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42
이름: bc8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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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 관련 질문에 답변  

질문 : 인터넷에서 스캔한 산해경에는 천제울국이 없습니다.

답변 : 수원객

 

곽박(郭璞)의 산해경 西山經 第二部 郭林宗傳 중 일부 내용입니다
산해경은 지금도 학자들에 의해서 새로 쓰여지고 있는 실정 입니다. 

    
2003-12-12 오후 8:41:39   
 


" 산해경을 기록하게 된 것은 고대 황제(黃帝)때 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당시는 정확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황제내경은 소문과 기백의 문답형식으로 되어있어 한의계에서는 원서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산해경이 최초로 쓰여진 동기로 보아서는 대륙의 산야와 각지에 있는 산물과 동물 등을 두루알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여러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부족국가와  백성들의 삶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던 것은 황제(黃帝) 때부터 라고 볼 수 있다.

산해경은 고대시대 국가들이 각 지역의 산물과 동물은 물론 어떤 부족이 어떻게 어느곳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부족국가가 살고 있는지 알기 위해 국가가 이어 내려올 때 마다 기록하였던 사서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국가가 바뀜에 따라 춘추시대를 거치고 다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저마다 산해경을 다시정리하고 교정을 보고 주(註)를 달았다.

한나라 이후 고구려, 백제,신라를 거치고 당나라 송나라를 거치고 다시 고려를 거치면서 명나라 청나라 때까지 산해경에 주(註)를 달고 교정을 보았다. 고대 산해경은 32편 이었으나 그후 교정을 보면서 22편으로 줄었고 다시 진(晉)나라때 곽박(郭璞)이 18편으로 역어 淸나라에 이르렀다. "

고대 산해경원전을 찾을 길 없으나 진(晉)나라때 곽박(郭璞)이 산해경을 정리한 것을  원가(袁珂)가 다시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를 지으므로 이를 참고로하여 책을 역었다고 율곤선생의 산해경완역판서론에 적혀있습니다.

지금 율곤선생은 여러권의 산해경 한문본을 갖고있으며 앞에서 소개한 원문은 원가(袁珂)의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를 참고하여 쓴 것 입니다.

* * 님이 퍼오신 율곤선생님의 글은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보다 먼저 지어진 곽박(郭璞)의 것입니다.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에는 천제울국이 나오지않으나 천제울국을 설명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소개한 것입니다.

율곤선생님의 말씀은 곽박의 산해경은 주(註)를 적게 달아 책이 얇아서 원가의 것을 참고 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곽박의 산해경 西山經 第二部 郭林宗傳 중 일부 내용입니다. (상해고적출판사)


 西山經 第二部 郭林宗傳, p 15, 本文參考

司天之九部及帝之유時, 主九城之部界天帝之時節也

中略

西山經 第二部 郭林宗傳, p 15, 本文參考

西南四百里曰, 崑崙山之丘, 是實推帝之下都, 天帝都邑之在下者也. 穆天子傳曰, 吉日辛酉天子升子, 崑崙之丘, 以觀黃帝之官, 而封豊隆之葬, 以詔後世言增封於, 崑崙山之上

 


 


산해경유수교상표(山海經劉秀校上表)

 

" 후진(後晉 AD.265-420년) 기실참군(記室參軍)이었던 곽박(郭璞)이 기록한 것을 유수(劉秀)가 교정(校正)하여 정리한 것이다."

라는 문장에대한 올바른 이해는

후진(後晉 AD.265-420년) 기실참군(記室參軍)이었던 곽박(郭璞)이 산해경을 새롭게 편집하면서 前漢말기에 유수(劉秀)가 기록한 "상산해경 표(上山海經 表)" 를 책의 서문에 산해경 서(山海經 序)와 함께 실은 것이며 산해경 서(山海經 序)는 곽박이 직접 쓴 것이고 상산해경 표(上山海經 表)는 유수(劉秀)가 기록한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후에 대만의 역사학자 원가(袁珂)가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를 출판했는데 그곳에는 산해경유수교상 표(山海經劉秀校上 表)라고 기록이 되었던 것이다. 

산해경유수교상표는 상산해경표(上山海經表) 또는 일반적으로 산해경표(山海經表)  등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따라서 본문에 " 유수(劉秀)가 교정(校正)하여 정리한 것이다." 한 것은 사실이지만 漢나라때 사람이 동진때 활동한 것처럼 서술된 것은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지못한 오류이다.

곽박이 동진나라 때 기실참군(記室參軍)(지금의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산해경을 다시 지었는데 산해경 서(山海經序)에도, 이 책은 황제(黃帝)때 부터 3000년을 전해져 내려왔으나 漢나라때 잠깐 나타나고 곧 매몰되다시피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이미 산해경이란 책은 희귀서로 분류되었던 것 같다.

곽박이 산해경을 다시 펴낸 이후에도 많은 학자에 의해서 산해경은 다시 쓰여 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산해경은 이본(異本)이 아주 많은 책 이며 지금도 학자들에 의해서 다시 쓰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가 18편으로 정리되게 된 것은 漢나라때 유수가 교정을 하면서 원래 32편 이었던 것을 18편으로 정리했다고 했으며 이를 곽박이 그대로 전한 것이다. 그렇지만 곽박의 산해경은 註가 적게 실려있었기때문에 이번에 율곤선생의 번역으로 나온 책은 주석이 풍부하게 실린 원가(袁珂)의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를 참고로하여 완역한 것이라고한다.

 

작은 창으로 보기 山海經序

작은 창으로 보기 산해경유수교상표(山海經劉秀校上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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