치고 평양은 물에 잠겨 버렸다. 이에 네 아들을 보내 마땅한 땅을 두루 살피게 하고는 아사달(阿斯達) 아래 당장(唐莊)의 들녘을 차지하여 거처케 하였는데, 지금의 문화(文化) 구월산(九月山) 아래 장장평(莊莊坪)이 있으니 바로 그 땅이다. "

 



 제왕년대력(帝王年代歷) / 단군기(檀君紀) 발췌


 " 甲辰, 移都于唐莊京 命肅愼氏 任征伐 鳳凰止于庭 今文化縣.莊莊坪也. 時洪水汎濫, 沈沒平壤, 使王子登阿斯達山而定之 "

 

 " 갑진년에 도읍을 당장경으로 옮겼다. 숙신씨에게 명하여 정벌의 일을 일임하였다. 봉황이 뜰에 머물렀다. 지금의 문화현 장장평을 말한다. 이 때 홍수가 범람하여 평양이 침몰되었기에, 왕자를 시켜 아사달산에 올라 지세를 살펴보고 새로운 거처를 정하게 한 것이다. "

 이때는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지 37년(甲辰年)이었다.

 한 때 단국조선의 도읍지인 '평양(平壤)'은 지금의 요동반도 '대련(大連)'시 앞 바다에 있었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는 이곳이 바다가 아닌 대평원지대 였다. 그러므로 평양(平壤)이라한 것이다. 평양(平壤)이 차츰 물이 차올라서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지 36년(bc2297 갑진년)에 대홍수를 만나 수도인 평양(平壤)이 침수되었고, 그로부터 13년 후(bc2284 정사년)에 도읍을 당장경(唐莊京)으로 옮겼다는 기록이다. 

 제왕년대력(帝王年代歷)은 학자들이 위서라고 취급했지만 단군시대에 있었던 대홍수에 대해서 규원사화(揆園史話)보다도 더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12000년전~8000년전까지 해수면


 

 5000년전~현재까지 해수면



 발해(渤海)는 1만 2천 년전 육지였다가 북극의 빙하가 급격히 녹으면서 전세계 해수면이 상승하므로 서서히 물이 채워진 곳이다. 지금 황해의 평균 해수면은 약 70M(미터)이다. 그 옛날 해수면이 약 5천 년 동안 평균 70~80M(미터)가량 상승했으므로 발해만은 오랫동안 물에 잠기지 않았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발해만의 평균 수심은 18M(미터)이다. 섬 주위의 수면이 낮은 곳은 겨우 4M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저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황해가 형성되었다고 본다면 북극 빙하가 녹기 시작하여 세계 평균 수심이 80M(미터)까지 상승하여도 발해만은 대평원이었으며 바닷가에서 부상나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20M(미터)의 물이 차오르는 시기는 약 5천 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 시기는 신시(神市) 환웅시대 말기와 단군시대 개국초가 되는데, 온 천지가 뻘밭으로 서서히(약 500년 ~ 약 1,000년 사이) 변해갔으므로 그런 연유로 발해(渤海)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다시말해, 지금 요동반도 대련지구 앞바다는 환인 때 부터 환웅시대 까지 초목이 우거지고 먹거리가 풍부한 신천지 대평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평양(平壤)이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발해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는 지질학적 연구 결과가 있으므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관련 논문 :   한중센터  http://www.ckjorc.org/  .  yellow sea plai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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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해수면과 과거의 해수면 높이 그래프이다. 오차를 감안한다면 발해만이 물에 잠기는 것은 약 5천 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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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더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

 

 발해(渤海)의 동쪽에 대여(岱輿), 원교(員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라 하는 다섯개의 산이 있었는데 그곳은 모두 금(金)과 옥(玉)으로 된 집에서 살며 금수(禽獸)들은 모두 순백색이고, 옥과 구슬로 된 나무가 있고 그 아름다운 열매는 모두 맛이 좋아 먹으면 모두 불로불사(不老不死)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신선(神仙)과 성인(聖人)들에게 어느날 근심꺼리가 생겼는데 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평화롭게 지내던 산이 조수(潮水)와 파도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져 상제(上帝)께 이 일을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였으니, 상제(上帝)께서는 이를 보고 산이 서쪽 끝으로 흘러가서 신선(神仙)과 성인(聖人)들이 수재민이 될 것을 우려하여, 마침내 북쪽을 다스리는 신하 우강(禺疆)에게 명하여 일을 해결하게 했으나 우강(禺疆) 천재지변을 다스릴수 없어 끝내 대여(岱輿)와 원교(員嶠) 두 산은 북극(北極)으로 흘러가 대해(大海)에 가라앉았다는 내용이다. 
 

