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bc8937
2017/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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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 2017.01.30 11:00:47
고인돌은 그 역사가 1만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런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고인돌의 무려 70% 이상이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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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 2017.01.30 11:13:44


몽골제국을 이룩한 태무진은 다름아닌 고구려의 후손이었고 몽골의 유목민들과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고 하지요.
서양에 문명을 전해준 수메르 문명 역시 동이민족 역사의 일부였구요. 이렇듯 고대부터 광범위하게 활동해 온 동이민족,
그런데 현재의 중국대륙이나 중앙아시아에서는 구들장을 사용하는 온돌문화가 전혀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다.
고도의 과학 기술인 온돌문화는 오직 한반도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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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8937 2017.01.31 18:43:43

고인돌에서 발견된 유물중 유명한게 있지요. 비파형청동검,
그런데 비파형 청동검이 1만 년도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시기에 만들어졌을까요?

 본인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5~6천 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도 바위에 별자리를 새기는 등 상당히 높은 수준의 천문학 흔적이 발견 되는데요. 그것이 상고시대로부터 점점 발전한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중 이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상고시대는 엄청난 천문학적 지식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초능력을 발휘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주로 1만 2천 년전을 전후로해서 수수께끼 고대문명이 다 그런 류입니다. 그때는 환인천제께서 전 세계를 광명으로 다스렸습니다. 광명이란 햇빛일 수도 있지만 해를 능가하는 초능력적 氣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후 인간의 능력은 점점 퇴보하면서 고인돌 문화가 일어났습니다. 고인돌의 분포지역은 정확하게 단군시대 강역과 일치합니다. 즉, 고인돌 문화는 환웅 천황 배달국시대와 단군님금 단국시대까지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온돌문화도 그 시기와 일치합니다.

문제는 배달국과 단국 조선의 원형문화인데 그들은 곰을 숭배하는 민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민족이 홍산을 중심으로 살았을 때입니다. 그 최초의 시기는 유물로만 본다면 최고 9천 년전으로 올라갑니다만 전성기는 5천 년전이라고 봅니다. 이들을 다스리고자 나타난 지도자가 환웅천황입니다. 환웅천황은 천산(하늘나라)에서 파견 된 개척자라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김정양박사님께서 번역한 수메르 점토판에도 삼국유사와 똑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천산에서 선진문화를 전파하고 해빙기 이후 황폐해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비, 구름, 바람을 다스리는 초능력자 3천 명씩을 동서남으로 파견한 것입니다. 북쪽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었으므로 파견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 됩니다. ^^ 소설같은 이야기 지만 끝꺼지 읽어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천산에서 도를 닦은 도인이자 초능력자 였습니다. 그때 지구는 한 번 망하고 재부팅 된 것입니다. 지구는 이런 역사를 수백번 되풀이하며 지냈습니다.

역사도 지구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풀이 됩니다. 그것은 베다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텍스트에 기반하여 제가 주장한 것입니다.

 벼농사가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 피라미드, 스핑크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의 보리농사와 밀농사 시작시기, 터키 배불뚝이 언덕에 고대 거석유적 등의 공통점은 모두 1만 2천 년 전이라는 것입니다. 1만 2천 년 전이라는 년대는 빙하기가 끝났을 시기이고 지구는 그때 마치 종말이라도 맞은 것처럼 지진과 화산 홍수 지축변동 온난화 맘모스와 대형초식동물 대량멸종 등 끝없는 재앙이 2천 년 동안 되풀이 되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런 시기에는 초능력자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살아도 오래 못살고 얼어 죽거나 맹수의 먹이가 될 뿐이지요. 그런 총체적 난국에서 지구를 구한 분이 환인천제님이십니다. 아주 오래 전에 문명이 최고도로 발전했을 당시에 지구가 재부팅 될 것을 감지한 당시 사람들이 살아 남아서 지구를 재건할 목적으로 천부인을 물려가며 도맥을 전수한 것입니다.

결론하여 부도지의 기록에 의하면 환웅천황과 단군님금은 부도에서 파견된 사람이고 당시 부도는 천산과 곤륜산이 만나는 동쪽 끝, 지금의 감숙성이고 삼위산부근에 있었습니다. 단군은 이곳에서 6만 명의 황궁씨후예를 이끌고 지금의 요녕성 일대(삼신산)로 이동해 갔다고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 환웅씨는 3천 명, 단군은 6만 명을 데리고 동방을 개척하러 왔습니다. 한반도나 대륙 땅의 원주민은 오랜 세월 동안(빙하기를 지나는 동안) 자체적으로 문화를 발전시키며 살아왔지만 그들에게 병을 고쳐주고 삶의 풍요를 가져다줄 노동력이나 농사 천문학 등을 전수하는 무리가 나중에 합세한 것입니다. 웅족과 호족을 다스린 배달환국 커발환 환웅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를 압축하여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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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8937 2017.01.31 19:57:19

온돌의 철학적원리는

천(天)
인(人)
지(地)

입니다.
 
온돌과 천장 사이에는 천 인 지 사상이 도입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군시대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발상입니다. 단군님금께서 백성들이 겨울에 춥지 않게 살도록 환민족철학사상으로 만들어 보급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시에 문화와 과학적 지식이 뛰어났던 것이지요.

