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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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직이는 국가 - 기마민족의 생리  

 


동쪽은 만주로부터 서쪽은 중앙아시아와 남러시아를 넘어 헝가리까지 뻗어 있는 유라시아 대초원의 유목민들은 양·소·말 등 목축에 종사하면서 평화롭게 살았다. 이들이 기원 전 1000년경부터 기마전사로 바뀐 것은 그 뒤 세계사의 전개에 크나 큰 영향을 끼쳤다. 기마전술은 그 뒤 약 3000년 동안 통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전투기와 전차가 등장하면서 기마전술의 효능이 종식되었으니 말이다.

 

소총이 보급되기 시작한 16~18세기까지 유라시아의 유목 기마민족은 농경도시국가에 대해서 항상 전술적으로 우위에 서 있었다.

평화롭게 살던 유목민들이 기마전사로 바뀌게 되는 동기를 준 것은 농업도시문명의 발달과 자극이었다. 5000년 전~4000년 전에 걸쳐 유라시아 대초원 남쪽 지방, 즉 지중해 연안·인도·중앙아시아·北중국에 걸쳐서 농업경제가 발전하고 도시문명이 성립되면서 청동제 무기를 중심으로 한 군사력이 증강되고, 금·은 보화가 축적되었다. 이런 재보(財寶)를 입수하기 위한 무역과 식민지 개척이 활발해졌다. 이런 변화는 평화롭게 무욕의 상태에서 살던 유목민들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이 물질적인 호기심과 욕망을 갖도록 만들었다. 유목민들은 도시문명의 물질문화 가운데, 특히 금은주옥(金銀珠玉)과 청동(靑銅) 무기 및 차마구(車馬具)를 탐내게 되었다.

유목민들은 물질적 욕망이 생겼지만 당장은 이런 물건들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인구도, 경제력도 압도적인 농경민족 국가에 비해 조직도, 무기도, 전술도 시원찮은 유목민들이 대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농경민족 국가에서는 차전(車戰)이 유행했다. 말이 이끄는 수레 모양의 전차를 타고 창과 활을 사용하는 차전은 4000~5000년 전에는 보병을 압도했다. 서기 전 1000년 무렵 지금의 南러시아, 카스피해 연안에서 말 재갈과 고삐가 발견되었다.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잡으면 말에 사람이 직접 탈 수 있고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기마전술이 등장하는 것이다. 기마전사는 길이 없는 산야를 달릴 수 있어 보병이나 말이 끄는 전차보다도 유리했다. 기원 전 700년 무렵 남러시아 스키타이 유목민 사이에서 등자-발걸이-가 발명되어 전사가 말을 타고 활을 쏠 수 있게 된다. 기동성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기마전술의 출현이야말로 유목민족의 기마민족화, 그 국가의 형성, 흉노-투르크-몽골계통 대제국의 출현, 아랍 이슬람 세력의 대팽창, 유럽민족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 몽골계 기마군단의 인도 정복(무갈제국), 북방 기마민족의 중국 정복, 한반도의 삼국시대 정립,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 등에 기본 동력과 계기가 되는 것이다. 기마전술의 발명은 핵무기 발견과 소유가 국제정세에 끼친 영향과 비슷하지만 핵무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넓고 깊고 오랜 일대변화를 인류사에 미친 것이다.

 