  열자 탕문편 (列子 湯問篇)



 渤海之東不知幾億萬里, 有大壑焉, 實惟無底之谷, 其下無底, 名曰歸墟. 八紘九野之水, 天漢之流, 莫不注之, 而無增無減焉. 其中有五山焉, 一曰岱輿, 二曰員嶠, 三曰方壺, 四曰瀛洲, 五曰蓬萊. 其山高下周旋三萬里, 其頂平處九千里. 山之中閒相去七萬里, 以爲鄰居焉. 其上臺觀皆金玉, 其上禽獸皆純縞. 珠玕之樹皆叢生, 華實皆有滋味, 食之皆不老不死. 所居之人皆仙聖之種, 一日一夕飛相往來者, 不可數焉. 而五山之根無所連箸, 常隨潮波上下往還, 不得蹔峙焉. 仙聖毒之, 訴之於帝. 帝恐流於西極, 失羣仙聖之居, 乃命禺疆使巨鼇十五擧首而戴之. 迭爲三番, 六萬歲一交焉. 五山始峙而不動. 而龍伯之國有大人, 擧足不盈數步而曁五山之所, 一釣而連六鼇, 合負而趣歸其國, 灼其骨以數焉. 於是岱輿員嶠二山流於北極, 沈於大海, 仙聖之播遷者巨億計. 帝憑怒, 侵減龍伯之國使阨, 侵小龍伯之民使短. 至伏羲神農時, 其國人猶數十丈.

 

 발해(渤海)의 동쪽 몇 억만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는 곳에 큰 계곡이 있다. 실로 끝이 없는 계곡으로 더 이상의 밑이 없어‘귀허(歸墟)’라고 한다. 팔굉(八紘) ․ 구야(九野)의 물이 은하수로 흐르는데 그 흐름이 멈추지 않고 증감(增減)이 없다. 그 가운데에 오산(五山)이 있는데 대여(岱輿)․원교(員嶠)․방호(方壺)․영주(瀛洲)․봉래(蓬萊)이다. 그 산의 높낮이는 두루 돌아 3만 리이고, 그 정상(頂上)의 편평한 곳은 9천리다. 산의 중간간의 거리는 7만 리로 이웃이 거주하고 있다. 그 위에 있는 집의 모습은 모두 금(金)과 옥(玉)으로 되어있으며, 그 곳의 금수(禽獸)들은 모두 순백색이다. 옥과 구슬로 된 나무가 모두 무리지어 살고, 그 아름다운 열매는 모두 맛이 좋아, 먹으면 모두 불로불사(不老不死)한다.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모두 신선(神仙)과 성인(聖人)들로서 하루 낮과 하루 저녁을 날아 서로 왕래하는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오산(五山)의 밑은 큰 대나무 통(箸)에 연결되어있는데 항상 조수(潮水)와 파도를 따라 상하(上下)로 왕복하고 돌아 잠시도 우뚝 솟아나지 않는다. 선성(仙聖)이 이것을 한(恨)하여 상제(上帝)께 호소하였다. 상제가 산이 서쪽 끝으로 흘러가서 선성(仙聖)의 무리가 거주할 곳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우강(禺疆)에게 명하여 거대한 자라 15마리로 하여금 머리를 들어 그것을 받치게 했다. 돌아 흐르기를 세 번 하니, 6만년에 한 번 교차한다. 오산(五山)은 처음에는 우뚝 솟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용백지국(龍伯之國)에 거인(大人)이 발을 들어서 몇 보 걷지도 않고 오산(五山)이 있는 곳에 이르러, 한 번의 낚시로 자라 다섯을 잡아서 모두 등에 지고 그 나라로 돌아가서, 점치는 용도로 자라의 뼈를 태웠다. 이에 대여(岱輿)와 원교(員嶠) 두 산은 북극(北極)으로 흘러가 대해(大海)에 가라앉았다. 선성(仙聖)이 흩어져 옮긴 자가 많아 억(億)을 헤아린다. 이에 상제가 크게 노하여 용백지국을 점점 협소하게 만들고 그 백성의 키를 작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복희씨와 신농씨의 시대에 이르러 그 나라의 사람들의 키가 오히려 수십 장이었다. (번역 : 인터넷 자료)