 하늘은 上, 사람은 中, 땅은 下라는 개념으로 지은 것입니다. 보통 '천지인' 이라 말하며 人을 맨뒤로 빼는데 이것은 환민족 철학사상이 아닙니다. 환민족철학사상은 천인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토인들은 온돌을 만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도지에 천부인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는데 '교경가잠갈도요'(한자생략)라 했습니다. 즉 농사 짓는 일과 누에를 쳐서 옷감을 지어 입는 일, 그리고 도자기 굽는 일을 백성들에게 3대 과제로 가르치고 보급했습니다.  이것이 천인지입니다. 그때는 모든 사상이 천인지 순서로 되어 있었습니다.

농사는 천문을 잘 살펴서 때를 잘 맞추어 씨뿌리고 거두어들이는 년중대사로 天에 해당합니다.

가잠은 누에를 쳐서 사람들이 번데기도 먹고 누에고치실로 옷감을 짜서 사람이 입도록하기 위한 것으로 人에 해당합니다.

도자기는 흙으로 빗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깁니다. 흙을 고르는 법, 치는 법, 불을 때는 방법, 소로를 만드는 법 모두가 땅에 관련 된 일입니다.

또 '경천애인지'가 무엇입니까 단군의 건국이념 중 하나이지요. 바로 천 인 지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온돌은 돌을 깔아 연결한 다음 그 위에다 흙으로 방바닥을 바르고 연기는 온돌 밑의 통로를 통해서 빠져 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불을 때면 온돌은 따뜻해지고 연기는 굴뚝으로 빠집니다.

한옥 한 채를 놓고 보면 지붕은 天사상을 도입했고 방안의 공간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온돌바닥은 지구, 땅을 표현한 것입니다. 온돌과 천장 사이에 사람이 거주하게 만든 것은 인(人)의 철학 사상이 적용된 것이고 벽을 흙으로 바른 것도 인간은 어머니(地)에서 태어나 땅(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온돌에 따뜻하게 불을 지피는 것은, 지구는 따뜻한 가운데 만물이 성장, 생성 한다는 자연 철학적인 요건을 이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온돌과 고인돌 문화는 단군조선의 강역과 일치한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온돌이 발견되지 않은 곳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후가 따뜻했던 것도 한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부도에서 이동해오니까 원주민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온둘을 발명하여 보급했을 것입니다.

 

 

 bc8937 2017.01.31 22:35:15

단군시대에는 사해의 백성들이 모여들어 조공을 했습니다. 조공이란 조선에 가서 공물을 바치고 조선의 특산물인 해인, 해삼, 해송을 구해서 돌아갔기 때문에 조선에 공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생긴 단어입니다. 그 내용은 부도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朝는 해가 돋는 것을 뜻하는 산스크리트(됴)이고 鮮은 물고기와 양을 뜻하는데 해양제족은 물고기를 바치고 산악제족은 양을 잡아서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산스크리트로 '까인(Khain)'이라고 하는데 K음이 묵음화 되어 '헌'이 되었습니다. '까인(Khain)'의 뜻은 께어난다는 뜻입니다. 어둠이 까지고 해가 솟는다는 뜻이 됴오헌입니다. 조선시대 때 셰죵대왕은 동국정운을 만들었는데 鮮을 헌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동국정운에 발음을 달았습니다. 헌==>이 선으로 바뀐 것입니다. 종합하여 됴오헌이 조선이 된 것이고 그 어원은 산스크리트이며 단군시대 때 조공무역에서 발전 된 국명입니다. 이에 사람을 위해 희생 된 생명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큰 강가에서 제사를 지낸 것이 해시이고 무역을 위해 넓은 청구의 들판에서 물물교역시를  열렀던 것이 조시입니다.

조빙(朝聘), 조정(朝廷), 조시(朝市), 조제(朝祭) 입조(入朝)라는 말이 단군시대를 그 기원으로 발생한 단어입니다. 약 5천 년 전에 전 세계를 따져 제대로 격식을 갖추고 건국이념이나 철학 사상 역사 과학 제천 등을 행했던 나라는 유일하게 단국 뿐이었습니다. 조선의 원래 이름은 단국입니다.

단국의 백성들 중 동해에 살았던 사람들은 고래 사냥을 했습니다. 해양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고래를 쫓아 북극해 까지 배를 타고 다녔습니다. 온돌에서 불과 연기가 지나가는 통로를 고래라고 하는데 이 명칭은 동해에서 고래잡이를 주로하던 백성들의 언어입니다. 그 온돌이 연해주와 캄차카반도까지 퍼졌으며 베링해에 붙어 있고 아메리카 본토 바로 앞에 있는 아막낙 섬까지도 퍼져나갔습니다. 온돌을 이용한 주체 세력은 아마도 고래잡이를 하던 단국의 백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온돌이 내륙 깊숙히 유행하지 않았던 까닭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고래잡이를 하던 해양족은 아메리카와 알래스카 북극해 에스키모까지 가는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대대로 전해졌고 나중에 고구려 유민과 발해유민 등 환민족이 아메리카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멕시코인의 족상 아즈텍, 마야 등은 우리 민족과 유전자가 똑 같습니다. 그들은 바로 태평양을 주무대로 고래를 잡던 해양족의 후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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