이 기마전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은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초원에 말을 맡겨 기르고 悠悠自適(유유자적)하는 생활을 보내게 되어 있어 생산에 신경 쓰지 않고 종일 말을 달리면서 기마전술을 익히고 원정을 떠날 수 있었다. 그들은 초야를 따라서 가축을 이끌고 이동하는 생활에 젖어 있었으므로 고향이나 주거지에 대한 미련 없이 언제라도 작전상 유리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신속 기동을 가능하게 했다. 유목민들은 또 「걸어다니는 통조림」인 가축을 이끌고 천막을 우차(牛車)에 싣고 다니면서 작전하기 좋은 곳에 배치하는 등 언제라도 진격과 퇴각이 가능한 사회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과 음식도 기동에 편리하게 되어 있어 바로 군장(軍裝)으로 쓰일 수 있었다. 동물과 자연을 벗삼아 혹한과 혹서 속에서 살아온 강건한 육체는 더할 수 없는 병기였다. 기마전술과 유목사회의 결합은 최고의 전사집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의 완비였다. 요컨대 기마전술은 유목민의 생리에 맞는 것이었다. 이런 유목민이 농경민족화돼 살게 되면 기마전술은 잊혀지거나 쇠퇴해 버린다.

기마민족이 목축과 농사를 병행하면 우선 그 많은 말들을 기를 초원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된다. 기마민족들의 정복왕조인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때는 기마전술이 활발했으나 조선조에 들어오면 기마군대는 거의 사라지고마는 이유도 기마와 농경은 생리가 잘 맞지 않은 탓이었다.

기마민족이 군대와 국가를 만들어 힘을 쓰려면 우선 인간을 모으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농경민족 군대는 영원불멸의 땅과 인간을 결합시키는 일이지만, 일정한 주거가 없이 항상 떠돌아다니는 유목 기마전사들의 경우엔 사람을 모으는 것이 군대조직의 급선무였다.

유목사회는 사람을 모아 조직을 만드는 데는 불리했다. 사람들은 가축을 몰고 다니면서 광대한 초원에 흩어져 가족단위로 독자적인 생활을 한다. 이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 군대와 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유목민들의 생리에는 맞지 않았다. 유목민들을 모아 군대와 국가를 건설하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경제적 이득.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전사로서 싸우는 것이 득이 된다는 계산이 있어야 했다. 다른 하나는 조직의 주체가 무력이든 권력이든 강제력을 행사하여 유목민들을 모으고 조직하는 것이었다. 군대와 국가는 유목민의 생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군대와 국가는 극히 인위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유목민의 군대가 농경민을 상대로 벌인 약탈 전쟁의 성과가 목축 생산물을 능가한다면 군대는 유지되지만 밑돌 때는 기마전사들이 군대 또는 국가라는 조직에서 탈퇴하여 유목민의 상태로 복귀한다. 애국심보다는 타산으로 뭉친 조직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렇게 되면 기마민족 국가는 갑자기 붕괴하여 사라진다. 기마민족 국가는 영토 개념이 약하고 집단개념이 강하다.

 

흉노의 경우 기마민족 집단이 몽골고원에 있을 때는 중국사람들에 의해 흉노라고 불렸고, 유럽으로 이동하여 게르만족을 칠 때는 서양사람들에 의해 훈(Hun)이라 호칭되었다. 이처럼 기마민족 국가는 행동반경이 큰 「움직이는 국가」였다.

서기 3~6세기 세계 지도를 바꾼 주체세력은 몽골고원에 살던 유목민이었다. 이들은 서기 전 2세기부터 세계적인 대제국을 잇따라 만들어 낸 산파였다. 지배층이 바뀌는 데 따라 비록 제국의 이름은 달랐지만 몸통은 항상 몽골고원에 살던 여러 부족의 유목기마민족이었다. 흉노-선비-북위-돌궐-위구르-거란-금-몽골세계제국(중국에선 元)-청(반농반목(半農半牧)의 여진족이 몽골족의 협조를 받아 세움) 제국의 중핵은 유목민이었다.

이들의 힘은 생활이 바로 전쟁준비이고, 비상시엔 전원이 전사가 될 수 있는 유목생활의 생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이들이 나중에 유목생활을 버리고 농경화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유목을 버린 만큼 군사적으로는 약화되었다. 유목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기마전술과 동원체제와 정신력이 유목을 떠나면 변질되거나 약해지기 때문이다.

JR의 유목민이야기/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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