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노성매
2006/3/24(금) 22:00 (MSIE6.0,WindowsNT5.1,SV1,i-NavFourF) 221.139.160.36 1024x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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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의 의의 에 대해 답변  

 

 

율곤 이중재선생의 저서 「한民族史」을 인용해 답을 하겠습니다.

(252쪽∼) 중국인이나 일본인 역시 우리와 같은 삼묘족(三苗族)의 뿌리이면서도 특별한 민족인 것처럼 한민족사를 왜곡하거나 날조해왔다.
따지고보면 한민족의 가장 바른 뿌리가 한국인이며, 일본과 중국인들 역시 한민족의 자손들이다…

  호태왕(好太王) 비문은 상상고사(上上古史)부터 상고사(上古史)까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는 해석이 불가능한 문장들이 있다.
  호태왕 비문(碑文)은 사면(四面)으로 새겨져 있다. 1면은 462字, 2면은 420字, 3면은 546字, 4면은 378字, 모두 1,624字이다.
그런데 망가진 글자는 4면을 모두 합해 215자이다. 중요한 대목에서 망가뜨린 것이다. 고의로 망가뜨린 게 분명하게 나타난다.
중공학자 왕건군(王健群)이 탁본한 것을 보면 더욱더 선명하게 망가뜨린 자국이 나타난다.…

   광개토왕(廣開土王) 비문에서 중요시할 점은, 고조선(古朝鮮)의 강역과 평양성의 위치, 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의 위치와 관계가 어떠했으며, 어떻게 전개되어 갔는가…

  ① 비문에서 보는바와 같이 선조들이 얼마나 선왕(先王)의 묘(墓)와 비석을 중요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 묘들 지키는 가구는 나라에서 정해준대로 30호(三十戶)씩하여 도합 3백으로 묶었으므로 합하여 3백3십이 되었다. 이로써 선왕들이 불안했던 묘와 묘비를 철통같이 지키게 되었다)

  ②고구려가 낙랑(樂浪)즉 대방군에 처음으로 도읍을 정했다는 사실이다. 낙랑군공(樂浪郡公)이었던 고련(高璉)은 정동장군(征東將軍)으로서, 낙양(洛陽)에 평양성을 정하고 구려(句驪)로 출발해 대강국으로 천하통일을 하다시피 하였다.

  ③ 이 당시 백제는 섬서성 서안 아래쪽에 있었고, 뒤에는 사천성 쪽으로 내려옴을 알 수 있다.
이때 고구려는 북쪽인 낙양을 위시하여 서역(西域)으로 통하는 길목까지, 몽고, 곤륜산 일대, 북경, 만주, 일본(倭)까지 세력이 넓혀졌음을 볼 수 있다.
광개토왕 때 신라는 감숙성에 있는 금성(金城)을 무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강권에 못이겨 동남쪽인 안휘성, 강소성 쪽으로 옮기게 된다. 신라 15대왕 기림이사금은 고구려의 힘에 못이겨 우두산(牛頭山:산동반도의 아래, 상해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음)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왜(倭)는 대만에 나라를 세우고 신라와 백제를 침탈하기에 이른다.

  ④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보는 것처럼, 고구려가 강할 때는 사해(四海) 즉 천하를 통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는 통일한 사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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