 

 지금 황해는 해수면이 낮아지는 간조(干潮)와 그 반대 현상인 만조(滿潮)의 높이차가 심한데 간조와 만조는 달의 인력이 지구에 미쳐 바닷물을 세게 끌어당겨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바닷가에서 바라보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해수면 높이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바닷물의 간만은 1주야(晝夜)에 2회 되풀이되는데, 만조와 간조의 높이차가 5m ~ 9m이며 세계적으로도 큰 편이다. 남해안은 2m 내외, 동해안은 0.3m 내외인 것을 보아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렇게 바닷물이 차 올라오는데 신선들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록의 숨은 진실들을 파헤쳐 본 결과가 예상외로 놀라웠다. 중국인들이 기록한 자기네 역사인 줄로만 알았던 황당무계한 지괴소설류의 사서들이, 사실은 모두 동이족의 실존했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신시본기(神市本紀)'에 봉래, 영주, 방장은 삼신산(三神山)을 말하는 것인데 사해의 제족들이 삼신산(三神山)에 제(祭)를 올리고 숭배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삼신은 곧 상제이니 상제가 머무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뒷장에서 서술한다.

 부상(扶桑)은 삼신산(三神山)에 무성하게 우뚝 솟은, 둘레가 스무 아름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나무인데 한民族이 숭배해 온 태양나무이며 봉래(蓬萊)의 연꽃과 함께 태목(太木)의 정기로 태어난 최초의 나무와 뿌리였다. 태초에 동방 태목으로부터 태어나고 길러지고 융성하였으니, 이것이 마고지나(麻姑之那) '종(種)의 기원'이다.   

 

 

 

신라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을 때 그 곳은 중국대륙이었습니다. 신라의 발생은 워낙 소국으로 생겨나서 그 기원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박 혁거세를 비롯하여 신라의 관직, 지명 이름, 설화 등이 산스크리트어와 동일 또는 유사한 것이 너무 많아 신라는 원래 천축강역에서 살던 유민이 감숙성, 섬서성 부근 秦나라 땅에 흩어져 살다가 일어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때는 고구려가 강성하던 시기 였는데 고구려땅 안에서 숨도 못 쉬는 소국으로 출발했습니다. 사실상 고구려나 마찬가지 였지만 그 정체성이 제사장(박 Vak : 산스크리트 제사장의 뜻)출신이므로 그리고 박혁거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기 때문에 고구려에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라의 국선제도나 고구려의 조의선인 제도는 원칙적으로 같은 동이족의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와 신라의 정체성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유독 박혁거세 집단은 소위 귀족의식이 강했으므로 고구려화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환인천제 때 부터 전해져온 천축불교의 맥은 온전히 박혁거세 집단에 의하여 이어져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찰들은 그 뿌리가 모두 신라에 닿아 있는 것으로 보아야합니다. 절에서 스님들이 불경을 외는 것은 모두 산스크리트 語인데 이것은 모두 신라인들에 의해 계승되어 온 것입니다. 

 신라의 강역은 최고 전성기때 지나대륙 동부와 한반도 전체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경주 고령 대구 등지의 유물은 신라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것입니다. 특히, 흉노족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라도 흉노와 유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후기 신라와 고려 때 한반도는 불교의 나라로 변모했습니다. 모두 신라인이 개척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륙에서 신라가 강성했어도 여전히 한반도는 불모지였으며 고구려의 후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연구는 많이 되어 있으나 현재 논문으로 작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괄적인 포인트만 설명하였습니다. 다음 기회에 논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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